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60화 (60/173)

< #21 대한골렘대전 >

적중!

무려 240%나 증폭 된 데미지.

마법도 아니고 단순 장비만으로 증폭된 데미지다.

찰진 타격감과 함께 아이온이 바닥에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다.

부서진 장비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김성필은 요동치는 시야에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뒤에서 쳤네.’

그래도 뒤에서 친 건 아는 모양.

그 즉시 반격하기 위해 일어나려했지만 뒤를 잡은 악튜러스는 제 앞에 나동그라진 아이온을 쉽게 놔줄 생각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이어지는 피스트 브레이커의 강력한 내리침이 아이온의 등에 꽂혔다.

또 다시 튀는 장갑 파편.

그 바람에 일어나려는 아이온은 다시 바닥에 파묻히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관중석은 조용했다.

뭔가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흙먼지에 가려 아무 것도 안 보였으니까.

그 순간 또 다시 돌풍이 불었다.

뿌연 시야는 더욱 흐려지고 웅성거리는 관중들의 혼란은 계속 된다.

경기를 생중계하는 해설진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

“어스 골렘하고 윈드 골렘이 붙으면 저런 일이 많이 있죠.”

“아무 것도 안 보이네요.”

관중들이 보는 흙먼지 아래.

강한 돌풍을 일으키며 반격하려는 아이온이 있었다.

윈드 골렘은 어스 골렘에게 항상 강한 면모를 보여 왔었다.

어떤 식이냐면 지금 아이온처럼 강력한 바람을 일으켜 어스 골렘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흙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휘몰아치는 광풍.

그 광풍에 휩쓸리는 악튜러스가 주춤하더니 바람에 휩쓸려 내부의 흙이 소실되기시작했다.

악튜러스가 내는 힘의 근간은 바로 흙.

코어에서 생성된 마나가 악튜러스 내부를 채우는 흙으로 흘러들어가고 그 흙이 움직이면서 힘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온이 돌풍을 일으켜 그 흙을 날려버리자 악튜러스는 힘을 제대로 낼 수 없게 됐다.

장갑과 장갑 사이에 있는 이음매에선 대량의 흙이 소실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원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강철 뼈대까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드러났다.

-돌풍으로 인해 대량의 흙이 소실됐습니다.

-주의! 흙의 소실로 출력이 저하됩니다.

출력 저하는 덤이다.

악튜러스가 주춤하는 사이 가까스로 살아난 아이온이 다시 자세를 잡았고, 돌풍에 주춤거리던 악튜러스를 시야에 담았다.

‘옳거니 거기 있었구나!’

김성필이 반격을 위해 아이온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온 내부에 차있던 공기는 어느새 흙먼지로 채워져 있었고, 부릅뜬 두 눈은 악튜러스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출력이 저하되는 악튜러스와 다르게 잔뜩 흥분한 아이온은 오히려 출력이 상승했다.

-코어의 출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측정된 코어 출력 880hp입니다.

880마력의 힘을 끌어내는 윈드 골렘 아이온이 무섭게 치고나가며 제 앞에서 주춤거리던 악튜러스에게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깔끔하게 날아가 뻗히는 주먹은 이내 악튜러스가 내세운 방패에 막히고 말았다.

‘그래봤자지!’

악튜러스 코어는 B+등급.

이에 반해 아이온의 코어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B등급이었다.

그럼에도 악튜러스가 힘에서 밀리는 것은 주변에 이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대량의 흙을 소실해서 힘을 제대로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악튜러스를 옭아매고 있는 바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휘몰아치고 있었다.

적어도 김성필은 그 바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 바람이 있기에 자기보다 더 좋은 코어를 달고 있는 악튜러스를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으니까.

경기장의 시야는 갈수록 혼탁해져갔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흙먼지 속.

다시 기세를 잡은 아이온은 방패를 앞세운 악튜러스를 무섭게 몰아붙였다.

앙상한 금속 뼈대 위에 외골격을 씌운 대전 골렘이 격렬하게 움직이며 악튜러스가 내세우고 있던 방패에 자기 주먹을 사정없이 직격시켰다.

쾅! 쾅!

시원하게 꽂히는 주먹들.

타격감은 확실히 좋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기세를 잡긴 잡았는데, 방패에 막혀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가 없었던 것.

그놈의 방패가 문제였다.

‘개 같은 방패 같으니라고!’

힘으로 어떻게든 밀어붙이려 했지만 20억짜리 방패는 생각보다 견고했다.

헤비 머신건의 화력은 못 버텼지만 골렘 주먹은 가볍게 막아내니 울화가 치밀었다.

‘시발, 그 뭣 같은 방패 좀 치우라고!’

하지만 돌풍 속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방패 밖에 없는 악튜러스는 거북이 자세를 계속 고수하며 절대 방패를 내려놓지 않았다.

성난 아이온은 제 앞을 막아서고 있던 방패만 신나게 두들기다가 스트레스 게이지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 39/100-현재 스트레스 게이지가 40에 도달했음으로 폭주경보가 ‘관심’ 단계로 격상됩니다.

이게 만약 게임이었고, 링크한 골렘이 자기가 조종하는 캐릭터였다면 아무리 같은 동작을 반복시켜도 그 캐릭터는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짜증도 안 냈을 것이고.

하지만 그건 게임 속 캐릭터 이야기.

골렘은 그런 캐릭터와 달랐다.

의미 없이 같은 동작만 반복시킨다면 경우에 따라선 아주 무섭게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게 되면 골렘이 주인 말을 듣지 않게 된다.

그리곤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그 골렘이 멍청할 경우였다.

골렘도 정말 여러 가지 골렘이 있었다.

어떤 골렘은 사람과 같은 지적 능력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골렘들은 생각 자체를 못하거나 단순하게 하는 바보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이온은 그런 무식한 골렘 중 하나.

‘이 녀석이 빡치면 안 돼. 존나 멍청해서 그냥 끝난다고.’

김성필도 아이온과 함께하면서 여러 일들을 겪어봤었다.

그중에 아이온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자기 통제를 벗어난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때 다 이긴 게임을 지고 말았는데, 패인 중 하나가 바로 아이온이 가진 멍청함에 있었다.

그때도 어스 골렘과 싸우고 있었는데, 돌풍만 일으켜도 충분히 이길 것을 그 돌풍을 멈추고 무식하게 덤벼들다 아쉽게 패한 적이 있었다.

‘또 그 지랄나겠네. 이 녀석 학습 능력도 없는데.’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김성필은 되도 않는 방패 치던 것을 급히 멈췄다.

상대가 공격을 멈추자 방패로 버티던 악튜러스가 한숨 돌리게 됐다.

석민은 방패 너머로 공격을 멈추고 서 있던 아이온을 보았다.

‘왜 멈춘 거지? 설마 스트레스 게이지를 신경 쓴 건가?’

어찌됐건 석민에겐 좋은 일이 되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할 시간을 벌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하지. 돌풍이 너무 거세서 악튜러스가 힘을 제대로 못 내고 있어. 이럴 땐레더슈트라도 입혀야 하는데...’

레더슈트.

골렘이 착용하는 전신 슈트 같은 것으로 대개 몬스터 가죽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 레더슈트를 착용하게 되면 돌풍에 의해 내부의 흙이 대량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경우에 따라선 워터 골렘이 뿜어낸 물줄기에 내부의 흙이 젖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다.

최근에 나온 레더슈트의 경우 금속 장갑을 대체할 정도로 성능이 좋단다.

‘하지만 레더슈트는 비싸니까.’

강한 돌풍 속에서 악튜러스 내부를 채우는 흙은 계속 소실됨과 동시에 빠르게 채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서 계속 유지되고 있었는데, 더 이상 바람이 거세게 불지 않는 걸 보니 상대 골렘이 낼 수 있는 돌풍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인 듯싶었다.

‘바람이 더 거세지진 않고 있어. 아무래도 이게 한계인가 봐’

윈드 골렘마다 다르겠지만, 월드 그랑프리 수준의 윈드 골렘의 경우 어렵지 않게 용오름이나 토네이도를 일으킬 만큼 그 위력이 강력했다.

만약 그런 골렘과 싸웠다면 아마 악튜러스는 승산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온은 그 정도 수준의 윈드 골렘이 아니었다.

‘괜찮아. 악튜러스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까. 그때 가면 다르겠지.’

석민은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아이온의 지난 경기 영상들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다 아이온이 허무하게 졌던 경기 영상이 떠올랐다.

다 이긴 게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아이온이 어스 골렘에게 패한 적이 있었다.

상대가 스트레스 게이지를 신경 썼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그 이유는 상대 골렘에게 그다지 좋은 건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스트레스 게이지 때문에 공격을 멈춘 거 같은데? 전에도 어스 골렘하고 한 번 싸웠다가 어이없게 졌던 적이 있었잖아. 맞네. 저 골렘이 통제를 벗어나면 한심할 정도로 수준이 낮아지는 거구나.’

석민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럼 그 스트레스를 올려줘야지!’

수세에 몰려 있던 악튜러스는 방패를 앞세우며 오히려 상대 골렘에게 덤벼들었다.

거친 돌풍 속.

방패만 앞세우고 거북이처럼 얻어맞고 있던 상대가 감히 건방지게 치고 나오자 김성필이 뿔났다.

“이런 썅! 개X밥 새끼가!”

입에도 담지 못할 험한 욕설과 함께 발끈한 김성필이 아이온으로 하여금 다시 주먹을 내지르게 했다.

여기서 문제는 악튜러스의 대처가 워낙 좋아 아이온이 칠 것이라곤 방패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방패 너머 악튜러스를 타격해보려 했지만, 악튜러스는 절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젠 내가 더 빡치네!’

화가 난 김성필이 다른 공격을 준비했다.

바로 악튜러스의 어스 볼에 비견되는 윈드 볼이다.

강하게 소용돌이치는 바람이 아이온의 두 손아귀에 뭉쳐져 윈드 볼을 형성했다.

적어도 어스 볼만큼의 위력을 가진 윈드 볼.

일순간 김성필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며 윈드 볼을 뻗어 악튜러스가 내세우고 있던 방패에 직격시켰다.

윈드 볼의 위력은 상당했으나 문제는 악튜러스 방패가 본래 대마법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20억 방패 앞에서 강력하게 뭉쳐진 바람덩이는 허무하리만치 흩어지고 말았다.

김성필이 당황했다.

‘시발, 저거 대마법용 방패였지?’

당황한 김성필은 아이온으로 하여금 다시 주먹을 뻗히게 했다.

하지만 방패를 때려봤자 스트레스 게이지만 올라갈 뿐이다.

그렇다고 안 때리고 배기자니 상대가 짜증나게 한다.

결국 칠 수밖에 없는 상황.

경기 흐름이 어느샌가 악튜러스에게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아이온이 김성필의 통제를 벗어나버렸다.

-스트레스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현재 수치 80/100-현재 스트레스 게이지가 80에 도달했음으로 폭주경보가 ‘위험’ 단계로 격상됩니다.

-아이온이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이런 썅!’

김성필이 어찌할 새도 없이 통제에서 벗어난 아이온은 우선 주변에 일던 돌풍을 멈추게 했다.

주변에 이는 돌풍이야 말로 코어 수준이 낮은 아이온이 악튜러스를 압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배경.

그래서 돌풍은 무조건 있어야 하는데, 아이온은 그 돌풍을 멈추게 했다.

돌풍이 저한테 유리하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다.

그런 멍청함 때문에 김성필이 경계했던 것이고.

아무튼 통제를 벗어난 아이온은 돌풍을 멈추게 한 뒤 거기서 얻게 된 마나는 전부두 주먹에 실었다.

그리곤 제 상체 장갑을 뜯어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무식하면서 빡친 골렘의 전형적인 모습.

놀란 김성필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야이 멍청한 새끼야! 그걸 뜯어버리면 어떻게 해!”

전보다 더 무섭게 방패를 때리는 아이온은 막말로 빡쳐 있었다.

그 기세는 정말 무시무시했지만 이건 모르고 있었다.

악튜러스 내부에 흙이 채워짐과 동시에 그 출력이 덩달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소실됐던 흙이 복구됩니다.

-출력이 다시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기세를 잡아왔던 아이온이 방패에 치여 힘에서 밀렸다.

전에 없던 이야기라 아이온도 당황했다.

그와 동시에 악튜러스가 방패를 치워냈다.

출력이 더 위라면 난타전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주인 통제를 벗어난 골렘 따위야 식은 죽 먹기.

‘끝났네.’

단순한 패턴의 공격과 생각 없이 달려드는 아이온은 악튜러스의 상대가 아니었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흙먼지 속.

드디어 승자가 가려졌다.

김성필은 쓰고 있던 스카우터를 벗어 내렸다.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일 보험사를 찾아가야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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