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30화 (30/173)

#13 골렘 닷컴

원하던 상대방은 아니었다.

언젠간 연락이 올 줄 알았던 화장 진한 아줌마였다.

“안녕?”

“네, 안녕하세요.”

“준비는 잘 되가니?”

“네, 그럭저럭요.”

“예선전 턱걸이는 맞출 수 있겠어?”

“일단 해봐야겠죠. 안 되면 연락드릴게요.”

한미라는 아이가 가소로웠다.

골렘 장비가 한두 푼도 아닌데, 아이가 혼자서 뭘 하겠는가?

결국 매니지먼트의 지원 없이는 출전이 불가능한 게 바로 정식 경기였다.

그런 현실이었고.

“그래,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이 아줌마한테 전화주면 돼. 그보다 오늘 네 아빠 좀 만날 생각인데 말은 해놨니?”

“아빠가 요즘 바쁘셔서 말하는 걸 깜빡했네요.”

“바빠? 어떻게 바쁘신데?”

“요즘 게이트로 실습나가시거든요. 집에 안 들어오실 때가 많아요. 거기서 야영도 하고 오시거든요.”

헌터를 양성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이론보단 실습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봐야 빠르게 성장하길 마련.

그 실습이 많아지다 보니 차태식은 자연스레 외박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 그럼 오늘은?”

“저한테 별 말 없으신 거 보니까 오늘은 집에 오실 거 같아요.”

“몇 시쯤에 오실 거 같니?”

“모르겠어요. 늦게 오시면 엄청 늦게 오시고 일찍 오시면 저녁 여섯 시에 오시기도 하거든요.”

“바쁘시네... 헌터가 되신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던가?”

“네.”

“그럼 질질 끌어봤자 서로한테 안 좋은 거니까 오늘은 무리해서라도 봐야겠다. 네가 말 좀 전해줄래?”

“그런데 있잖아요.”

“응?”

“아빠가 아줌마 만나는 거 안 좋아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만나보시겠어요?”

“어? 왜 그런데?”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아빠가 여자를 안 좋아하세요.”

독특한 배경의 남자.

한미라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 아줌마가 잘 할게.”

“네, 그럼 만나보세요.”

통화를 마친 석민은 곧장 차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태식이 게이트 안에 있더라도 포켓을 가진 헌터가 근처에 있다면 신호가 닿아 어디서든 전화 통화가 가능했다.

때마침 한가했는지 차태식은 아들 전화를 곧바로 받았다.

“어 아들. 무슨 일이야?”

“아빠.”

“응?”

“오늘 KRG 대표가 아빠 좀 만나보고 싶대. 아빠, 오늘 집에 들어와?”

“오늘은 들어가지.”

“그럼 그 아줌마 있잖아. 내가 말했던 그 아줌마.”

“아, 그 화장 진한? 응.”

“분명 아빠한테 계약 문제를 얘기할 거야.”

“그거 G 매니지먼트랑 하지 않았어?”

“거기랑 했지. 그런데 다른 곳이랑 계약했다고 하면 아들이 곤란해지니까 그냥 만나기만 하고 계약 문제는 계속 생각해본다고 말해주면 안 돼? 자세한 이야기는 모른다면서 잡아떼면 되고.”

“그런 거야 문제없는데, 왜?”

“그냥. 솔직히 그 아줌마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데, 나쁜 사람이면 골치 아플 거 같아서. 혹시 알아? 내가 다른 곳이랑 계약했다고 하면 빈정상해서 내가 예선전 개체 측정하는 거 방해할 수도 있단 말이야.”

여기서 전문 도둑 이야기를 꺼낸다면 꽤 골치 아파질 수 있었다.

석민도 아빠 성격을 잘 알기에 그런 직접적인 이유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 맞다. 아빠가 있잖아 생각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더 강해?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 샘들이 그러는데, 아빠가 다루는 마나가 생각보다 질이 좋대.”

“그래?”

“그리고 저녁에 아빠가 선물 하나 들고 갈 테니까, 우리 아들 입 찢어질 준비하고 있어라.”

“어 선물? 무슨 선물인데?”

“이 아빠가 오늘 여기 실습 샘들이랑 같이 드래곤 터틀을 잡았거든. 동부관문에서 게이트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 거기에 칼데라 해안이라고 있어.”

“와, 아빠가 벌써 몬스터도 잡아?”

“물론이지. 아빠 공로가 커서 몬스터 부산물을 좀 배분받았거든. 사이즈를 보니까 딱 아들 골렘이 쓰기 좋겠더라고. 그래서 냉큼 챙겨놨지.”

“와~.”

석민은 아빠가 드래곤 터틀을 잡았다는 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빠가 그렇게 강하다는 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

‘아빠가 벌써 몬스터도 잡는구나.’

“그런데 그 선물이 뭐야?”

“집에 가면 보여줄게. 선물을 미리 공개하면 쓰나? 안 그래 아들?”

“알았어. 오늘 아빠만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하하하!”

통화를 마친 석민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아빠가 말한 선물 때문이다.

‘대체 뭘까? 드래곤 터틀?’

석민은 스카우터를 찾아 쓰고 해당 몬스터를 검색해봤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현재 출력된 정보는 대한헌터협회의 공개 자료실에서 가져왔습니다.

[칼데라 해안, 드래곤 터틀]

위험등급 : CCC

특이사항 : 칼데라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몬스터-피부를 포함한 등껍질이 무척 단단하며 잘 죽지 않는 몬스터 중 하나-느리고, 제법 온순한 편에 속하나 입에서 브레스를 뿜고 무는 힘이 좋아 사냥 시 주의가 필요함-치악력은 현존하는 몬스터 중 20위 안에 들 정도로 강함출력된 자료를 보자 석민은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 동물원에 놀러갔던 게 기억났다.

거기서 봤던 악어거북과 거의 흡사했다.

다른 점이라곤 크기.

크기가 집체만 했다.

‘와 크다. 이걸 아빠가 잡았어? 우리 아빠 세다.’

B급 헌터라는 아빠.

그런데 오늘 하는 말을 들어보니 B급 헌터보다 더 강한 모양이다.

‘아빠가 생각보다 강하구나.’

강하다는 건 좋았다.

강할수록 위험한 일을 해도 안전할 확률이 높을 테니까.

‘난 아빠가 지금보다 더 강해졌으면 좋겠어.’

그때 조용하던 전화가 다시 울렸다.

모르는 번호.

화색이 돈 석민이 전화를 받자 걸걸한 어른 음성이 들려왔다.

“거기가 혹시 마정석을 파신다는 분이십니까? 혈석이요.”

“네, 안녕하세요.”

“어... 목소리가 혹시 애니?”

“네.”

상대방이 당황했다.

애가 전화를 받을 줄을 몰랐던 것.

“아니 애새끼가 왜 전화를 받아.”

“아빠가 바쁘시거든요.”

“매물을 올려놓은 게 누군데?”

“제 아빠요. 아빠가 헌터시거든요.”

“그럼 아빠가 받아야지 왜 애가 받고 난리야.”

“아빠가 저한테 부탁하고 가셨거든요.”

“야 꼬마야, 이거 직거래인데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석민도 그런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번 상대는 괜찮아보였다.

“걱정 마세요. 대한민국에 CCTV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희 가게 주변 골목만 해도 설치 된 CCTV가 15대가 넘어요.”

“15대? 그렇게 많아?”

“저희 가게만 해도 3대 정도 있고요.”

“허허...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니?”

“예전에 심심해서 찾아봤어요. 제가 찾은 게 그 정도니까 못 찾은 것까지 합치면 더 많겠죠?”

게이트 너머는 무법지대가 맞겠지만, 게이트를 넘어가지 않은 현대 사회는 아직도 법이 사회를 지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문제를 일으킨 헌터의 경우 국가에서 엄중하게 처벌하기 때문에 헌터들도 힘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 내에선 최대한 조용히 지냈다.

말썽을 일으키면 일반인보다 가중처벌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희 집에 대전 골렘도 있거든요. 아저씨가 B급 초반 헌터라면 제 골렘이랑 비등할 거예요.”

“대전 골렘도 있어?”

“네.”

“허허... 아무튼 네가 거래한다고?”

“네, 저희 가게로 오시면 돼요.”

아이가 거래한다고 했다면 장난인 줄 알고 바로 끊어버렸을 것이다.

뻔했으니까.

하지만 판매자 주소가 고물상으로 되어 있어서 상대방도 마냥 아이 전화라고 무시할 순 없었다.

“일단 가보마. 거기 석민고물상으로 가면 되지?”

“네, 이쪽으로 오세요.”

도착한 가게.

정말로 아이가 있었다.

“아니 가게 주인은 어디가고 네가 있냐?”

“아빠는 잠깐 외출하셨어요.”

“야 꼬마야. 너 그러다 큰일 나요. 특히나 직거래는 위험해. 아저씨야 좋은 사람이니까 이런 말 해주는 거지만, 너 내가 못된 사람이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저도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못된 생각을 했던 사람이라면 제가 굳이 어린애가 아니더라도 위험할 걸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상대가 애라면 못된 생각이 더 쉽게 들잖아.”

“그 정도야 감안하고 하는 거죠. 그리고 골렘닷컴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아깝잖아요.”

“그렇다고 계속 직거래로 하려고?”

“아니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땐 골렘닷컴에 중개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바꿀 거예요. 그게 안전하니까요.”

“그래, 그게 맞겠지.”

헌터 김상팔은 아이 뒤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대전 골렘을 올려다보았다.

보기엔 녹슬어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무거운 분위기가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말썽을 피우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것은 동물적인 감각을 극한까지 키워낸 헌터의 직감과도 같았다.

‘대전 골렘이... 크긴 하군.’

“저게 네 골렘이냐?”

“네, 제 골렘이에요.”

“누가 사준 거냐?”

“아빠요.”

어차피 그의 관심사야 매물로 나온 붉은 마정석이다.

판매자가 애라는 것은 당황스러웠지만, 거래만 되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무튼 거래하자. 물건은 있지?”

“물론 있죠. 절 따라오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간 김상팔은 석민이 건넨 혈석을 찬찬히 살펴봤다.

석민이 알고 있기론 주먹 크기의 혈석 시세가 800만원 근처.

감정소에서 무게와 순도까지 재봐야 정확한 가격이 나오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니 여기선 감으로 가격을 때려 맞춰야만 했다.

김상팔은 눈가를 좁히며 아이가 건넨 혈석을 찬찬히 살펴봤다.

손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도 제법 괜찮았다.

완전 최상급은 아니겠지만 나름 상급 중에 상급.

‘나쁘지 않은데.’

“이 정도면...”

그래도 상대는 아이.

제 값을 주기는 싫었다.

“개당 600정도면 되겠다.”

그런데 아이가 영민하다는 걸 까먹은 모양.

그 즉시 석민이 입을 열었다.

“아빠가 800만원으로 못을 박았거든요. 그거 아니면 팔지 말래요.”

김상팔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아이가 갑자기 헌터인 아빠를 들먹이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고 보니 판매자가 B급 헌터였었지.’

석민은 제 아이디로 헌터닷컴이나 골렘닷컴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전부 차태식의 아이디.

더군다나 B급 헌터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아빠의 후광을 받으니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애를 상대로 장난을 칠 순 없었다.

“이거 700에 해주면 안 되겠니?”

“아빠가 800이래요. 그거 밑으론 팔지 말라고 했거든요.”

입술 아래를 검지로 긁적이던 김상팔은 마지못해 수락하고 말았다.

아이가 흥정할 대상이 아니니 저로서도 별수 없었다.

자리에 아이 아빠라도 있었다면 가격을 좀 깎아보겠지만 대리 판매자에게 뭘 어쩌겠는가?

그걸 떠나서 마정석 상태가 나름 상급이어서 800을 줘도 큰 손해는 아니었다.

“그래 세 개만 사자. 그보다 너 참 용하다.”

“뭐가요?”

“아니야. 그보다 나중에 아저씨가 또 연락해도 되겠니?”

“마정석 때문이시면 저도 장담은 못 드려요. 아빠가 빠르게 처분할 생각이거든요.”

“그럼 두 개 더 사야겠다.”

그렇게 붉은 마정석 5개를 팔고 수중에 4000만원이 추가됐다.

김상팔은 계좌 이체로 이를 해결했으며 입금 된 돈은 가게 계좌에 추가됐다.

김상팔이 떠나가자 석민은 기분이 좋아졌다.

‘2930만원에서 1700만원 지출하고 거기다 4000만원 더해졌으니까 5230만원이네. 여기다 코도 비스트 심장을 팔면 5830만원. 빨리 1억을 모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최상급 오우거 심장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물건을 사려고 해도 매물이 없으면 못사는 법.

석민은 곧 찾아올 코도 비스트 심장 구매자를 기다리며 골렘닷컴에 접속했다.

이어 코어란을 클릭하여 현재 매물로 나온 CCC등급에서 B등급 이하의 코어들을 살펴봤다.

쭉 살펴봤으나 시기가 안 좋았는지 오우거 심장 중에서 최상급으로 나온 물건이 없었다.

‘최상급 오우거 심장이 아니면 피스트 브레이커를 다루는데 버거울 거야. 최소 1억짜리 코어를 달아줘야 돼.’

그러다 석민은 최상급 오우거 심장에 버금가는 어느 몬스터 심장을 발견하게 됐다.

급매로 나온 물건.

석민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오늘 하루만!][HOT][급매][핫딜 가능]

[북방 설원, 눈꽃 거인의 심장]

등급 : CCC

효율 : 99%

상태 : 싱글 코어 재료. 상태 양호.

판매자 : 헌터 챙,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

등록가 : KRW 50,000,000

현재가 : KRW 67,000,000

즉시 구매가 : KRW 150,000,000

특이사항

-심장형 아티팩트, 마법 강화 주문서 사용 가능-냉기 속성 친화력&저항력 상승

-극저온 상태에서 마나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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