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23화 (23/173)

#12 비밀 던전

#12 비밀 던전

이민호는 스턴건의 오른팔이자 3개의 티타늄 파이프를 따라 움직이며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피스트 브레이커를 석민에게 남겨주기로 하고 자신은 쿨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경기 종료 후.

독일 꼬마에게 졌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민호는 “스턴건은 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슈나이더도 이번 비공개 스파링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며 한국 기자들과 외신 기자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주지 않았다.

그럼 왜 은퇴를 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민호는, “예전부터 쭉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문득 오늘 경기에서 제 기량이 월드 그랑프리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걸 극복할 자신이 없어 이번 기회에 은퇴를 선언하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기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냐고 묻자, 이민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새 희망을 보았습니다. 확신하긴 이르겠지만 골렘 파이트를 떠나는 제 마음은 생각보다 홀가분합니다.”

이민호가 은퇴 직전에 남긴 말은 당사자들 외엔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다음 날 정오.

석민고물상으로 무빙 아머리가 도착했다.

전날 파손 된 피스트 브레이커는 석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민호의 스텝들이 밤을 꼬박 새워 수리를 마쳤고, 이를 전달해주기 위해 무빙 아머리가 동원된 것이다.

“와, 정말로 저 주시는 거예요?”

석민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게까지 찾아온 이민호에게 물었다.

“그래, 이 아저씨는 정말 빈 말 같은 건 안 하거든. 그런데 네 골렘은 어딨냐? 구경이나 해보자.”

가게 뒷마당으로 찾아간 이민호는 악튜러스를 보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저게 정말 네 골렘이야?”

“네.”

“하하...”

녹슨 골렘.

진짜 녹슨 골렘처럼 보였다.

“저거 움직이지?”

“당연히 움직이죠. 악튜러스, 움직여봐.”

외양은 녹슬었지만 움직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걸음걸이나 움직임 등이 미묘하게 거슬리는 게, 기본 뼈대가 제대로 안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민호는 미간을 좁혀 악튜러스를 살펴보더니 다시 석민을 찾았다.

“골렘 뼈대는 아직 안 맞춘 거냐? 자세히 보니까 어깨랑 골반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안 맞는데?”

“네, 급하게 만드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주워온 몬스터 뼈로 뼈대를 대충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자세히 보면 언밸런스하긴 해요.”

이민호는 턱을 쓸었다.

“하긴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골렘을 제대로 만들었겠냐. 저 정도도 감지덕지지. 하지만 뼈대는 빨리 맞춰야겠다. 장갑보다 중요한 게 뼈대야. 기본 골격이 튼튼해야 외부 충격에 더 쉽게 버틸 수 있거든.”

“네,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돈이...”

“에휴, 내가 마음 같아서는 스턴건 뼈대도 다 줘버리고 싶은데. 이 아저씨 사정도 그리 녹록치 않아서 미안하게 됐다.”

“아니에요. 미안하실 게 뭐 있어요. 저야 스턴건 주먹만으로 감지덕지인데요 뭘.”

“이제 스턴건 장비들은 다 처분할 생각이라서. 나도 은퇴 자금이 필요하고, 아저씨 따라다니던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그래. 오해는 하지 마라.”

“오해는 안 해요. 전 정말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에요.”

사정이 녹록치 않은 이민호가 석민에게 피스트 브레이커를 쉽게 내줄 수 있었던 것은 애당초 자기 사정이야 어찌됐건 스턴건의 핵심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피스트 브레이커는 설령 은퇴를 결정하게 되더라도 남에게 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민에게 내준 것이다.

그리고 해당 장비에 대해선 이미 스텝들과 이전부터 이야기가 다 된 터라 스텝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만약 아이가 성공하여 월드 그랑프리까지 진출한다면 스턴건의 주먹은 세계로 뻗어나갈 테니까.

이민호는 약속대로 피스트를 브레이커를 석민에게 전달해주었다.

석민은 스카우터를 쓰고 눈을 반짝이며 이민호가 건넨 피스트 브레이커를 살펴보았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물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스턴건 피스트 브레이커]

등급 : A-

효율 : 98%

재질 : 2중 장갑(판금 70%, 미스릴 30%)상태 : 왼팔용으로 재조정.

-스턴건의 주력 무기

-데미지 증폭률 최대 240%

데미지 증폭률이 240%에 달하는 국내 정상급 장비.

현재 D급 장비가 줄을 잇는 악튜러스에겐 다소 과분한 장비였다.

“와 A-등급이다. 저 A등급 장비는 이번에 처음 봤어요.”

이민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 장비였는데, 요즘은 하도 좋은 장비가 많아서 저것도 이제 A-등급 밖에는 안 되더라. 그리고 네 부탁대로 왼팔용으로 바꿔 놨다. 그대로 쓰면 돼.”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 왼손잡이였어?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아니요. 그게 사정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른팔 장비로는 못 써요.”

“그래 뭐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아 그리고 이건 아저씨가 빌려준 거지, 절대 준 건 아니다. 나중에 딴 맘먹고 팔면 안 돼.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아저씨에겐 특별한 장비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스턴건이 퇴물이라지만 스턴건의 핵심 장비인 피스트 브레이커의 경우 현재도 몇 십억을 호가하는 최고급 장비였다.

이민호는 그 주먹을 넘기면서 절대 팔지 않겠다는 약속을 석민에게서 받아냈다.

그 약속이 결국 각서였지만서도.

대신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그땐 영원히 빌려주겠단다.

이것은 이민호 개인의 약속이었다.

석민도 여러모로 의미가 많은 스턴건의 주먹을 나중에라도 다른 사람에게 팔 생각은 없었다.

“절대 안 팔게요. 걱정 마세요. 그런데 아저씨는 이제 뭐하실 거예요?”

“나? 음...”

이민호도 은퇴 계획이 없진 않았다.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윤곽은 잡아놓은 상태.

“이번에 스턴건 장비 다 처분하고 독일 공주님에게 받은 깽값으로 가게나 하나 차려보려고.”

“가게요?”

“내가 개인적으로 짬뽕을 엄청 좋아하거든? 아빠랑 짬뽕 가게나 한 번 열어볼까 생각중이야.”

“와, 아저씨 이제 중국집 사장님 되시는 거예요?”

“일단 그럴 생각이야. 이 아저씨도 먹고 살아야지. 대신 너 잘해야 된다. 마음에 안 들면 스턴건 주먹 다시 가져갈 테니까.”

이민호가 장난끼 섞인 말로 으름장을 내놓자 석민도 웃으며 대꾸해주었다.

“아저씨가 스턴건 주먹을 다시 가져가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그래, 그럼 이 아저씨는 가볼게. 가서도 틈틈이 지켜보마. 아 맞다. 너 이번 예선전에 나가냐?”

“네, 나갈 거예요.”

이민호는 다시 한 번 악튜러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외양만 보면 국내 예선급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스턴건의 주먹을 주고 갔으니 개체 측정에서 상당히 유리해질 것이다.

“예선전 턱걸이가 C등급이었나? 예선전을 나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DDD등급이요.”

“아 DDD등급이었구나. 엄청 낮네. 아무튼 아저씨가 준 게 꽤 도움될 거다. 만약에 최소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으면 검사 하는 아저씨들한테 스턴건 주먹을 달았다고 해. 그럼 무조건 통과할 테니까. 아니면 이 아저씨한테 전화해라. 아저씨가 그쪽 사람들하고 많이 친하거든? 어느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어. 어차피 출전 자체야 쉬운 일이라서.”

“정말 감사해요.”

“그럼 갈게. 나중에 좋은 소식 기대하마.”

그렇게 이민호는 석민의 가게에서 떠나갔다.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홀가분해보였다.

이민호가 떠나가자 석민은 악튜러스를 올려다봤다.

그리곤 그 옆에 있던 스턴건의 주먹을 내려다봤다.

석민이 목소리를 냈다.

“악튜러스, 어때 마음에 들어?”

악튜러스는 아이와 어느 대형 주먹을 번갈아보더니 이내 자신의 왼팔에 착용했다.

착용법은 단순했다.

흙으로 된 악튜러스 왼팔이야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했으니, 그대로 가져와 장비에 맞춰 왼팔에 끼운 것이다.

3개의 티타늄 파이프로 된 피스트 브레이커.

악튜러스와 링크 된 석민은 3개의 티타늄 파이프와 연결 된 거대한 주먹을 수차례 움직여보았다.

굉음과 함께 요란하게 움직이는 육중한 금속 주먹을 보니 석민은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하지만 스턴건이 했을 때보다는 그 움직임이 다소 부자연스럽거나 버거워보였다.

현재 악튜러스의 출력으로는 A-등급의 피스트 브레이커를 다루기엔 다소 벅찬 것이다.

‘많이 버거워 보여. 스턴건의 주장비라 그런지 악튜러스가 다루기엔 아직 힘든가봐.’

더군다나 악튜러스가 출력을 정상치로 떨어트리자 피스트 브레이커가 연결 된 왼쪽 어깨가 눈에 보일 정도로 쳐졌다.

주재질이 금속 중 무거운 편에 속하는 판금인데다가 기본 뼈대 자체가 부실하여 이를 지탱하는 어깨가 내려앉은 것이다.

‘판금으로 된 장비가 너무 무거워서 전보다 신체 균형이 많이 망가졌어. 코어를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꾸던가 아니면 무게를 지탱할 뼈대가 급해.’

현재 악튜러스의 코어 등급은 CC등급.

피스트 브레이커를 지탱하기 위한 코어를 마련하려면 최소 B등급 이상의 코어를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B등급 코어부터는 가격대가 만만찮았다.

골렘 장비 가격대가 역피라미드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등급이 조금만 올라가도 가격대가 말도 안 되게 뛰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한다.’

D급 장비만 가득한 악튜러스에겐 A-등급의 무기는 상당히 과분해보였다.

석민은 나름 고심하다가 해법을 생각해냈다.

‘그 녀석을 잡으러 가자. 대형 트롤의 뼈대라면 지금보단 나을 거야. 그리고 트롤 심장과 지금 쓰고 있는 심장을 팔아서 더 좋은 코어를 구해야 돼.’

석민이 생각하기엔 현재 피스트 브레이커를 다룰 수 있을 만큼 좋은 출력을 낼 수 있는 몬스터 심장은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오우거 심장.’

물론 좋은 오우거 심장은 가격대가 억대를 넘어갔다.

하지만 그런 건 무리.

지금 석민이 생각하고 있는 오우거 심장은 최소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사이에 있는 중저가 오우거 심장이었다.

‘오우거 심장까지 마련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트롤 뼈대는 구해야 돼.’

목표가 정해졌으니 이젠 행동으로 옮겨야할 시간.

석민은 가장 먼저 이루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 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무슨 일이니? 네가 누나한테 연락도 다 하고.”

“안녕하세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래, 너 보니까 레이드 뛰려고 이 누나한테 연락했구나? 그렇지?”

“네, 혹시 동부관문 또 가세요?”

“동부관문? 동부관문은 이제 안 가는데. 그때도 타이밍 맞아서 어쩌다 간 거였어.”

이루리는 C급 헌터다.

그런 이루리에게 D급 레이드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동부관문은 그다지 좋은 사냥터가 아니었다.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석민이 아쉬운 소리를 내자 이루리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야 꼬마야. 그보다 전에 말했던 비밀 던전엔 안 가볼래?”

“비밀 던전이요?”

“응, 계속 벼르고 있는 중인데 적당한 사람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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