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천신 세트 >
대략 100억.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마정석 품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당 500만원씩만 잡아도 100억이네.’
석민은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수중에 있던 7700만원이 그렇게까지 뻥튀기 될 줄이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돈 버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것도 마정석 품질에 따라 더 많이 벌 수 있어.’
“까리뽕, 한 달 뒤에 어떤 마정석이 나오는 거야? 순도는? 저번에 내가 가지고 있던 혈석보다 나빠?”
석민이 질문을 쏟아내자 까리뽕은 차근히 대답해주었다.
“저도 물건이 나와 봐야 압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의하면 제법 명당자리에 나쁘지 않은 몬스터 혈액을 썼으니 못해도 중급 이상의 마정석은 만들어질 겁니다. 저번에 주우셨던 혈석 있지요. 그거 사실 제가 유통시킨 겁니다.”
“와, 그거 네가 만들어서 유통시킨 거야? 너 대단하다.”
“허험! 대아크리치 까르니아가 그 정도는 하지요. 저를 무엇으로 보는지는 모르겠으나, 한때는 제법 악명 자자한 보스 몬스터였습니다. 지금 이 꼬라지가 됐지만서도.”
석민이 쓴 몬스터 혈액은 오우거의 피다.
이 피를 구입하는 데만 천만 원 이상이 쓰였다.
석민은 마정석을 파묻은 땅 위에 서서 생각하듯 눈썹을 모았다.
‘앞으로 한 달이라...’
한 달 뒤, 이곳에서 100억 가치의 마정석이 채굴된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100억보다 낮을 수 있고, 더 높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100억으로 잡고 그 100억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무궁무진했다.
적어도 악튜러스의 장비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석민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늦기 전에 돌아가자. 오늘 아빠가 오잖아.’
석민은 전날과 같은 방식으로 가게로 되돌아왔다.
개척민 마을에서 게이트까지 오가는 포장도로는 외길로 레이드를 뛰거나 돌아오는 헌터들로 북적거리진 않았지만 적어도 10분마다 1대의 군용 차량이 지나다닐 정도의 교통량은 됐다.
그런 곳에서 히치하이킹은 제법 쉬웠다.
석민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길 잃은 헌터들을 태워다 주는 일이야 흔하디흔했으니까.
히치하이킹으로 군부대까지 돌아온 석민은 게이트 너머에서 큰 일이 없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대전 골렘과 함께였다지만 게이트 너머 세상은 위험천만한 곳이었으니까.
특히나 몬스터의 위협은 아무리 D급 위험지역이라 할지라도 항상 경계해야만 했다.
군부대 도착으로 몬스터의 위협이 사라지자 석민은 다른 걱정이 생겼다.
바로 월요일에 있을 천하장사와의 경기다.
‘그나저나 월요일 경기가 걱정이네. 악튜러스한테 좋은 장비를 달아주려고 했었는데.’
잭나이프와의 경기에서 대부분의 장비가 녹아내린 악튜러스는 급한 대로 지난 번레이드 때 주워온 낡은 장갑으로 무장한 상태다.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지. 돈이 없으니까.’
석민은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준의 도움으로 무빙 아머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강준의 도움으로 가게에 도착한 석민은 아빠부터 찾았다.
혹시라도 자기가 외출한 사이에 돌아왔나 확인한 것이다.
차태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석민은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1시간 정도 뒤에 도착한단다.
운이 없었으면 히치하이킹한 군용 트럭 위에서 아빠와 대면할 뻔했다.
‘그러면 엄청 혼나겠지.’
석민은 아빠를 기다리며 게임을 했다.
시간이 더럽게 안 갔다.
게임을 하면서도 자꾸 가게의 벽시계만 쳐다봤다.
아빠가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 생각보다 일찍 차태식이 돌아왔다.
“아들, 아빠 왔다.”
석민은 차태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게임 패드를 던지며 그에게 뛰어갔다.
“아빠!”
차태식은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차태식은 가게 뒷마당으로 나가 포켓에서 거대한 링 반지 하나를 꺼냈다.
명상하고 있던 악튜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태식이 꺼낸 링 반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는 물건.
바로 그 유명한 천신의 반지였다.
악튜러스가 눈가를 좁힌다.
생각할 게 많은 모양.
동시에 까리뽕이 안절부절 못했다.
아이가 천신 세트에 눈길을 돌리면 칠죄종 세트를 모으는데 애로 사항이 생기게 된다.
의미심장한 골렘용 반지를 보고서 석민이 기분 좋게 목소리를 냈다.
“아빠, 이게 뭐야?”
“아들이 보기엔 뭐 같아?”
“반지!”
석민은 차태식이 가져온 게 무엇인지 대강 짐작 할 수 있었다.
크기를 보건대 골렘 손가락에 끼우기 딱 좋은 형태였다.
석민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스카우터를 쓰고 다시 나왔다.
아빠가 가져온 링 형태의 아티팩트를 스캔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물체를 스캔합니다.
-스캔 완료. 정보를 출력합니다.
[천신, 하늘의 계승자(The God Father, A Heir of Heaven)]
등급 : AA+
형태 : 절대 반지
능력 : 서먼 마스터(소환&지배)
상태 : 최상
-몬스터에게 절대 지배를 행사할 수 있는 반지형 아티팩트
-서먼 계열 최상위 아티팩트
-골렘용 세트 아티팩트인 천신 세트 중 하나
“와, 진짜 천신 세트다. 아빠, 이거 진짜 천신 세트야?”
“그래, 사람들이 전부 천신 세트라고 하더라. 그거 천억 정도 한대.”
석민의 눈은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 아빠가 천억 짜리 골렘 반지를 주워올 줄이야.
“아빠 최고.”
“하하하!”
한참을 웃던 차태식이 운을 뗐다.
“아들, 그거 팔아서 여기다 근사하게 집 하나 짓자.”
“응? 아빠 이거 팔 거야?”
“천억이래. 당연히 팔아야지.”
“아빠.”
“어?”
“아빠, 이거 나 주면 안 돼?”
“뭐?”
차태식은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요구에 당황했다.
“아들, 그거 천억짜리래. 그럼 팔아야지.”
“천신 세트 다 모으면 악튜러스가 엄청 강해져.”
“아니 그건 아는데...”
신전에 강림한 천신이 그 아래 찾아와 있던 헌터들을 불러 선물을 하나씩 내렸다.
이때 차태식이 골랐던 것은 그 유명한 천신 세트다.
해당 아티팩트가 천억이나 나간 것도 있었고, 아들이 골렘용 장비에 관심이 많아서 고른 것도 있었다.
차태식은 천신의 반지를 가져와 아들한테 자랑 한 번 하고 다시 팔려고 생각했었다.
무려 천억짜리였으니까.
“아들, 그거 팔아서 우리도 근사한 집에 살아야지. 아들, 이 집구석을 좀 봐.”
차태식은 낡은 가게 안을 가리키며 아들을 설득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거 팔아서 고가 장비들을 구입해야지.”
차태식은 낡아 보이는 악튜러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못해도 아빠가 500억 정도는 밀어줄게. 그거면 우승할 수 있지 않아?”
차태식은 골렘 파이트에 대해서 자세히 몰랐다.
하지만 500억 정도면 국내 대회에서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골렘 파이트는 그 유명한 장비 파이트였으니까.
500억짜리 골렘이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못할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다.
차태식이 그렇게 말하자 석민이 꽤나 진중한 어투로 아빠를 설득시키기 위해 첫 마디를 던졌다.
“아빠.”
“응?”
“지금 아빠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아들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어.”
세계 대회.
세계 대회 클래스라면 말이 달라진다.
국내 대회야 500억 수준이면 떡을 치겠지만 세계 대회는 아니었다.
차태식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세계 1위 대전 골렘이 조 단위의 예산이 들어간 결전 병기 수준이란다.
자기 같은 S급 헌터 여럿이 덤벼도 애를 먹는다고.
“아들, 진심이야?”
“당연히 진심이지. 아들은 국내 대회 같은 거 버려도 된다고 생각해. 아빠가 그랬잖아. 남자라면 모름지기 꿈이 커야 한다고. 아빠, 아들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어.”
제 아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아빠 입장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이 국내가 아니라 세계에서 우승하고 싶다는데, 아빠 된입장에서 그 꿈을 저버리도록 종용할 수는 없는 노릇.
적어도 못 도와줄지언정 그 꿈을 짓밟아선 안 되는 게 아빠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가 아니던가?
그까짓 천억짜리 아티팩트야...
아들에게 선물로 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세계 대회까지 한 번 나가봐라. 아빠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테니까.”
“아빠, 그럼 이거 안 팔 거야?”
“당연하지.”
“아빠 최고!”
그렇게 천억짜리 아티팩트는 아들용 선물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아들한테 주고 나니 차태식은 지난 일주일간 동료들과 겪었던 개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 시발... 진짜 개같이 힘들었는데... 에이 시발. 됐어. 아들놈이 우승하면 되지.’
다음 날 아침.
석민은 티비 앞에서 아침 뉴스만 기다렸다.
“속보입니다. 전날 S급 헌터 차태식 씨가 천신의 신전에서 천신의 세트 아티팩트중 하나인 하늘의 계승자를 습득했습니다.”
이어지는 영상에서는 군부대에서 기자들에게 쫓기는 차태식의 모습이 비춰졌다.
“차태식 씨! 1000억 상당의 세트 아티팩트를 주운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군용 조끼를 입은 차태식은 따라 붙는 기자들이 귀찮은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빠르게 떠나갔다.
“할 말 없습니다. 아 좀 가세요.”
석민이 채널을 돌리니 해당 속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아나운서들끼리 떠들어대고 있었다.
“와, 천신 세트면 천억 상당의 물건이 아닙니까?”
“네, 제가 오늘 아침 골렘닷컴에서 확인해보니 매물로 나온 가시 면류관이 스위스에서 천억에 판매되고 있더군요.”
“와 천억이라니... 저희 같은 일반인은 꿈도 못 꾸겠는데요? 정말 부럽습니다.”
아나운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석민은 턱 아래를 긁적였다.
‘전까지는 막연한 위협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진짜로 위험하겠는데?’
무빙 아머리도 악튜러스의 장비를 지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전날 천억 상당의 천신 세트까지 가지게 됐다.
여러모로 고심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석민은 차태식이 일어나자마자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나 할 말 있어.”
“응? 무슨 말?”
그렇게 아들로부터 골렘 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차태식은 제 아들과 마찬가지로 턱 아래를 긁적이더니 곧바로 헌터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과의 독대 이후 대통령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도 됐지만, 그래도 대통령이라 다소 부담됐는지 제법 만만한 헌터부 장관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아 장관님, 안녕하세요.”
“아 네 태식 씨.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말이죠.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아들놈이 골렘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이게 보안 문제가 걱정돼서요. 장관님도 아시다시피 골렘 장비가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유 그렇죠. 저도 골렘 장비가 헌터 장비만큼이나 비싼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뭐 좀 도움 받을 일이 없을까 싶어 장관님께 먼저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런 문제라면... 일단 제가 좀 더 알아보고 점심쯤에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