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64화 (64/173)

< #23 파이어 호크 >

#23 파이어 호크

“여기는 32강전 3번째 경기가 준비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K골렘 스타디움입니다. 전 경기에서 K나이트의 활약이 아주 대단했었는데요. 저 기세라면 올해 우승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네, 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철민 선수, 비록 그 몸은 불편하지만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은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불편함들을 저 경기장에서 마음껏 풀어내는 모습입니다.”

“네, 어떻게 보면 김철민 선수가 골렘 파이터를 선택했던 게 정말 잘했다고 봐요.골렘 파이터가 아니었다면 그러한 욕구를 대체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참 의문입니다.”

전 경기를 끝마친 김철민은 휠체어를 탄 채 선수 대기실로 입장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8차선 도로 위를 무단횡단 하던 그는 트럭에 치인 뒤 하반신 불구가 됐다.

그 뒤 인생을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왔으니, 그것은 바로 골렘과 링크하여 상대 골렘을 때려 부수는 골렘 파이트였다.

“상철아.”

휠체어를 탄 김철민이 선수대기실에 조용히 앉아 있던 누군가를 불렀다.

“다음은 네 차례인 거 알지? 잘해라. 형이 대기실에서 지켜볼게.”

이상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형, 지켜보세요. 꼭 이길 테니까.”

“꼭 이겨라. 이번엔 형이랑 본선 무대에서 한 번 붙어봐야지.”

“네, 당연하죠 형.”

김철민은 씩 웃고선 휠체어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이상철은 멀어져가는 김철민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는 현실에선 걸을 수 없는 몸이었지만 골렘 파이트에서만큼은 달랐다.

그는 국내 우승에 대한 열망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 한순간도 나태해지거나 게을러하지 않았다.

선배로서는 꽤 존경할만 했다.

하지만 언젠간 뛰어넘어야할 벽.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오늘 만날 악튜러스란 골렘을 꼭 때려 부숴야 했다.

‘꼭 올라가서 형하고 붙을 겁니다.’

이상철이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았다.

출전 대기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과 차석민이란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선수 대기 신호로 바뀌자 경기장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 각오를 다졌다.

‘꼭 이긴다.’

그 시각.

반대편에 위치한 선수 대기실에선 석민이 강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알아봤는데 다들 모르겠단다. 대회 관계자일까 생각해서 그쪽도 알아봤는데 그것도 아니야.”

“제 생각이 맞다면 전문 도둑이 맞을지도 몰라요.”

“정말 전문 도둑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네, 일단 그쪽으로 의심하고 있어요.”

“그럼 신고해야하지 않을까? 네 말대로 전문 도둑이면 말썽 일으키기 전에 잡아들여야지.”

“당연히 신고해야죠. 하지만 그전에 무슨 의도로 접근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요.그 다음 신고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한성철 아저씨는 안 보이네요?”

“아 그 형 오늘 처가에 내려갔어. 결혼했잖아.”

“결혼하셨구나. 저는 몰랐어요.”

“결혼하면 원래 피곤한 일이 많아. 걱정마라. 옆엔 내가 있잖니. 그보다 대기 신호다. 준비해라 석민아.”

“네.”

대기 신호는 머잖아 출전 신호로 바로 바뀌었다.

석민이 대기 중이던 악튜러스와 함께 경기장 밖으로 나가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덮쳐왔다.

벌써 32강전.

곧 있으면 16강, 8강, 머잖아 결승까지 치러질 것이다.

양 선수가 출전 골렘을 데리고 경기장에 입장하자 지켜보고 있던 아나운서 셋이 끊어지는 광고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네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이어서 32강전 3번째 경기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경기는 슈퍼 루키로 활약하고 있는 악튜러스와 현대 매니지먼트의 파이어 호크 간의 대결이 되겠는데요. 두 분께서는 이번 경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김요한 해설위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네, 이상철 선수. 현대 매니지먼트에서 두 번째로 밀고 있는 선수죠. 파이어 호크도 예선전 성적이 나쁘지 않습니다. 악튜러스처럼 전승으로 올라왔죠. 현대 매니지먼트에서도 칭찬이 아주 자자한 선수입니다. 연습량이 김철민 선수만큼이나 정말많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노력파인 김철민 선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겠죠. 사람들이 김철민 선수를 독종으로까지 표현하지 않습니까? 연습량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김철민 선수 밑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이상철 선수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겠죠.”

“파이어 호크... 그 불새 마법이 엄청 유명하죠.”

“네, 저도 보긴 했는데 정말 화려하더라고요. 그 뭐냐. 마법 폭격기란 말이 괜히 있겠습니까? 오늘 경기에서도 파이어 호크의 불새 폭격을 기대해보겠습니다.”

파이어 호크에 대해 떠들던 그들은 이제 악튜러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악튜러스는 지난 경기와 비교해봤을 때 변한 게 거의 없는 것 같네요. 장비 상태도 그대로고 수리도 거의 안 한 것 같은데... 이건 좀 문제 있는 게 아닐까요?”

“차석민 선수의 경우 G 매니지먼트라고 해서 신생 매니지먼트 출신인데, 아무래도 신생 매니지먼트라서 그런지 지원이 다소 미흡한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

“기술팀이 아예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차석민 선수에게 찾아가 물어보니까 기술팀 없이 개인 자력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고 들었습니다. 매니지먼트에서 크게 도와준 건 없다고 하네요. 어떻게 보면 개인 출전했다고 보심이 맞을 듯싶습니다.”

이용호 캐스터가 놀라 되물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매니지먼트도 없이 선수 개인이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겁니까?”

“어렵죠.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거죠? 저희가 모르는 뭐라도 있는 건가요?”

“차석민 선수의 경우, 아빠가 이번에 각성한 S급 헌터 차태식 씨라고 하네요. 아마도 아빠 후광을 좀 입지 않았나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엄청 대단한 거 아닙니까? 아빠가 S급 헌터면 국내 대기업에서 후원해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이게 아빠가 헌터로 각성한지 얼마 안 돼서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지금 장비 수준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고요.”

“아, 그런 겁니까? 그럼 아빠 후광을 입었다고 보기에도 좀 애매하겠네요.”

“매니지먼트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준다면 또 모르겠는데, 들어보니까 계약 자체가 선수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좋은 조건이라서 매니지먼트에서 작심하고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여러모로 많이 힘들겠군요. 차석민 선수, 이 난관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지켜봐야겠죠. 아직까진 괜찮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눈 여겨 보는 선수라서요.”

“네, 저도 일단은 지켜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름 유망주거든요.”

32강전 3번째 경기를 내려다보며 웅성거리는 관중들.

맥주 캔을 부딪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팝콘을 주워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는 아이를 보채는 엄마와 아이를 안고 경기장을 향해 함성을 지르는 아빠들까지.

별의별 관중들 틈에 껴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동건.

그리고 그 옆엔 장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저 골렘이야?”

“맞아. 저 골렘이다.”

지영민.

이동건이 부른 전문 도둑으로 악튜러스를 털기 위해 전날 상해에서 인천으로 넘어왔다.

스카우터를 쓴 지영민이 악튜러스의 장비를 보더니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씨, 이건 좀 애매한데?”

“왜?”

“장비가 애매하잖아.”

“뭐가 애매해. 저거 운철이라고. 그리고 피스트 브레이커에다가 코어도 10억짜린데.”

“그게 아니라 내가 작업치기가 애매하다고. 저 정도면 본선 진출급이잖아.”

“아니 저것도 못 털어?”

“아니, 못 터는 건 아닌데. 좀 그렇긴 하지. 내가 간을 좀 많이 보거든.”

“저거 기술팀도 없어서 장비 수리도 못하는 호구야. 저것도 못 털거면 대체 뭘 터는 건데?”

“아이씨 그렇게 몰아붙이지 말고.”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운철이면 까야지. 다른 거면 모르겠는데 운철이면 한 번 해볼만 해.”

당연한 소리였다.

운철로 된 장갑 하나만 털어도 앞으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테니까.

“야, 신림 벙커다. 이 경기 끝나고 신림 벙커로 들어가기 전에 꼭 작업 쳐야 된다.”

“알아. 그래서 중간에 터는 거잖아. 군부대에 들어가면 이쪽에선 답이 없거든.”

“성공해라. 실패하면 너랑 나랑 끝이야.”

“나도 알지. 막말로 서울 도로 한복판에서 작업치는 건데.”

몇 시간 뒤 한국을 뜰 생각을 하는 두 남자가 지켜보는 아래.

대형 경기장에선 홍길동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불새와 깡통의 싸움! 자 그럼 달려봅시다! 모두 다 같이 Ready, Fight!”

32강전 3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악튜러스와 링크 된 석민은 불사조 세트를 착용한 상대 파이어 골렘을 스캔해봤다.

파이어 호크.

배틀 메이지 타입으로 불새 마법에 특화되어 있었다.

‘장비는 64강전에 썼던 그대로네. 바뀐 건 없어.’

악튜러스가 안티 매직 쉴드를 앞으로 세웠다.

이를 본 이상철이 날카로운 눈으로 악튜러스를 훑어 내렸다.

‘장비는 그대로. 그런데 수리를 안 한 건가? 효율이 왜 저래?’

악튜러스가 착용한 금속 외골격 중 듀란의 성에서 공수해올 수 있는 것들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 외의 안티 매직 쉴드의 경우 그 효율이 전 경기와 비슷했다.

막말로 전 경기에 쓰던 걸 수리도 없이 그대로 가져와 또 쓰고 있는 것이다.

‘기술팀이 없다고 하던데. 진짜인가 본데?’

그런 악튜러스의 사정이야 이상철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씩 웃는 이상철이 파이어 호크로 하여금 양팔을 뻗게 하였다.

‘저쪽 사정이야 내 알바는 아니고. 이 경기 잘 가져가마.’

뻗은 양손에 화르륵! 불꽃이 인다.

‘마법 폭격이란 게 뭔지 보여주마.’

연이어 터져 나오는 불꽃들이 불새의 형상을 취했다.

이어 뻗어나가는 불새가 그 화려함을 뽐내며 악튜러스에게 날아가 꽂혔다.

악튜러스는 방패를 움직여 날아오는 두 마리의 불새를 맞부딪치게 하였다.

방패와 적중한 불새들은 불꽃으로 화하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이어 불새가 남긴 뜨거운 열기가 악튜러스를 덮쳐왔다.

악튜러스는 빠른 구르기를 통해 공기마저 불태우는 그 열기를 피했다.

하지만 날아오는 불새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파이어 호크가 주먹을 연달아 내지르자 불새 마법이 난무했다.

말 그대로 마법 폭격이 시작된 것이다.

악튜러스는 방패를 세우며 계속 뛰었다.

이어 흙의 지배력을 행사해 지형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64강전과 마찬가지로 험난해진 지형.

불새 출격으로 악튜러스를 압박하던 파이어 호크는 급격하게 변형되는 지형 속에갇혔다.

‘어스 골렘은 이게 짜증난다니까.’

어스 골렘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지형의 변화.

파이어 호크가 변형된 지형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을 때, 땅 밑이 싱크홀처럼 꺼지기 시작했다.

이상철이 표정을 구겼다.

‘이거 위험한데.’

지옥의 구렁텅이가 파이어 호크를 집어삼키려 했을 때, 착용중이던 불사조 세트 효과가 발동됐다.

잠시 후 싱크홀에서 한 마리의 불사조가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불사조 세트 효과로 날아오른 파이어 호크였다.

한데 미리 예상이라도 했는지 그런 파이어 호크를 공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악튜러스가 있었다.

미리 뽑아놓은 대검엔 마나가 가득했고, 맞춰 뛴 타이밍도 칼처럼 정확했다.

일도양단.

악튜러스가 브로큰 블레이드를 크게 휘둘렀다.

이상철이 기겁하는 순간.

하늘로 날아오른 불사조의 머리가 뎅강! 잘려나갔다.

< #23 파이어 호크 > 끝

ⓒ 대문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