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36화 (36/173)

< #16 예선전 >

지르기 전, 강준이 속에서 근질거리던 말을 꺼내 뱉었다.

“이럴 땐 제물도 바치고 굿판이라도 벌여야 하는데.”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강준의 유일한 여가가 바로 핸드폰 게임이다.

그 게임에서도 이와 같이 아이템을 강화하는 경우가 있었다.

성공과 실패 여부도 이와 비슷.

“에이 아저씨, 그런 건 오바죠. 누가 그렇게까지 해요?”

“석민아, 너 게임할 때 아이템 안 질러봤니?”

“질러보긴 했는데,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긴 여기서는 안 해도 되겠다. 성공 확률이 한 40% 이하는 돼야 제물도 바치고굿판도 벌일만 하지. 더 낮으면 말할 것도 없고. 이건 돈 몇 푼짜리가 아니잖니?”

석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강준은 제법 진지했다.

“내가 개인 방송도 많이 보는데, 거기 게임 BJ들이 게임 아이템 지를 때 진짜 지랄발광을 다 하거든? 강화 전에 제물도 바치고 진짜 무당 데려와서 굿판도 벌여.”

“그래요?”

“그게 은근히 효과 있어.”

“에이 아저씨, 그거 미신이에요.”

“미신 아니야. 진짜야. 효과 있다니까?”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강화 시작.

마음 조리며 지켜보다가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떠보니 푸른 빛무리에 휩싸인 눈꽃 거인의 심장이 보였다.

바닥에 그려져 있던 푸른 마법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법 강화 된 심장만 덩그러니 남은 것이다.

“성공했군요.”

까리뽕이 말했다.

강준은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뭐야? 포켓이 말도 하네?”

“네, 말하는 포켓이에요. 이름은 까리뽕이에요. 까리뽕 인사해.”

“안녕하십니까? 저는 까르니아... 아니 까리뽕입니다.”

놀란 강준이 핸드폰을 통해 말하는 포켓에 대해 검색하는 사이, 석민은 악튜러스를 데려와 코어를 교체했다.

“끝났다.”

전보다 좋아진 마나 생성.

악튜러스는 전보다 힘이 더 좋아진 것을 느꼈다.

#16 예선전

이른 아침.

밤사이에 낀 이슬도 가시지 않는 시각, K골렘 스타디움 앞에선 방송국 차량이 찾아와 새 게스트를 모신 채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곳은 대한골렘대전 예선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K골렘 스타디움 앞입니다. 오늘 새로운 게스트를 모시게 됐는데요. 시청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이번 대한골렘대전에서 사회를 맡게 될 홍길동이라고 합니다.”

용인 벙커에서 밤무대를 연상시키는 반짝이는 옷차림을 고수했던 홍길동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7대 3 가르마에 사람 좋은 미소.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시청자분들과 대한골렘대전을 사랑하시는 모든 팬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네, 그런데 이름이 참으로 독특하시네요. 정말 이름이 홍길동입니까?”

“하하, 개명한 이름입니다. 아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쪽 바닥도 나름 경쟁이 치열해서요. 그래서 다소 독특한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길동 씨께서는 이번 대한골렘대전을 어떻게 보시고 계십니까?”

“여기서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네, 편한 대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음... 일단 제 생각은 올해 우승도 역시나 작년에 우승 후보였던 홍진영 혹은 김철민이 가져갈 것 같습니다.”

“이번에 국방부에서 내놓은 KA 청룡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나름 유력 우승 후보인데요.”

“물론 이번에 나온다는 KA 청룡도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만. 골렘 파이트라는 게비단 장비만 보는 게 아니라 파이터 자질 같은 것도 고려해봐야 하거든요. KA 청룡 파이터가 얼마큼 연습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월드 그랑프리 무대까지 밟았던 홍진영보다는 못할 거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예선전부터 시작해서 본선까지 전체적인 사회를 맡게 되실 텐데요. 그 전에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년간 축적 된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최선을 다해 이번 대한골렘대전의 사회를맡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지금까지 홍길동 아나운서와 얘기를 나눠봤는데요. 다음 뉴스입니다.”

다음 뉴스에선 대통령 한대성과 나란히 서 있는 차태식의 얼굴이 메인 화면에 걸렸다.

“국내에서 S급 헌터가 각성됐습니다. 각성되기 전에는 한 고물상의 주인이었다고 하는데요. 일단 준비된 영상을 보시죠.”

화면에서는 청와대에 초청되어 대통령 한대성과 여러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차태식의 얼굴이 비춰졌다.

“헌터 차태식씨는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헌터입니다. 고물상에서 어린 아들과 같이 생활하던 그는 어느 날 헌터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에인츠에서 S급에준한다는 자질 평가까지 받게 됐습니다. 국내에서 S급 헌터 수가 손에 꼽히다 보니,청와대에서는 급히 국가안보실을 통해 차태식 씨를 청와대로 초청하게 되었고, 차태식 씨는 지난 월요일 한대성 대통령과 직접 만나 만찬을 같이하게 됐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영상에서는 만찬 자리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비춰졌다.

한대성은 마주 앉은 차태식을 향해 진중하게 말을 건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태식 씨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이 악수하는 장면으로 영상이 끝나자 티비 화면을 통해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석민이 활짝 웃었다.

“와, 아빠 티비에 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티비를 켜놓고 뉴스를 시청하는 아들 때문에 잠에서 깬 차태식은 티비 속 대통령과 마주하는 자신을 보고선 피식 웃었다.

‘고놈 참 잘생겼네.’

“아들, 아빠가 바로 S급 헌터야. S급.”

그렇게 시작한 아침.

차태식이 이른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서두르자 석민도 예선전 출전을 위해 준비를 했다.

그런데 뜻밖의 손님이 석민고물상에 찾아왔다.

등교하기 전 유이가 석민고물상에 잠시 들린 것이다.

“안녕하세요.”

유이는 가게 안에서 꾀죄죄한 몰골의 차태식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부터 했다.

“누구니?”

아직 잠이 덜 깬 차태식이 묻자 유이가 해맑은 미소와 함께 대답해주었다.

“석민이 짝꿍이에요.”

“짝꿍? 짝꿍이 여긴 무슨 일이야.”

“석민이 여기 있어요? 석민이한테 전해줄 게 있거든요.”

“석민아! 여기 네 친구 왔다.”

방안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석민은 아빠가 부르자 어른용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왔다.

“어, 유이네? 유이야 안녕?”

“석민아 안녕?”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이거 주려고 찾아 왔어.”

유이는 포켓에서 예쁘게 포장 된 선물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그거 먹고 힘내. 예선전 화이팅!”

“고마워.”

차태식은 감흥 없는 눈으로 가게 앞에 정차되어 있던 검은색 고급 세단을 말없이 쳐다봤다.

개인 운전기사도 있고, 포켓까지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어느 있는 집 자식처럼 보였다.

유이가 떠나가자 차태식이 아들을 찾았다.

“쟤 누구니?”

“유이라고 내 짝꿍이야.”

“오, 우리 아들. 벌써부터 애인 있는 거야?”

“애인 아니야. 그냥 짝꿍이야.”

짝꿍이라고 못을 박는 석민은 유이가 주고 간 선물꾸러미를 열어보았다.

이번엔 토끼 모양의 쿠키였다.

또 손으로 만든 모양.

모양이 어설펐다.

공짜로 얻은 쿠키였지만 석민은 그 맛이 조금 걱정됐다.

‘이번엔 괜찮겠지?’

어느덧 시간이 지나 K골렘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무빙 아머리 운전석.

석민은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준에게 아침에 유이에게 받은 쿠키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저씨, 이거 하나 드셔보세요.”

다소 어설픈 토끼 모양의 쿠키.

강준은 일단 입에 집어넣고 봤다.

몇 번 씹어보니, 속이 덜 익었다는 걸 알게 됐다.

더군다나 푸석푸석하기까지.

“고맙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났어? 설마 산 건 아니지?”

“그거 선물 받았어요.”

“선물? 누구한테?”

“있어요. 저한테 선물 자주 주는 친구요.”

“아 그래? 그런데...”

맛이 없다는 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강준은 다른 말없이 이후에 석민이 건네는 쿠키는 받지 않았다.

도착하게 된 K골렘 스타디움.

무빙 아머리에서 내린 강준은 어제 프린트 해놓은 예선 D조 명단을 석민에게 건네주었다.

“석민아, 이거 받아라. 예선 D조 명단이다. 미리 뽑아놨어.”

“그거 필요 없어요. 어젯밤에 미리 받아 놨거든요.”

“아 그래? 그럼 이건 내가 가지고 있어야겠다.”

석민은 스카우터를 쓰고 어제 봐놨던 자료들을 제 시야 상에 투영시켰다.

빛의 스크린으로 된 D조 명단이 석민의 눈앞에 떠올랐다.

[예선 D조 명단]

동작구 강냉이 머신 // 1점

크로우 // 1점

잭나이프 // 1점

로얄 펌프 // 1점

천하장사 // 1점

안산 1호기 // 1점

악튜러스 // 1점

범블비 // 1점

백두산 // 1점

무적 돌탱이 // 1점

본선 진행은 토너먼트였지만, 예선전은 점수제였다.

상대 선수를 지목해서 싸워서 이긴 다음 상대 선수의 점수를 빼앗아오는 방식이었다.

“악튜러스처럼 근사한 이름을 가진 애들은 별로 없네요.”

석민이 생각하던 바를 말하자 강준도 곧바로 동의했다.

“골렘 이름이야 뭐 중요하겠니. 어차피 DDD등급만 넘으면 참가할 수 있는 게 이번 예선전인데. 거기서 1등하고 2등만 본선행이야.”

이름이 우습다고 해서 실력까지 과소평가하면 금물.

강준이 검지를 세우며 석민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래도 등급은 전부 C등급 이상이야. 대부분 용인 벙커 같은 불법 사설 경기장에서 한가락 하던 놈들이지. 이건 알고 있지?”

“물론이죠. 그걸 모를까요.”

“일단 지켜보자. D조니까 잘만 하면 네 번째 경기에 나갈지도 모르거든.”

석민은 스카우터에 표시된 전광판을 확인했다.

예선전은 A조부터 Q조까지 총 16개의 조가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경기를 치르게 된다.

어떤 형식이냐면 A조 첫 번째 선수가 A조에 속한 다른 선수를 직접 지목하여 경기를 치르게 되고, 그 다음 B조로 넘어가 똑같은 방식으로 경기가 이뤄지는 식이다.

그렇게 Q조 마지막 선수가 누군가를 지목하여 싸우게 되면 예선전은 그대로 끝나게 되고, 점수가 가장 높은 각 조의 두 명만이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악튜러스의 본선 진출 여부는 D조 마지막 선수가 상대 선수를 지목하면 알 수 있게 된다.

그 결과에 따라서 악튜러스가 본선에 진출할지 말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D조 첫 번째 선수는 동작구 강냉이 머신.

석민은 스카우터에 표시된 전광판을 보며 입술을 뗐다.

“동작구 강냉이 머신이 누굴 지목할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론 저흴 지목할 거 같은데.”

그 시각.

동작구 강냉이 머신을 따라 K골렘 스타디움에 도착한 김영식 스텝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 있을 네 번째 경기에 자기네 골렘을 출전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야 영식아. 아직 상대 안 골랐냐? 빨리 골라야 돼. 경기가 제법 빨리 진행될 수 있거든.”

“네 형님! 지금 고르고 있습니다.”

김영식.

동작구 강냉이 머신 골렘 파이터로 나이는 서른.

어렸을 때 동작구에서 이름께나 날리는 전설적인 주먹이었단다.

‘어디 보자.’

갤럭시 울트라 패드를 잡고 D조 명단을 살펴보던 김영식은 스카우터를 통해 각 골렘들의 대전 영상들을 검색해봤다.

‘어디 만만한 놈 없으려나...’

이놈을 잡으나, 저놈을 잡으나 1점.

그렇다면 쉬운 상대를 잡아먹는 게 나았다.

그러다 녹슬어 보이는 악튜러스가 보였다.

오래 된 철이 산화하게 되면 붉은 빛을 띠게 된다.

딱 그런 빛을 띠는 골렘이 여기 있었다.

대전 영상을 보니 제법 센스가 있었지만 장비 자체는 쓰레기.

‘애매한데...’

잠시간 고심하던 그는 씩 웃었다.

‘뭐 있나. 까짓 꺼 붙어보면 되지.’

“저 골랐습니다. 이 녹슨 골렘으로 하죠. 아주 훌륭한 제물이 될 것 같네요.”

김영식은 자기가 지목한 골렘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모두는 겉모습만 보고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그 시각 석민은 D조 첫 경기로 악튜러스가 지목된 것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예상하던 대로였다.

“동작구 강냉이 머신이 저흴 지목했네요. D조 첫 시합이에요.”

석민과 마찬가지로 구형 스카우터를 쓰고 있던 강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네. 허, 이놈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괜히 자존심 상하는데?”

석민은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런 K골렘 스타디움으로 들어서기 전 강한 자신감을 내비쳐주었다.

“동작구 강냉이 머신은 앞으로 틀니 끼고 다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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