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G 매니지먼트
* * *
24시 편의점.
식당에서 나오는 따끈따끈한 밥 대신 삼각 김밥으로 저녁밥을 대충 때우던 강준은 한 아이만 계속 떠올렸다.
‘아직도 생각하면 웃기네.’
강준도 모르진 않았다.
그 많고 많은 매니지먼트 중에서, 더군다나 업계 최고라 불리는 KRG의 연락까지 받은 꼬마가 모두의 손길을 뿌리치고 가장 영세한 업체라 할 수 있는 G 매니지먼트에 연락을 한 이유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수용해줄 수 있는 데가 오직 G 매니지먼트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맞춰줄 수 있는 데가 솔직히 우리 밖에 없겠지. 정말 우리니까 가능했던 거야. 다른 데라면 꿈도 못 꿔.’
이미 계약은 끝났다.
강준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좋게 생각해. 100억 매출에서 70억 이익보단 솔직히 1000억 매출에서 100억 이익이 더 낫잖아.’
강준은 생각했다.
어중간한 골렘 파이터와 3대 7의 전속 계약을 맺고, 그 골렘 파이터가 성공해 한국에서 100억의 매출을 올린다 할지라도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건 70억 밖에 안 된다고.
여기서 그 골렘 파이터를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장비 값과 그 외에 여러 가지 비용을 제한다면 그 70억 중 순이익은 절반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여, 정말 큰 가능성이 있는 골렘 파이터와 9대 1 계약을 성사시킨 뒤, 그 골렘 파이터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 1000억의 매출을 올린다면 거기서 100억은 자기들 몫으로 떨어지게 된다.
‘뱀 머리보단 역시 용의 꼬리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그 꼬마의 가능성만 본 거잖아.’
편의점을 나온 강준은 그 앞에 정차되어 있던 자기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토요일 밤.
용인 벙커에서 건달들이 사설 경기장을 개최하는 날이다.
강준은 영등포에 위치한 석민고물상을 향하며 석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아저씨가 그쪽으로 가고 있거든, 준비는 다 됐니?”
“네.”
“곧 가니까 좀만 기다려라.”
강준이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을 쯤.
가게 뒷마당으로 나간 석민은 스카우터를 쓰고 악튜러스를 위아래로 스캔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개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어스 골렘]
개체명칭 : 악튜러스(Arcturus)
등록번호 : KR-1636811
개체등급 : E+(대한헌터협회 April 30th, 2030)
최대출력 : 30hp
보유용도 : 개인 가드용
-인터넷에 접속하여 골렘의 세부 정보를 갱신합니다.
[무장 목록]
우(右)무장 1 : [?] 미등록 녹슨 대검우(右)무장 2 : [?] 미등록 부러진 특대검좌(左)무장 : 무(無)
[장갑 목록]
코어 : [CC] 동부관문 대형 코도 비스트 심장코어 캡슐 : [D-] 차이나 일렉트로닉스, 코어 캡슐 S-3K 머리 가리개 : [?] 미등록 녹슨 강철 해드어깨 가리개 : [?] 미등록 녹슨 강철 덧대
몸통 가리개 : [?] 추정 불가
손목 가리개 : [?] 추정 불가
다리 가리개 : [?] 미등록 녹슨 강철 각반손 보호구 : [?] 미등록 녹슨 쇠장갑발 보호구 : [?] 미등록 녹슨 쇠장화장갑 종합효율 : 산출 불가(미등록 장비가 많아 산출 불가)장갑 종합판정 : 산출 불가(미등록 장비가 많아 산출 불가)전과 달리 크게 나아진 점은 없었다.
석민이 미간을 모았다.
‘이 상태론 예선전 턱걸이도 안 될 거야. 빨리 장비를 맞춰야 돼.’
그 장비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게 돈이었다.
잠시 후 강준이 도착하자 석민은 그와 함께 용인에서 열리는 불법 경기장을 찾아갔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 밤! 저와 함께 달려 보시렵니까!”
나이트클럽을 연상케 하는 불법 경기장에선 사회자 홍길동의 목소리가 관중들의 환호와 맞물려 요란스레 울려 퍼졌다.
“자 그럼 오늘 첫 경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 바닥 미친놈은 바로 나야! 2주간의 침묵을 깨고 돌아온 평택의 저승사자, 길로틴!”
강철을 덧씌운 스톤 골렘이 두 주먹을 꽝꽝 맞부딪히며 경기장 쪽으로 나아가자 지켜보던 관중들이 크게 환호했다.
이때 선수 대기실에 있던 석민은 강준이 급하게 사온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밥도 안 먹었어?”
“라면 끓어먹으려다가 그냥 안 먹었어요. 자주는 못 먹겠더라고요.”
“어이쿠 라면 같은 거 먹으면 안 되지. 성장기 애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 안 돼. 앞으론 이 아저씨가 먹을 것 좀 잘 챙겨줘야겠다. 자 이거라도 먹어라.”
강준은 나무젓가락으로 김밥들을 집어 석민에게 직접 먹였다.
그러면서 편의점에서 사온 우유도 먹였다.
모르는 누가 봤다면 아빠가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성장기 아이들은 우유를 꼭 챙겨먹어야 돼요. 자, 이것도 마셔라.”
“굳이 이렇게까지 안 사오셔도 됐는데.”
“에이, 그러면 쓰나. 우리 매니지먼트의 유일한 골렘 파이터인데 하하.”
그렇게 허기를 채우던 석민이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 맞다 아저씨.”
“응?”
“저랑 계약한 건 당장 비밀이에요.”
“어? 왜?”
“그럴 일이 있거든요.”
“무슨 일인지 아저씨한테 설명을 해줘야 아저씨도 거기에 맞춰주지. 아저씨는 더 이상 남이 아니야. 네 편이야.”
석민은 가만히 강준의 눈을 들여다봤다.
떨림 없는 눈동자.
석민이 어느 정도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KRG 대표가 저한테 접근한 이유가 따로 있거든요.”
“이유? 무슨 이유?”
“악튜러스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어요.”
“아티팩트? 아니 아티팩트도 있었어?”
“네, 그런데 일반인은 잘 몰라요. 아마 전문가도 쉽게 구별하긴 힘들 걸요.”
강준은 고개를 들어 근처에 있던 악튜러스를 훑어봤다.
보기엔 그냥 녹슨 골렘이었다.
‘아티팩트라고? 아티팩트가 대체 어딨다는 거야.’
“그런데 그 아티팩트랑 무슨 관계인데?”
“KRG 대표가 저랑 계약하려는 이유가 그 아티팩트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다른 곳이랑 계약했다는 걸 알면 전문 도둑들을 고용할지도 몰라요.”
“그럼 안 되지.”
전문 도둑에 관한 문제는 항상 있어왔었다.
골렘 장비가 비싸기도 하고, 상대 선수를 괴롭힐 목적으로 알게 모르게 이용하는 악질적인 수법이었으니까.
강준은 자세한 상황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악명 높기로 소문난 KRG 대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 아직 저녁밥도 안 먹었었니?”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했던가?
선수 대기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 여자의 등장과 맞물려 일어난 일.
한미라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고선 선수대기실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혼자 찾아오진 않았다.
그녀는 두 수행원과 같이 등장했다.
강준은 그 즉시 자리를 피했고, 석민은 이제까지 그래왔듯 제 앞에 놓인 김밥만 말없이 주워 먹었다.
한미라는 석민 옆자리에 앉으며 친근하게 말을 붙여왔다.
“이런 건 오기 전에 먹었어야지. 아빠가 잘못했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긴. 아줌마가 너한테 관심이 많으니까 따로 찾아온 거지.”
그러면서 한미라는 오기 전에 미리 봐놨던 강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시더라? 처음 보는데.”
“아 전...”
강준 대신 석민이 대답해주었다.
“제 삼촌이요.”
“아, 삼촌이시구나.”
한미라는 환히 웃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뻘쭘하게 서 있던 강준과 마주보며 섰다.
그리곤 미소를 던지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전 한미라라고 해요.”
같은 업계 사람이었지만, 강준과 한미라는 서로 접점이 없었기에 완전 남이나 다름없었다.
강준은 방금 전 석민에게 들은 게 있었기에 최대한 상황에 맞춰주기로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전 석민이 삼촌인 강준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아이가 어른이랑 같이 왔네요. 애아빠가 많이 바쁘신가 봐요?”
“아 네, 뭐 일이 많으시다 보니.”
“애아빠는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미라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그게... 헌터 일이라.”
“예?”
알던 사실과 다르자 한미라가 당황했다.
‘고물상 주인이 아니었나?’
“애아빠가 헌터셨구나. 전 몰랐어요.”
강준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자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아 내렸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든 한미라는 강준과 대화를 끝낸 뒤 석민에게 돌아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곤 다시 미소를 드리웠다.
“우리 꼬마, 오늘도 무난히 이기겠네?”
“네, 당연히 이겨야죠.”
“그런데 있잖아. 이런데서 푼돈 주워봤자 얼마 안 돼. 아줌마랑 같이 다녀야 네 골렘도 빠르게 강해지는 거야. 알고 있지?”
“계약 문제는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예선전이 얼마 안 남았어. 벌써 다음 주 뒤면 시작이야. 그때까지 준비할 수 있겠어?”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대신 너무 늦으면 안 돼. 늦으면 배가 떠나가니까. 떠난 배는 다시 안 돌아온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있잖아. 이 아줌마가 네 아빠 좀 만나보고 싶은데. 이건 어떠니?”
“제 아빠요?”
석민은 그 이유가 계약 문제 때문이라고 넘겨짚었다.
“당장은 힘들어요. 아빠가 근래에 헌터가 되셨거든요. 그래서 바쁘세요.”
“아, 근래에 각성하신 거였어?”
“네.”
“어쩐지... 그래도 이 아줌마가 꼭 좀 만나보고 싶은데. 네가 가서 미리 귀띔이라도 해줄래? 그래주면 이 아줌마는 정말 좋겠는데.”
석민은 그녀가 보이는 조심스런 태도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뒀던 성격이라면 자기 의사 같은 건 무시하고 아빠를 만났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아빠한테 미리 말해놓을 게요.”
“꼭 좀 부탁할게. 갑자기 찾아가면 많이 당황하실 거 같아서 그래. 다른 이유는 없어.”
“네.”
“그리고 있잖아.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질문이거든.”
“개인적인 질문이요?”
“혹시... 아니다. 그것보다는 아줌마가 네 아빠를 만나면 누가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
“오해요?”
“그 오해라는 게 아빠 애인이라든가 아니면 뭐 그런 거 있잖아. 아줌마가 이쁘니까 그런 게 있으면 조심해서 만나야지. 남들이 보면 오해하니까.”
“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그래? 알았다. 말해줘서 고마워.”
자리에서 일어난 한미라는 근처에 있던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좀만 나가면 시내 있죠? 가서 아이 밥 좀 사와요. 세상에 김밥 쪼가리가 뭐야.”
“네, 대표님.”
그리 말한 한미라는 석민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떠나갔다.
그때까지 숨죽이고 지켜보던 강준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숨 막히는 여자였다.
카리스마라든지 화끈한 외모라든지.
“나도 KRG 대표를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긴 한데... 와 끝내주긴 하네.”
강준이 말하자 석민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아저씨도 저 야하게 입은 아줌마가 좋아요?”
“좋냐고? 아니 좋다기 보다는...”
그냥 과분한 여자.
씁쓸한 뒷말일랑 삼키는 강준이 선수 대기실에 있던 전광판을 보더니 석민을 불렀다.
“벌써 우리 차례네. 석민아, 준비 됐니?”
석민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럼 나가자. 우리 차례야.”
선수 대기실에서 벗어나자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요란해졌다.
“자 소개하겠습니다! 저번 주 그 작은 고추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우리 깡통과 함께하는 차석민 선수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관중들의 환호를 입고 경기장 바깥에 선 석민은 스카우터를 쓰고 상대 골렘을 살펴봤다.
금속으로 된 아이언 골렘.
딱히 장갑 같은 건 없었고, 대신 코어만 좋은 걸 쓰고 있었다.
‘악튜러스보다 코어 등급이 한 단계나 더 높네. 장갑에 투자할 돈을 아낄 수 있으니까 코어만 높은 걸로 맞췄나봐.’
석민은 아이언 피스트라 소개 된 대전 골렘의 영상을 인터넷에서 빠르게 찾아봤다.
몇 개를 찾아봤지만 이렇다 할 대단한 모습은 찾아내질 못했다.
‘그냥 무난한 상대야.’
김병철.
아이언 피스트의 주인인 김병철은 제 상대로 나온 아이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 깡통을 데리고 우승했다고?’
저번 주에 우승했다는데, 딱히 대단한 상대로 보이진 않았다.
“자, 그럼 아이언 피스트와 깡통의 대결 곧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배팅해주세요!”
김병철은 저번 주 이곳에서 몰래 촬영된 악튜러스 영상들을 살펴봤다.
그제야 김병철은 침을 꼴깍 삼켜 넘겼다.
‘맙소사. 저게 가능해?’
일반적인 파이터는 대전 골렘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다뤄내지 못했다.
자기 몸도 아닌데다가 생각보다 쉽게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의 영역.
영상에 나온 악튜러스는 보기와 다르게 역동적인 움직임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더군다나 상대의 공격 패턴을 읽어내는 수준이 이미 범인의 수준을 넘어섰다.
마치 상대방 머릿속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이쪽 바닥에선 저런 종류의 파이터를 이렇게 불렀다.
천재라고.
김병철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어느새 악튜러스는 아이언 피스트와 마주보며 섰다.
심란하던 마음부터 추스른 김병철이 아이언 피스트와 링크를 시도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한다.’
그의 시야가 바뀌며 흙 골렘 하나가 제 앞에 드리워졌다.
가장 흔하다는 흙 골렘인데, 생각보다 무섭게 보였다.
‘모르겠다. 이럴 땐 무조건 선빵필승이다!’
김병철은 시작과 동시에 선빵필승으로 기세를 잡으려고 생각을 굳혔다.
“두 선수 모두 준비 됐나요! 자, 그럼 다 함께 달려 봅시다! Ready, Fight!”
시작부터 선빵필승만 되뇌던 김병철은 시작과 동시에 거의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목표는 악튜러스의 턱.
한때 복싱을 배웠던 김병철은 반사적으로 턱을 노렸다.
하지만 뻗어낸 주먹은 악튜러스의 턱주가리에 꽂히질 못했다.
석민이 미리 읽고 가볍게 피한 것이다.
‘좆 됐다!’
당황한 김병철이 급히 가드를 준비할 때, 갑작스레 그의 시야가 붕 떴다.
카운터로 어퍼컷을 맞은 것이다.
붕 뜬 시야.
그렇게 우승을 향한 김병철의 희망도 붕 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