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대한골렘대전 >
석민이 게이트 안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 사이 강준에게도 일이 있었다.
큰마음 먹고 아는 형 따라 나와서 차린 회사.
그런데 경쟁 업체 대표가 찾아오더니 그 회사를 자기한테 넘기란다.
대신 돈은 두둑이 주겠다고 했다.
“그래요?”
“그렇다고 너한테 해가 되는 건 아니고, 우리가 회사를 넘겨도 계약 내용은 그대로 승계되는 거니까.”
계약 내용만 그대로 승계된다면 석민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냥 계약 맺는 상대가 달라질 뿐이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소속 파이터가 아직 너 말고 없거든. 그런데 KRG 대표가 직접 찾아오니까 대표형이 너에 대해 진짜 많이 물어보더라. 지난 일주일간 네 경기 영상만 계속 돌려봤어.”
KRG 대표가 찾아오기 전까지 G 매니지먼트 대표 한성철은 악튜러스와 석민에게관심이 없었다.
그저 아는 동생이 억지로 계약시킨 실력 좋은 꼬맹이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더군다나 계약 내용도 9대1.
회사에 도움이 되는 파이터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도 컸다.
그런데 KRG 대표가 직접 찾아와서 그런 말을 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진지하게 석민과 악튜러스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요?”
“일단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KRG 대표에게 생각할 시간 좀 달라고 했거든.”
석민은 계약 자체가 그대로 승계된다면 오히려 KRG 소속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강준과 G 매니지먼트에겐 미안한 말이겠지만, 계약 내용만 동일하다면 지원이 빵빵한 KRG가 더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은 다르게 했다.
“어떤 판단을 하시든 저는 그 선택을 존중해드릴게요.”
“고맙다.”
“저한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죠. 저야 계약 내용만 동일하면 소속사 이름만 바뀌는 건데요 뭘. 좋은 선택하시길 바랄게요.”
“그래, 그보다 지금 대표형이 온다고 했거든?”
“대표 아저씨가요?”
“너 좀 보고 싶대.”
석민은 이때까지 G 매니지먼트 대표를 만나본적이 없었다.
여기에 대해선 기분이 언짢았다.
그간 관심도 없다가 막말로 KRG 대표가 관심을 보이니 그제야 부랴부랴 관심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언제 오신대요?”
“곧 올 거야.”
강준이 말한 한성철은 10분 뒤에 그들을 찾아왔다.
“어 준아!”
한성철 역시 강준과 마찬가지로 후덕한 인상을 지닌 아저씨였다.
살집이 있었으며 안경을 썼고, 후줄근한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강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상이 조금 연하다는 것 정도?
강준 인상이 좀 세긴 했다.
“안녕하세요.”
석민이 인사하자 한성철이 웃으며 말을 붙였다.
“하하 꼬마야,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지? 그 동안 이 아저씨가 미안했다. 아저씨가 바빠서 너한테 신경을 전혀 못 썼어.”
그러자 강준이 딴죽을 걸어왔다.
“아니 형, 형이 지금까지 관심 없었던 거 이 애도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하하, 미안. 나는 솔직히 이 계약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거든. 이건 진짜 쏘리. 아무튼 오늘 경기 화이팅이다.”
석민은 그가 온 김에 그가 어느 쪽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대표 아저씨.”
“응?”
“그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KRG 대표가 회사 넘기라고 했다면서요.”
“아 그거.”
한성철이 강준을 쳐다보자 강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철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웃으며 석민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아직 생각중이다. 만약 회사를 넘기더라도 너한테 피해가는 일은 없도록 할 거야. 그리고 팔지 않는다면 우리가 전심전력으로 널 캐어 해줄 생각이고.”
“그럼 빨리 결정하셔야겠네요. 저는 소속사 문제로 신경 쓰긴 싫거든요. 경기에 집중하는데 방해돼요.”
그 동안 한성철이 자기에게 했던 만큼 석민은 냉정하게 대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 경기 화이팅해라. 준아, 64강 3번째 경기라고 했냐?”
“어 형. 곧 시작일 거야.”
석민이 출전자 대기를 위해 이동하자 한성철은 강준과 같이 움직이면서 회사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아직도 결정 못 내렸어?”
“아유 말도 마라. 어제 그거 생각하느라 잠 한숨도 못 잤다.”
“그러니까 빨리 결정해야지. 애가 신경 쓰잖아.”
“에휴 모르겠다. 큰맘 먹고 나와서 차린 회사이긴 한데 이렇게 쉽게 넘기기에도 좀 그렇고. 그런데 막상 제시한 돈을 보면 넘기는 게 맞는데...”
KRG 대표가 제시한 금액은 그들이 한 평생 본적도 없는 돈이었다.
만약 일반 회사원이었다면 아마 죽어서도 못 모았을 돈.
그 돈 앞에서 한성철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치겠다. 이게 좋은 일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건데, 사람 욕심이란 게.”
“나는 그냥 형이 선택하는 걸 따를 게. 나도 비슷하니까.”
“후... 일단 더 지켜보자.”
“아 형, KRG 대표가 괜히 그 돈으로 우릴 꼬셨겠어? 실력은 확실해. 지켜볼 것도없어.”
“알아 임마. 누가 뭐래?”
석민은 64강전 3번째 경기를 기다렸다.
상대는 김성필.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의 골렘은 바람 속성을 가진 윈드 골렘에 머신건을 장비하고 있었다.
웨펀 마스터 계열의 골렘.
동양권에선 그리 선호되는 골렘은 아니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선 인기가 제법 많은 골렘이다.
‘이 아저씨도 나랑 같은 용인 벙커 출신이구나. 그쪽에 경기 영상이 많아.’
본선 경기를 뛰는 골렘 파이터들이 어디에서 막 튀어나오진 않는다.
이 바닥에도 대개 순서라는 게 있었다.
보통 불법 사설 경기장에서 시작하여 국내 예선전을 거쳐 본선 무대를 밟게 된다.
석민도 그러했고 김성필도 마찬가지.
‘좋아. 우선 악튜러스부터 살펴보자.’
석민은 출전자 대기실에서 출전 대기 중에 있는 악튜러스를 스캔해보았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개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어스 골렘]
개체명칭 : 악튜러스(Arcturus)
등록번호 : KR-1636811
개체등급 : CCC(대한헌터협회 May 3th, 2030)
최대출력 : 재측정 필요
보유용도 : 대전 골렘용
-인터넷에 접속하여 골렘의 세부 정보를 갱신합니다.
[무장 목록]
우(右)무장 : [측정 불가] 브로큰 블레이드좌(左)무장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보조 무장 : [BB-] 제리코, 안티 매직 라운드 쉴드 MLS
[장갑 목록]
코어 : [B+] 황혼의 산맥, 황금 고블린 여왕의 심장코어 캡슐 : [CC-]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특수 코어 캡슐 KR-1S 머리 가리개 : [DDD] 미등록 강철 해드어깨 가리개 : [DDD] 미등록 강철 덧대몸통 가리개 : [CCC] 강철 갑옷우(右) 손목 가리개 : [CCC] 강철 가리개좌(左) 손목 가리개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다리 가리개 : [DDD] 미등록 강철 각반우(右) 손 보호구 : [CCC] 강철 장갑좌(左) 손 보호구 : [A-]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발 보호구 : [DD] 한국중공업, 대전 골렘용 강철 장화 2025-A1
[골격 목록]
전체 골격 : [CC+] 남원 대장간, 강철 뼈대
장비 종합효율 : 94%
장비 종합판정 : CCC
현재 천신의 반지는 아그니가 착용한 상태로 아다만틴 채굴장에서 몬스터들을 부려먹고 있었다.
그 외에 살펴볼 것은 남원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강철 뼈대.
트롤 뼈대와 비교해 봤을 때 등급 차이는 거의 없었지만 실력 좋은 대장간에서 만든 뼈대라 그런지 강도 면에서는 트롤 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대신 강철이라 무게가 좀 나갔다.
‘코어도 업그레이드 됐고, 뼈대도 튼튼해졌으니까 피스트 브레이커를 다루는 게 전보다 더 수월할 거야. 좋아 준비됐어.’
석민과 함께 있던 강준은 전광판에 출전 신호가 나오자 석민을 찾았다.
“석민아, 이제 우리 차례다. 준비해.”
석민은 대기실에서 외부 공간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통로를 보았다.
저곳을 통과하면 관중들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경기장 안쪽으로 바로 진입하게 된다.
“네, 그럼 나갈게요.”
석민은 악튜러스와 함께 경기장에 출전했다.
석민이 선수대기실을 벗어나 관중들이 내려다보는 경기장 아래에 도착하게 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덮쳤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관중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옅은 야유 소리도 끼어있었지만 석민은 개의치 않고 레드 진영에 섰다.
이어 경기장 쪽으로 나아가는 악튜러스는 저를 향해 소리치는 관중들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상대편 골렘과 마주보았다.
바람 속성의 골렘.
마치 리빙 아머처럼 갑옷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짙었다.
‘윈드 골렘인가? 오랜만이군.’
대지와 바람은 서로 상극.
바람이 불어 대지가 깎이듯, 바람은 대지 속성을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악튜러스는 상대 골렘이 들고 있던 이상한 무기를 보았다.
금속으로 된 이상한 무기.
양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곳의 무기로 보였다.
악튜러스가 못 알아보는 무기는 바로 K2 헤비 머신건.
악튜러스가 출전하자 경기를 생중계하는 이용호 캐스터가 입을 열었다.
“아 저 골렘이 아까 말씀하셨던 악튜러스입니까?”
“네, 맞습니다.”
“장비 상태는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녹슬어 보입니다. 골렘 등급도 낮고요.”
현재 경기장 곳곳에 위치한 대형 전광판에선 악튜러스의 개체 등급과 착용중인 장비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석민이 보던 것과 완벽히 일치했다.
김요한 해설위원이 입을 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헌터협회에서 측정한 자료이기 때문에 다소 부정확한 부분이 없진 않습니다. 이 점은 시청자분들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보셔야할 겁니다.”
“아 그리고 악튜러스의 왼팔 장비도 눈여겨 보셔야할 것 같은데요. 놀라지 마십쇼. 그 유명한 스턴건의 피스트 브레이커입니다.”
“피스트 브레이커요?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입니까?”
“네, 저도 신기해서 알아봤는데, 이민호 선수가 그냥 줬다고 하네요.”
“저 장비를요?”
이용호 캐스터는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네, 진짜 줬답니다.”
“저게 한두푼 하는 장비가 아닐 텐데요.”
“이민호 선수한테 들어보니까 아주 유망주에요. 어떻게 보면 홍진영 선수 다음으로 대한민국 골렘 파이트를 이끌어갈 아주 훌륭한 선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민호 선수와 어떻게 아는 사이일까요? 친척 관계는 아닐 텐데요.”
“네, 친척은 아니고요. 영등포에 위치한 골렘 공작소에서 아주 우연히 만났답니다.”
“그 둘이 공작소에서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
“그쪽 일화를 제가 들었는데요. 저 차석민 선수가 전문 기술자들도 못 짚어내는 스턴건의 문제를 아주 쉽게 잡아냈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마안과 관련 된 결함이었는데, 이걸 차석민 선수가 찾아내서 이민호 선수에게 도움을 줬다네요.”
“아 그럼 그 일을 계기로 둘이 친해진 겁니까? 하지만 피스트 브레이커를 내줄 만큼 대단해보이진 않는데요? 피스트 브레이커라고 하면 나름 은퇴한 이민호 선수의 트레이드마크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죠. 피스트 브레이커라 하면 바로 스턴건 이민호였죠. 그만큼 피스트 브레이커에 대한 이민호 선수의 애착이 대단했습니다.”
강동준 해설위원이 말을 붙였다.
“제가 여기저기서 들은 바로는 독일 꼬마와 있었던 비밀 스파링에서 저 차석민 선수도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물론 이게사실이라는 건 아니고요. 그때 스파링 뒤에 이민호 선수가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거든요. 그땐 저도 이해가 안 됐는데, 그게 만약 저 차석민 선수를 두고 한 말이라면 일단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용호 캐스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선물치고는 너무 과한데요. 저걸 그냥 주다뇨?”
“그만큼 믿을만한 실력이라는 거겠죠. 어떻게 보면 세컨드 스턴건이라 보시면 되겠네요.”
“세컨드 스턴건이요?”
“그리고 이제 상대편으로 나온 김성필 선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같은데요.”
“김성필 선수 같은 경우는 예선전 성적이 나쁘지 않습니다. 전승은 아니지만 딱 1패를 했네요.”
“네 맞습니다. 김성필 선수도 나름 주목받는 선수입니다. 전승은 아니지만 E조 1등으로 본선에 진출했고요. 한중일에서 보기 드문 웨펀 마스터 계열의 골렘을 다루고 있습니다.”
“와 웨펀 마스터라. 정말 보기 힘든 골렘을 다루네요.”
“한국에서 보기 힘들 뿐이지 외국에선 정말 흔하거든요. 요즘엔 웨펀 마스터들이기동성에 대한 투자를 엄청 해서 막 로봇 만화 있잖습니까? 그 유명한 건담. 거기서적한테 총을 쏘면서 뒤로 빼는 공격. 그런 식으로 많이 한다고 하네요.”
“웨펀 마스터의 추세가 그렇죠. 실제로 일본에선 JP가 초경량 골렘으로 크게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죠. 코어 수준이 막시무스보다 두 단계 낮은데 움직임은 막시무스가 못 따라갈 정도라네요.”
“막시무스야 장비가 워낙 무거워서.”
악튜러스가 세컨드 스턴건으로 소개되자 관중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이민호가 저 악튜러스란 골렘에게 피스트 브레이커를 선물로 주고 갔단다.
그들에겐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민호가 왜?
두 골렘에 대한 홍길동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홍길동이 슬슬 경기 시작을 관중들에게 알렸다.
“자 그럼, 64강전 세 번째 경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준비 되셨습니까! 다 같이 달려볼까요!”
이어지는 함성.
그 함성 아래 홍길동이 또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Ready! Fight!”
< #21 대한골렘대전 > 끝
ⓒ 대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