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55화 (55/173)

< #20 아다만틴 채굴 >

함락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천신의 권능 앞에선 언데드도 별 볼일 없었던 것이다.

저항을 포기한 언데드들이 알아서 성문을 열고, 무혈입성을 가능케 했다.

석민은 성에 들어가 포위 된 언데드왕을 찾아갔다.

언데드왕은 자기를 배신한 모든 언데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놈들...’

언데드왕은 갑자기 성문을 열고 적의 편에 서버린 부하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그 의문이 풀리기 전까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정확히는 꼬마와 함께하는 골렘이 문제였다.

‘그렇군. 천신의 반지인가?’

놀랍게도 듀란은 천신의 반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제 이해가 되는군. 무식한 오크놈들이 왜 인간놈의 말을 따르나 했더니 전부 천신의 반지가 도와준 거였어.’

듀란이 알고 있는 천신의 반지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몬스터 지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석민이 나서며 언데드왕을 마주보았다.

놀랍게도 언데드왕 듀란은 반지의 힘에 종속되지 않은 채 석민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넌 멀쩡하네?”

석민의 물음이 닿자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듀란은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무리 왕이라도 이 전부와 싸운다는 건 미친 짓.

괜한 짓을 했다간 성치 못할 것이다.

듀란이 눈에 힘을 풀고 석민과 마주보았다.

‘반지에 종속당하는 건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에 한하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반지의 힘에 종속되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이었어. 신기하다.”

‘이런 변방엔 나만큼 강한 몬스터가 없지. 이곳을 벗어나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면나 같은 몬스터가 더 많을 것이다.’

“넌 저 반지에 대해 알아?”

‘알고 있지. 알다마다.’

듀란은 천신의 반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 나한테 알려주면 안 될까?”

듀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방에서 무기를 겨눈 언데드가 즐비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자기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놈들인데.

듀란은 한숨 쉬듯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곱게 말해준다면, 날 가만히 내버려둘 의향은 있나? 어차피 네가 날 죽이려해도 난 죽지 않는 불멸의 몸이다.’

언데드왕 듀란은 과거 어떤 아크리치에게 불멸의 저주를 받고서 영원토록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이때 조용하던 까리뽕이 나섰다.

“요놈, 벌써 나를 잊었느냐?”

‘네놈은...’

듀란이 눈을 부릅뜨고 석민 위에 떠있던 보랏빛 혓바닥을 보았다.

낯 익은 목소리.

아니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까르니아 네 이놈!’

듀란이 몇 발자국 떼자 주변에서 무기를 겨누던 언데드들이 일제히 그의 진행을 막았다.

‘개 같은 아크리치놈!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네놈이 거기 있었구나.’

사실 이곳에 대해 알려준 게 바로 까리뽕이었다.

과거 까리뽕은 리즈시절이 있었고, 그때 악명 높은 아크리치로 명성이 자자했었다.

그때 했던 짓 하나가 아주 명망 높은 인간 성주 하나를 언데드로 만든 것이다.

그것도 절대 죽지 않는 저주를 걸어버렸다.

그 몬스터가 바로 지금 노발대발하고 있는 듀란이었다.

‘네놈을 지금 당장!’

“큭큭, 그래서 뭐 어쩔건데?”

화를 내봤자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

지켜보던 석민이 나섰다.

“그만하고 천신의 반지에 대해 알려줘. 사실대로 말해주면 건들지는 않을 게.”

결국 수가 없었던 듀란은 석민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천신의 반지는 그 어떤 몬스터라도 종속시킬 수 있는 절대 반지. 설령 그 수가 백만이라도 절대 반지의 힘은 유효하다. 그게 바로 천신의 힘이로다.”

천신.

혹은 갓 파더라 불리는 자의 힘.

그 권능은 석민이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백만이 넘는 몬스터도 지배할 수 있어? 그게 가능해?”

물론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아티팩트이고, 그 가격이 천억이라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백만이든 천만이든, 마나만 충분하다면 그 마나만큼 몬스터들을 지배할 수 있다.그건 네 골렘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안 그런가? 이름 모를 골렘이여.’

천신의 반지는 대전 골렘용 아티팩트.

더 정확히는 거신용 아티팩트.

그러니 인간을 초월한 힘을 행사하는 게 가능했다.

“악튜러스, 저 말이 사실이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 확실히 지배하는 몬스터가 많아질수록 마나 소모가 많아지는 느낌이다. 다만 반지의 능력이 좋은지 그 부분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 뿐.’

까리뽕이 끼어들었다.

“아하, 천신의 반지가 착용자의 마나를 빨아들여 몬스터를 지배하는 아티팩트였군요. 그럼 마나 소모를 늘린다면 저 못난 성주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큭큭큭.”

그 부분은 듀란이 숨기려고 했던 것.

하지만 (전)대아크리치가 그것을 꿰뚫어보았다.

까리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악튜러스가 마나를 더 태우며 전보다 더 강한 지배력을 행사했다.

그러자 언데드왕 듀란마저도 반지의 힘에 종속당하게 됐다.

‘충성을. 그리고 영광을.’

아득히 먼 과거.

기사 서임까지 받았던 듀란은 그만의 예법으로 충성을 맹세했다.

이를 본 석민은 다시 악튜러스를 찾았다.

“어때? 많이 힘들어?”

‘마나 소모가 전보다 더 늘어났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는 말이네. 아직은.”

까리뽕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천신이 등장할 때 몬스터가 떼거지로 등장하던데, 전부 그 이유가 있었군요. 그게 다 저 반지가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니.”

석민은 예전에 아빠와 영상 통화하던 것을 기억해냈다.

차태식은 그때 천신의 신전에서 레이드 중이었는데, 그때 보았던 몬스터 수가 정말 어마무시했다.

마치 집 나온 개미떼처럼 신전 아래를 뒤엎은 몬스터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정도로 정말 많았었다.

‘그게 다 천신의 반지와 연관되어 있었구나.’

그러면서 석민은 새삼 아빠가 가진 힘을 감탄하게 됐다.

대체 얼마나 강하면 천신이란 자가 반지까지 내어줬을까?

‘아빠가 엄청 센가봐.’

이렇게 듀란의 성은 석민의 손에 넘어갔다.

성 안에는 다행히도 석민이 찾던 데스 블랙스미스가 있었고, 제법 큰 대장간도 있었다.

용광로도 제법 컸다.

새로운 아지트의 발견이었다.

‘잘 됐네. 앞으로 여길 임시 기지로 삼아야겠다.’

석민은 점령한 성문을 닫고 매스 텔레포트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이후 아다만틴 채굴장까지 순식간에 이동한 석민은 성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을 그 즉시 아다만틴 채굴 작업에 투입시켰다.

80대의 골렘이 작업하던 현장에 때아닌 몬스터들이 찾아와 일손을 보태자 대작업장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아다만틴 채굴장은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골렘들과 몬스터로 아주 분주했다.

그 채굴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코어를 단 골렘이 쉴 틈 없이 땅을 헤집고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이 피와 구슬땀을 흘리는 그곳에서 석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하지만 만족하진 못했다.

석민은 진짜 욕심이 많은 아이였으니까.

‘그래도 뭔가 부족해. 나중에 몬스터랑 채굴용 골렘도 더 늘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노동력이 배로 늘어났음에도 더디게 채굴되는 아다만틴의 양이 한몫했다.

“까리뽕, 여긴 얼마나 더 파야할까?”

석민이 묻자 까리뽕이 작업 현장을 내려다보더니 대충 가늠해보았다.

“흐음... 제가 볼 땐 아마 2주는 더 파야할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채굴량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채굴장을 알아보셔야 할 겁니다.”

“2주? 그럼 그때까지 채굴 된 양은 어느 정도 될까? 많을까?”

많을까? 라고 묻는 아이의 기대에 까리뽕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만큼 아다만틴이 귀하다는 소리다.

“그건 두고 봐야겠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이 정도 채굴장에서 저 정도 인력이면 아마 못해도 골렘 장화를 만들 정도 밖에는 안 될 겁니다.”

“고작 그것 밖에 안 돼?”

“욕심이 많으시군요. 경우에 따라선 채굴량이 적어 장화 한 짝 밖에 못 만들 수도있습니다. 이건 운에 맡기셔야 합니다.”

“아다만틴이 진짜 귀하구나. 저 노동력으로 2주 동안 노력하는데 고작 그 정도 양이라니.”

“저 정도 인력을 투입해서 그나마 그 정도 건지는 겁니다. 보통이라면 한 세월이 걸리는 일입니다.”

인간이 신는 장화였다면 수십 켤레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체만한 골렘이 신는 신발이었다.

들어가는 재료의 양이 생각보다 어마무시했다.

‘아무튼 나중에 악튜러스한테 새 신발이나 신겨줘야겠다.’

오늘은 금요일.

석민이 게이트에 넘어와 이것저것을 하는 사이 어느샌가 본선이 코앞까지 다가와있었다.

“그나저나 다음 주 월요일에 본선시작인데. 아직 악튜러스 장갑도 못 만들어줬네. 너무 바빴어.”

석민이 생각했던 것보다 게이트 안에서 돌아다닌 시간이 길었다.

일주일 내내 돌아다니며 게이트 안에 살다시피 했는데, 그래도 잠은 가게에서 잤다.

게이트 안쪽으로 나아가는 건 힘들더라도 가게까지 되돌아오는 건 순식간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까리뽕이 악튜러스를 힘끔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만들어줘야지요.”

“그래, 용광로랑 대장장이는 있으니까 재료만 있으면 되겠다.”

아다만틴은 지금까지 채굴 된 양이 작아서 무언가를 만들 정도는 안 됐다.

그걸 떠나서 아다만틴을 다룰 기술도 없는 상황.

석민은 다른 재료를 떠올렸다.

바로 고물상 뒷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고철들.

“재료는 어떤 걸로 하시려고요. 아시다시피 아다만틴은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양도 적고 용광로에 녹일 기술도 없지요.”

“고물상에 있는 고철들을 사용할 거야.”

“좋은 생각입니다. 고철도 다시 녹여서 굳힌다면 새것처럼 되겠지요.”

석민은 고블린 백 마리와 함께 매스 텔레포트를 이용해 듀란의 성으로 이동했다.

데려온 고블린 백 마리는 데스 블랙스미스에게 맡겨 외골격의 틀을 잡아주는 주형을 만들도록 시켰다.

이후 몇몇 골렘들과 고물상으로 이동한 석민은 가게 뒷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고철더미들을 전부 듀란의 성으로 옮겼다.

그렇게 가져온 고철들은 대장간에 위치한 용광로 안에 들어갔고, 녹여진 고철들은 고블린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석고 틀에 들어가 금속 외골격으로 굳어지게 됐다.

이 작업만 이틀이 걸렸다.

본선 전날.

석민은 듀란의 성에서 주형을 깨고 나온 강철 장갑들을 살펴봤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보다 좋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질이 너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용접한 것보단 낫네. 그리고 한 번 쓰고 버리기에도 딱 좋아.”

경기 후 찌그러진 장갑이야 이곳에 가져와 다시 녹여서 굳히거나 데스 블랙스미스에게 맡기면 그만.

더 이상 외골격 장갑이 망가질까봐 벌벌 떨 필요도 없게 됐다.

대신 좋은 장갑은 아니라서 그 한계는 명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석민은 충분히 만족했다.

‘이번 본선만 무사히 넘기면 돼. 본선이 끝날 때쯤이면 마정석도 수확되고 아빠도돌아올 테니까.’

석민에겐 레이드 나간 아빠가 있었다.

차태식이 괜찮은 코어만 주워 와도 월드 그랑프리 진출은 더 이상 꿈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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