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40화 (40/173)

< #17 어스 매직 >

#17 어스 매직

특훈을 위해 가게 뒷마당까지 나간 석민을 내려다보는 악튜러스가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그대에게는 마법적인 재능이 전혀 없다. 정말 처참할 정도로 없군.’

자기도 아는 사실이라 석민은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나도 알지. 하지만 내가 다루는 게 아니라 널 통해서 다루는 거잖아.”

석민이 말하자 악튜러스는 가볍게 긍정해주었다.

‘그렇다. 내가 창조주가 아닌 이상, 그대에게 없는 재능을 내려줄 순 없겠지. 하지만 그 재능에 대해선 그대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나를 통해 흙을 다루게 될 테니까.’

악튜러스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흙을 다루는 감이다.’

“감?”

‘나도 난감하군. 흙을 전혀 다뤄본 적이 없는 자에게 감을 논하다니. 하지만 그대에겐 꼭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분명 필요한 일이지.’

악튜러스는 보란 듯이 어스 볼을 자연스럽게 구현시켰다.

흙으로 빚어진 공.

어스 볼은 파이어 볼처럼 있는 그대로 위력적이진 않았지만, 흙으로 된 표면이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어느 정도 파괴력이 있는 마법이었다.

오히려 바람으로 긁어내는 윈드 볼보단 어스 볼이 더 위력적이었다.

악튜러스는 석민에게 어스 볼을 회전시키며 흥미를 유발시켰다.

‘어떤가. 앞으로 그대가 다루게 될 가장 흔한 마법 중 하나다.’

“멋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평생 흙을 다뤄본 적이 없는 그대에겐 아주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도전해보겠는가?’

“물론이지.”

석민은 자신감 있게 답했다.

아이의 대답을 듣게 된 악튜러스는 다음 말을 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이다.’

“그 감은 어떻게 익히는데?”

‘설명하기가 애매하군. 음...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악튜러스는 아이가 제법 영특하다지만, 자기처럼 흙은 완벽히 다루는 것은 힘들다고 봤다.

재능적인 면을 떠나서 흙을 다루는 감을 알아야 하는데, 재능도 없는 아이에게 이런 감각을 요구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가부좌를 틀고 앉은 뒤 나와 링크해라.’

악튜러스가 말하자마자 석민은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튼 뒤 쓰고 있던 스카우터를 통해 악튜러스와 링크를 시도했다.

석민의 바라보는 시야가 변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계속적으로 악튜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대처럼 앉게 해라. 보는 방향은 그대와 마주보는 방향으로하도록.’

악튜러스의 말마따나 석민은 자신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렇게 석민과 악튜러스가 마주 본 채로 앉게 됐다.

악튜러스의 목소리는 계속 됐다.

‘지금부터 미러 이미지 훈련을 할 것이다. 지금 그대에게 내가 가진 마나를 나눠줄 테니, 만약 내가 손바닥을 뒤집어 어스 볼을 만든다면 그대의 몸 역시 손바닥을 뒤집어 어스 볼을 띄울 것이다. 한 번 해보도록.’

석민은 악튜러스의 말마따나 손바닥 위에 흙 모양의 구체가 생겨나는 걸 떠올렸다.

그러자 악튜러스는 아이의 생각대로 손바닥 위에 어스 볼을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악튜러스와 마주보고 있던 석민도 똑같이 해냈다.

악튜러스가 칭찬했다.

‘훌륭하군.’

악튜러스와 링크 된 석민은 그 앞에 있는 자신이 어스 볼을 만든 게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뭘 하면 돼?”

‘다음에 할 일은 이를 무의식적으로 해내는 일이다. 전투 상황은 급박하고, 그대가 생각하는 바를 내가 제때 알지 못한다면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테니까.’

석민은 악튜러스가 말한 바를 알아차렸다.

지금은 머릿속으로 그 생각들을 집중했기에 악튜러스가 어렵지 않게 어스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생각의 집중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적의 주먹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걸 무시하고 어스볼만 떠올릴 순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악튜러스는 감이란 걸 중요하게 말한 것이다.

‘그대가 마법사였다면 나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어스 볼을 만들어내는 감이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감을 알고 있으니, 그대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어스 볼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나는 그 즉시 어스 볼을 만들어낼 수 있지. 하지만 그 감을 모르는 그대에겐 무척 어려운 일. 그러니 우리 둘은 그 미묘한 접점을 찾아야한다. 이건 그러기 위한 훈련이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내가 눈을 감고 있다가 확 뜰게. 그때가 내가 어스 볼을 원하는 타이밍이야.”

‘좋군. 우리에겐 그런 훈련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해보아라.’

석민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어스 볼을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을 최대한으로 죽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뜨며 입을 열었다.

“방금 내가 어스 볼을 막 원했는데, 어땠어?”

‘나쁘지 않았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군. 그런데 이건 그대의 역량보다 내역량이 더 중요한 것 같군.’

석민은 다시 눈을 감고 최대한 아까 전과 같은 느낌으로 눈을 뜨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이야.’

눈을 번쩍 뜬 석민은 다시 악튜러스에게 물었다.

“어땠어?”

‘아까 느꼈던 게 좀 더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좋군. 우선 이렇게 훈련하도록 하지.’

물론 모든 훈련 과정이 아주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선 이런 결과도 있었다.

“어라, 이번에는 실패했네. 악튜러스, 방금 전에 아무 느낌도 못 받았어?”

‘솔직하게 말해서 헷갈렸다. 그대가 원하는 게 어스 볼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일부러 그렇게 했던 것도 있어. 지금이야 계속 어스 볼만 떠올리니까 문제없겠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여러 감정과 느낌이 생기잖아. 너는 그중에서 어스 볼의느낌만 구별해야 하고.”

‘어렵군.’

석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악튜러스,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건 너무 막연한 거 같아.”

‘아니면 그대가 좀 더 구체적으로 어스 볼을 머릿속에 그리면 된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이 과정이 번거롭고 길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처가 필요한 전투 상황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지.’

“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지? 너도 안 헷갈리고.”

‘그렇다. 그대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보다 구체화된다면 내가 헷갈리거나 오해할 소지가 줄어들게 되지.’

“그럼 그렇게 한 번 해볼까?”

‘그다지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그대라면 또 모르겠군. 세상 모든 사람이 같진 않을 테니까.’

석민은 이번엔 어스 볼을 좀 더 구체화시키는 데 노력했다.

대신 빠르게 그 이미지를 구체화시켰다.

일반인이 할 수 없는 그런 것.

악튜러스도 아이의 재능을 보고 놀라워했다.

‘훌륭하다. 그댄 마나가 없을 뿐, 마법사적인 기질이 있군. 이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마나가 없는 마법사란 말에 석민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재능이 있는 거야?”

‘재능이 아예 없을 거라고 봤는데, 내 오판이었다. 방금 그대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그려낸 어스 볼의 형태가 제법 구체적이었다. 이건 전문 마법사도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럼 다른 어스 마법도 마찬가지야?”

‘물론이다. 그대가 원하는 이미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내가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석민은 악튜러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악튜러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아.’

석민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우선 그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석민은 두 가지 방법으로 실험하기로 했다.

우선 어스볼은 너무 쉬운 형태인지라 패스.

구현시키기 어려운 것 중 악튜러스 모양의 피규어를 떠올려보았다.

첫 번째 시도에서 석민은 악튜러스의 형태를 머릿속으로 대강 그려냈다.

그리곤 감았던 눈을 떴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실패.

악튜러스는 석민이 그려낸 이미지를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다소 어그러진 형태의 정체 모를 무언가를 빚어냈다.

그 형태는 분명 석민이 원하던 것과 달랐다.

두 번째 시도.

석민은 아까와 달리 악튜러스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아주 정밀하게 그려냈다.

대검을 쥔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정말 순식간에 끝났다.

말 그대로 재능의 영역.

그 묘사가 끝나고 이를 구체화시킨 뒤, 감았던 두 눈을 뜨자 아주 만족스런 결과물이 자기 앞에 빚어져 있었다.

흙으로 빚어진 아주 작은 악튜러스가 석민을 향해 웃고 있었다.

석민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확실히 알겠어. 악튜러스가 원하는 건 구체적인 형상이야. 어설프게 떠올리면 악튜러스가 따라 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내가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악튜러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는 거 같아.’

이때 악튜러스는 아주 훌륭하게 빚어진 결과물을 보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다. 앞으로 그런 식으로 하면 될 것 같군.’

“악튜러스, 너는 보다 구체적인 형상을 원하는 거구나.”

‘그렇다. 하지만 범인이 할 수 없는 영역인지라 그대에게 바라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 내가 그대를 다소 과소평가했던 모양이군. 그대의 자질은 아주 우수하다. 마나만 가지고 있지 않을 뿐. 그 재능은 단언컨대 8서클 마법사에 준한다. 아니, 어쩌면 더 높은 서클의 마법사일지도 모르겠군.’

그 말을 하면서 악튜러스는 석민이 가진 재능을 무척 아쉽게 생각했다.

대마법사 아크 메이지가 될 자질은 갖췄지만,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마나가 없었다.

그 마나만 있었어도 석민은 아주 훌륭한 마법사가 됐을 것이다.

“오, 아주 훌륭하군요. 가만히 지켜봤는데 가진 재능이 옛날에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던 까리뽕도 입을 열며 악튜러스와 마찬가지로 석민을 칭찬해주었다.

“고마워. 하지만 난 마법사는 못 돼. 마나가 없거든.”

“그게 참 아쉽다는 겁니다.”

“그런데 있잖아. 마법사가 다 나처럼 마법을 구현시키는 거야? 나는 머릿속에서 그 이미지를 아주 뚜렷하게 그려냈거든. 다른 마법사들도 그래?”

그 물음에 대해서는 까리뽕이 답해주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당신과 저 같은 경우는 거의 천재라 그 차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고 그저 마나만 가진 그런저런 마법사의 경우, 그런 부분을 마법서라는 것으로 전부 해결해버립니다. 즉, 마법서만 읽어버리면 굳이 우리처럼 마법의 형상을 구체화시키지 않더라도 손쉽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아, 그런 거야? 그럼 우린 마법서가 필요 없겠네? 그냥 생각하는 그대로 그려내면 되잖아.”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대마법사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자질이지요. 당신은그걸 가졌음에도 마나가 없어 정말 아쉽습니다.”

“괜찮아. 대신 어떻게 흙을 다뤄야하는지 알겠어.”

악튜러스가 말했다.

‘이미지를 아까처럼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은 없다. 그대가 생각하는 그대로 그려내도록. 그럼 나는 따라할 뿐이다.’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그려보자.”

석민은 악튜러스와 링크한 채로 두 손을 들어올렸다.

코어에서 뿜어지는 푸른빛이 더욱 짙어지며 주변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석민은 자기가 원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빠르면서도 보다 정확하게 그려냈다.

악튜러스는 그저 중간에 서서 아이가 원하는 바를 현실에서 구현시킬 뿐.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가진 아이다.’

쿠르르릉!

그들이 서 있던 대지가 요동치며 고물상 외곽에서 거대한 흙의 벽이 솟아올랐다.

마치 성벽처럼 솟아오르는 벽.

이를 본 까리뽕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커졌다.

“오오오! 이거 엄청나군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저도 힘들겠는데요?”

악튜러스는 석민고물상 주변에 4m 크기의 흙벽을 올려버렸다.

훗날 개미지옥이라 불리는 지옥의 구렁텅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17 어스 매직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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