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32화 (32/173)

#13 골렘 닷컴

“순도는 감정을 안 받아서 모르겠어요.”

“한국엔 감정소가 없는 겁니까?”

“있는데 감정을 안 받았거든요. 그렇다고 문제 있는 물건은 아니에요.”

혈석에 하자만 없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혈석 감정이야 어차피 골렘 닷컴에서 알아서 할 테니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고. 아무튼 현금 5천에 나머지 부족한 대금은 혈석으로 대신 지불하신다는 말이시죠?”

“네, 그렇게 하려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내일 골렘 닷컴 사람들이 오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시죠.”

직거래가 아닌 중개거래이기 때문에 골렘 닷컴이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지불 대금에 대한 확인은 전부 골렘 닷컴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

수수료를 부담할 판매자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진 판매자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석민은 뒷마당으로 나간 김에 악튜러스를 올려다봤다.

전과 다른 모습.

스턴건의 피스트 브레이커에 그 밖의 장비들이 하나둘씩 바뀌고 있었다.

‘이제 슬슬 그 걱정도 해야겠다. 상체 장갑만 아니라 피스트 브레이커도 위험하니까.’

석민은 아까 악튜러스를 유심히 살펴보던 한미라의 수행비서가 생각났다.

악튜러스를 살펴보는 눈빛이 대단히 수상했다.

그 눈에 탐욕이 보였다고 할까?

그 시각.

고급 세단을 타고서 회사로 복귀하던 한미라는 아직도 아까 만난 차태식이 눈에 선했다.

마치 학창시절 남모르게 좋아하던 오빠와 마주친 느낌이랄까?

시크한 느낌을 주는 조각된 외모에 큰 키와 비율 좋은 몸매.

그리고 쉽지 않은 까탈스러운 성격까지.

딱 자기가 원하던 남자였다.

“진짜 잘생겼지? 안 그래 미연씨?”

한미라의 바로 옆 좌석에 타고 있던 이지적인 미모의 비서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살가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김미연.

한미라가 데리고 다니는 수행비서 중 하나.

“아까 그분 말씀이시죠?”

“그래, 그 사람. 어땠어? 괜찮지 않았어?”

김미연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굳이 비위에 맞춰 말할 필요가 없었다.

생각하던 그대로 내뱉으면 그만.

“네, 괜찮았어요. 마치 김원빈을 닮았다고 할까?”

“김원빈보다 훨씬 낫지. 키가 다른데. 김원빈 걘 완전 땅꼬마잖아.”

한미라가 김원빈을 흉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미연은 직감적으로 대표가 그 남자에게 마음이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이때 감흥 없이 두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동건이 소리 없이 비웃었다.

남자 새끼가 잘생겨봐야 뭘 한다고.

그러면서 자기 외모도 아까 만난 애 아빠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나 정도도 나쁘지 않은데.’

단순히 외모만 보고 주변에 사귀자는 여자가 많았으니 이동건의 생각도 틀린 건 아니었다.

그런데 대표가 자신한테 관심이 없었다.

그게 좀 아쉬웠다.

이동건이 불쑥 말을 꺼냈다.

“대표님, 계약 건은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습니까?”

한미라가 운전석을 바라보며 독사 같은 눈을 치켜떴다.

“계약? 계약이야 뭐 대충 하면 되니까. 그게 중요했어?”

그녀의 회사였기에 계약 자체도 그녀 마음대로.

본래 왕이라는 게 스스로 법도 만들지 않던가?

평소라면 무시했을 테지만 이동건은 그 부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자체로 그녀가 그에게 마음이 있다는 방증이었으니까.

“아까 듣기로 5대 5 계약 얘기를 하신 거 같은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봐요 동건 씨.”

“네.”

이동건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대강 짐작했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좀 끄시지?”

꽤나 직설적.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됐고. 사람이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척 보면 몰라? 내가 왜 그런 조건을 내밀었는지?”

이런 부분은 그녀의 매력이기도 했지만 이동건에겐 그리 달가운 부분은 아니었다.

특히나 다른 남자와 얽힌 문제에 있어서는 기분이 무척 상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 배신감마저 느껴질 정도.

“그런데 대표님. 제가 아이의 골렘을 봤는데 말입니다.”

“그걸 동건 씨가 왜 보는데?”

독사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이동건은 적당히 둘러댔다.

“할 게 없어서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름이 아니라 그 골렘이 스턴건의 오른팔을 달고 있었는데, 이걸 알고 계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스턴건 오른팔?”

같이 있던 김미연도 입을 열었다.

“스턴건 오른팔이면 피스트 브레이커를 말하는 건가요?”

“네, 그거요. 제가 볼 땐 피스트 브레이커였는데, 대표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이상한 소리에 한미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스턴건 오른팔이 거기에 왜 있어. 막말로 이민호가 준 것도 아닌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여서 이동건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미라가 지그시 노려보며 입술을 뗐다.

“이봐요 동건 씨.”

“네.”

“혹시 잘못 본 거 아냐?”

이동건은 눈가를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자기도 처음 봤을 땐 긴가민가했었다.

왜 스턴건 장비가 거기에 있었을까?

몇 번을 봐도 피스트 브레이커가 맞아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제가 잘못 본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말을 꺼내지 마. 괜히 혼란스럽잖아.”

“죄송합니다.”

“그래도 다시 알아봐. 진짜 피스트 브레이커인지.”

한미라도 건너건너 들은 소문이 하나 있었다.

스턴건과 베가의 스파링이 있던 날.

다 지고 있던 경기를 누군가 나서서 엎어버렸단다.

이후 이민호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은퇴를 선언하게 됐는데, 그때 이민호가 언급한 대상이 누구인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단다.

그리고 사라진 피스트 브레이커.

이민호가 누구한테 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네, 그럼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그보다 동건 씨.”

“네.”

“말이 나온 김에 묻는 건데, 그 스피카는 어떻게 된 거야? 결국 중국에 팔린 거야?”

“네, 중국에 팔렸습니다. 제이 팽이라고 아십니까?”

“제이 팽? 아, 그 재벌 2세?”

제이 팽.

춘밍그룹 회장의 외아들이자 SNS에서 돈지랄로 유명한 재벌 2세다.

제이 팽이 수천 명의 인부를 시켜 돈으로 성을 쌓은 뒤 인터넷 생중계로 그 성을 불태워버린 일화는 아직도 유명했다.

“그 제이 팽이 사실 대전 골렘 수집가로도 유명한데, 스피카가 마음에 들어 구입하게 됐답니다.”

“하, 그걸 단순 컬렉션으로 3000억이나 주고 가져갔다고?”

“제가 볼 땐 단순히 컬렉션 용도는 아닌 듯싶습니다. 자기가 직접 골렘 매니지먼트도 차리고 전문 파이터들도 영입시키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본토 대회나 세계 대회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스피카가 베가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지도 모릅니다.”

그 이야기는 그들에겐 그다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레드 데빌이 세계 대회에서 멀어지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니 무슨 해가 지날수록 이런데? 저번 해에는 막시무스에 이번 해는 베가에다가 스피카야? 그 스피카도 제이 팽이 돈지랄로 키울 거 아니야?”

“아마도요.”

“하아...”

이거 홍진영이 월드 그랑프리 진출은커녕 아시아 지역 예선도 못 뚫게 생겼다.

“홍진영은 어때? 아직도 슬럼프야?”

만약 이번 해에도 홍진영이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퇴물이란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올 것이다.

그것은 비단 홍진영 만의 문제가 아니라 KRG의 위기이기도 했다.

그 물음엔 김미연이 빠르게 답해주었다.

“예전에 이민호가 그랬던 것처럼 별장에서 파티만 계속 하고 있답니다. 기자들 시선도 곱지 않고요. 이상한 기사가 나오는 걸 홍보팀에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연습은 안 해? 몇 달 있으면 월드 그랑프리 지역 예선이잖아.”

“그게... 저희에게 강제권이 없어서.”

“홍진영 걔는 9대 1로 재계약했으면 양심이라도 있어야지. 우린 뭐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나? 사람이 염치가 없어.”

홧김에 핸드폰까지 꺼낸 한미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기로 했다.

국내 1위 골렘 파이터인 홍진영이 철저하게 갑이었던 것이다.

9대 1이란 조건으로 간신히 사자 목에 개목줄을 채운 KRG는 철저한 을.

결국 을은 갑의 비위에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한미라와 김미연을 회사까지 데려다 주고 회사 건물 밖까지 나온 이동건은 홀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참으로 거지같은 세상.

언제까지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서늘한 밤공기를 향해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이동건은 이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 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형, 무슨 일이야? 나한테 전화도 다 하고.”

“요즘 잘 지내고 있냐?”

“나야 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무슨 일인데? 형이 나한테 갑자기 전화도 다 하고.”

“야, 나랑 작업 좀 하자.”

한 번 사는 인생.

언제까지 월급쟁이일 순 없지 않은가?

누군 돈으로 성을 쌓아 불을 지른다는데.

나도 쌓인 돈에 수영이나 해보자.

“작업? 무슨 작업?”

“뻔하지. 무슨 작업인지.”

이동건이 그 생각을 굳히게 된 배경에는 어느 애 딸린 남자에게 한순간 마음을 줘버린 한미라가 있었다.

한심해도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배도 아팠다.

대체 얼마나 잘생겼다고.

“어디 털어야할 대전 골렘이라도 있는 거야?”

골렘 파이터 지영민.

그는 골렘 장비만 전문적으로 털어내는 전문 도둑이자 국내 본선급 실력을 가진 골렘 파이터 중 하나였다.

이동건과는 외가 친척 사이.

“있지.”

“무슨 장비인데? 아티팩트야?”

“아티팩트 같기는 한데,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대표가 자세히 안 알려줬거든.”

“뭐야 난 확실하지 않으면 안 움직여. 그리고 국내 정상급 대전 골렘이면 내가 못 터는 거 알고 있지?”

“그건 걱정하지 마라. 상대는 E+ 대전 골렘이니까.”

“뭐 E+? 아니 형, 지금 나랑 장난해? 그딴 거 털어봤자 인건비도 안 나와.”

“대표가 무심결에 천억을 운운했어.”

“뭐 천억? 뭔데 천억인데?”

“나도 몰라. 아까 가서 살펴보니까 더 모르겠더라고. 그게 왜 천억까지 나가는지.”

고물상 뒷마당까지 나가 악튜러스를 살펴봤던 이동건은 대표가 관심을 가졌던 상체 장갑을 유심히 살펴봤다.

하지만 한미라처럼 감이 좋진 못했다.

더 살펴보려다가 골렘 주인인 아이가 찾아와 말을 걸자 조용히 자리를 떴다.

이때 석민은 이동건을 이상하게 쳐다봤었다.

이동건도 그 시선을 느꼈지만 상대가 아이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듯 넘겨버렸다.

“대충 무슨 아티팩트겠지.”

“형, 아티팩트 중에 천억짜리는 극히 드물어. 그리고 그런 장비면 E+ 대전 골렘이 아니지. 형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그럼 이건 어떠냐?”

“뭔데?”

“스턴건의 피스트 브레이커.”

“오, 그건 괜찮지. 그런데 스턴건은 내가 못 털지. 시도했다가 내 골렘 아구창이 날아갈 걸?”

“아니 지금 스턴건을 털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럼 뭔데?”

“방금 말한 그 골렘 이야기다.”

“뭔 소리야. 스턴건 장비가 그 골렘한테 왜 있어?”

“이건 나도 확실하지 않으니까 일단 더 알아보고 연락하마. 그런데 작업은 언제 되는 거냐? 바로 되는 거냐?”

“작업? 나 지금 중국 쪽에서 작업치고 있어서 당장은 힘들어.”

“그럼 얼마나 걸리는데?”

“아마 한 달 뒤?”

“뭐 한 달 뒤?”

한 달 뒤면 국내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이 막 진행될 시기였다.

아이가 데리고 있는 대전 골렘이 예선전도 못나가는 수준이라면 한 달 뒤라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어보였다.

다른 누가 선수를 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머릿속으로 시간을 가늠해보던 이동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늦어도 5주 안에는 작업되는 거냐? 너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거 아냐?”

“무슨 5주야. E+ 등급이면 그냥 준비 없이 털어버리지. 그런데 그거 확실한 정보야? 만약 내 골렘하고 등급이 같거나 그래버리면 나 골치 아파져. 그러면 장비를 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쪽이 털리게 되니까. 여기서 전문 도둑들이 장비 보상 전혀 못 받는 거 알고 있지? 이거 불문율이라 얄짤 없어. 그럼 나 완전 거지 되는 거야. 쫄딱 망하는 거라고.”

“너 실력 좋잖아? 아니었어?”

“아 형, 내가 실력 좋으면 지금 국내 정상급 골렘 파이터나 하고 있지 이 바닥에서 이 짓거리나 하고 있겠어? 나 실력 없어. 그냥 B급 장비 빨로 C등급 골렘 장비나 터는 거지. 그래도 수입이 꽤 짭짤하니까.”

“일단 더 알아보고 연락할게. 나도 확실하진 않아.”

“그럼 좀 더 알아보고 연락해. 괜히 바쁜 사람 헛걸음하게 만들지 말고. 아무튼 연락 기다린다? 그리고 상대가 B등급 대전 골렘이면 절대 연락하지 마. 이거 빈 말 아니다? 나 진짜 망해.”

“알았어 임마. 걱정하지 마. E+골렘이 피스트 브레이커 달아봤자 끽해야 D등급 최상이나 C급 초반이니까.”

다소 위험부담을 안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

물론 삐긋하는 순간 사촌 동생의 골렘 장비도 잃고 감옥행이겠지만, 그럼에도 한 번 저질러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인생 뭐 있나. 한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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