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아다만틴 채굴 >
황금은 곧 돈.
그 황금들을 전부 금괴로 바꿔 팔 생각을 하니 석민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전부 황금이라고?”
“네, 전부 황금입니다.”
“와...”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황금 산맥을 지키는 자가 있습니다. 에이션트 웜, 오슬로입니다.”
“에이션트 웜?”
석민은 스카우터를 통해 에이션트 웜에 대해 검색해봤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정보를 출력합니다.
[에이션트 웜]
위험등급 : A- ~ S+
특이사항 : 초대형 몬스터, 선공-초대형 몬스터 중 길들이기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몬스터 중 하나-여러 고대 문헌에 따르면 에이션트 웜이 파놓은 땅굴을 이용해 군대를 이동시켰다고 함자료 영상을 보니 마치 지렁이처럼 보이는 괴물이 땅을 헤집고 다니며 거대한 굴을 만들었다.
찍은 사람도 대단했지만, 석민은 에이션트 웜의 크기에 또 놀랐다.
“에이션트 웜이 정말 크구나. 나 저렇게 클지 몰랐어.”
몸통 굵기도 굵기였지만 길이도 족히 2백 미터는 넘어보였다.
까리뽕이 말을 잇는다.
“저까짓게 제 전성기에 비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강력한 몬스터라는 것은 변함없지요.”
“크기를 봐, 이걸 이길 수 있어?”
“후훗, 제가 부려먹던 몬스터 중 하나가 데스 웜이었습니다. 물론 에이션트 웜보다 두 단계 낮지만 데스 웜도 제법 이름께나 날리던 몬스터 중 하나였죠.”
“와 정말?”
“흐흠! 아무튼 그렇기에 지금까지 황금 산맥이 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저 에이션트 웜이 아니었다면 황금 산맥은 이미 누군가에게 털렸겠죠.”
석민이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악튜러스로는 에이션트 웜을 잡는 건 힘들어보였다.
“악튜러스가 잡는 건 무리겠지?”
“제가 말한 에이션트 웜은 이름까지 있는 네임드 몬스터입니다. 최소한 드래곤 하트 정도는 심고 가야 붙어볼 수 있을 겁니다.”
에이션트 웜이 지키는 황금 산맥.
꼭 가고 싶었지만, 아직 환상 고블린조차 찾지 못했다.
“그런데 아까 말한 환상 고블린은 만나기 쉬운 거야?”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이 몬스터가 사실 상인이거든요.”
“상인?”
“정말 여러 가지를 팝니다. 그래서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원한다고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떠돌이 노점상 같은 거라 정말 운이 없으면 몇 년에 한 번 만날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떤 이는 달마다 한 번씩 만나기도 합니다.”
“운이 따라줘야 한다는 거네.”
“맞습니다.”
“그래도 자주 볼 수 있는 장소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런 건 하나도 몰라?”
“딱히 자주 나타나는 장소도 없는 몬스터입니다. 상인이다 보니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면서 제 몸을 사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차원 문으로 이것저곳을 넘어가는 재주가 상당합니다.”
“그런 능력도 있어?”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반 고블린보다 영악하고 약삭빠른데다가 눈치가 보통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덮칠 낌새가 보이면 냅다 도망칠 겁니다.”
“도망쳐? 그래도 날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
석민은 어린 아이에 마나도 없고 힘도 없어서 몬스터에겐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환상 고블린만은 예외였다.
“아닙니다. 주인님과 싸워도 될 정도로 아주 약한 녀석들입니다. 싸울 줄을 아예 모르거든요. 덩치도 주인님만큼 작고요.”
“와, 내가 맞먹을 수 있는 몬스터가 있었네?”
“대신 맷집은 끝내주게 좋아서 때리다보면 지칠 겁니다.”
“신기한 고블린이다.”
“그래서 환상 고블린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이 있죠.”
알면 알수록 만나고 싶은 몬스터였다.
하지만 원한다고 만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란다.
석민은 괜한 기대를 거는 것보단 현실적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말을 들어보니까 환상 고블린은 만나기 힘들겠다. 다른 대장장이 몬스터는 없어?”
“글쎄요. 음... 오크들은 무식하고 트롤도 뇌가 없지요. 그나마 고블린들이 대장기술이 조금 있기는 한데 그다지 추천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던 까리뽕이 어떤 몬스터를 떠올리게 됐다.
“아, 언데드 계열 중에서 대장장이 기술을 익힌 몬스터가 있습니다. 데스 블랙스미스라고 아시는지?”
“데스 블랙스미스? 아니 걔는 누구야?”
석민은 반문함과 동시에 스카우터를 통해 데스 블랙스미스에 대해 검색해봤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정보를 출력합니다.
[데스 블랙스미스]
위험등급 : C ~ CC+
특이사항 : 언데드, 소형 몬스터-저주에 걸린 사람이 죽게 되면 언데드가 되고, 그 사람이 대장장이라면 데스 블랙스미스가 된다.
-데스 블랙스미스는 죽어서도 모루와 용광로를 찾아 망치를 두들기는 아주 특이한 몬스터다.
까리뽕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러고 보니 제가 요놈들을 엄청 부려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태생이 대장장이인 것들은 죽어서도 대장장이 일만 하더군요.”
석민은 어느 해골이 모루 위에 올린 시뻘건 쇳덩이를 망치로 내리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언데드 계열의 대장장이?”
“네, 그리고 실력이 제법 좋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드워프 장인에 비할 정도는 되지요.”
“걔들은 찾기 쉬운 거야?”
“언데드가 많은 무덤가나 아니면 음습한 던전 등을 뒤지시면 됩니다. 물론 장담은 못 드립니다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 그럼 걔부터 잡자.”
석민은 데스 블랙스미스를 잡아들이기 위해 골드 군단과 함께 나섰다.
레이드를 떠나기에 전.
석민은 용맥 근처에다 매스 텔레포트 마법진을 새겨놓았다.
이후 어떤 곳을 가더라도 곧바로 돌아올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둔 것이다.
그러면서 석민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헌터들도 게이트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지.
게임으로 치자면 마을에 있는 포탈을 통해 여러 던전을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과 비슷했으니까.
“까리뽕, 이렇게 하면 어떤 곳이든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지 않아?”
“그렇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지요. 대신 어느 한쪽에 용맥이 흐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헌터 아저씨들은 왜 힘들게 이동할까? 나처럼 매스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면 아주 먼 거리도 순식간에 이동할 텐데.”
거기에 대해선 까리뽕이 대답해주었다.
“모르니까 안 하는 거겠죠. 사실 이런 방법은 저를 포함한 극소수의 마법사만이 알고 있는 겁니다. 보십시오. 이 마법진이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지.”
내친김에 석민은 용맥과 매스 텔레포트 마법진에 대해 검색해봤다.
관련 된 정보는 단 1건도 없었다.
사람들이 전혀 모른다는 소리다.
“너 말고 다른 마법사들도 이걸 알아?”
“적어도 황금의 효교단은 모르지 않을 겁니다. 저도 한때 거기서 학구열을 불태우던 때가 있었지요. 다만 어둠의 길로 빠져들어 네크로맨서가 됐지만.”
“까리뽕 너는 왜 네크로맨서가 된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살다 보니 백마법보단 흑마법이 더 좋아보였고, 그렇게 흑마법 쪽으로 관심을 두다 보니 자연스레 죽은 자의 영혼 쪽에 관심이 가더군요. 어쩌면 그 당시 저는 영생을 바라고 그런 쪽으로 심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크리치였던 리즈시절에도 몇몇 기억들이 가물가물한데, 그보다 더 오랜 옛날이야기야 말할 것도 없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석민은 게이트 안쪽으로 향했다.
-현재 위치는 ‘보 샤피트르 숲’입니다.
-주의! 오크들의 출현이 잦습니다.
석민은 어리고 체력이 없었기에 생각보다 넓은 게이트를 돌아다니기엔 무리였으나 그 점을 악튜러스가 도와줬다.
악튜러스는 흙으로 된 요람 같은 것에 석민을 태우고 다녔다.
그래서 석민은 빠르게 움직이는 골렘들을 따라다니는데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주변 지역을 탐색 중입니다.
-주의! 1km 전방에 오크 소부락이 있습니다.
스카우터를 쓰고 주변 정보를 검색하던 석민은 첫 번째 목표물을 발견하게 됐다.
“저쪽으로 가자.”
석민이 가리키는 곳은 얼마 후 아수라장이 됐다.
석민을 따르는 골렘들이 오크 부락을 습격하자, 부락에 위치하던 오크 전사들이 허겁지겁 뛰어나와 조잡하게 생긴 원시무기를 골렘들에게 겨눴다.
싸움은 오래지 않았다.
악튜러스가 천신의 반지를 사용하자 성난 오크들이 순식간에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까리뽕, 천신의 반지는 아무 몬스터나 다 지배할 수 있는 거야?”
“그건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오크나 트롤 같은 하급 몬스터는 쉽게 지배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너도 잘 모르구나.”
“그게 골렘용 아티팩트라 잘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악튜러스가 한 마디 해주었다.
‘모르긴 해도 나보다 약한 몬스터는 이 반지에 분명 종속될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들.
대한헌터협회 자료실에도 서먼 마스터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석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을 지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다음 목표는 오크 대부락.
가장 먼저 쳐들어간 오크 부락이 13마리의 오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소규모 부락이었다면 이번에 노리는 오크 부락은 60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살고 있는 대부락이었다.
결과는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석민은 60마리의 오크들이 저항도 없이 천신의 반지에 종속된 것을 마냥 신기하게 생각했다.
‘60마리가 넘는데도 통솔이 가능하네. 대체 몇 마리까지 통솔이 되는 거지?’
그렇게 오크 부락 몇 군데를 방문하니 어느새 석민 뒤로 거대한 오크 부족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수만 대략 130마리.
놀라운 것은 이만큼 모으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저항도 없었다.
전부 반지의 능력 때문.
지배의 힘에 종속된 오크들이 단순히 명령에만 따르는 게 아니라, 정말 혼신을 다해 반지 주인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아직 반지에 종속되지 않은 오크들이 살고 있는 부락 정보까지 가져다 바쳤다.
“썩은 발 냄새. 저기 산 두 개 넘어 산기슭에 산다.”
포켓을 통해 호환되는 오크 말을 들은 석민은 그 오크에게 거기까지 가서 그쪽 부락 오크들을 전부 데려올 것을 명령했다.
“부러진 발톱은 말 잘 듣는다. 갔다 오겠다.”
제 머리를 벅벅 긁는 냄새나는 오크가 떠나고 한 시간 뒤.
부러진 발톱이라 불리는 오크는 정말 산기슭에 살고 있던 오크들을 전부 데려왔다.
이렇다 보니 6시간 지나지 않아 석민 뒤로는 3백이 넘는 오크 군대가 완성됐다.
‘신기하다. 3백 마리가 넘는데 전부 통솔되네.’
석민은 호기심이 아주 많은 아이였다.
이쯤에서 다시 이동하는 석민은 동부관문 쪽으로 넘어가 트롤들을 찾아다녔다.
멍청한 트롤들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석민이 이끌던 몬스터 군단에 조용히 편입되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나자 석민 뒤로는 8백이 넘는 몬스터 군대가 완성되었다.
나름 초급 지역에서 싹쓸이할 몬스터가 없어지자 석민은 자기가 이끌던 몬스터 군단과 함께 동부관문을 넘어 더 깊숙한 곳까지 도착하게 됐다.
동부관문을 넘고 꼬박 이틀은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바로 언데드왕 듀란의 성.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던 성은 어느새 천 마리가 넘어가는 몬스터 대군에게포위를 당했다.
불멸의 저주를 받고 성을 지키던 언데드왕 듀란은 성벽 위에 서서 그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고블린, 오크, 트롤, 코도 비스트를 포함한 수십 종류의 몬스터로 이뤄진 몬스터 대군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하나 같이 바보 같았다.
잠시 후 거대한 골렘들에게 둘러싸여 걸어온 한 소년이 자리에 멈춰서더니 이내 그를 올려다보며 다정하게 첫 마디를 날려주었다.
“안녕하세요?”
보아하니 저들의 대장처럼 보이는데, 자기한테 살가운 인사말을 건넸다.
지금까지 별의별 새끼들을 다 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
언데드왕 듀란은 아래를 쏘아보며 마법 전음을 날렸다.
‘돌아가라 인간!’
“거기에 데스 블랙스미스는 없어요? 없으면 그냥 지나칠게요.”
‘썩 꺼지래도!’
석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 뺨을 긁적였다.
곧 있으면 본선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대장장이 몬스터를 구해 대형 용광로에 불을 지펴야했으니까.
석민은 자기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세운 검지로 성 쪽을 가리켜주었다.
그 작은 신호 하나가 바보처럼 웃고 있던 몬스터 군단의 낯을 사정없이 일그러트렸다.
“호아! 후아!”
신호에 맞춰 오크 진영에서 덩치 큰 오크 한 마리가 걸어 나오며 군단을 능숙하게통솔했다.
오크대부족장 굴단.
“옥타르! 옥!”
전투 개시를 알리는 굴단의 외침과 함께 성을 포위하던 1천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 군대가 일제히 듀란의 성을 향해 돌격했다.
< #20 아다만틴 채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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