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대한골렘대전 >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석민은 아이온이라 불리는 김성필의 골렘을 주시했다.
상대는 웨펀 마스터.
인파이터 타입의 골렘과는 전혀 다른 공격 스타일을 가진 골렘이었다.
더군다나 장비하고 있는 무기가 중화기.
‘바로 머신건을 쏠 거야.’
석민의 생각은 적중했다.
아이온은 다짜고짜 들고 있던 머신건의 총구를 악튜러스에게 겨눴다.
악튜러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를 세웠다.
이와 맞물려 아이온이 들고 있는 헤비 머신건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드르르륵!
주변 공기를 찢어발기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머신건의 총구가 뜨겁게 가열된다.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탄환들이 방패에 적중됨과 동시에 관중들로 하여금 환호성을 내지르게 하였다.
아이온이 장비하고 나온 헤비 머신건의 위력은 상당했다.
방패를 앞세우든 말든 그 위력에 사정없이 밀릴 정도.
20억짜리 방패 표면이 중화기의 화력에 속절없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방패 재질이 오리하르콘과 미스릴이 섞여 있어 버티는 것이지 일반적인 티타늄 합금이었다면 이미 뚫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머신건의 무자비한 화력 앞에 석민은 방패만으론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다 방패가 망가지겠어.’
고작 64강전에서 방패를 잃은 순 없었다.
수중에 남은 돈도 얼마 없는 상태.
이번 경기에서 방패를 잃는다면 본선 우승은 힘들어질 것이다.
악튜러스가 급히 흙의 지배력을 사용했다.
경기장 지형이 변화되며 악튜러스 앞으로 흙으로 된 벽이 높게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흙더미는 방패 역할을 대신 했으며 아이온으로 하여금 악튜러스를 직접적으로 공격할 수 없게 했다.
아이온의 골렘 파이터 김성필이 씩 웃었다.
‘꼴에 버텨봤자지. 니가 무슨 재주로 버틸라고.’
김성필이 알고 있기론 저 악튜러스란 골렘은 자기가 용인 벙커 경기장에 나가지 않았을 때 아이온을 대신하여 왕을 먹었던 골렘이었다.
‘내가 있었으면 넌 거기서 우승도 못했어! 어디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피래미새끼가!’
헤비 머신건의 작동을 중지시킨 아이온이 흙벽 뒤에 숨어 있는 악튜러스를 공격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온이 제 화력을 과시하듯 흙벽을 향해 무자비하게 공격하자 흙벽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하지만 그 뒤에 있어야할 악튜러스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튄 거야!’
아이온은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또 다시 흙벽을 세우고 쥐새끼마냥 숨는 악튜러스를 발견했다.
‘찾았다 요놈!’
헤비 머신건에서 뿜어지는 탄환들이 목표로 삼은 흙벽을 또 다시 날려버렸다.
그 무자비한 화력 앞에서 악튜러스는 반격하지 않고 계속 흙벽만 세운 채 몸을 사렸다.
김성필은 짜증이 났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좋았어. 이렇게 몰아붙이다가 벌집으로 만들면 돼.’
헤비 머신건을 앞세운 아이온이 악튜러스를 무섭게 압박하기 시작하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환호성조차 잡아먹는 위력적인 헤비 머신건은 계속하여 악튜러스를 압박했다.
악튜러스는 계속 몸을 사리면서 지형을 변화시키거나 흙벽을 이중 삼중으로 치솟게 하였다.
경기를 생중계하던 이용호 캐스터가 입을 열었다.
“헤비 머신건의 위력이 아주 대단한데요? D조 전승으로 올라온 악튜러스가 힘을못 쓰고 있습니다.”
같이 있던 김요한과 강동준도 한 마디씩 해주었다.
“아무래도 20억짜리 방패로는 헤비 머신건의 화력을 그대로 맞받아치기엔 무리가 있죠.”
“김성필 선수가 장비하고 있는 K2 헤비 머신건의 경우 장갑차도 뚫어내는 수준이거든요. 어지간한 장비 아니면 저 화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죠.”
“아이온의 강력한 화력 앞에서 악튜러스, 흙벽을 세워내며 아주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방패를 보니까 그 유명한 제리코에서 만든 대마법용 방패인데, 헤비 머신건의 화력을 어느 정도 막아내긴 하네요.”
이때 악튜러스는 어쩌다 피할 수 없게 된 탄환들을 방패를 앞세워 막아내고 있었다.
“막기는 한데 엄청 버거울 겁니다. 있는 그대로 대마법용 방패라 물리 내성에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거든요.”
“그런데도 좀 버티네요?”
“딱 버티는 수준입니다. 주재질이 티타늄에다가 미스릴이거든요. 오리하르콘은 약간 포함되긴 했는데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고요. 아마 버티는 건 방패에 쓰인 두 특수 금속 때문일 겁니다.”
“오리하르콘과 미스릴. 이 두 금속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강동준 해설위원께서 시청자 여러분께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오리하르콘과 미스릴 둘 다 아주 훌륭한 금속입니다. 둘 다 강도 면에서는 강철과 티타늄 합금보다 좋다고 보시면 되고요. 다만 물리적 강도에 있어서는 오리하르콘이 미스릴보다 더 좋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미스릴 같은 경우는 마법 내성에 좋은 겁니까?”
“네, 미스릴 같은 경우는 마법 공격. 특히나 원소 계열 공격에 강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설명 위주의 대화가 지속되고 있을 때 경기장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화기를 앞세운 아이온이 답답했는지 악튜러스에게 근접하여 압박하는 상황.
이때 악튜러스는 곡예 같은 움직임을 선보이며 자기한테 쏟아지는 탄환들을 아주얄밉게 피하고 있었다.
악튜러스에게 맞추지 못한 탄환들은 경기장 바닥에 처박히거나 때때로 관중석을 향해 날아가기도 했다.
“아이온, 이번엔 직접 쫓아다니며 악튜러스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머신건의 화력이 아주 대단한데요. 지켜보는 관중들에겐 피해가 없는 겁니까?”
이용호 캐스터가 해당 질문을 두 해설위원에게 던져보았다.
물론 그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이런 부분을 걱정하고 있을 시청자를 위한질문이었다.
김요한 해설위원이 바로 답해주었다.
“네, 전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지금 경기장 전역으로 3중으로 된 마법 보호막이 쳐져 있는 상태인데요. 이 보호막이 있는 한 두 골렘이 중화기를 쏘든 마법 공격을 퍼붓든 전혀 피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강동준 해설위원도 거들어주었다.
“지금 경기장 내부에 있는 마나공급실에선 드래곤 하트가 아주 열심히 뛰고 있을겁니다. 그러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유사시엔 선수들에게 경기 중단을 알리는 신호도 가니까요. 이때 선수들은 관중들의 안전을 위해 싸움을 멈춰야합니다.”
“그리고 출전 대기 중인 골렘들도 유사시엔 코어 캡슐과 연결된 플러그를 통해 경기장에 마나를 공급해주니까 관중들을 보호하는 3중 보호막이 갑자기 사라질 일은 절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네 맞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요. 물론 저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다시 경기장.
평평했던 경기장 바닥은 악튜러스가 흙의 지배력을 사용해 울퉁불퉁한 지형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로 인해 평지에서 머신건을 쏘던 아이온은 다소 험난한 지형을 이동해가며 악튜러스를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악튜러스는 제 맛대로 지형을 변형시키며 뒤쫓는 아이온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젠장. 하나도 안 보이네.’
어디 그것뿐이랴?
아이온이 가진 머신건의 화력은 아직도 유효했으나 어느샌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김성필의 시야를 가리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줄기차게 이어지던 머신건의 소리도 시야가 좁아지자 간헐적으로 변했다.
김성필이 와락 표정을 구겼다.
‘진짜 뭐 같네. 하나도 안 보이잖아.’
김성필도 경기 경험이 많아 여러 골렘들을 상대해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으로 꼽는 골렘이 바로 어스 골렘이었다.
상극인 걸 떠나서 지형을 능수능란하게 변형시키는 어스 골렘의 경우 최고로 꼴 보기 싫어했다.
‘쳇, 그래 이럴 땐 이게 최고지.’
김성필도 여기에 대한 해법을 전혀 모르진 않았다.
아이온은 윈드 골렘.
바람의 힘을 이용한다.
경기장에 때 아닌 돌풍이 불어 닥쳤다.
하늘에 위치하던 맑은 공기가 경기장 바닥 쪽으로 수직 낙하하자 흙먼지로 어둡던 시야는 금세 맑아졌다.
여기서 맑은 공기에 밀린 흙먼지는 관중석으로 퍼져나갔다가 다시 마나로 생성된벽에 막혀 하늘 위로 솟구쳤다.
김성필은 되찾은 시야 속에서 빠르게 악튜러스를 찾았다.
‘옳거니 거기 있었구나!’
아이온은 자세를 낮춘 채 옅은 흙먼지 속에 숨어 있던 악튜러스를 향해 다시 한 번 머신건의 화력을 뿜어냈다.
요란한 소리가 경기장에 다시 울려 퍼졌음에도 지켜보는 관중들은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다.
아까 아이온이 맑은 공기를 불러들이면서 경기장에 깔려 있던 흙먼지를 가장자리쪽으로 솟구치게 했기 때문에 시야가 어두워져 경기 내용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
그런 관중들의 불편함이야 아랑곳하지 않는 악튜러스는 반격하는 대신 계속 지형을 변화시키며 적을 혼란케 했다.
지금 석민이 의도하는 바는 딱 하나였다.
상대 골렘으로 하여금 적절치 못한 공격을 계속 유도시켜 탄환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성필은 석민이 의도한대로 의심되는 곳을 향해 마구잡이로 머신건의 화력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정도는 하늘에서 끄집어 내린 맑은 공기가 다시 혼탁해질수록 더욱 심해졌다.
악튜러스가 흙더미를 치솟게 하는 것도 있었지만, 머신건의 화력에 무너져내리는 흙벽도 흙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이 됐다.
돌풍을 일으켜 다시 맑아졌던 경기장은 다시 시야가 혼탁해졌다.
아이온과 링크 된 김성필은 전보다 더 빠르게 고개를 움직이며 흙먼지 속에 숨어 있는 악튜러스를 찾았다.
‘젠장! 대체 어디 숨은 거야!’
또 다시 돌풍을 일으켜봤으나 이번에 끌어들인 바람은 더 이상 맑은 공기가 아닌 아까 위로 날려 보낸 흙먼지였다.
흙먼지가 돌풍을 타고 내려오자 시야는 더욱 혼탁해졌다.
시야는 갈수록 좁아지고, 더 이상 돌풍을 일으켜봤자 좋을 게 하나 없었다.
극도로 좁은 시야 속에서 불안해하던 김성필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갑자기 튀어나올 악튜러스가 두려워졌다.
‘젠장! 젠장!’
불안에 떠는 아이온의 공격은 그 간극이 갈수록 짧아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의심만 되면 중화기에서 불을 뿜어냈다.
그러다 탄환이 고갈됐다.
철컥. 철컥철컥!
‘이런 씨...’
방아쇠를 당겼는데 반응이 없었다.
탄환이 전부 고갈된 것이다.
그 순간 짙은 흙먼지 속에서 번뜩이는 두 안광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악튜러스였다.
소름 돋는 장면.
아이온은 더 이상 쓸모없게 된 K2 머신건을 버렸다.
‘그래, 그런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았냐? 나는 원래 인파이터였어.’
본래 용인 벙커에서 아이온은 인파이터 타입의 골렘이었다.
마나 보호막도 없는 경기장에서 중화기를 다룰 수 없었기에 인파이터로 뛰었던 것도 있었지만, K2 헤비 머신건은 이번 본선 경기를 위해 김성필이 큰 맘 먹고 구입한 장비이기도 했다.
두 주먹을 들어 올린 아이온이 곧이어 찾아올 악튜러스를 기다렸다.
앞서 김성필이 남은 탄환 수를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했던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웨펀 마스터로 뛰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제약 많은 한국 땅에서 언제 헤비 머신건을 마음껏 쏴보겠는가?
그리고 둘째.
사실 이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컸다.
원래 아이온이 인파이터 타입의 골렘이었기에 설령 탄환이 고갈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게 가장 컸다.
‘어딨는 거야! 빨리 오라고!’
김성필의 심박수는 최대.
그런데 여기서 김성필이 하나 간과했던 게 있었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악튜러스란 골렘이 아닌 저승사자였다는 점이다.
아이온 뒤로 소리 없이 다가온 악튜러스가 그 머리를 피스트 브레이커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 #21 대한골렘대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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