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37화 (37/173)

< #16 예선전 >

준비를 마친 석민은 악튜러스와 함께 대형 경기장에 들어섰다.

아직 본선은 아니었지만 경기장 안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이긴 했지만, 대한골렘대전을 응원하는 팬들로 어느 정도 자리가 채워져 있는 상태.

C조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D조 첫 경기가 시작됐다.

동작구 강냉이 머신이 레드 진영에 섰고, 악튜러스는 맞은 편 블루 진영에 섰다.

“그럼 이어서 예선전 D조 첫 경기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길동은 전과 달라진 악튜러스와 꼬마에 대해 바로 알아보았다.

‘꼬마 녀석, 장비가 더 좋아졌는데?’

석민도 마찬가지.

석민도 이번 해부터 사회자가 교체된 것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게 용인 벙커에서 사회를 맡았던 홍길동이란 사람이었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다만 어렴풋이 용인 벙커에서 보았던 KRG 대표와 알게 모르게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따름이다.

“우선 레드 진영부터 소개해보겠습니다. 동작구 강냉이 머신! 괴팍한 이름이지만그 실력만큼은 동작구 넘버원! 그 골렘과 김영식 선수를 소개합니다.”

김영식은 약식 인사로 손을 흔들어보였다.

관중들의 환호는 크지 않았다.

예선전 초반이라 팬들도 크게 무리하지 않으려는 모양.

“다음으로 블루 진영에 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고물을 주워 조립한 뒤, 그 실력을 인정받고 이곳까지 오게 된 깡통과 그 친구! 악튜러스와 차석민 선수를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각 골렘과 얽힌 스토리는 사회자에게 전달된다.

관중들께 소개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출전하는 골렘의 숫자가 많을수록 사연 있는 골렘이 인기가 많기 마련.

참고로 해당 이야기는 대회 출전 신청서를 대리 작성을 한 강준이 적어 넣은 것이다.

“자 그럼 두 골렘은 위치로!”

악튜러스와 동작구 강냉이 머신이 경기장 중앙에 마주보고 서자, 경기장 외곽으로 관중들을 지키기 위한 반투명한 보호막이 3중으로 쳐졌다.

이 보호막은 경기장 내부에 위치한 마정석 또는 몬스터 심장으로 구동된다.

게이트에서 넘어온 마도 공학 중 하나인 것이다.

석민은 경기에 임하기 전 상대 골렘을 스캔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개체를 스캔합니다.

[본 골렘]

개체명칭 : 동작구 강냉이 머신

등록번호 : KR-1631142

개체등급 : CCC(대한헌터협회 June 21th, 2027)

최대출력 : 680hp

보유용도 : 대전 골렘용

‘CCC등급이네. 출력은 680마력 정도고. 세부 정보도 봐야겠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골렘의 세부 정보를 갱신합니다.

[무장 목록]

우(右)무장 : [B-] 오우거 건틀릿

<아티팩트>

좌(左)무장 : [B-] 오우거 건틀릿<아티팩트>

보조 무장 : [CCC] 난쟁이 왕국 대문 방패

[장갑 목록]

코어 : [CCC] 오우거 심장

코어 캡슐 : [CC-]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특수 코어 캡슐 KR-1S 머리 가리개 : [C] 군다의 빌헬름<세트>

어깨 가리개 : [C+] 군다의 덧대<세트>

몸통 가리개 : [CC] 군다의 쇄자갑<세트>

손목 가리개 : [CC] 한국중공업, 대전 골렘용 강철 손목 가리개 2028-H1다리 가리개 : [CC+] 판금 각반손 보호구 : [B-] 오우거 건틀릿발 보호구 : [DDD] 한국중공업, 대전 골렘용 강철 장화 2027-A2

[골격 목록]

전체 골격 : [CC+] 군다의 강철 뼈대<세트>

장비 종합효율 : 97%

장비 종합판정 : CCC

‘코어로 오우거 심장에다가 군다 셋이네. 장비는 저쪽이 더 좋아.’

확실히 본선 우승을 노리는 골렘답게 전반적으로 장비 상태가 악튜러스보다 좋았다.

군다 셋까지 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군다 세트 아이템은 게이트 너머 ‘군다’라는 대장장이가 만든 세트 아이템으로 전부 모으게 되면 ‘군다의 가호’라는 특수 버프 효과를 받게 된다.

어떤 세트 아이템의 경우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군다 세트와 같이 여러 개 존재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다만 이럴 경우 각 세트 아티팩트마다 등급이 상이했는데, 일반적으로 군다 세트의 경우 C-등급에서 CCC등급까지 그날그날 군다의 컨디션에 따라 등급이 다르게 나온다고 전해진다.

석민이 동작구 강냉이 머신을 살펴보고 있는 사이, 마찬가지로 김영식도 악튜러스의 코어를 보고선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장비가 안 좋은 줄 알았는데, 자기 골렘보다 더 좋은 코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뭐야? 코어가 나보다 더 좋네?’

김영식의 시야엔 악튜러스의 코어 정보만 단독으로 떠올랐다.

[장갑 목록]

코어 : [CCC] 북방 설원, 눈꽃 거인의 심장 +1

‘이런... 질렀네.’

1차 강화는 성공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었다.

대략 80% 정도.

다만 실패 확률이 있었고,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 그다지 선호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피스트 브레이커가 저 꼬마한테 있는 거지?’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스턴건의 장비로 의심되는 게 상대 골렘에게 있다는 점이다.

‘등급이 A-면 피스트 브레이커가 맞는 거 같기는 한데... 에라 모르겠다. 그래봤자 나머지 장비는 그다지 좋지도 않고, 이쪽은 군다 셋까지 있는데. 이거 기세만 잡으면 내가 이긴다.’

경기 시작 전 홍길동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 그럼 한 번 붙어봅시다! 두 선수 준비 됐습니까? 그럼 달려볼까요!”

이어지는 관중들의 환호.

홍길동이 경기 시작을 알렸다.

“Ready, Fight!”

경기 시작과 동시에 동작구 강냉이 머신이 기세를 잡기 위해 무섭게 파고들었다.

본 골렘.

뼈로 이뤄진 흉물스런 외양에다가 금속 갑옷을 입힌 모습.

두 주먹엔 오우거 건틀릿을 착용했으며 등에는 악튜러스처럼 대문 모양의 방패를메고 있었다.

순식간에 악튜러스의 앞으로 파고드는 강냉이 머신이 원투로 주먹을 꽂았다.

목표는 악튜러스의 안면부.

이때 악튜러스는 급히 몸을 돌려 드래곤 터틀의 등껍질을 보였다.

그 바람에 무섭게 날린 강냉이 머신의 두 주먹이 등껍질에 적중했다.

이번 공격은 실패.

김영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쳇, 반응 좋은데?’

강냉이 머신은 급히 몸을 수그리고 한쪽 발로 태클을 걸 준비를 했다.

등을 보인 상대를 때리는 것보단 발을 걸어 넘어트린 다음에 마운트 자세에서 우위를 점할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한 발자국 밀린 악튜러스가 그대로 발을 딛고 남은 발로 뒷발차기를 날렸다.

날린 발차기는 몸을 수그리던 강냉이 머신의 안면부에 그대로 적중했다.

예기치 못한 반격에 강냉이 머신이 태클을 걸려다 어정쩡한 자세로 엎어지게 됐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악튜러스가 피스트 브레이커를 성난 고릴라처럼 내리찍었다.

육중한 타격감과 함께 강냉이 머신이 바닥에 그대로 퍼졌다.

김영식은 요동치는 시야로 인해 잠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젠장!’

정신은 없었지만 머릿속은 오직 방패만 찾고 있었다.

‘방패!’

김영식은 대문 방패 앞세워 재차 공격하려던 악튜러스의 피스트 브레이커를 간신히 막아냈다.

순간의 기지였다.

만약 간발의 차이로 대문 방패를 앞세우지 못했다면 무방비에 놓여 있던 코어 캡슐이 그대로 찌그러졌을 것이다.

악튜러스는 대문 방패를 앞세운 강냉이 머신을 두 번 정도 내리찍다 뒤로 물러섰다.

대문 방패가 꽤나 견고했다.

‘저 방패부터 날려야겠다.’

석민이 전략을 수정하자, 김영식도 급히 전략을 바꾸었다.

‘일단 방패로 버티자. 정신 좀 차리고.’

강냉이 머신은 급히 일어나 대문 방패를 앞세우는 거북이 자세를 고수했다.

난쟁이 왕국을 외세 침입으로부터 지키는 두꺼운 철문을 그대로 뜯어와 만든 방패.

생각보다 견고했으며 최대 240%나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A-등급의 피스트 브레이커조차 뚫는 게 쉬워 보이지 않았다.

‘마법이 없어서 그래.’

마법이 아쉬운 순간.

만약 악튜러스가 아닌 스턴건이었다면 풀파워로 장전 된 드래곤 피스트를 날려 방패건 뭐건 간에 그대로 날려버렸을 것이다.

마법이란 건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돈이 없어서 못 배웠어. 대전 골렘용 마법은 비싸니까.’

대전 골렘용 마법서가 존재했다.

오직 대전 골렘을 위한 마법서였으며, 인파이터 계열 마법 중 최하급으로 치부되는 피스트 마법조차 마법서 가격이 최소 1억은 됐다.

석민이 악튜러스에게 따로 마법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은 오직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다가 아니지. 마법 없어도 저 골렘한테 틀니 끼울 수 있어.’

석민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섬뜩할 정도.

악튜러스는 공격에 앞서 장비하고 있던 피스트 브레이커를 버렸다.

장비 무게를 줄여 전체적인 기동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피스트 브레이커를 버리고 대검을 쥔 악튜러스가 전보다 더 빠른 움직임으로 방패를 앞세우고 있던 상대에게 일검을 내리쳤다.

출력에서 앞서는 악튜러스가 내리치자 이를 방패로 막아서고 있던 강냉이 머신이제대로 버텨내질 못하고 밀렸다.

동시에 방패를 든 자세가 무너졌다.

상대가 다시 자세를 갖추기 전, 끝장을 보려는 악튜러스가 이번엔 옆구리를 노리며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아예 작정하고 휘두르는 초대검은 거대한 흉기나 다름없었다.

휘두른 초대검과 대문 방패가 또 다시 맞부딪혔다.

그 바람에 녹슨 초대검은 부러졌으며, 대문 방패는 주인의 손에서 떨어져나가게 됐다.

‘이런!’

방패를 놓친 김영식의 얼굴이 급변했다.

‘좆됐다!’

반대로 부러진 초대검 따위야 아랑곳하지 않는 석민은 상대가 자세를 갖추기 전에 강냉이를 다 털어버릴 심산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김영식이 당황한 것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동작구에선 넘버원 골렘 파이터.

그 자부심을 살려 김영식이 급히 정신을 차렸다.

‘곱게는 안 당한다!’

발악이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강냉이 머신이 군다의 빌헬름을 쓴 머리를 앞세우며달려들었다.

놀랍게도 김영식이 택한 발악은 박치기였다.

목표는 악튜러스의 코어.

군다가 만든 튼튼한 빌헬름이라면 머리 박치기도 제법 위력이 컸다.

정타로 꽂힌 원투 펀치에 준할 정도.

김영식은 이런 방식으로 몇 번이나 역전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또 기적을!’

하지만 노련한 석민은 악튜러스로 하여금 깍지 낀 양손으로 박치기를 하려던 상대 골렘의 머리를 제대로 내리찍었다.

그 바람에 강냉이 머신은 애꿎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게 됐다.

이어 공중제비를 통해 다시 자세를 잡은 악튜러스가 다시 뒤돌아섰을 땐 지켜보던 관중들이 놀라서 벌린 입을 쉽게 다물지 못했다.

지금까지 여러 경기들을 봐왔지만 방금 전 악튜러스처럼 곡예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던 대전 골렘은 단연코 없었다.

“저거... 우연이겠지?”

“당연히 우연이지.”

“지금 저 꼬마도 분명 당황했을 걸.”

마치 말뚝박기를 하듯, 깍지 낀 양손으로 상대방 머리를 찍고 그 반동으로 공중제비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 국가 대표 체조선수처럼 안정감 있게 착지하는 모습은 솔직히 그들 상식으론 설명할 길이 없는 완벽한 기예였으니까.

그때 전의를 상실한 강냉이 머신의 위로 선 악튜러스가 한쪽 주먹을 꽉 쥐고 그 몸을 띄워냈다.

여기서 석민은 적당히 할 생각이 없었다.

적에게 여지를 주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 없었다.

그러니 확실히 끝을 내야 하는 것이다.

악튜러스는 상대 골렘의 머리를 마치 태권도 사범 앞에 놓인 기왓장처럼 일격에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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