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28화 (28/173)

#12 비밀 던전

1달러의 가치를 1000원으로 봤을 때 시작가가 50억에 달한다는 소리다.

더군다나 시작가만 50억이고, 희귀성이 짙어서 그 가격이 얼마나 뛸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루리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석민을 쳐다보자 석민은 골렘닷컴의 자료까지 검색해보고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엄청 비싸네요. 이건 저도 몰랐어요.”

“그러게. 엄청 비싸더라.”

비싸다는 말에 혹한 김한송이 메고 있던 가방에서 구형 스카우터를 꺼내 그들이 말하고 있는 말하는 포켓에 대해 검색해봤다.

검색하는 와중에 그 가격이 만만찮을 거란 생각이 들긴 했다.

혓바닥 모양에다가 말까지 하는 포켓이었으니까.

검색한 결과를 확인한 김한송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어... 시작가가 50억? 잠깐만요. 이거 다시 배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하는 포켓이 50억이면 너무 그런데.”

가격을 보고 놀란 김한송이 석민과 이루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찬가지로 재분배를 원하는 이루리가 석민을 빤히 쳐다보자 석민은 단칼에 잘라냈다.

“안 돼요. 이건 안 팔 거예요.”

이루리가 설득조로 입을 떼려는 순간.

석민과 같이 있던 악튜러스가 꽉 쥔 주먹으로 바닥을 세차게 내리쳤다.

사방팔방으로 튀기는 흙먼지.

석민을 포함한 모두는 깜짝 놀라 악튜러스를 쳐다봤다.

악튜러스는 섬뜩한 시선으로 두 어른을 노려보았다.

감히 넘보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결국 이루리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이가 데리고 있는 골렘이 무서워서라도 입을 열 수가 없던 것이다.

‘아깝다. 그냥 반띵하자고 할 걸.’

인생을 살다보면 자기가 했던 선택에 따라 희비가 갈리기도 한다.

이루리는 딱 그런 경우였다.

만약 시작부터 반띵이라고 못을 박았다면 아이에게 포켓에 대한 자기 몫을 주장할 명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와 시작부터 각자 원하는 걸 챙기기로 했으니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는 처지.

그저 대전 골렘만을 위한 이 던전이 원망스러웠다.

여기서 김한송은 제 뒷머리만 긁적이며 말을 아꼈다.

아이를 설득하여 포켓을 팔아 자기 몫을 늘린다면 큰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아이 뒤엔 무시무시한 대전 골렘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무서워서 말도 못 꺼내겠네.’

던전에서 나오는 길.

석민은 자기 머리 위에서 따라다니는 혓바닥 모양의 포켓에게 말을 걸어봤다.

“넌 이름이 뭐야?”

“까르니아 리엔타쿠 뽕아르다.”

“까르 뭐? 그게 진짜 이름이야?”

“당연히 거짓말이지!”

석민이 불쾌하게 생각하자 악튜러스가 포켓을 낚아채더니 손아귀 악력으로 한 차례 꽉 쥐었다.

정신교육의 시간.

혓바닥 포켓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한동안 꼼짝없이 정신교육을 받았다.

정신교육 뒤, 포켓의 말투나 태도 등이 전보다 더 순종적이고 곱게 변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제넘게 까불었군요.”

높임말은 덤.

“그래서 이름이 뭐야?”

“까르니아 리엔타쿠 뽕아르.”

“아까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았어?”

“진짜입니다. 때론 진실도 거짓으로 포장할 때가 있지요. 그런 경우입니다.”

“이름이 까르니아 리엔타쿠 뽕아르라고? 어렵다. 그냥 앞글자만 따서 까리뽕이라고 부를까?”

“저는 까르니아가 더 좋습니다. 세상에 까리뽕이라니 어느 시골 촌뜨기 이름도 아니고.”

“까리뽕이라...”

“까르니아가 더.”

“까리뽕이 좋겠다. 이게 더 마음에 들어.”

“까르... 뭐 아무렇게나 부르십시오. 이름 따위야 뭐.”

둘의 대화를 듣던 김한송이 불쑥 끼어들며 말을 붙였다.

“아니 무슨 이름이 저래? 까리뽕? 하하하.”

까리뽕이 김한송에게 언성을 높였다.

“댁이 상관할 거 없잖수!”

“그런데 진짜 신기하다. 세상에 말하는 포켓이라니... 나는 생각도 못 했어.”

“신기하다니? 하긴 댁들의 형편없는 실력을 보니 이런 내가 신기하기도 하겠군요.”

까리뽕이 보기엔 전부 실력이 형편없었다.

딱 한 명.

그들 뒤에서 따라오는 거대한 덩치만 빼고.

석민이 까리뽕에게 다른 걸 물어봤다.

“너는 어떻게 말하는 거야? 보통 포켓은 말을 하지 못하잖아.”

악튜러스가 무서운 까리뽕은 제 본래 성정과 다르게 석민에게 순종적이며 협조적인 말투를 계속 고수해주었다.

“저는 원래 포켓이 아니었습니다. 꽤나 악명 높은 아크리치 중 하나였지요.”

“아크리치? 원래 리치였어?”

“네, 인간일 때 제 직업은 강령술을 쓰는 네크로맨서였습니다. 흔히들 강령술사라고 해서 죽은 시체를 다루거나 사악한 마법을 쓰는 악명 높은 주술사였지요. 그러다 오래 살고 싶어서 리치로 전향했습니다. 그런데 사람 욕심이란 게 끝이 없다보니 어느 순간 아크리치가 되고 싶더군요.”

“그래서 아크리치가 된 거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혓바닥은 제가 가진 라이프 포스 베슬입니다.”

“라이프 포스 베슬? 그게 뭐야?”

“간단하게 설명해드리자면 이게 있어야 불사의 힘을 가진 언데드 주술사가 될 수 있습니다. 리치라면 꼭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죠.”

“그래?”

“리치가 언데드과에 속하는 건 알고 계십니까?”

“응 그건 알아.”

“리치를 죽여도 죽지 않는 비결이 바로 이 라이프 포스 베슬에 있습니다. 이것만 무사하다면 혈기왕성한 기사들이 떼거지로 찾아와 제게 칼빵을 꽂아도, 모험심 강한 마법사들이 저를 불태워도 멀쩡히 살 수 있지요.”

석민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까리뽕은 할 말이 많은지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원래는 제 심장을 매개로 라이프 포스 베슬을 만들었었는데, 고놈의 영악한 효교단 마도사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제 라이프 포스 베슬을 강탈해갔습니다. 저는 수준 높은 아크리치였기에 재빨리 라이프 포스 베슬을 이 혓바닥으로 교체했지요. 정말 간발의 차이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혓바닥이야? 다른 걸로 라이프 포스 베슬을 만들면 안 됐어?”

“다 썩고 문드러진 몸에 남은 것이라곤 이 혓바닥 밖에 없었거든요. 저야 뭐 원해서 혓바닥을 매개로 라이프 포스 베슬을 만들었던 게 아닙니다. 그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그래?”

“에효... 그렇게 가까스로 살기는 했는데 이 혓바닥이 심장처럼 마나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소위 팔다리 다 잘리고 주둥아리만 남게 된 겁니다. 그래서 막판에 전직한 게 포켓입니다.”

여기서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장황한 뒷이야기가 있었다.

까리뽕은 그 이야기의 대부분을 생략한 채 핵심적인 이야기만 전해주었다.

“그러다 그 추악한 마도사들이 저한테 딜을 걸어오더군요. 그렇게 죽을 바에 차라리 칠죄종 세트의 일부가 되지 않겠냐고. 그저 살길이 급했던 저는 그냥 알았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뭘 어쩌겠습니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죽기는 싫었기에 그냥 칠죄종 세트 중 하나가 된 겁니다. 포켓으로요.”

“너도 고생께나 많았구나.”

“한심하죠. 제가 그때 효교단의 아크메이지들을 너무 만만하게 봤습니다. 그 개놈의 새끼들이 한 놈으로 안 되니까 떼거지로 몰려와서는. 진짜 그 일만 아니었더라도 지금까지 악명 높은 대아크리치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텐데 그게 참으로 아쉽습니다.”

까리뽕의 비참한 말로를 엿듣고 있던 이루리가 피식 웃었다.

네크로맨서로 시작하여 아크리치까지 됐던 대언데드 주술사가 마지막엔 혓바닥 모양의 포켓으로 남게 됐으니 웃지 않고는 못 배긴 것이다.

“지난 일을 꺼내니 괜스레 슬퍼지는군요. 아무튼 제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와, 들었어요? 까리뽕이 예전엔 아크리치였대요. 아크리치면 엄청 강한 몬스터 아닌가요?”

석민이 묻자 이루리가 대답하기에 앞서 김한송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크리치면 꽤 높지. 못해도 A급 이상일 걸?”

일반적인 리치도 상대하기 까다로웠기에 A급 이상 헌터들도 웬만하면 기피하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런 리치 중에서도 최정상 리치로 평가받는 아크리치였단다.

이루리가 다 듣고 나서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아크리치면 S급이죠. 저흰 마주치지도 못하고 죽어요. 일반 리치만 해도 군단 통솔자니까.”

“아 그렇네. 리치면 언데드 군단을 몰고 다니죠. 저도 그 이야긴 들었어요.”

석민이 눈을 반짝 빛내며 까리뽕을 대단하게 쳐다봤다.

이 초라한 포켓이 과거 언데드 군단을 호령하는 대몬스터였다니.

“너 생각보다 대단했구나?”

“그래봤자 지금은 포켓 나부랭이입니다.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죠. 하지만 이런 제게도 꿈이 있습니다.”

“꿈?”

“칠죄종 세트가 다 모여 악의 화신이 강림한다면 그에게 빌어 본래 힘을 되찾는 겁니다.”

“칠죄종?”

석민은 까리뽕이 말한 칠죄종과 그 세트에 대해 다시 한 번 검색해봤다.

아깐 빠른 정보의 습득을 위해 대충 훑어본지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칠죄종(七罪宗).

게이트 너머에서 일곱 죄악으로 불리는 그것은 총 7개 아티팩트로 이뤄진 세트였다.

-세계헌터협회 공개 자료실에서 칠죄종(七罪宗)에 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수집 된 정보를 출력합니다.

[칠죄종(七罪宗), 거만한 눈]

[칠죄종(七罪宗), 거짓말하는 혀]

[칠죄종(七罪宗), 무고한 피를 흘리는 손]

[칠죄종(七罪宗), 간악한 계획을 꾸미는 마음]

[칠죄종(七罪宗), 악한 일을 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는 두 발]

[칠죄종(七罪宗), 거짓말을 퍼뜨리는 거짓 증인]

[칠죄종(七罪宗), 형제들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는 자]

‘세트 아티팩트가 총 7개네.’

석민은 까리뽕에게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 칠죄종 세트를 다 모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제가 알고 있기론 대전 골렘이 악의 화신이자 한때 마신이라 불렸던 용왕 베헤모스의 힘을 얻게 되지요.”

“악의 화신? 그럼 안 좋은 거 아냐?”

“그 말을 들으니 과거에 정의의 화신이란 놈이 개판치던 게 생각납니다. 참으로 개쓰레기 같은 놈이었죠.”

석민은 고개를 들어 악튜러스를 쳐다봤다.

‘악튜러스, 넌 악의 화신이 되고 싶어?’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이여, 세상 모든 정의가 정의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모든 악이 악이 아니로다.’

‘그럼 무엇이 정의인데?’

‘오직 힘만이 정의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거라. 설령 이 몸이 악의 화신이 되어도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힘이란 누가 다루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힘이 곧 정의다.

석민은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악튜러스가 보이는 강한 자신감이라면 믿어 봐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시험을 받고 까리뽕을 데려온 게 악튜러스가 아니었는가?

‘그럼 넌 칠죄종 세트를 모으고 싶어?’

‘힘은 항상 편의를 제공하지. 그 편의를 위해서라도 모으고 싶은 마음은 있다.’

‘거기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

악튜러스가 약간의 뜸을 들인 후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내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있지만, 이미 끝난 일이다. 항상 화를 다스리는 건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업이로다.’

까리뽕이 끼어들었다.

“애당초 제 존재 자체가 칠죄종 세트를 모으는데 있습니다. 그게 제 바람이기도 하고요. 모으는 걸 도와드리죠. 까놓고 말해서 서로 상부상조합시다. 저도 언제까지 이 꼴로 살 순 없잖습니까?”

악튜러스는 갈등하고 있던 석민에게 이 말을 전했다.

‘믿어라. 나는 절대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석민은 그제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럼 모아보자. 다 모을 수만 있다면 악튜러스 너도 세계 정상급 대전 골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우선 칠죄종 세트 중 하나가 골렘닷컴에서 판매되고 있었는데, 그 가격이 너무 천문학적이었다.

[칠죄종, 거만한 눈(Seven Deadly Sins, A Haughty Eye)]

등급 : AAA

형태 : 시공안(時空眼), 이블 사이트(Evil Sight)능력 : 일시적 시공간 정지&균열

상태 : 최상

판매자 : 헌터 존 스미스, 미국 캘리포니아

등록가 : KRW 50,000,000,000

현재가 : KRW 380,000,000,000

-대아크리치 까르니아의 마안

-골렘용 세트 아티팩트인 칠죄종 세트 중 하나-판매자의 의사에 따라 본 경매는 예고 없이 철회될 수 있습니다

“어어 내 눈깔이 왜 저기에....”

아이와 같은 시야를 공유하던 까리뽕이 제 눈깔을 알아보았다.

석민은 등재된 가격을 보고선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시작가 500억에서 현재 3800억까지 뛴 상태.

사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판매자의 마음에 따라선 경매가 철회될 수도 있단다.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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