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26화 (26/173)

#12 비밀 던전

포켓이라니.

그것도 대전 골렘용 아티팩트인데.

‘포켓도 대전 골렘의 아티팩트가 될 수 있는 건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포켓이란 건 단순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아이템을 보관하는 인벤토리 창과 비슷했다.

거기다 다국어 통역 기능과 글자 해석 기능이 있어 게이트를 탐사하는 헌터라면 무조건 가져야 하는 이른바 ‘머스트 해브 아이템’.

‘포켓이 있으면 좋긴 하지.’

석민은 골렘용 아티팩트가 포켓인 이유에 대해선 알지 못했지만, 포켓의 필요성은 느끼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만약 가지면 내꺼.’

“찾아보니까 골렘용 아티팩트네요.”

스카우터를 쓰고 정보를 검색하던 석민이 입을 열자 마찬가지로 스카우터를 착용하고 베타고에 의해 분석이 끝난 정보들을 살펴보던 이루리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하, 뭐야 골렘용 아티팩트였어? 헌터용은?”

“입구가 엄청 큰 걸 보니까 애당초 여긴 대전 골렘을 위한 장소였던 거 같아요. 예전엔 여기서 대전 골렘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당장 주어진 정보만 보면 여기서 대전 골렘들을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하아... 입구가 너무 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누나도 너무 상심하진 마세요. 혹시 알아요? 저 안에 마정석이 가득할지.”

“요놈, 누나 꼬드기는 수준이 보통을 넘네? 너 사람 혹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 네 말대로 저 안에 대박이 있을지는 상자를 까봐야 아는 거니까.”

비석을 한동안 바라보던 김한송이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보통 시험이라면 자격이 필요하잖아요. 우리가 그 자격이 있을까요?”

김한송은 헌터는 아니었지만 여러 헌터들과 어울리며 주워들은 잡다한 지식들이 많았다.

보통 비밀 던전에서 시험이라 한다면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들만 그 시험에 응할 수 있었고, 그 시험을 극복한 뒤 달콤한 보상 같은 걸 받는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죠?”

“그런데 자신 있으세요? 이런 곳에서 죽으면 개죽음이에요.”

“제가 헌터인 거 몰라요? 죽음은 항상 제 옆에 있어요.”

“석민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막상 문을 열 생각을 하니 김한송은 석문 너머에서 만날 시험이 두려워졌다.

무법지대이자 위험천만한 게이트 너머 세상에서 헌터들이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경우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경우였으니까.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답해주었다.

“솔직히 저도 안에 있는 아티팩트가 탐나긴 하거든요. 하지만 문을 여는 건 걱정돼요. 괜히 욕심을 부렸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잖아요.”

김한송은 이제 이루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저도 별론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니 고추 달린 남자 둘이 왜 이렇게 겁이 많아요? 누가 고추 때갔어요?”

“하하, 저기요. 저랑 아이는 헌터가 아니거든요?”

“아 문은 열어보고 싶은데.”

이루리는 겁이 없는 듯했다.

그들이 옥신각신할 때 석민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악튜러스는 석문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악튜러스와 링크 된 석민은 악튜러스가 이 장소에 유달리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악튜러스가 무슨 일이지? 보통 때라면 가만히 있을 텐데.’

그 사이 김한송과 티격태격하던 이루리는 석문을 열기 위해 다짜고짜 비석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마나를 흘려보냈다.

이루리가 흘려보낸 마나는 마나 회로를 타고서 석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치 레이더 신호처럼 퍼져나가는 이루리의 마나가 어둑한 던전 내부를 밝히며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이루리가 문을 열려고 시도하자 말릴 수도 없는 김한송이 눈살을 찌푸린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는 몰라도 그들 앞을 막아서는 석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안 열리는데?”

이루리가 재차 시도해봤으나 석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험을 받을 자격이 없거나 미달인 것으로 보였다.

김한송의 낯이 밝아지며 목소리를 냈다.

“이거 그거네요. 자격이 없는 거. 우린 시험 받을 자격이 없는 거예요.”

“이봐요 한송 씨, 지금 저 놀리시는 거예요? 지금 이 앞에 보물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요?”

“뭐 어떻게 하겠어요. 일단 저흰 자격이 없는데.”

“이걸 어떻게 한다. 따로 문을 여는 열쇠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일단 밖에 나가서 도움을 청해보죠. 그렇게 되면 저희 몫은 줄어들겠지만 대신 안전해지니까 저는 여기에다 한 표. 혹시 알아요? 찾아온 헌터 중에 자격을 갖춘 헌터가 있을지.”

“아니 그렇게 되면 안 된다니까. 저희 몫이 준다고요.”

이때, 악튜러스가 갑작스레 움직여 석문 앞에 섰다.

놀란 이루리와 김한송이 그 즉시 석민을 쳐다봤다.

“꼬마야, 지금 네가 움직인 거야?”

이루리가 묻자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제 의지에 상관없이 악튜러스 혼자 움직인 거예요.”

“네 골렘이 스스로 움직였다고?”

“네, 악튜러스도 자기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거든요.”

영혼이 있는 골렘도 사람처럼 감정과 이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의지를 묵살시키고 주인 명령에만 맹목적으로 따르기에 이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을 뿐.

김한송은 여기서도 아는 척을 했다.

“골렘이 영혼이 있다고 하잖아요? 사람과 비슷하데요.”

“아니 저도 그 정도는 들어서 아는데, 그런데 갑자기 왜 움직인 거야?”

석민은 악튜러스가 하는 생각을 읽으며 그 물음에 답해주었다.

“악튜러스가 지금 문을 열려고 해요. 시험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뭐?”

이루리와 김한송의 얼굴 표정이 복잡해졌다.

C급 헌터도 못 여는 정체 모를 석문.

이것을 대전 골렘이 나서서 스스로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야 꼬마야. 안 막을 거야?”

놀란 김한송이 묻자 석민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도 저 안에 들어가는 건 고민되는데, 악튜러스가 원하니까 일단 지켜보려고요. 그런데 이건 저희와 관계없는 것 같아요. 악튜러스는 혼자 시험 받길 원하거든요.”

“뭐 골렘 혼자서 시험을 받는다고?”

“네, 여기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악튜러스가 간섭받는 걸 원치 않고 있거든요.”

“하지만 네 골렘이잖아?”

“그렇긴 한데, 저는 악튜러스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진 않아요. 최대한 부탁하는 편이죠.”

“잠깐. 지금 문이 반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김한송이 걱정하고 있을 때 이루리는 기분 좋게 목소리를 냈다.

어찌됐건 거대한 석문이 골렘의 마나에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코어에서 뿜어지는 푸른 빛.

이어 석실 전체가 푸른빛으로 가득 차며 그들 앞을 막아서고 있던 석문이 굉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악튜러스는 그들과 다르게 자격을 갖춘 것이다.

쿠르르릉!

석문이 열리자 그 안으로 거대한 공터가 드러났다.

거대한 돌기둥들이 받히고 있는 공터.

그 웅장한 크기에 이루리는 벌린 입을 쉽게 다물지 못했다.

“와, 크다. 진짜 큰데?”

대전 골렘의 머리도 천장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축구장 6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크기.

석민이 공터의 크기를 가늠하더니 이내 가지고 있던 지식 하나를 꺼내놓았다.

“여긴 대전 골렘 경기장이네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대전 골렘 경기장 크기는 게이트 너머에서 그대로 가져온 거거든요. 대략 축구장 6개를 합쳐 놓은 크기에요.”

“넌 정말 쓸데없는 것까지 알고 있다?”

“제가 그쪽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나저나 안에 마정석은... 없네.”

이루리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완벽히 돌로 된 공간.

그곳에 기대했던 마정석이나 금은보화 따윈 없었다.

다만 큰 공터와 그 공터 외곽엔 대전 골렘처럼 보이는 갑옷 입은 석상들만 가득했다.

이루리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하자 석민이 그녀의 옷깃을 잡으며 말렸다.

“저흰 여기서 지켜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 왜?”

“지금 악튜러스가 하는 생각을 읽었는데, 저희가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을 뿐더러 시험을 받는데 방해만 될 거 같거든요. 악튜러스는 들어오지 말고 그냥 여기서 기다리래요.”

“그러다 문이 닫히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럼 다행이죠. 저흰 안전할 테니까.”

“그럼 네 골렘은? 안에서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

“괜찮아요. 이건 악튜러스가 원한 일이기도 하고 자신이 없었다면 악튜러스도 이 시험에 응하진 않았겠죠.”

이루리는 문 앞쪽으로 살짝 고개를 빼내고선 다시 한 번 공터 안을 둘러봤다.

딱히 돈이 될만한 건 없어보였다.

‘그냥 밖에서 지켜보는 게 낫겠다. 바깥쪽에 있는 석상들이 너무 수상해.’

공터 중앙으로 나아가던 악튜러스는 전부터 계속 거슬리던 피스트 브레이커를 분리시켜 바닥에 떨궈버렸다.

다루기도 벅찬 게 계속 거슬렸던 것이다.

이어 리겔의 브로큰 블레이드를 뽑아든 악튜러스가 중앙에 서자 굉음과 함께 석실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이루리가 석민을 쳐다봤을 때 석민은 꽤나 진중한 표정으로 공터 중앙에 위치한 악튜러스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믿을 게. 넌 특별하잖아 악튜러스.’

석문이 닫히자 악튜러스는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 혼자 위치하게 됐다.

이어 울려 퍼지는 음성이 공터 안을 가득 메웠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자여. 그대, 죄악의 힘이 필요한가?”

“일곱 개의 죄악을 모으게 되면, 그대, 악의 화신이 되리라.”

쿠르르릉!

악튜러스는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앞서 예상했던 것처럼 외곽을 지키고 있는 석상들은 칠죄종의 세트를 지키는 수호자로 보였다.

악튜러스는 대전 골렘이 얼마나 있는지 세어보진 못했지만 제법 많다는 걸 인지했다.

악튜러스가 리겔의 부러진 특대검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마나의 대검은 완성됐지만 역시나 오래 사용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코어가 쓰레기였다.

더군다나 성능이 다른 몬스터 심장 두 개.

어설프게 큰 힘은 낼 수 있겠지만, 계속 무리하다 보면 심장 하나가 망가질 것 같았다.

‘이럴 땐 예비로 놔두는 게 효율적이다.’

악튜러스는 두 손으로 인을 맺더니 석민도 모르는 마법을 구현시켰다.

리저브 파워(Reserve Power).

두 심장 중 하나를 떼어내어 여분의 힘으로 놔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순간 파괴력이나 출력은 줄어들지언정 싸움의 지속력은 놀라보게 상승하게 된다.

즉, 떼어낸 심장 하나가 예비 발전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외곽에 위치하던 갑옷의 석상들은 곧 생명을 부여받고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대전 골렘과 흡사했으나, 일반적인 대전 골렘과는 좀 달랐다.

그들은 체내 마정석으로 구동되는 움직이는 조각상에 불과했으니까.

‘오거라. 일곱 죄악의 수호자들이여.’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던 조각상들은 잠시 후 중앙을 위치한 악튜러스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악튜러스는 등에 차고 있던 녹슨 대검까지 빼들고선 눈빛을 다르게 했다.

‘어림도 없다.’

이윽고 가장 먼저 달려오던 갑옷의 조각상이 매서운 창끝을 악튜러스에게 뻗어냈다.

악튜러스는 왼손에 들린 녹슨 대검으로 이를 쳐내고 몸을 회전시켜 오른손에 들린 부러진 특대검으로 자신을 노리던 조각상의 머리를 부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조각상.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신속기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다섯 조각상들이 일제히 창끝을 뻗어내며 사방에서 악튜러스를 압박해왔다.

눈가를 좁힌 악튜러스는 피할 재간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손에 들린 대검을 날려 조각상 하나를 파괴시킨 뒤 급히 펼친 손바닥으로 바닥에 내리쳤다.

굉음과 함께 바닥에 새겨지는 오망성의 마법진.

그 안으로 코어의 마나를 한 차례 뿜어내자 악튜러스 주변으로 원형으로 된 거대한 돌벽이 높게 치솟았다.

그 바람에 악튜러스를 향해 창끝을 들이밀던 조각상들의 진행이 막히게 됐고, 그들이 우왕좌왕하던 사이 악튜러스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멀쩡하던 돌바닥을 하늘로 치솟게 했다.

대지 속성의 골렘이기에 가능한 능력.

악튜러스는 땅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었다.

잠시 후 외길로 솟아오른 가파른 언덕이 생성됐다.

우왕좌왕하던 수십 개의 조각상들은 가파른 곳을 피해 그나마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던 악튜러스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기차처럼 줄지어 언덕 위를 향했고, 그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악튜러스는 꽤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정도면 꽤 쉬운 시험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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