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61화 (61/173)

< #22 악한 일을 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는 두 발 >

#22 악한 일을 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는 두 발악튜러스는 아이온의 코어 캡슐을 뜯어버리며 승부를 지었다.

저항을 멈춘 아이온과 그 위에 선 악튜러스는 환호성 없는 경기장에서 조용한 승리를 만끽했다.

아직도 흙먼지가 걷히지 않은 경기장 쪽을 바라보던 이용호 캐스터가 입을 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결과가 나온 듯싶습니다. 아이온이 악튜러스에게 패했습니다.”

이용호의 말에 김요한과 강동준 해설위원도 말을 붙였다.

“보통 어스 골렘이 윈드 골렘에게 약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튜러스가 아이온을 상대로 이겼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아이온의 김성필 선수. 초반에 악튜러스를 강하게 압박했던 만큼 좋은 성적이 나오진 못한 것 같네요. 조금 더 분발해서 내년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악튜러스. 예선전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이렇게 64강 경기도 가져가게 되네요. 두 분께선 이 악튜러스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솔직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16강까지 보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16강까지 보고 있기는 한데, 운이 좋으면 8강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장비 수준으론 그것도 감지덕지거든요. 사실 저 장비 수준이면 출전 골렘들 중에선 중하위에 속하는 수준입니다.”

“거의 하위죠. 본선 출전 골렘들이 평균적으로 티타늄 합금으로 된 외골격과 뼈대를 쓰고 있는데 반해, 악튜러스는 강철 뼈대를 쓰고 있으니 장비 수준이 많이 낮은 겁니다.”

“신인이 16강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네, 요즘엔 거의 없죠. 이게 지원과 후원 때문에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 장비로 32강까지 진출한 차석민 선수의 실력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예전 수준의 골렘 파이트였다면 신인인 차석민 선수도 이민호 선수처럼 우승까지 가능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골렘 파이트 수준이 너무 상향되어 있어서요. 많이 힘들죠.”

“그렇군요. 네, 잘 알겠습니다. 지금 경기장 분위기가 어수선한데요. 경기장이 빠르게 준비되는 대로 바로 다음 경기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용호 캐스터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K골렘 스타디움에 있던 전광판은 전부 기업광고로 도배됐다.

술렁이는 관중들.

악튜러스가 이겼다는 말에 그러려니 넘기는 이들이 대다수.

관중석에선 정말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엔 아직 독일로 넘어가지 않은 페트리샤도 있었다.

페트리샤가 보기엔 경기 수준이 참 뭐 같았다.

“수준 낮아. 저급해.”

자기가 이 대회에 출전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4강전 첫 경기.

대한민국 넘버원 골렘이라 불리는 레드 데빌의 수준을 보니 정말 형편없었다.

그딴 골렘이 여기선 넘버원이라니.

아무리 엄마 나라라지만 그 수준이 보였다.

“재미없어. 마마, 가자.”

페트리샤가 관심 두는 상대는 딱 한 사람.

그 사람 외에 나머지 것들은 전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었다.

어차피 월드 그랑프리 수준도 안 되는 버러지들.

“더 안 봐? 엄마는 재밌는데.”

이진아가 페트리샤를 말렸으나, 페트리샤는 고집이 센 아이였다.

“나 안 봐. 재미없어.”

“좀만 더 보고가자.”

“싫어. 수준이 너무 저급하단 말이야. 차라리 지난 유럽 리그나 볼래.”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멀리서 그 두 모녀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금발벽안의 청년, 스티븐 스미스.

캡모자까지 쓴 그는 악튜러스를 살펴보기 위해 미국에서 넘어온 블랙 맘바 멤버 중 하나였다.

“야, 저기 베가 파이터도 있네. 저 독일 꼬마. 보이냐?”

특수 쌍안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스티븐이 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야오린에게 말했다.

야오린은 고개를 들어 스티븐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스티븐 말대로 눈에 익은 꼬마가 보였다.

베가 역시 그들의 먹잇감이었다가 최근에 놓아준 상대.

스티븐이 아쉬움을 뱉어냈다.

“아깝네. 저 베가도 나름 작업치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결국 각만 잡다 끝났지. 저쪽 보안이 나름 철저했거든.”

시끄러운 관중석에 앉아 있던 스티븐이 손을 비볐다.

‘그런데 여긴 왜 있는 거지? 월드 그랑프리를 노리는 독일 골렘이 지켜볼 정도로 수준 있는 곳이 아닐 텐데?’

스티븐도 페트리샤와 마찬가지 생각.

경기 수준이 북미나 유럽 리그에 비해 한참 낮았다.

그나마 중국 본토에서 열리는 골렘 대전은 볼만 했는데, 여기서 열리는 골렘 대전은 솔직히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수준 차이가 있냐면 북미, 유럽, 중국 같은 경우는 자국내 본선 경기가 월드 그랑프리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대회에 출전한 아무 선수나 골라 월드 그랑프리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경기 수준이 높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 한국에서 열리는 골렘 대전은 그런 대회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여기선 1등 정도는 해야 겨우 월드 그랑프리 턱걸이를 맞출 수 있을 거 같았다.

‘이해할 수 없네.’

“야, 야오린.”

스티븐이 갑작스레 야오린을 찾았다.

대답이 없다.

고개를 돌리니 야오린이 소리 없이 사라진 상태.

“그새 어딜 간 거야?”

스티븐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야오린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사라진 야오린은 선수 대기실에 도착해 있었다.

관계자 외엔 출입금지 구역.

하지만 야오린에겐 위조된 출입증 카드가 있었다.

다음 경기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출전 대기 중인 여러 골렘들이 보였다.

야오린은 그곳에서 지금 막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악튜러스에게 다가가 섰다.

그리곤 고성능 스카우터를 착용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골렘을 스캔합니다.

-정밀 검색 중...

캐쥬얼한 차림의 어린 소녀가 자기를 올려다보자 악튜러스가 말없이 고개를 내렸다.

표정이 없는 어린 소녀.

눈을 맞춘다.

악튜러스는 소녀의 눈동자에서 그 영혼을 보았다.

순수하면서 차가운 영혼.

“누구세요?”

석민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스카우터를 쓴 채 악튜러스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던 중학생 정도의 누나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야오린은 자기에게 말을 건 아이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어린 남자아이가 자기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만약 말을 걸어온 상대가 어른이었다면 야오린은 말없이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보다 어린 아이였기에 옅게 웃어주었다.

“아니야.”

서로 포켓이 있는 둘은 쓰고 있는 언어가 달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석민은 떠나가는 야오린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이상한 누나네.’

석민은 악튜러스를 불렀다.

“악튜러스, 저 누나 뭐야?”

악튜러스는 전음으로 답했다.

‘나를 살펴보더군. 순간이었지만 어두운 마음이 보였다.’

“어두운 마음? 그거 나쁜 생각이야?”

‘단순히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석민은 야오린이 떠나간 곳을 쳐다봤다.

야오린은 벌써 자리를 뜨고 떠나간 상태.

석민은 미간을 좁혔다.

‘설마 악튜러스를 노리는 사람은 아니겠지?’

보통이었다면 쉽게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중학생 정도의 어린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석민은 달랐다.

‘아까 중국말을 썼어. 거기다 고성능 스카우터까지. 많이 수상한데.’

그때 석민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선 야오린은 아까 일을 떠올렸다.

고성능 스카우터로 장비를 살펴보니 의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일반 강철은 아니야. 성분이 이상한 걸 보니까 운철이 맞는 거 같아.’

잠시 후.

선수 대기실에 있던 야오린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야오린을 찾던 석민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차태식이었다.

“아빠!”

“아들, 잘 있었어? 오늘 본선 첫 경기라면서.”

“응, 오늘 첫 경기야.”

“이겼어?”

“당연히 이겼지. 아들이 엄청 잘 하잖아.”

“역시 우리 아들! 그래, 무조건 이겨야지. 이 아빠가 주고 간 돈이 얼만데.”

아들 골렘 장비하라고 주고 간 돈만 300억.

그것도 다 은행 대출이었다.

현재 차태식은 연이은 허탕으로 인해 은근히 똥줄 타고 있었다.

생각보다 벌이가 시원찮았다.

김정민 헌터가 말했던 것처럼 1000억이 넘어가는 아티팩트를 줍는 일이 그리 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빠, 아직도 도착 안 했어?”

“아직도 가는 중이다. 아이고 말도 마라. 멀다 멀어. 이러다 어느 세월에 도착할지.”

2주 전에 떠난 차태식은 아직도 저층 지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는 길이 쉽지 않고 험난했다.

길을 헤매질 않나,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에 피해가질 않나.

던전의 발견으로 시간을 잡아먹지 않나.

아무튼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있었다.

“지금은 어딘데?”

“지금? 잠깐만.”

차태식은 근처에 있던 김정민 헌터를 불렀다.

“정민씨, 지금 여기가 어디죠?”

“여기요? 여기가 헤파이토스 신전이던가? 대장장이 신전이라고 말해주세요.”

그 이야기를 들은 차태식이 아들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아들, 여기 헤파이토스 신전이래.”

“헤파이토스 신전? 와 거기서도 천신 반지처럼 뭐 얻는 거 아냐?”

“아니, 여기 아무 것도 없다. 완전 개털이야. 신전 벽면에 이상한 글귀만 잔뜩 있어.”

보통 사람이라면 아티팩트나 보물 같은 걸 물어보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석민은 달랐다.

석민은 대장장이 신전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혹시 여기라면 아다만틴을 다루는 기술이 나와 있지 않을까?

“아빠, 아들도 보여줘. 아들도 벽면에 뭐가 적혀 있는지 보고 싶어.”

“잠깐만 기다려봐.”

차태식은 가져왔던 스카우터를 썼다.

이때 석민도 스카우터를 쓰고 영상 통화로 바꾸었다.

곧 두 부자는 같은 화면을 보게 됐다.

“아들, 여기서 뭘 보려고. 아빠는 여기에 적힌 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포켓이 있어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했지만 차태식은 신전 벽면에 관심도 없었고 무슨 말을 적어놨는지 선뜻 이해되질 않았다.

석민도 관심 있게 봤으나 마찬가지.

난생 처음 보는 고유 명사에 생소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세계의 전문 지식이 없는 한 해석하는데 시간이 제법 필요할 것 같았다.

이때 석민과 같은 화면을 보고 있던 까리뽕이 나섰다.

“제가 보니 여러 광물질들을 다루는 기술들이 나와 있군요. 헤파이토스면 아주 유명한 대장장이입니다.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룰 정도죠.”

“까리뽕, 저게 이해 돼?”

“네, 저한테는 쉽습니다. 다만 관심 없는 분야라서.”

“까리뽕, 저기서 아다만틴을 다루는 기술이 있나 한 번 봐줘.”

“지금 보는 벽면엔 없습니다.”

“아빠, 까리뽕이 다른 곳 좀 보여 달래.”

차태식은 귀찮았으나 아들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들어주기로 했다.

그때 차태식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기 허탕이에요. 더 볼 것도 없는데 나가죠.”

김정민이었다.

“저기 정민 씨, 제 아들이 여기 글귀 좀 보고 싶대요. 좀만 쉬었다 가죠.”

“예? 그걸 왜 보여 달래요?”

“저도 몰라요. 그냥 보여 달래요.”

“이거 봐봤자 우리 같은 사람은 절대 몰라요. 이계 고고학에 정통한 사람들도 이거 분석하려면 한 세월 걸리는 거예요.”

김정민의 말과 다르게 까리뽕은 아주 손쉽게 벽의 글귀들을 해독해나갔다.

“정말 여러 가지 금속을 다루는 기술들이 적혀 있군요. 대장장이 신전답습니다.”

“까리뽕, 아직도 못 찾았어.”

“보채지 마십시오. 지금 찾고 있습니다. 어어, 그 부분에서 좀 더 위로.”

“아빠 조금 위로.”

그렇게 신전 벽면을 10분 정도 뒤졌을까?

드디어 원하던 것을 찾게 됐다.

“아, 찾았습니다. 아다만틴을 어떻게 다루냐 했더니 저렇게 다루는 거였군요.”

변형이 불가능한 절대 금속.

아다만트, 아다만틴, 아다만티움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그 금속은 다루는 기술마저 아주 특별했다.

“어떻게 다루는 거야? 불로는 못 녹이지 않아?”

“불로는 절대 못 녹입니다. 보니까 아다만틴의 경우 마나 용광로가 필요하군요.”

“마나 용광로?”

“그게 있어야만 아다만틴을 녹일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나와 있군요.”

“마나 용광로? 그게 뭐야?”

“제가 보니까. 마정석을 대량으로 태워내는 용광로입니다. 이거 장작으로 쓰일 마정석이 엄청 필요하겠군요.”

< #22 악한 일을 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는 두 발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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