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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파이트-56화 (56/173)

< #21 대한골렘대전 >

#21 대한골렘대전

어둑한 실내 공간.

어둠 속에 파묻혀 아이패드를 통해 어떤 영상을 계속 돌려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븐 스미스.

제법 악명 높은 블랙 맘바의 멤버 중 하나.

이름에서 볼 수 있듯 동양인은 아니었다.

금발벽안의 남자.

그는 경기 영상을 흥미롭게 분석했다.

꼬마가 잘 싸웠다.

골렘 장비에 비해 상대를 압살하는 실력.

저런 실력은 여간해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가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저게 운철이라고?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단순히 보면 녹슬어 보이는 고철 장갑.

산화 된 녹슨 철처럼 붉었다.

그런데 저게 운철로 만들어진 아주 희귀한 장갑이란다.

볼수록 아리송했다.

관련된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아마 관심도 주지 않았을 그런 장갑이었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예선전 경기라고 올라온 몇몇 경기를 전부 살펴봤지만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아이의 실력이 너무 좋아 상체 장갑이 공격당하는 장면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리고 어지간한 공격들은 드래곤 터틀 등껍질을 내세워 막아냈다.

“흠...”

침음성까지 흘리던 그는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확실히 하자.’

그가 이렇게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리하게 경기 영상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이럴 때는 해당 골렘을 직접 찾아가 고성능 스카우터로 직접 스캔해보면 되겠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확신이 있을 때나 하는 일이었다.

‘운철이라고 확신할만한 단서가 아직 부족해.’

더군다나 골렘이 있는 위치가 한국이란다.

태어나서 한국이란 곳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있긴 했다.

김정은이 사는 나라였고, 심심하면 미사일을 쏘는 그런 나라였다.

요즘엔 게이트 강국으로 부상해서 헌터들을 대거 육성한다더라.

아무튼 지구상에서 한국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조차 몰랐기에 그는 더욱 신중해졌다.

거짓 정보일지도 모르는 것에 괜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꽤 싸우네. 꼬마 주제에.’

굳이 악튜러스란 골렘에 목매달지 않아도 그가 관심 있게 살펴봐야할 골렘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악튜러스 영상만 몇 번씩이나 돌려보는 것은 진짜 잘 싸웠기 때문이다.

피가 끓었다.

자기도 골렘 파이터라 저 영상 속 아이와 한 번 붙어보고 싶어졌다.

‘센스가 있어. 야오린만큼 하는군.’

스티븐은 이번에 새로 영입 된 팀 멤버를 떠올렸다.

중국계 혼혈 소녀로 무거운 분위기에 말수도 적고 사교성도 없었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일류.

영상 속에 나오는 꼬마와 차이가 있다면 야오린이 조금 더 성숙했다는 점이다.

꼬마가 초등학생이라면 야오린은 중학생정도.

‘동급 골렘으로 둘이 붙는다면 볼만 하겠어.’

스티븐은 10분이 지나서도 악튜러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그에겐 살펴봐야할 골렘이 두 대나 더 있었다.

계속 악튜러스 영상만 볼 순 없는 노릇.

‘판단할 정보가 너무 부족해. 정식 경기 말고 다른 영상은 없나?’

스티븐은 예선전 말고 다른 경기 영상이 있는지 찾아봤다.

그마저도 얼마 없었지만 불법 사설 경기장에서 찍은 영상들이 있었다.

전에는 한국어로 되어 있어 놓친 영상들이었다.

스티븐의 눈은 다시 날카로워졌다.

그러다 하나가 잡혔다.

‘안 찌그러지네?’

스티븐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어느 워터 골렘과의 싸움에서 악튜러스는 일방적으로 가드만 올리고 있었는데, 유독 상체 장갑만이 찌그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상식을 벗어나는 강도.

더군다나 정보처가 운철로 의심하던 그 부분과 완벽히 일치했다.

스티븐은 여기서 감을 잡았다.

‘이거 확인해볼 가치가 있겠어.’

스티븐은 곧바로 자기 보스에게 알렸다.

“헤이 보스.”

“오 스티븐. 뭐라도 건졌나?”

“하나 잡았어. 이거 운철로 의심되는데 한 번 봐줬으면 해.”

스티븐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상대는 존 마커.

블랙 맘바의 리더이자 세계적인 골렘 파이터 중 한 명이었다.

“확실한 정보야? 확실하지 않으면 안 돼. 저번에도 불확실한 정보 때문에 허탕쳤잖아.”

존은 저번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귀하다는 아다만틴으로 만들어진 장갑이라기에 몸소 브라질까지 찾아갔더니 아다만틴은커녕 강철에다가 코팅을 한 장갑이었다.

그들은 좀도둑이 아니라서 해당 골렘을 그냥 놓아주었다.

그딴 거 털어봤자 성가시기만 했으니까.

그들은 일류였고, 사냥감도 무조건 일류여만 했다.

적어도 그들의 성에 차야만 움직일 정도로 그들의 수준은 정말 높았다.

리더의 의심에 스티븐은 채팅 어플을 통해 해당 경기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럼 보스가 확인해 봐. 나는 느낌이 왔으니까.”

존은 한동안 경기 영상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마침내 수긍해주었다.

“이 정도면 확인해 봐도 좋겠군. 가서 확인해 봐. 만약 운철이라면 이거 부르는 게 값일 거다.”

한심한 전문 도둑들이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바로 골렘 장비에 대한 시세였다.

여기서 운철은 그들이 알고 있는 한 가장 비싼 금속이었다.

최강의 금속이라 일컫는 아다만틴조차 운철 앞에서는 한 수 접고 가는 편이었으니까.

스티븐이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나 혼자 움직여야 돼? 혼자면 심심한데.”

“누굴 붙여줄까? 리천? 야오린?”

둘 다 실력은 세계 정상급.

하지만 성별이 달랐다.

스티븐은 둘 중에 야오린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다소 조용하고 어두운 분위기 같은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추 달린 남자 새끼보단 나을 테니까.

“야오린이 좋겠네.”

“챙한테 정보를 팔아넘긴 녀석이 지금 한국에 있을 거다. 가서 놈을 만나봐.”

그날 스티븐은 야오린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델타 에어 퍼스트 클래스.

선글라스를 끼고 화려한 셔츠를 입은 스티븐은 제 옆에 앉아 있는 야오린을 힐끗 쳐다봤다.

아빠가 러시아인인데 엄마가 중국인이란다.

동양적인 외모에다가 몸매는 어느 샌가 백인 여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확실히 취향 나쁜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곱상한 얼굴.

“무슨 생각해?”

스티븐이 묻자 야오린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붙임성 없는 모습에 스티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리천을 데려올 걸 그랬다.

‘그나저나 한국에 있다는 정보통과 연락이 아예 안 되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한국에서 악튜러스의 정보를 팔아넘긴 조상민은 현재 실종 된 상태였다.

여기서 실종 된 조상민은 인적 드문 폐건물 바닥에 거의 시체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하도 두들겨 맞아서 잠시 기절한 상태.

그런 조상민 근처에선 라면을 끓이고 있는 건달 둘이 있었다.

예전에 하정우와 함께 차태식을 찾아갔다가 악튜러스를 보고 냅다 도망쳤던 그 부하들이었다.

“저 새끼 이 라면 냄새 맡고 깨는 거 아냐?”

“무슨 미친 소리야. 시끄럽고 불 꺼. 다 끓었네.”

그들의 두목 하정우는 지금 폐건물 밖에서 이동건과 만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정보를 외국에다 팔았다?”

되묻는 이동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상민 그놈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사달을 내고 말았다.

“싱가포르 헌터한테 팔았다는데, 그 정보가 어떻게 됐는지는 자기도 모른답니다.”

“개 같은 새끼가 그걸 왜 팔아!”

이동건은 악을 내지르며 근처에 있던 안내 표지판을 힘껏 걷어찼다.

외국에 해당 정보가 넘어간 지 꽤 됐단다.

글로벌하게 움직이는 전문 도둑들에게 그 정보가 넘어갔다면 이동건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다 선수를 뺏기게 생겼으니까.

“시발 진짜...”

“일단 진정하시고. 아무튼 두철 형님한테는 잘 말해주십쇼. 제가 잘 도와줬다고.”

”그거야 뭐...”

“그나저나 저 새끼 어떻게 합니까? 반쯤 죽여 놓긴 했는데, 어디다 묻을 건 아닐 테고.”

놔두는 건 골치.

죽이는 게 편했지만 그런 선택지엔 위험이 따랐다.

“어디다 사람 묻는 건 안 하시죠?”

“그건 다른 업자한테 물어보시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딱 여기까집니다.”

“그냥 잘 데리고 있다가 한... 2주 뒤에 풀어주세요.”

“2주씩이나? 저 바쁜데.”

하정우가 표정을 무섭게 하자 이동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속에서 뭉칫돈을 건넸다.

“이걸로 맛있는 것 좀 사드시고, 마무리까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와락 표정을 구겼던 하정우의 입꼬리는 어느새 살짝 올라가 있었다.

“뭘 좀 아시네. 안 그래도 너무 자원봉사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랬는데.”

“고생하셨는데 그 정도는 챙겨 드려야죠.”

하정우와 대화를 마친 이동건은 영등포에 위치한 석민고물상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이동건은 중국에 있다는 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

“야, 언제 오냐? 빨리 올 순 없냐?”

“여기 일 거의 끝났어. 곧 한국 가.”

“그래?”

외국에 정보가 팔렸다지만 사촌 동생이 빨리 와 작업을 친다면 문제없었다.

이동건은 마음이 급했다.

“야 좀 빨리 좀 오면 안 되냐? 이거 정보가 샜어. 이제 나만 아는 정보가 아니야.”

“형, 그거 E등급 골렘이라며? 뭘 그리 서둘러. 그걸 누가 턴다고.”

“야, 운철이야. 상체 장갑이 운철로 만들어졌다고.”

“뭔 개소리야? 운철로 상체 장갑을 어떻게 만들어. 끽해야 표면에 펴 바르는 수준이겠지.”

“진짜라고. 형이 언제 너한테 거짓말 한 적 있었냐?”

“그거 진짜야?”

“진짜라고. 그러니까 빨리 들어와. 지금 선수 뺏기게 생겼으니까.”

“오케이. 며칠 안으로 갈 테니까 걱정 마.”

이동건은 석민고물상에 도착한 직후 가게 안쪽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런데 전에 없던 흙벽이 세워져 있었다.

‘개 같네. 저 흙벽은 대체 뭐야?’

인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이동건은 그곳에서 고물상을 내려다봤다.

역시나 흙으로 된 천장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시발. 아예 요새를 만들어놨네.’

이동건은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고물상 안쪽 사정에 대해 알아봤다.

길 가던 꼬마에게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주고 스파이 노릇을 시켜보니 고물상 안이 텅텅 비었단다.

“비었다고?”

“네, 비었어요.”

“거기 골렘은 없었냐?”

“골렘이요? 골렘 같은 거 없던데요.”

“대전 골렘 없었어?”

“네, 없었어요.”

스크류바를 쪽쪽 빨던 동네 아이가 답하자 이동건은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구겼다.

‘이놈이 어딜 간 거지? 골렘도 없네.’

이동건이 찾는 석민은 예선전 진출을 확정지은 다음 게이트 안쪽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 이동건은 아이가 다른 곳으로 셌다고 생각했다.

‘시발 너무 대놓고 감시했나. 애가 냄새를 맡고 숨은 거 같은데.’

“야 꼬마야.”

“네?”

“내일 다시 와라.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줄 테니까.”

“와, 아저씨 최고.”

다음 날 이동건은 다시 석민고물상을 찾아갔다.

이번에도 이동건은 석민고물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물상 맞은편 건물 옥상 위로 올라가 전날 심부름시켰던 동네 아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 아이가 오긴 왔는데, 혼자 오지 않았다.

제법 많은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뭐야? 니 친구들이냐?”

“네, 제 친구들이요. 애들아 인사해. 어제 나한테 아이스크림 사준 아저씨야.”

“아저씨 안녕하세요!”

< #21 대한골렘대전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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