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비공개 스파링
“지면 지는 거지 뭐.”
“야, 진짜 말 쉽게 한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민호는 이번에 있을 비공개 스파링을 강행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무튼 전 그대로 갑니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 이제 와서 물릴 순 없죠. 그리고 스파링 값만 10억이에요. 깽값은 따로고. 이걸 누가 마다합니까?”
“네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고.”
“아니 안 진다니까요?”
“그리고 베가 등급이 벌써 A-래. 스턴건은 BB+잖아. 두 단계 차이야. 네가 유리한 게임이 아니라고.”
“스턴건도 재작년엔 A-였어요. 올해 와서 두 단계나 떨어졌지만 별 문제없습니다.”
성적이 저조하니 후원이 줄어들었고, 후원이 줄어드니 골렘 장비가 뒤쳐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 새끼, 그 똥고집하고는. 넌 어찌 된 게 옛날이랑 지금이랑 똑같냐?”
이민호의 매니지먼트인 에이스 대표가 마지막까지 우려를 표했으나 결국 이민호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아무튼 그대로 가는 겁니다? 이번 스파링 절대 물리지 마세요.”
“그래 니 좆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매니지먼트 대표는 혀를 내두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막무가내 똥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아니 내가 왜 애한테 져. 진짜 대표님도 어이가 없네. 요즘 성적 안 좋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성적이 좋았다면 대표의 태도도 달랐을 거란 게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이민호는 아직도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했던 그때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했다.
“오, 이민호 선수! 아시아 지역 예선을 뚫고 세계무대로 진출합니다!”
“기적입니다! 학교에서 말썽만 일으키던 저 문제아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이제 월드 그랑프리입니다!”
“스턴건의 파이터 이민호! 과연 세계 무대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게 한국인 최초로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한 이민호는 세계 대회에서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일본의 대전 골렘인 JP를 때려잡으며 국내 대스타로 등극했다.
한국에선 이민호 이야기 밖에 없었으며, 여러 대기업에선 광고 제의가 봇물 터지듯 들어왔다.
이때 시작한 골렘 파이트 열풍이 훗날 스턴건의 뒤를 잇는 레드 데빌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흥할 때가 있으면 망할 때도 있는 법.
이민호는 다음 해에 열리는 월드 그랑프리 진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돈맛을 알아버린 사회 초년생에게 중요한 건 월드 그랑프리 진출이 아니라 기름진 안주와 고급스런 술. 그리고 저를 빨아주는 미녀 스타들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2년 연속 세계 무대 진출에 실패하게 되자, 슬슬 이민호의 인기가 식기 시작했다.
이민호가 그 위기감을 느꼈을 땐 한국의 신흥 스타로 레드 데빌이 등장하게 되었고, 월드 그랑프리까지 진출한 레드 데빌이 일본 골렘인 JP를 때려 부수며 한국 골렘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이후 이민호는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그때가 참 좋았는데. 잘 나갈 때 돈 좀 아껴놓을 걸. 이젠 파티도 못하는 처지라니.’
이민호가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을 때, 석민이 말을 붙였다.
“아저씨, 오늘 스파링 하세요? 그 베가라는 골렘하고요.”
“어, 그게 오늘이었거든. 지금 그거 때문에 여기에 들린 거야. 그나저나 너 여기에 자주오나 보다? 또 보네.”
“저도 그때 이후론 처음이에요. 그보다 재밌겠다. 저 스턴건 팬이거든요.”
이민호는 피식 웃더니 석민에게 호의를 보였다.
“맞다. 너도 골렘 파이트에 관심 많았었지? 그럼 아저씨 따라서 구경 갈래? 이 아저씨가 멋도 모르는 독일 꼬마 깨부수는 거 가서 구경해야지.”
“와, 정말요? 저 따라가서 구경해도 돼요?”
“물론. 네가 우리 쪽 사람은 아니지만 꼬마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야.”
이때 뒤에서 뻘줌하게 서 있던 강준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정비 받던 스턴건이 준비되자 이민호와 그의 팀원들은 곧장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 공원으로 이동했다.
올림픽 공원에는 2027년 세계 대회를 위해 건설 된 초대형 경기장이 있었고, 여기서 오늘 스턴건과 베가의 비공개 스파링이 열리게 된다.
석민은 강준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민호 팀을 따라갔다.
아쉽게도 강준은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비공개 스파링이라 외부인의 참관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사실 석민도 엄밀히 말해선 참관할 수 없었으나, 아직 어린 아이였기에 이민호가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데려가 버렸다.
다 큰 어른도 아니고, 아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착한 초대형 경기장.
이곳에서 2027년 월드 그랑프리 대회가 열렸었다.
이민호는 그때 느꼈던 굴욕적인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
출전도 못하고 벤치에 앉아 신흥 강자로 떠오른 레드 데빌의 활약만 지켜봐야했던 치욕적인 순간들.
이제는 잊고 싶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시작은 그 독일 꼬마다.’
이민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각오가 낯에 확연히 드러났으나 차창 밖을 보고 있어 아무도 그가 짓는 표정을 보진 못했다.
이때 석민은 두 눈을 반짝이며 뒤에서 따라오는 대형 트레일러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빙 아머리네. 실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무빙 아머리(Moving Armory).
한국식 이름으론 이동식 무기고.
대형 트레일러를 개조시켜 대전 골렘과 그 장비들을 싣고 다니는 차량이다.
특수 차량이라 그 가격만 수십억에 달하며 어지간해서는 잘 볼 수 없는 차량이기도 했다.
‘저게 수십억이라 했는데. 나중에 꼭 사고 싶다.’
이민호와 그의 팀원들은 비공식 스파링이 열리는 경기장에 도착하게 됐다.
도착한 곳은 미리 찾아와 있던 외국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경기장 밖에는 경찰병력들까지 투입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해놓은 상황.
이를 본 이민호 팀원들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와 기가 막히네. 누가 유럽 부자 아니랄까봐 무빙 아머리를 세 개씩이나 가지고 다니네. 저거 다 전용기로 가져왔을 거 아냐?”
“슈나이더가 그쪽에선 꽤 유명한 명문가래. 나름 왕족인가봐.”
“왕족? 요즘 세상에 왕족이 어딨냐? 안 그러냐?”
“내가 좀 알아보니까 옛날엔 저쪽 가문 사람들이 브리튼 킹도 하고 독일 왕도 되고 그랬다더라. 진짜 명문가야.”
“오 그래? 처음 알았네.”
“야 그럼 오늘 이민호, 공주님하고 치고 박고 싸우는 거냐?”
“큭큭, 그런 거지.”
“이야 싸움하는 공주님? 이거 완전 내 로망인데.”
“그 공주님이 독일에선 대스타래. 거기선 인기가 아주 많나봐.”
“당연하겠지. 우리나라만 해도 잘 나가는 골렘 파이터는 거의 준연예인급인데.”
아이돌 그룹이 타고 다닐 법한 벤에서 내린 이민호는 기지개를 켰다.
그 표정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오늘이 바로 그 공주님의 제삿날이라고. 뭐 퇴물?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해. 난 아직도 팔팔하다고.’
벤에서 내린 이민호는 스카우터를 썼다.
그리곤 벤을 따라온 무빙 아머리를 쳐다보자, 이동식 무기고가 요란스럽게 열리며 그 안에 있던 인파이터 타입의 스턴건을 외부로 노출시켰다.
오늘을 위해 왁스칠까지 한 스턴건은 장갑 표면에서 광택이 번들거렸다.
외부 판금과 내부 미스릴로 된 2중 장갑을 전신에 씌웠으며, 스턴건이란 이명을 선물한 티타늄 파이프 세 개가 박힌 거대한 오른팔은 보기만 해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와 스턴건이다.”
스턴건이 등장함과 동시에 근처에 있던 석민이 목소리를 냈다.
석민도 한때 스턴건의 팬이었던 만큼, 스턴건에게 갖는 기대가 적잖았다.
이때 이민호는 씩 웃으며 스턴건에서 오른팔을 요란하게 움직이게 했다.
석민을 위한 작은 포퍼먼스였다.
“야 꼬마야. 오늘 잘 봐라. 아저씨가 멋지게 이겨줄게.”
피스톤과 연결된 오른팔이 빠르게 움직이며 무서운 소리를 내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됐다.
슈나이더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저게 한국 골렘 중 세 번째라는 스턴건이군.’
‘오른팔이 굉장하군. 저 주먹에 맞을 일은 없겠지만 제대로 맞았다간 베가도 못 버틸 거야.’
그들도 스턴건을 실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계 대회에 나온 지 꽤 오래되었고, 그 동안은 영상으로만 접했으니까.
이민호가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 있던 기자들이 이민호에게 몰려들었다.
“이민호 씨, 오늘 경기는 어떻게 보십니까?”
“상대가 독일에서 온 공주님이라는데 설마 지는 일은 없겠죠?”
“고대 골렘과의 결전에 앞서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자 이민호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답했다.
“오늘 있을 비공식 경기, 저와 스턴건이 무난하게 이길 겁니다.”
“소문으로는 베가와의 개체 등급 차이가 두 단계나 난다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죠?”
“실력으로 커버해야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독일에서 온 꼬마에 대한 소문이 무성합니다. 여기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해두셨습니까?”
“지금까지 베가의 경기는 전부 비공개로 되어 있어서 자세한 경기 내용에 대해선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뭐 별 거 있겠습니까? 그냥 실력으로 찍어 누르면 되겠죠.”
“자신감이 아주 대단하신데, 지금 안팎에선 이 경기로 이민호 선수가 골렘 파이트를 영원히 은퇴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근거 없는 소립니다. 저 절대 은퇴 안 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졌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본인이 많이 힘드실 텐데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승전보를 여러분께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이민호는 시종일관 자신감 가득한 태도를 고수해주었다.
이민호에게 질문을 쏟아 붙던 기자들은 잠시 후 스턴건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이민호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이민호의 인터뷰를 엿듣고 있던 페트리샤가 소리 없이 비웃었다.
주제도 모르는 어른이 입만 살았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야외 테이블에 앉아 제 엄마와 고상하게 티타임을 즐기던 페트리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 아저씨, 자신감 너무 넘친다. 내 소문에 대해선 전혀 못 들었나봐. 전부 다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짓밟아줬는데.”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페트리샤에게 이민호의 인터뷰는 정말 가소로웠다.
개체 등급이 무려 두 단계나 차이 나는데, 그걸 제 실력으로 메꿔보겠단다.
월드 그랑프리도 못나가는 2류 파이터가 골렘 차이를 실력으로 메꿔?
페트리샤에겐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손에 들린 고급스런 찻잔을 바닥에 내던진 페트리샤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부 B형 장비로 바꿔. 나중에 저 아저씨가 딴 소리 못하게 서로 개체 등급을 맞출 거야.”
이진아는 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부 제 아빠한테 배운 것이라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딸보다 더한 사람이었으니까.
페트리샤는 아이답지 않게 섬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 아저씨. 일찍 은퇴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