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24화 (24/173)

#12 비밀 던전

비밀 던전.

경우에 따라선 대박을 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위험하기도 했다.

던전 구조가 복잡하여 미궁 같은 곳도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강한 몬스터나 함정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렇진 않아. 전에도 말했듯이 던전 위치가 E급 레이드가 줄을 잇는 곳이라서. 그리고 탐사 전에 내가 개인적으로 보호 마법을 걸어줄 거야.”

“저 물어볼 게 있어요.”

“물어봐.”

“왜 저랑 같이 가시는 거죠? 저보다 괜찮은 헌터 아저씨들도 많을 텐데요.”

“너야 실력 좋고 가장 중요한 건 믿을 수 있으니까.”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짝을 이뤄 던전을 탐사했다간 뒤에서 칼빵을 맞을 수도 있었다.

동료 헌터가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배신을 때리는 것이다.

사건사고가 잦은 게이트 너머의 세상은 다르게 보면 무법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루리는 어리고 실력 좋은 석민에게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아이라면 어른처럼 못된 생각은 조금 덜할 테니까.

그리고 영민한 아이가 때론 순진하면서 참 착해보였다.

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럼 다른 질문이요.”

“해봐. 뭐든 답해줄 테니까.”

“E급 레이드 지역이면 헌터들이 많이 돌아다닐 텐데, 왜 그 던전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을까요?”

E급에서 S급까지 나뉜 헌터들 중에 E급 헌터가 가장 많았고, 레이드 자체도 E급 레이드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석민은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나 많은 헌터들이 돌아다니는 지역에 어떻게 비밀 던전 있는 것인지.

이루리는 그 부분에 대해선 명확한 해명을 해주었다.

“그게 그 던전을 열기 위해선 마나가 꽤 필요하거든. E급, D급 헌터가 가진 마나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나처럼 C급 헌터의 마나는 가지고 있어야 비밀 문이 열려. 나도 우연히 발견한 곳이기도 하고.”

발견 된 던전의 경우 지도상에 표시되기 때문에 이게 없다면 비밀 던전으로 보는 게 맞았다.

이루리도 그곳을 처음 발견했을 땐 신기하게 여겼었다.

왜 이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위치나 문이 열리는 조건 등을 따져봤을 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긴 했다.

“그런데 저하고만 가시는 거예요?”

“아니 더 데려가면 저번에 만났던 김한송 아저씨 알지?”

“네.”

“그 아저씨랑 같이 가려고. 사체처리반은 꼭 필요하니까.”

“그럼 다른 아저씨들은요?”

“인원이 늘어나면 우리 몫이 줄어들잖아. 이건 어느 정도 감안해야하는 부분이야.”

“그럼 조건은요?”

“조건? 조건이야 뻔하지. 거기서 나온 골렘 장비는 네가 다 갖고, 나머진 누나가 먹는 거. 어때? 괜찮겠어?”

비밀 던전이라지만 골렘 장비가 나올지는 미지수.

석민은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반띵하면 갈게요.”

“응?”

“느낌이지만 골렘 장비가 안 나올 거 같아서요. 확률적으로 비밀 던전에서 헌터용 아티팩트가 나오는 건 쉽겠지만 골렘 장비는 좀 특수한 경우라서 잘 안 나오거든요. 그럼 제 입장에선 안전하게 반띵하는 게 좋죠.”

여기서 이루리는 딱히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자기야 골렘 장비가 필요 없으니 아이에게 줘버리면 되는 것이고, 대신 헌터용 아티팩트나 마정석을 챙기면 그만이었으니까.

여기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할 생각.

더군다나 그 비밀 던전.

석민이 생각하고 있는 일반적인 던전이 아니었다.

이루리가 설득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입구 근처에서 여러 문양을 봤었거든? 그걸 보니까 황금의 효교단하고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거 같더라. 너 황금의 효교단에 대해선 알고 있니?”

“네, 이계 마법사들이 만든 비밀 결사 같은 거잖아요.”

“거기가 막 마법사들의 은신처 같은 느낌이거든. 너도 알려나? 황금의 효교단에서 가장 먼저 대전 골렘을 만든 거. 그거 이계 마법사들의 작품이었거든.”

골렘의 시초에 대해선 여러 말들이 많았다.

지구에서 시작하여 이계로 넘어갔다는 둥.

아니면 이계에서 존재하던 골렘이 지구로 넘어와 역사에 남았다는 둥.

하지만 대전 골렘의 시초는 확실했다.

게이트 너머에 존재하는 황금의 효교단.

명망 높은 이계 대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비밀 결사에서 최초로 대전 골렘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대해선 게이트 학자들이나 헌터들도 이견을 가지지 않았다.

“황금의 효교단과 관련이 있다면 어쩌면 골렘 장비가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솔직히 나는 반띵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골렘 장비는 나한테 전혀 필요가 없거든. 다시 팔기도 귀찮고, 솔직히 내가 원하는 건 희귀 아티팩트 같은 거라서. 물론 헌터용을 말하는 거야. 대신 골렘용이라면 너한테 줄게. 나한테는 필요 없으니까.”

석민도 이루리의 말투로 봐서는 딱히 욕심을 부린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말 그대로 서로 편의를 위해 제안한 내용 같았다.

“하지만 확실한 정보는 아니잖아요.”

“뭐 그렇긴 한데,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제안해본 거야. 솔직히 나쁜 제안은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일반적으로 골렘 장비가 그렇게 흔한 건 아니라서요 좀 갈등되네요. 그냥 반띵하는 게 일반적이긴 한데, 누나 말대로 골렘 장비를 발견하게 되면 제가 손해니까요.”

“결정은 네 몫이야. 난 전체 몫에서 반띵해도 돼.”

이루리의 제안에 석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라리 각자 편의를 추구하는 게 낫겠다. 반띵한다면 수익을 칼같이 자르는 거라 좋은 골렘 장비가 나오게 되면 골치 아플 거야. 그걸 판 다음에 돈으로 나눠야 하니까. 차라리 여기선 도박수를 두는 게 나아.’

생각을 마친 석민이 말했다.

“좋아요. 그럼 서로 원하는 걸 가져가기로 해요. 그런데 있잖아요.”

“응?”

“비밀 던전이 지금 저한테 급한 일이 아니거든요.”

“무슨 말이야?”

“저한테 당장 급한 건 트롤의 사체거든요. 기억나세요? 저번에 같이 봤던 그 대형 트롤이요.”

“아, 그 무식하게 크던 트롤? 레이드 다 끝났을 때 마주쳤던 그 녀석 말하는 거니?”

“네, 맞아요. 지금 전 그 트롤을 잡고 싶거든요.”

“이유가 있어?”

“지금 제 골렘 뼈대도 급하고 트롤 심장도 필요해요. 당장 예선전이 코앞이라 예선전 출전 최소 턱걸이를 맞추려면 그 트롤이 급하거든요. 그래서 던전 탐사보단 트롤 레이드가 더 급한 상태에요.”

골렘 파이트에 무지한 이루리도 석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강 알아들었다.

“지금 기회비용 말하는 거지?”

“네, 제한 된 시간상 저한테는 던전 탐사보단 대형 트롤을 잡는 게 더 낫다는 말이죠. 그래서 당장 누나랑 비밀 던전에 찾아갈 순 없어요. 물론 누나 제안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저한텐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거죠.”

비밀 던전이 언제까지 비밀 던전일 순 없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선수를 뺏기게 되면 그것도 골치.

이루리는 고심하더니 석민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럼 그 트롤 잡는 거 누나가 도와줄게. 대신 누나랑 던전 탐사 같이해야 된다? 이건 어떠니?”

“좋죠. 그런데 그렇게까지 수고를 해주시려고요?”

“대신 마정석이 나오면 누나 꺼.”

“그렇게 해요. 저야 트롤 사체만 가져가면 되니까요.”

“좋아 그럼 그 트롤부터 잡자. 그런데 있잖아. 너 주말에만 긴 레이드가 된다고 했던가?”

“아니요 이제 상관없어졌어요.”

“왜? 학교 다니지 않아?”

“다니긴 한데 방법이 있거든요. 사실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미리 생각해놨던 것이기도 하고요.”

“방법?”

이루리가 의문을 표했다.

그날.

석민은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동안 학교 빼먹는 거 도와달라고?”

“네, 도와주실 거죠? 특훈 같은 거 한다면서 빼주시면 되요.”

이 아이가 고작 학교를 안 나가려고 매니지먼트와 계약한 건 아닐 것이다.

강준은 그 이유에 대해 살포시 물어봤다.

“특훈 같은 건 안 할 테고, 그럼 뭐하려고 학교를 빼먹는 건데?”

“레이드요. 골렘 장비가 급하거든요. 아저씨, 예선전이 바로 코앞이에요.”

“아, 그런 거였어? 알았다.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계약상 장비 지원이 없는 상태라 골렘의 개체 등급을 올리는 건 전적으로 아이의 몫이었다.

그러니 이를 도와주는 건 매니지먼트에선 당연한 의무.

다음날.

강준은 석민의 담임 선생님인 홍담비를 직접 만났다.

이지적인 미모의 젊은 여선생님.

강준은 홍담비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붉혔다.

담임이 이렇게 예쁜 여자일 줄이야.

홍담비가 찾아온 강준과 석민을 번갈아보며 입을 뗐다.

“며칠 간 학교를 빠지겠다고?”

강준이 저자세로 그녀에게 동의를 구했다.

“네, 선생님께서 저희 편의 좀 봐주십사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제가 납득할 이유는요?”

“선생님도 골렘 파이트에 대해선 아시죠?”

“네, 알죠.”

“지금 석민이가 저희 매니지먼트 소속 골렘 파이터거든요. 이번 예선전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모자라서요.”

놀란 홍담비는 석민을 찾아 물었다.

“석민아, 너 언제부터 골렘 파이터가 된 거니?”

“얼마 안 됐어요.”

“이거 아버지는 아셔?”

“당연히 아시죠. 아빠 허락 받고 하는 일인데요 뭘.”

“그래?”

홍담비는 석민을 보내주기 전 헛기침을 하며 차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 뒤 차태식은 걸려온 전화를 끊어버렸다.

당황한 홍담비가 다시 전화를 걸자 그때야 차태식은 전화를 다시 받았다.

“네 차태식입니다. 누구시죠?”

“아, 안녕하세요. 저에요 홍담비. 석민이 담임 선생님이요.”

이때 차태식은 게이트 너머 개척민 마을 근처로 현장실습을 나간 상태였다.

같이 실습 온 헌터들과 모닥불 근처에 모여앉아 헌터용 나이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 그...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석민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흐흠! 그게 석민이가 예선전을 준비한다고 학교를 빠진다고 해서요. 이거 아버님도 알고 계신 내용인가요?”

“아 골렘 파이트요? 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매니지먼트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고 보니 곧 예선전이네요. 석민이도 슬슬 준비해야죠. 예선전 나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그래요?”

부모가 동의했다면 그녀도 할 말이 없었다.

홍담비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잘 지내시죠?”

“저야 뭐 잘 지냅니다. 선생님도 잘 지내시죠?”

“네, 그때 민폐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염치없게 술을...”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딴 새끼 잊고 좋은 사람 만나시면 됩니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남자인데 선생님 외모 정도면 그리 어렵지 않게 남편감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전 바빠서 이만.”

차태식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홍담비는 석민을 다시 불렀다.

“석민아, 아빠 바쁘시니?”

“네, 바쁘세요.”

홍담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양반이 이제 정신 차렸나 보네. 하긴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학교를 빼먹은 석민은 강준과 헤어진 뒤 곧장 이루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게이트 너머에 위치한 동부관문.

지난 번 트롤을 마주쳤던 곳에서 대기하던 이루리가 갑작스레 의문을 표했다.

“너 레이드 뛰는 건 아빠한테 비밀로 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비밀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해도 돼? 학교야 그렇다치고 아빠는?”

“아빠는 엄청 바쁘세요. 요즘 집에도 안 들어오시고 계속 게이트 쪽으로 실습 나가시니까요.”

“아빠가 B급 헌터라 하셨지? 이제 막 각성하신.”

“네.”

이루리도 헌터협회에서 실시하는 헌터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다.

막말로 쓸 때 없는 것만 가르치는 터라 몇 주 뒤에 나와 버렸지만.

“B급 헌터라...”

B급 헌터면 지금 그들이 목표로 잡고 있는 대형 트롤 같은 건 손날로 모가지를 날릴 수 있었다.

‘나도 B급 헌터가 됐으면 좋겠다.’

괜스레 아이의 아버지가 부러워지려는 찰나.

석민이 바닥에 느껴지는 진동을 몸소 느꼈다.

놈이 오고 있다.

덤불에 숨어 있던 이루리가 눈빛을 날카롭게 바꿨다.

“온다. 준비해.”

이루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석민이 악튜러스와 링크했다.

이어 석민이 보는 시야가 변했다.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가 보이고, 울리는 땅에 따라 시야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쿵! 쿵! 쿵!

잠시 후 악튜러스 앞으로 나무를 뿌리째 뽑아 무기로 쓰고 있던 대형 트롤이 드리워졌다.

“크르르르...”

대형 트롤이 제 앞을 막아서는 골렘을 보자 한 차례 굉음을 내지르더니 이내 어깨 위에 걸치고 있던 뿌리째 뽑힌 나무를 바닥에 꽝! 하고 내리찍었다.

이에 질세라 악튜러스 역시 피스트 브레이커를 요란하게 움직이며 가슴 중앙에 위치한 코어에서 푸른빛을 거칠게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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