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골렘 닷컴
#13 개체 측정
“와 석민이다!”
“세상에 포켓도 있어. 그런데 징그럽다.”
“가서 사인 받아야지.”
“아니야 내가 먼저 받을 거야!”
다음 날 등교하게 된 석민은 인기쟁이가 됐다.
선생님으로부터 골렘 파이터가 됐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아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석민아 여기다 사인해줘.”
철부지 아이들에겐 골렘 파이터가 된 석민이 아주 대단하게 느껴졌다.
TV에서나 보던 골렘 파이터가 같은 학급 친구라는 게 정말 신기했으니까.
석민 주변에서 웅성거리던 아이들 중 하나가 석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석민아 네 골렘은 어딨어?”
“골렘은 집에 있어.”
“이름은 있어?”
“응, 악튜러스야.”
“악튜러스래.”
웅성웅성.
“그럼 우리 다 같이 가서 구경해도 돼?”
“지금은 바빠서 안 돼. 나중에 시간이 되면 보여줄게.”
“와, 우리 나중에 석민이 집에 가서 골렘 구경하자.”
“내가 1빠야!”
“아니야 내가 1빠야!”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석민은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석민에겐 또래 아이들의 관심이야 안중에도 없었다.
중요한 건 골렘 장비.
‘어젠 너무 경황이 없었어. 지금이라도 빨리 어제 구한 마정석을 팔아야겠다.’
전날 석민은 가게에 늦게 도착했다.
때마침 차태식도 귀가했기에 켕기는 게 많던 석민은 잠자리에 들기 전 마정석을 매물로 내놓지 못했다.
운이 나빠 아빠가 자기 핸드폰이라도 훔쳐본다면 분명 마정석에 대해 물을 테니까.
그럼 할 말이 없어진다.
‘어디 보자. 우선 시세부터 확인해봐야겠다.’
어제 있었던 레이드로 대략 20개의 마정석을 챙긴 석민은 붉은 마정석을 팔기 위해 헌터닷컴에 접속했다.
그와 맞물려 담임 홍담비가 등장하자 석민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자리에 가앉았다.
“여러분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석민이가 돌아왔어요!”
“어, 석민이 왔네? 오늘은 특훈 같은 거 안 하는 거니?”
석민은 고개를 들어 홍담비와 마주봤다.
“네, 오늘은 특훈이 없어서 학교에 나왔어요. 하지만 내일은 잘 모르겠어요. 매니지먼트가 정해준 스케줄에 따라 그날그날 다르거든요.”
우와~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아이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선망의 시선으로 석민을 쳐다보았다.
매니지먼트라고 하자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누구도 석민이의 기분에 따라 등교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담임인 홍담비조차 말이다.
“석민아, 골렘 파이트도 좋지만 학교 공부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네, 선생님.”
수업이 시작하자 석민은 다시 핸드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여기서 담임 홍담비는 더 이상 석민을 터치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유롭게 딴 짓을 하는 석민은 골렘닷컴에서 헌터들이 올린 마정석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혈석이었어. 일반 마정석보다는 비쌀 거야.’
보통 마정적의 경우 헌터협회가 운영하는 감정소에서 그 희귀성이나 순도 등을 측정하여 가치 평가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석민은 감정소에 들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구한 마정석에 대한 정보가 같이 레이드를 뛰었던 이루리나 김한송에게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마정석은 원래 다 주기로 했는데 몰래 챙긴 거니까.’
그래서 석민은 그 부분을 감안하여 가지고 있는 마정석은 직거래로 팔기로 했다.
굳이 순도 측정을 하지 않더라도 구매자가 어느 정도 수준 있는 헌터라면 대략적인 가치를 추산할 수 있을 테니까.
‘가치 평가는 구매자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그렇게 헌터닷컴에 접속한 석민은 붉은 마정석에 대한 대략적인 시세를 확인해봤다.
붉은 마정석.
때론 혈석이라 불리며 일반적인 마정석보다는 가치가 높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희귀하진 않았다.
순도에 따라서 그 가격이 다르긴 했지만, 그래봤자 주먹만 한 크기라면 800만원 근처.
전날 이루리가 말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가지고 있는 게 20개니까 대충 1억 6천만 원이네? 어... 1억?’
놀란 석민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두 눈만 깜박이던 석민은 우연찮게 담임인 홍담비와 눈을 마주치게 됐다.
의도치 않은 결과였다.
홍담비가 고개를 갸웃하자 석민은 바로 놀란 표정을 지우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기 시작했다.
홍담비는 그런 석민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이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는 조용히 넘어가주었다.
‘와 1억이나 되네.’
몇 달 전의 석민이었다면 손에 쥔 1억 때문에 아마 잠도 못 잤을 것이다.
가난한 고물상 주인의 아들에겐 1억은 그만큼 큰돈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제 봤던 칠죄종 세트를 사려면 이것도 턱없이 모자라. 그리고 골렘 장비가 다 비싸잖아.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려면 수중에 있는 1억도 많이 모자를 거야.’
오늘은 수요일.
예선전이 시작되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 석민은 악튜러스의 장비를 전부 교체해서 개체 등급을 DDD등급 이상으로 맞춰야만 했다.
석민은 마정석 매물을 헌터닷컴에 올린 뒤 골렘닷컴에 접속했다.
‘우선 여유가 생겼으니까 장비 맞추는 게 전보단 편할 거야.’
어제 레이드가 있기 전 석민은 수중에 있던 2930만원으로 코어 캡슐 중 하나인 한국중공업에서 생산 된 CC-S1 모델을 사려고 했었다.
그 당시 주머니 사정으론 괜찮은 제품이었으니까.
해당 매물은 아직도 경매가 진행 중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낙찰되지 않은 상태.
석민은 그 생각을 물리고, 더 좋은 코어 캡슐을 사들이기로 했다.
‘그땐 돈이 없었지만 지금은 돈이 생겼으니까.’
석민은 매물로 나온 여러 물건 중 그 당시 가격 때문에 포기했었던 한 매물에 관심을 보였다.
[코리아 일렉트로닉스, 특수 코어 캡슐 KR-1S]
등급 : CC-
효율 : 83%
재질 : 특수 강철(원산지 : 돌풍지대 철광석)
상태 : 싱글 코어용
등록가 : KRW 9,000,000
현재가 : KRW 15,700,000
-소문난 돌풍지대 철광석으로 주조 된 코어 캡슐.
-돌풍지대 철광석은 바람의 가호를 받음.
-바람 속성 친화력, 저항력 상승.
그제께 봤었던 가격이 1380만원이었다.
지금은 그보다 190만원이 더 오른 1570만원이 되어 있었다.
해당 매물에 대한 경매 기간을 보니 거의 끝나기 직전.
앞으로 20분만 남은 상태다.
‘코어 캡슐은 이걸로 하자. 그리고 마정석을 판 돈이랑 두 심장을 판 돈을 합쳐서 1억짜리 최상급 오우거 심장을 사면되겠다.’
생각을 마친 석민은 급히 해당 경매에 참가했다.
석민이 참가함과 동시에 현재가는 10만원이 더 오른 1580만원이 되었다.
잠시 후 현재가는 또 다시 30만원이 더 올랐다.
거의 막바지라 다른 구매자와 가격 경쟁이 붙은 것이다.
석민이 생각하듯 눈썹을 모았다.
‘어설프게 경쟁했다가 가격만 더 높아질 거야. 여기서 확실히 못을 박자.’
괜히 10만원, 30만원씩 올렸다가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어 더 높은 가격에 사들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석민은 1700만원으로 낙찰가를 확 높여버렸다.
어설프게 경쟁하다가 즉시 구매가 1800만원짜리를 1800만원 근처에 사들이는 건 결국 손해였으니까.
그럴 바엔 여기서 승부수를 띄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당 매물에 대한 경매가가 1700만원으로 뛰자 더 이상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상대방이 포기한 것으로 보였다.
20분 뒤 해당 매물을 낙찰 받은 석민은 판매자와 간단하게 문자를 주고받은 뒤 곧장 악튜러스의 코어 두 개를 매물로 올렸다.
방금 전엔 구매자였지만 지금은 판매자가 된 것이다.
-골렘닷컴의 판매자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동부관문 대형 코도 비스트 심장]
등급 : CC
효율 : 96%
등록가 : KRW 5,000,000
현재가 : KRW 5,000,000
즉시구매가 : KRW 8,000,000
-방금 막 등록된 상품!
[동부관문 대형 트롤 심장]
등급 : CC+
효율 : 97%
상태 : 양호합니다.
등록가 : KRW 10,000,000
현재가 : KRW 10,000,000
즉시구매가 : KRW 25,000,000
-방금 막 등록된 상품!
보통 경매 기간을 길게 하면 짧은 기간보다는 낙찰 가격이 더 오르게 된다.
운이 좋다면 본래 시세보다 더 높게 받을 수도 있겠지만 석민에겐 그 정도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시세만 맞으면 이번엔 바로 팔아버릴 생각.
‘너무 욕심내진 말자. 마정석도 당장 팔린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대형 코도 비스트 심장의 경우 그 가격이 600만원 근처겠지만, 트롤 심장의 경우 최하 2000만원이었다.
시작가가 저런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경쟁을 붙이기 위함.
낙찰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당 경매를 물리고 다시 등록하면 그만이다.
두 심장까지 매물로 올리면서 석민은 여러모로 바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던 정유이가 말을 붙여왔다.
“석민아, 지금 뭐하는 거야?”
“응? 아 아니야 아무 것도.”
유이가 눈가를 좁혔다.
또 골렘닷컴이다.
“석민아, 너 골렘 파이터가 되는 거야?”
“응? 어, 그럴 것 같아.”
핸드폰만 쳐다보면서 불성실하게 대답하는 석민이가 미웠지만 정유이는 내색하지 않고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선물 포장 된 조각 케이크였다.
“석민아.”
“응?”
“이거 내가 집에서 만들었거든. 이거 엄마랑 같이 만든 거야.”
정유이는 집에서 가져온 선물 하나를 남모르게 건네주었다.
“네 포켓에 넣어놔.”
“이거 나 주는 거야?”
“응, 너 혼자 먹어.”
“혼자?”
“응.”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 온 석민은 코어 캡슐 판매자를 기다렸다.
아침에 낙찰 받은 매물을 직거래로 구입하기 위함이다.
잠시 후 석민고물상으로 대형 짐차 하나가 찾아왔다.
짐차에서 내린 남자 어른이 가게 밖에 서 있던 아이와 마주보고 섰다.
“혹시 코어 캡슐 구매자가 너니?”
“네, 안녕하세요 아저씨.”
석민이 예의바르게 인사하자 그는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주었다.
“너 돈은 있니?”
“네, 있죠.”
“부모님은?”
“부모님은 잠시 외출하셨어요.”
판매자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어스 골렘 하나를 올려다봤다.
“이야 고놈 참 녹슬었네. 허허, 저거 움직이긴 하냐?”
“네, 움직이죠.”
거래를 마친 석민은 기존에 있던 낡은 코어 캡슐을 버리고 코리아 일렉트로닉스에서 생산 된 특수 코어 캡슐 KR-1S로 교체할 수 있었다.
여기서 기존에 쓰던 코어 캡슐은 거의 반파된 것을 석민이 용접으로 간신히 고친 것이기에 다시 되팔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장비 하나가 교체되고 석민이 스카우터로 이를 살펴보려고 할 때,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네, 누구세요?”
“동부관문 대형 코도 비스트 심장 파신다는 분이시죠? 즉구가가 800만원이던데 맞나요?”
“네, 맞아요.”
“저기요 그거 800만원은 절대 안 되거든요. 차라리 저랑 600만원에 쇼부 보실래요?”
“안 돼요. 그럼 경매로 입찰하셔야 돼요.”
“그럼 600만원에다가 200만원짜리 골렘용 강철 장화를 얹어 드릴게요. 물론 중고긴 한데 제가 다른 장비로 교체해서 지금은 안 쓰는 물건이거든요. 어떠신가요?”
“상태는 어떤데요?”
“제가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보시고 연락주세요.”
“네, 그럴게요.”
통화를 마치자 상대방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까톡!
석민은 핸드폰 속에 출력된 정보를 살펴봤다.
[한국중공업, 대전 골렘용 강철 장화 2025-A1]
등급 : DD
효율 : 85%
재질 : 강철
상태 : 양호한 편.
말이 200만원짜리 강철 장화였지 중고인 것을 감안한다면 대략 100만원 정도로 보였다.
‘그럼 도합 700만원이네.’
확실히 판매자가 말했던 것처럼 석민이 매물로 내놓은 대형 코도 비스트 심장은 800만원까지는 안 가는 물건이었다.
현 시세는 대략 700만원 선.
좀 더 욕심을 부렸다면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아침에 생각했던 대로 석민은 시세에만 얼추 맞으면 빠르게 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돈이 급해. 여유가 있다면 좀 더 지켜볼 테지만 마정석이 언제 팔릴지도 모르는 거니까.’
수중에 있는 마정석만 확실히 팔린다면 아마 더 욕심을 부렸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법.
이번 주까지 마정석이 전부 팔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면 1억짜리 오우거 심장이나 다른 장비를 구하는데 애로사항이 생길 것이다.
석민은 방금 전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물건 확인했어요.”
“어떤가요?”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제가 주소를 문자로 넣어드릴 테니까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주소 좀 보내주세요.”
문자로 주소를 전송한 석민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 출출했는지 아침에 선물로 받았던 조각 케이크를 꺼냈다.
치즈 케이크.
맛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유이가 정말 자기 손으로 만든 케이크였던 것이다.
‘예전에 아빠가 사온 거랑 맛이 다른 거 같아. 못 먹을 정도는 아닌데 딱 그 정도.’
그때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 마정석 구입을 원하는 구매자일까?
눈을 반짝인 석민이 전화를 건 상대방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