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39화 (39/173)

< #16 예선전 >

“1등이면 좋긴 한데...”

문제는 싸움이 많아질수록 멀쩡하던 장비가 망가진다는 점이다.

아직 기술팀이 없는 석민의 경우 그 점도 신경 써야 했다.

“지는 건 걱정 안 하는데, 혹시라도 장비가 망가질까봐 걱정이다. 우린 아직 기술팀이 없으니까. 그럼 망가진 장비를 다른 걸로 대체 하던가 다시 사야한다는 건데...”

“걱정 마세요 아저씨. 아직 왼쪽 전완골에 문제 있는 거 빼고 전체적으로 괜찮으니까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그리고 좋은 장비는 아니더라도 나중에 쓰려고 모아둔 장비가 있거든요. 여차하면 이걸 쓰면 돼요.”

“뭐야, 그런 게 있었어?”

“네.”

지난 레이드에서 악튜러스가 시험을 받으면서 여러 조각상들을 부쉈다.

그때 얻은 조각상의 갑옷들이 석민에게 있었다.

여차하면 그 갑옷들을 악튜러스에게 장비시키면 그만.

강준이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안 쓰고 있었던 거야?”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딱히 좋아보이진 않아서요. 그냥 철로 만들어졌거든요.”

강준이 악튜러스를 떠올려 보았다.

녹슨 강철로 된 장갑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것보다 나을 텐데?’

“그래도 기존 장비보단 낫지 않을까?”

“아니요. 그것도 녹슬었거든요.”

“아, 그랬어? 어쩐지.”

“쓴다면 임시방편이겠죠.”

석민이 생각하던 바를 말해주었다.

“저는 그걸로 강철 뼈대를 만들려고 했었거든요. 게이트 너머에서 가져온 금속들이 대체적으로 마법내성이 어느 정도 있으니까요.”

대체적으로 강도 자체는 게이트에서 구한 철보다 현대에서 생산된 강철이 더 좋긴 했다.

마법적인 효과가 가미되지 않고서야 생산 시설 같은 건 이쪽이 더 나았으니까.

하지만 게이트 너머에서 구해온 철에는 마법 내성의 효과가 있어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석민은 악튜러스가 가져온 갑옷들은 녹여서 금속 뼈대를 만들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 쓰고 묵혀두고 있었는데, 경우에 따라선 쓸 수도 있는 거죠. 악튜러스가 주워온 갑옷들이 은근히 많거든요.”

대체적으로 하급 골렘들의 싸움에서는 마법 내성보단 금속 강도에 더 중점을 두게 된다.

대부분 하급 골렘들이 마법보단 주먹질로 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우는 두 골렘이 중급 이상만 넘어가도 그때부터는 장갑의 강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마법적인 내성도 많이 따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마법 하나로 상황이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각.

잭나이프의 골렘 파이터인 강철중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악튜러스의 지난 경기들을 보고 있었다.

‘만만찮은데.’

아까 봤던 공중제비.

그리고 불법 사설 경기장에서 남이 몰래 찍은 영상 등을 봐도 골렘을 다루는 수준이 이미 범인의 수준을 넘어섰다.

‘괴물이네. 어렵겠어.’

그때 한 명의 남자가 다가오며 말을 붙였다.

“어때? 할만 하겠어?

코치 한수만이 다가오며 입을 떼자 강철중은 대답 없이 같은 표정만 고수해주었다.

매니저만 달랑 데리고 있는 석민과 다르게 강철중은 매니저에 코치, 그리고 전문 기술팀까지 데리고 있는 제법 구색을 갖춘 골렘 파이터였다.

작년도 본선 무대를 밟았을 정도로 나름 베테랑.

강철중은 올해 최소 4강 진출을 목표로 두고 있었기에 오히려 악튜러스 같은 상대와 싸우길 원했다.

이런 상대조차 두려워 피한다면 우승 따윈 못할 테니까.

그래서 의외로 선전한 악튜러스에게 잭나이프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코치가 다가오자 강철중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센스가 좋은데요. 저도 장담은 못하겠어요.”

그 모습을 보아하니 꼬마가 다루는 악튜러스라는 골렘이 만만하진 않은 모양.

코치 한수만은 그의 어깨에 다독이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래도 장비는 이쪽이 더 좋아. 보니까 마법도 못 쓰던데.”

“그렇긴 한데, 방심할 순 없겠네요. 생각보다 잘해요. 아니, 좀 많이 잘하네요. 이거 계속 돌려봐야겠어요.”

강철중은 모레 있을 경기에 대비하여 악튜러스의 얼마 없는 영상들을 계속 돌려보기로 했다.

상대를 알아야 이길 수 있을 테니까.

D조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강준과 함께 가게로 출발한 석민은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스카우터를 쓴 채 잭나이프의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제법 많이 활동한 모양인지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은 엄청 많았다.

“아저씨, 잭나이프란 골렘이 마법까지 쓰네요.”

석민이 운을 떼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준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답했다.

“뭐, 마법?”

“네, 피스트 마법보다 상위 계열인 헬 피스트도 쓰네요. 그리고 불도 다룰 줄 알아요.”

석민이 보고 있는 영상 속 잭나이프는 그 유명한 파이어 골렘이었다.

골렘 중에서 가장 위력적이라는 파이어 골렘.

이글거리는 표면에서 불을 뿜어내어 상대 골렘을 불태우기도 했고, 공기 중에 불꽃을 일으켜 주변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선 상대 골렘의 장갑까지 녹여내는 모습까지.

“괜히 도전장을 내민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래?”

“싸우다가 악튜러스의 장갑이 녹을 지도 모르겠어요. 불을 잘 다뤄요.”

강준은 눈가를 좁히며 생각해보다 입술을 뗐다.

“그럼 아까 말한 그 갑옷들을 쓰면 되겠네. 어느 정도 마법 내성이 있다면서?”

“그렇긴 한데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거든요. 현대에서 생산 된 강철보단 나을 뿐이지, 그다지 마법 내성이 있다고 보는 건 힘들어요.”

“그래도 지금 장비보다는 나을 거 아냐?”

“애매해요. 딱 꼬집어서 어느 장비가 더 좋다고 말하기가 힘들거든요. 둘 다 녹슬었고, 강도 자체는 제가 용접한 게 더 좋은 거 같거든요. 악튜러스가 주워온 장갑들은 뭐랄까... 너무 오래됐어요.”

“흠... 문제네.”

강준도 자기 일처럼 걱정하며 침음을 흘렸다.

“저기 아저씨.”

“응.”

“트롤 뼈대는 아마 오래 못 쓸 거예요. 그래서 슬슬 강철 뼈대로 바꿀 생각이거든요. 골렘 장비를 직접 만드는 개인 업체 중에서 혹시 괜찮은데 하나 알고 계세요?”

골렘 장비를 직접 의뢰해서 주조시킬 경우,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보다는 그 가격이 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주문을 넣는 것은 특정 금속으로 뼈대를 만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개인 주문을 넣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만 괜찮다면야 하나 아는 데가 있긴 하지.”

“아는 데가 있어요?”

“그래, 거기 어디냐. 혹시 남원이라고 알고 있니?”

“남원이요?”

“보니까 잘 모르네. 하긴 서울 토박이가 잘 모를 수도 있지. 남원은 전라북도에 있거든.”

“머네요. 전라북도면 서울에서 멀리 있잖아요.”

“거기 내가 잘 아는 대장간이 있어. 골렘 장비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업체인데 그쪽 대장간 실력이 진짜 좋아. 좀 구닥다리 방식이긴 해도 실력 좋다고 입소문이 많이 났거든.”

“그래요?”

“음... 특수 금속도 아니고 일반적인 철이라면 아마 뼈대를 직접 만드는데 그렇게비싸진 않을 거야. 가지고 있는 주형에 녹인 철만 넣어서 주조시킨 뒤 조립하면 끝이니까. 그래도 최소 3천 정도는 생각해야 될 걸. 작업이 쉬우면서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가거든.”

“3천이요?”

한국중공업에서 대량 생산한 강철 뼈대가 대략 3천만 원 선.

하지만 석민이 만들고자 하는 뼈대는 게이트 너머에서 채굴 된 철로 만들어진 뼈대였다.

이런 제품을 시중에서 구할 경우 일반 강철 뼈대보다 최소 5배 이상으로 가격이 비쌌다.

“전 재료까지 있으니까 4천 안쪽이면 될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가격은 일단 가서 물어봐야하거든.”

“그럼 아저씨가 제 대신 알아봐주실 수 있어요?”

“오늘 전화해보고, 가격이 맞으면 내일 내가 남원으로 내려가 볼게.”

“만드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금속을 녹이고 굳히는데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리지. 그래도 최소 4일은 생각해야될 거다. 더 빨리 될 수도 있고, 더 늦게 될 수도 있는데. 이건 그쪽 대장간 사정에 따라 다르거든.”

“그럼 부탁드릴게요.”

가게에 도착한 강준은 곧바로 자기가 알고 있던 남원 대장간과 연락을 취했다.

“안녕하세요. 거기가 남원 대장간 맞죠?”

“네, 맞습니다. 제가 여기 주인입니다.”

“어이쿠 고생 많으십니다.”

“하하, 뭘요. 그보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일 좀 맡기려고 하는데요. 재료는 저희가 다 있고, 뼈대만 직접 주조시키고 싶거든요.”

“재료가 뭡니까? 특수 금속이면 저희도 힘들 수 있습니다. 녹이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게이트 너머에서 채굴 된 철입니다.”

“마법 내성은 없는 거지요? 화 속성에 내성인 철이 있어요. 이런 철이면 다루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런 철은 아닙니다.”

“아, 그런 거라면 문제없습니다. 녹여서 가지고 있는 틀에 그냥 굳히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어떻게 될까요? 가장 문제되는 게 가격이거든요?”

“가격은... 그냥 일반 철이니까 한 2천만 주십시오.”

“2천이요? 많이 싼데요?”

“이것도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라서 나름 노하우가 텄거든요. 그리고 이쪽에 연락하신 거 보니까 사정도 녹록치 않은 거 같은데, 그냥 2천만 주시면 됩니다. 물론 현찰로요.”

“아이고 당연히 현찰로 드려야죠. 그럼 제가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오실 때 재료 빼먹지 말고 가져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도착하기 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내일 봅시다.”

대화를 마친 강준은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석민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석민이 곧바로 목소리를 냈다.

“얼마래요?”

“2천에 해주겠데.”

“와, 그렇게 싸게 해주겠대요?”

“그냥 최소 인건비만 받으시려고 하시나보다. 이쪽 주인이 나이 많은 할아버지거든.”

“아, 할아버지였구나.”

“그런데 석민아, 2천은 있니?”

“네 있어요. 어제 가지고 있던 마정석 5개를 팔았거든요.”

강준과 대화를 마친 석민은 악튜러스를 올려다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악튜러스도 마법을 썼으면 좋겠다.’

피스트 마법을 배우는 데만 1억.

그러다 석민은 악튜러스가 마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튜러스가 가진 기억에서 마법을 쓰는 모습 등을 봤기 때문이다.

“악튜러스.”

무빙 아머리 앞에 서 있던 악튜러스가 석민의 물음에 반응했다.

‘듣고 있다.’

“마법은 아예 모르는 거야?”

‘아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정말? 그럼 피스트 마법은?”

‘그런 건 모른다. 다만 흙은 마법처럼 다룰 수 있지.’

악튜러스는 손바닥을 펼쳐 그 위로 흙으로 된 구체를 아주 손쉽게 만들어냈다.

어스 볼이다.

이를 본 석민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와 멋지다.”

‘말하는 게 늦었군. 그 동안 내 안에 깃든 심장이 좋지 않아 마법적인 힘에 대해 말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정도면 괜찮겠군.’

석민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악튜러스가 뒷말을 이었다.

‘그대에게 흙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 #16 예선전 > 끝

ⓒ 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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