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선두 굳히기 >
“걔들이 어느 정돈데요? 잡기 어렵나요?”
“아니요. 다른 헌터면 몰라도 저희한텐 그렇게 어렵진 않죠. 대신 찾기가 힘들어요. 걔들도 머리가 있어서 저흴 보면 도망치거든요.”
“아 그래요?”
“몬스터도 한 AAA급 정도는 돼야 쫌 버겁습니다. S등급만 넘지 않으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아들한테 몬스터 심장 주시게요?”
“네, 생각 중입니다.”
“흐흠... A등급 몬스터면 잡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막상 찾는 게 문제라.”
“그럼 대충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이게 확실히 정해진 게 아니라 저도 확답 드리기가 참 애매하네요. A급 몬스터면 며칠 만에 만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하거든요. 아니면 아싸리 위험 지역으로 들어가면 A등급 몬스터를 떼거지로 볼 수 있기도 한데.”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A등급이면 오히려 떼거지로 나오는 게 저희한텐 이득이죠. 막말로 AAA등급도 아닌데다가 A등급 몬스터도 막상 찾으려하면 못 찾는 얘들이라. 물론 저희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저희야 일반 헌터들과 격이 다르니까.”
“아...”
차태식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자기는 초보 헌터였고, 김정민은 자기보다 월등히 경험이 많았으니까.
적어도 경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에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등급 몬스터 심장은 구해야할 거 같아서.”
“잠시만요. 제가 지도 좀 보고요.”
게이트 너머 세상을 정확하게 그려놓은 지도 따윈 없었다.
전혀 다른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 된 다소 복잡한 미로 같은 세상.
적어도 지구에 존재하는 평면 지도로는 게이트 너머 세상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없었다.
다만 여러 추측들을 모아 간소하게 그려놓은 지도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 김정민이 말하는 것은 그런 지도였다.
김정민은 지도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보통 레이드를 위해 찾아가는 곳이 탑의 저층인 거 아시죠?”
“네, 알죠. 수업 시간에 많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레이드는 다 이 지역에서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가 뛰는 상급 레이드도 전부 포함이에요.”
“예.”
김정민도 차태식이 경험 없는 초짜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보다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만약 그가 B등급 아래 어중이떠중이였다면 이런 수고까지는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는 나름 고급 인력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민이 이렇게까지 수고를 해주는 것인 자기와 팀을 이룰 수 있는 헌터가 차태식과 같은 극히 소수로 국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다.
“그런데 레이드 자체에서 얻는 건 저층보단 고층에서 얻을 게 더 많아요. 이건 잘모르시죠?”
“네, 그런데 왜 고층은 안 가는 거죠? 단순히 위험해서 그럽니까?”
“위험하기도 한데, 그런 것보다는 막상 고층으로 올라가게 되면 게이트에 살고 있는 이계인들이 더 골치거든요.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싸우기도 하고.”
차태식도 기본 상식으로 헌터들과 이계인들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과 싸우는 이유가 뭐였죠?”
“트러블이 생기는 이유야 간단합니다. 저희가 침입자 또는 침략자이기 때문이죠.걔들도 저희와 같은 이유로 몬스터 사냥이나 던전 탐험을 해요. 그런데 거길 저희 헌터들이 찾아가 건드리기 때문에 서로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한 마디로 남의 땅에 침입해서 생기는 일.
“저희가 침략자라 딱히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저희도 돈을 벌려면 그쪽 땅을 건드릴 수밖에 없는데.”
“그쪽 고층에서 레이드 수입은 짭짤하나요?”
“네, 제법 짭짤합니다. 적어도 저층보단 월등히 좋죠.”
돈을 벌기 위해선 헌터들도 나름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
이건 차태식도 마찬가지였다.
“상급 몬스터는요? 거긴 찾기 쉽나요?”
“고층이요? 물론이죠. 제가 말했잖습니까? 거긴 A등급 몬스터가 떼거지로 있다고. 거긴 저층하고 차원이 다릅니다. 저층 보스가 거기선 일반 몬스터예요. 유일하게 S등급 몬스터를 볼 수 있는 곳이 고층입니다. 다만 이계인들과 마찰을 어느 정도감안해야하고, 저층보단 배로 위험하죠.”
구미가 당기는 곳이었다.
차태식은 자연스레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그러다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 이계인들은 어떱니까? 위협적입니까?”
“일단 저희와 다르게 마나를 잘 다루거든요. 그리고 만났다 하면 걔들도 팀을 이뤄서 다니기 때문에 좀 골치입니다. 운 좋으면 아무 일 없이 서로 지나치는 거고, 자칫 틀어지면 포로로 잡히거나 서로 죽이기도 하거든요.”
김정민은 다시 숨을 고르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태식 씨가 좀 더 대박을 치시려면 저층보단 고층으로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구하시려는 상급 몬스터 심장도 고층에선 쉽게 구할 수 있고요. A등급 심장이면... 해당 몬스터를 떼거지로 만났을 때 몇 개 온전하게 건지겠네요. 그렇게 돈 버는 겁니다.”
차태식이 1000억짜리 천신 세트를 줍던 날, 김정민이 차태식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운이 정말 좋은 거라고.
보통 1000억짜리 아티팩트의 경우 저층에선 1년에 한 번 주울까 말까한 물건이란다.
몇 십억에서 몇 백억짜리는 간혹 줍기도 하지만, 고층도 아닌 저층에서 1000억이 넘어가는 초고가 아티팩트를 줍는 일은 최상급 헌터들도 힘든 일이라고 했다.
“심마니가 심보기 힘든 거 아시죠? 보통 저층에서 줍는 아티팩트가 1000억대가 넘어가면 헌터들 입장에선 심봤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날 태식 씨는 운이 엄청 좋았던 거예요. 저층에서 그런 대박은 생각보다 힘들거든요. 초심자의 행운이랄까? 저는 딱 그렇게 봤습니다.”
“네, 전부 그럽디다. 운이 좋았다고.”
“아무튼 이거야 헌터 개인이 판단할 문제니까 제가 더 이상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만약 고층에 가실 생각 있으시면 저한테 먼저 연락주세요. 어차피 저희야 끼리끼리 노는 일심동체 아니겠습니까? 저층 레이드는 몰라도 고층 레이드는 무조건 환영입니다.”
“예, 그럼 제가 좀 더 생각해보고 오늘 중으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연락기다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차태식은 핸드폰을 꺼내 골렘 장비에 대해 찾아보았다.
너무 아는 게 없다보니 아들과 대화하는 데 있어 나름 애로사항이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식한 게 자랑은 아니었으니까.
가장 먼저 검색해본 것은 바로 골렘의 코어로 쓰이는 몬스터 심장.
‘와, B+등급만 돼도 거의 강남 아파트 전세값이네.’
특히나 본선 우승을 위해 필요하다던 3000마력짜리 몬스터 심장의 경우 가격을 떠나서 매물 자체가 없었다.
지난 매물은 거의 300억에다가 웃돈을 더 얹어줘서 팔린 상태.
이런 것을 보니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됐다.
‘내가 아들한테 주려고 했던 몬스터 심장만 300억 근처면 진짜 헌터가 돈을 억소리나게 버는구나.’
그렇게 한동안 무언가를 검색해보던 차태식은 집으로 돌아가는 무빙 아머리에서 닫았던 입을 열었다.
“아들.”
“응?”
석민이 쳐다보자 차태식은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정말 우승할 수 있는 거야? 아빠는 좀 확실한 걸 원하거든.”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올해 우승할 수 있으면 아빠가 제대로 밀어줄 텐데, 그게 아니면 내년에 확실히 밀어주려고. 아빠는 아무리 봐도 올해 우승은 힘들 것 같거든. 아무래도 장비가... 그런데 아까 아들이 한 말 들어보니까 너무 막연하다는 거지.”
“아, 아빠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어.”
석민은 고심할 것도 없이 거기에 대해 설명해주기로 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아빠랑 강준 아저씨가 말했던 것처럼 올해 우승하는 건 좀 힘들어.”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준도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게 현실이었고,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막말로 올해 우승하려면 악튜러스는 적어도 300억짜리 코어를 달고 있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 몇 백억짜리 코어는 달고 있어야 하는데, 당장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석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준 천신 세트를 팔고 그 돈으로 악튜러스한테 좋은 코어랑 특수 외골격을 씌우면 올해 우승할 수 있긴 해.”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네.”
아들이 끝까지 안 판다고 했기에 차태식도 생각을 못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이때 조용하던 강준도 목소리를 냈다.
“그래 석민아, 그렇게 하면 되겠다. 그럼 올해 우승할 수 있겠네.”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는 국내 대회에 만족할 생각이 없어요. 항상 크게 봐야죠.”
크게 본다는 말에 강준이 그 즉시 입을 닫았다.
석민이 무엇을 말할지 대략 눈치 챈 것이다.
적어도 자기가 믿고 따라다니는 저 아이는 일반인들과 시각 자체가 아예 달랐다.
남들이 강만 쳐다볼 때 저 아이는 강 너머 바다를 보고 있었으니까.
“크게 본다고? 설마 세계 대회?”
“응, 아빠.”
차태식도 월드 그랑프리를 모르진 않았다.
다만 한국 골렘은 우승할 수 없다는 그런 편협한 생각이 워낙 깊게 박혀 있어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을 뿐이다.
“뭐 세계 대회까지 염두에 둔다면야...”
차태식이 대충 생각해봐도 국내 대회에서 우승한 골렘과 세계 대회에 나오는 골렘은 차원이 달랐다.
장비 수준부터 넘사벽.
“아빠, 아들은 계속 월드 그랑프리만 보고 있어. 국내 대회는 심하게 말하면 버려도 돼. 왜 그런지 알아?”
“쓰는 장비가 달라서?”
“응, 장비부터 다르거든. 국내 대회 우승할 때 쓰이는 장비는 세계 대회에 나가면다시 바꿔야 돼. 지금 가지고 있는 천신 세트를 팔고 1000억대 장비를 사면 국내 대회는 충분히 우승할 수 있어. 하지만 세계 대회에서 쓸 장비는 아니야. 그땐 더 좋은장비로 바꿔야 하니까.”
강만 보던 사람들이 바다를 그리던 아이의 생각에 할 말을 잃었다.
석민이 하고 싶은 말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뭔지 알아?”
“문제?”
“그때 가서 전에 팔아버린 천신 세트를 다시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천신 세트는 다른 세트와 다르게 딱 하나 존재하거든. 그래서 매물 자체가 귀해. 그런데 이걸 팔아버리면 상대방이 다시 되판다는 보장이 없거든. 돈을 두세 배 준다고 해도 상대가 안 팔아버리면 그만이야. 그럼 천신 세트는 영영 못 모으는 거야.”
“하지만 천신 세트는 모으기가 힘들잖아?”
“힘들지만, 그걸 떠나서 아들이 천신 세트를 굳이 가지고 있으려는 다른 이유가 있어.”
“다른 이유가 있어?”
현재 골렘 닷컴에 올라온 A급 세트 아티팩트의 경우 어느 정도 시세가 형성되어 있지만 결국 그것을 파는 건 판매자 마음이다.
막상 판매자가 팔기 싫다고 하면 돈으론 답이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판매자가 원하는 매물.
“여차하면 동급의 다른 세트와 교환이 가능하다는 거지. 그래서 어지간하면 팔면안 돼.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 아들 말이 맞다. 세계 대회 수준이면 돈 천억에 천신 세트를 팔아버리는 건 좀...”
차태식은 이어질 씁쓸한 뒷말일랑 내뱉지 않고 조용히 삼켜주었다.
“그리고 지금 추세로 봤을 때 골렘 장비가 갈수록 비싸지고 있어. 올해 천억이면 내년에 2천억까지 나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크흠!
석민에게 천신 세트를 팔라고 종용했던 강준은 애꿎은 헛기침을 내뱉어주었다.
내 생각이 그렇게 짧았었나?
막 그런 생각도 들었으니까.
“그래, 그건 맞네. 그럼 어떻게 우승하려고? 천신 세트를 못 팔거면 승산이 아예 없잖아?”
“아빠, 골렘 장비 가격은 역피라미드 구조야. 한 단계만 올라가도 가격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뛰거든.”
“그건 아는데, 그래서?”
“아들이 조만간 큰돈을 벌 거야.”
“큰 돈? 무슨 돈?”
“비밀이야.”
이걸 말한다면 아빠가 자신의 게이트 출입을 알게 된다.
“아들, 우리 사이에 그런 거 없다.”
“흠... 아무튼 아들한테 곧 100억 정도 생길 거야.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확률상높아. 그럼 그 돈으로 BB등급 코어를 살 거야. BB등급은 1700마력대지만 가격은 80억 근처거든.”
아들이 대체 무슨 재주로 돈을 번다는 것일까?
워낙 기이한 일을 많이 하는 아들인지라 아리송했지만 아들이 바로 말해줄 것 같지 않아 일단 집에 가서 살살 타이른 뒤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1700마력 대 3000마력이라...”
거의 두 배.
차태식은 그래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힘들 거 같은데...”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700마력보단 낫겠지. 그리고 그 정도 출력이면 한방은 있어. 700마력에선 없는 게 1700마력에선 있다는 거야. 이게 진짜 중요해.”
체급 낮은 선수가 항상 체급 높은 선수에게 지라는 법은 없었다.
체급이 낮더라도 제대로 된 한방을 먹일 수 있다면 기적을 일궈낼 수 있으니까.
< #19 선두 굳히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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