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66화 (66/173)

< #24 전문 도둑 >

#24 전문 도둑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이동건이 지영민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며칠째 지켜보니까 대회 끝나면 바로 신림 군부대로 직행하는 거 같더라.”

“뭐? 지금 뭐라고 했어?”

“그러니까 경기장 아니면 군부대만 왔다갔다하고 있다고. 아무래도 애가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뭐 군부대?”

친척 형으로부터 근사한 일거리가 있다기에 찾아온 한국.

작업 하나 치려다가 어이없는 소리를 듣게 됐다.

작업치려는 골렘이 세상에 군부대로 들어간단다.

“진짜 군부대가 맞아?”

“맞아. 내가 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경기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군부대로 돌아가더라.”

지영민은 단박에 짜증부터 냈다.

“아니 시발. 그러면 못 터는 거잖아? 군부대에 처박히는 걸 대체 뭔 수로 털라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았다면 아마 진행도 달랐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목매달 필요도 없었을 테고.

하지만 조상민이 악튜러스 정보를 외국에 팔아넘긴 순간, 이동건의 발등엔 불똥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놔둔다면 외국에서 찾아온 전문도둑들에게 선수를 뺏기게 된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동건은 이 기회를 쉽게 저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털지 생각 좀 해보자고.”

“아니 형,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리지. 아니 군부대로 들어가는 걸 어떻게 털란말이야? 형, 전쟁할 생각 있어? 한국군이 아무리 호구라지만 이건 아니지. 거기 진짜 군부대야. 거기 게이트 열린 군부대 맞지? 그럼 끝났네. 거기 못 털어.”

지영민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못을 박았다.

경기를 끝낸 골렘이 허름한 고물상에 처박힌다면 그야말로 베스트겠지만, 군부대라면 포기하는 게 맞았으니까.

이동건이 언성을 높였다.

“그럼 시발 그걸 그대로 놔두자고? 우리가 놔주면 그거 외국 새끼들이 그냥 냅다 먹는 거야. 지금 그 꼴 보고 싶어?”

“아니 그렇다고 군부대에 처들어갈 미친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거기 들어간 순간 우리 둘 다 끝이야. 못 턴다고. 거긴 하느님 부처님이 와도 못 털어.”

“야이 시발. 하느님 부처님이면 털 수 있지 왜 못 털어. 말은 똑바로 해라.”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안 돼. 군부대 들어가면 답 없어.”

“그럼 내가 그 꼬마한테 찾아가서 내가 골렘 좀 털 테니까 고물상에 골렘 좀 놔두라고 부탁이라고 할까? 야이 미친새끼야 생각을 해. 걔가 미쳤다고 그러겠냐?”

“아니 형... 아씨. 이건 좀 아닌데. 아니, 애당초 못 터는 거였네.”

이동건이 다시 언성을 높였다.

“뭘 못 털어! 야, 운철 장갑 뜯어내는 게 그렇게 쉬워보였냐? 운철 장갑이 호구로보여? 야, 그거 천억짜리야. 천억짜리라고.”

“아니 그래도...”

“잘 들어. 송파구 경기장에서 신림 군부대까지 왕복만 한다면 답은 하나야. 중간에 터는 거지.”

“형, 지금 미친 거야? 여기 한국이야. 한국이라고. 절대 못 털어. 일 터진 순간 경찰 새끼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고.”

지영민은 손사래를 쳤다.

대체 어느 미친놈들이 벌건 대낮에 서울 도로변에서 강도짓을 할까?

그것도 골렘을 움직여 상대 골렘을 터는 그런 시끄러운 짓을 말이다.

지영민은 이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라고 봤다.

“안 돼. 여기 한국이라고.”

“알아 새끼야. 누군 몰라서 이딴 소리 찍 싸는 줄 알아? 나도 계속 생각해봤어. 하지만 이것 말고 또 뭐 있는데? 방법 있어? 없잖아.”

“아니, 좀 기다릴 수도 있는 거잖아.”

“야이 병신 새끼야! 기다리면 선수 다 뺏긴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처먹는 거냐? 우리가 놔주면 외국 새끼들이 뜯어간다고!”

“하 시발...”

지영민도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동건 말도 틀린 게 없었다.

아이가 데리고 있는 골렘이 경기장과 신림 군부대만 왔다갔다한다면 정말 도로변에서 덮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 외국 새끼들은 대체 언제 터는 건데?”

“몰라 시발. 아무튼 정보는 넘어 갔어. 걔들도 병신이 아닌 이상 남한테 선수 뺏기기 전에 빠르게 움직이겠지. 야, 이거 장난 아니야. 니 인생이랑 내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한다고.”

“아 진짜 좆같네.”

하지만 돈 천억 앞에선 장사 없었다.

지영민은 짜증어린 고함을 내지르더니 이동건이 제시한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다시 되짚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도로변에서 덮친다고? 그래 덮쳤다고 치자. 그 다음엔?”

“덮친 다음에 빠르게 처리하고 튀어야지. 여기 한국이다. 리미트로 잡아도 10분이야. 안전하게 하려면 5분 안에 전부 해결해야 돼.”

“그 다음 대책은 있어?”

“그날 중국으로 뜨는 거지. 추격을 피했다 싶으면 인천 공항으로 가는 거고, 추격이 좀 빡세다 싶으면 배편으로 뜨면 돼.”

“형, 진짜 영화 한 편 찍으려고?”

“야 영민아.”

“어 형.”

“이거 천억짜리다. 장난 아니야.”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큰 돈 앞에서 그들의 이성은 서서히 마비되었다.

“그래 시발. 인생 뭐 있어. 형 말대로 한방이지.”

“그래, 인생은 한방이다. 알았지?”

“그럼 배편은 내가 알아볼게. 아는 사람 하나 있어.”

“좋아. 그럼 내가 들이박을 무빙 아머리를 구해보마.”

“하 진짜. 서울 대로변에서 뻑치기 할 생각은 꿈에서도 못 해봤는데.”

“영민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거 장난 아니다. 5분이다. 5분 안에 쇼부보고 못볼 거 같으면 너랑 나랑 바로 튀어야 돼.”

“알아. 누가 뭐래?”

그렇게 된 계획이 지금 이렇게 됐다.

“영민아! 뭐해 빨리 움직여!”

“알았다고!”

지영민이 스카우터를 쓰자 옆 좌석에 있던 이동건이 무빙 아머리의 셔터를 올렸다.

셔터가 올라감과 동시에 등장하는 지영민의 골렘, 헬하운드.

검붉은 도색으로 한껏 멋을 낸 락 골렘으로 코어는 B+ 등급.

코어 등급만 보면 악튜러스와 동급이었지만 출력 차이는 있었다.

악튜러스 코어가 10억 수준이라면 헬하운드의 코어는 25억 수준.

즉, 힘에서는 헬하운드가 악튜러스를 웃돈다는 말이다.

-Link Start.

-Link Complete.

-System Check...

-System All Green.

-Stand by.

링크를 마친 지영민의 시야가 변했다.

멈춰선 차량들이 보이는 왕복 8차선 도로 위.

헬하운드가 거치대에서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구속구들을 힘으로 뜯어냈다.

거치대에서 해방 된 헬하운드가 무빙 아머리에서 뛰어내려 그 앞에 정차되어 있던 포르쉐를 찌그러트렸다.

놀란 운전자는 찌그러진 차량에 갇히고, 동시에 정차 된 차량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이야 알바 아닌 지영민의 시야에 10분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한국이었다.

안전하게 5분.

길게 잡아도 최대 10분 안에 작업을 끝마쳐야 안전하게 튈 수 있었다.

-카운트 종료까지 앞으로 09:50

‘좋아. 5분 안에 무조건 쇼부 본다.’

헬하운드는 불도처럼 주변 차량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를 사이드 미러를 통해 지켜보던 강준이 놀라 소리쳤다.

“뭐야 저건! 저건 무슨 미친 새끼야!”

강준은 서울 대로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반면 석민은 대충 감을 잡았다.

“전문 도둑이에요. 작정하고 왔네요.”

석민의 눈빛이 무섭게 식었다.

석민은 사이드 미러를 통해 뒤에서 박은 무빙 아머리의 차주인을 확인했다.

낯이 익었다.

예전부터 자기를 감시하던 그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였네. 어쩐지 많이 수상하더라.’

“이대론 당해요. 아저씨, 악튜러스부터 내보내세요.”

“뭐?”

“빨리요! 이러다 당한다고요.”

레버를 올린 강준이 다시 석민을 찾았다.

“그런데 조종은?”

“조종은 필요 없어요. 악튜러스가 전부 알아서 할 거예요.”

“그래?”

“이럴 시간이 없어요! 저희도 빨리 도망쳐야죠.”

둘이 무빙 아머리에서 내림과 동시에 악튜러스를 외부와 고립시키던 티타늄 합금소재의 셔터가 올라갔다.

이어 구속구 해제.

악튜러스가 자유의 몸이 됨과 동시에 하늘에서 덮쳐오는 락 골렘 하나가 있었다.

티타늄 합금으로 된 장갑.

꽤나 육중한 외골격을 자랑하는 락 골렘이 힘차게 뛰어올라 악튜러스의 머리를 주먹으로 노렸다.

그 순간 악튜러스가 손을 올려 제 머리를 타격하려던 헬하운드의 손을 잡았다.

지영민이 씩 웃는다.

“어쭈?”

반면 옆에서 지켜보는 이동건은 똥줄이 탔다.

그는 소란스런 주변을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저기 4차선 도로 위에서 경찰차가 당장이라도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올 것 같았다.

“야 빨리 끝내라고! 곧 짭새 떠!”

“알았어 좀 보채지마.”

지영민과 링크 된 헬하운드가 그 힘을 끌어내자 아직까지 거치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악튜러스가 밀렸다.

악튜러스가 표정을 구기자 헬하운드는 단순 힘으로 악튜러스를 거치대와 함께 나자빠지게 했다.

거치대와 함께 나자빠진 악튜러스의 코어를 노리고 헬하운드가 주먹을 냅다 꽂았다.

쾅!

하지만 그 주먹은 가슴 장갑을 꿰뚫지 못했다.

지영민은 씩 웃었다.

‘역시 운철. 진짜 단단하네. 이 주먹에 흠집 하나 안 나는 걸 보면.’

감탄은 잠시.

지영민은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파운딩 자세로 들어간 헬하운드가 무자비하게 주먹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빨리 승부를 내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 순간 방심한 헬하운드의 주먹을 잡고 두 발을 뻗은 악튜러스가 암바를 걸었다.

지영민이 당황했다.

골렘 따위에게 이런 서브미션 기술이 있을 줄이야.

얼탱이가 없었다.

‘뭐야? 무슨 이런 골렘이 다 있어?’

당황한 지영민이 헬하운드로 하여금 저항하게 했으나, 악튜러스는 오히려 헬하운드의 팔을 꺾으며 그 팔을 망가트렸다.

-타우렌 견갑골 대파.

-경고! 왼쪽 어깨 부분이 크게 파손됐습니다.

“시발!”

지영민이 욕지거리를 내뱉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이동건이 지영민에게 소리쳤다.

“야, 아직도 멀었어? 곧 짭새 뜬다고 새끼야. 빨리 좀 끝내.”

“알았으니까 좀 닥치고 있어봐! 누군 빨리 안 끝내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나.”

악튜러스는 헬하운드의 팔을 꺾어 이를 뜯어버렸다.

반면 팔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선 헬하운드가 남은 주먹을 휘둘렀으나 노련한 악튜러스에게 닿지는 못했다.

뻗히는 주먹을 가볍게 피한 악튜러스가 오히려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그 바람에 안면부가 함몰된 채 그 몸이 붕 뜬 헬하운드가 도로변 위로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다.

아무래도 이동건과 지영민의 원대한 계획은 첫 단추부터 어긋난 듯싶었다.

보기 추하게 나동그라진 헬하운드.

그 위로 성난 악튜러스가 고릴라처럼 뛰어내렸다.

쾅! 충격과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튀는 차량들.

티타늄 합금으로 된 장갑도 성난 악튜러스의 주먹질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경찰차만 찾고 있던 이동건이 패색이 짙어지던 헬하운드를 보자마자 지영민을 찾았다.

“야, 저거 왜 저래?”

이번엔 악튜러스가 헬하운드를 상대로 파운딩 자세를 잡고 무자비하게 주먹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이미 끝난 싸움.

지영민이 스카우터를 벗어 내렸다.

“시발 진짜!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이거 애초에 무리였다고.”

오히려 지영민이 이동건에게 성을 냈다.

“진 거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새끼야.”

“눈이 삐꾸야? 딱 보면 몰라? 지금 개처발리고 있잖아!”

“야이 병신 새끼야! 장비를 뜯어가도 모자를 판국에 저기서 저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이길 수 있다면서!”

“누가 이긴다고 했어! 그냥 만만하면 이긴다고 했지.”

서로 언성만 높이던 둘의 계획은 결국 실패하게 됐다.

곧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이동건은 급히 무빙 아머리에서 내렸다.

“야, 튀어!”

지영민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스카우터를 벗어던지고 난장판이 된 도로 위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린 둘은 인도 부분으로 도망쳤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들이 도로 변에 찾아갔을 땐, 주인을 잃은 락 골렘 하나가 거적때기마냥 변해있었다.

장갑 대부분은 파손되어 있었고, 코어 캡슐도 반쯤 망가져 있었다.

다행인 점은.

그 안의 코어는 멀쩡했다는 점이다.

< #24 전문 도둑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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