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G 매니지먼트
#10 G 매니지먼트
석민은 저번에 불법 경기장에서 받았던 명함들 중 G 매니지먼트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G 매니지먼트 강준입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낯익으면서 낯익지 않은 목소리.
“저요. 용인 벙커에서 우승했던 꼬마요.”
“아, 그 꼬마?”
“예전에 전화 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래 맞아. 그런데 아저씨한테는 무슨 일이니?”
“계약 때문이요.”
“계약?”
예상도 못했던 말을 듣자 강준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계약이라니!
“지금 어디니? 아저씨가 그쪽으로 갈께.”
“여기 영등포쪽인데 이쪽으로 오실래요?”
“영등포? 주소는 어떻게 되는데?”
“지금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메시지를 받은 강준은 바삐 움직여 영등포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고물상이 있는 곳이었다.
차소리가 들리자 석민은 가게 밖으로 나가 강준을 맞이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여기가 네가 사는 곳이니?”
차에서 내린 강준은 전에 만났을 때와 똑같은 옷차림이었다.
“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강준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석민과 대화하기 전, 석민의 부모부터 찾았다.
석민이 너무 어려 매니지먼트 일은 부모와 상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님은 안 계시니?”
“네, 아빠는 밖에 나가셨어요.”
“그럼 엄마는?”
“엄마는 안 계세요. 어릴 때부터 아빠랑 같이 살았거든요.”
“아, 그랬구나. 미안하다.”
“아니에요.”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온 석민은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말했다.
“아저씨, 저와 계약하실 거죠?”
“그야 물론이지.”
아까 뛰던 심장은 그대로.
강준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데 부모님이 허락은 하셨니?”
“네, 허락하셨어요. 저보고 골렘 파이터 해도 된데요.”
강준은 싱그럽게 웃는 아이를 보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계약을 진행하려면 부모님이 여기에 있어야 하거든. 아빠는 언제 돌아오시니?”
“아빠는 지금 바쁘셔서 당장 못 오세요. 근래에 헌터가 되셨거든요.”
“헌터? 아빠가 헌터였어?”
“네.”
고물상집 아이의 아빠가 헌터라니.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아빠가 헌터라고 하자 강준은 보호자 동의가 더 절실해졌다.
괜히 아이 말만 듣고 일을 진행했다가 화가 난 아이 부모로부터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보호자 동의는 꼭 필요하거든. 정 그렇다면 이 아저씨가 네 아빠한테 전화를 해도 될까?”
“그전에 저와 계약 얘기부터 끝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냥 우리랑 하는 거 아니었니?”
“아니요. 계약을 하려면 서로 조건이 맞아야 하잖아요. 안 그런가요?”
아이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천진난만함에서 진중함으로.
강준은 자신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안하다. 아저씨가 너무 앞서갔구나. 아저씨는 일단 표준 계약을 생각하고 있거든.”
“저기 죄송하지만 표준 계약이라면 아저씨 매니지먼트랑 계약할 생각이 없어요.”
“뭐?”
“그렇게 진행할 바엔 차라리 KRG랑 할 생각이거든요.”
“KRG에서도 연락이 왔었니?”
“네, KRG에서 가장 먼저 연락이 왔었어요.”
석민은 거짓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 한미라에게 받은 명함을 강준에게 보여주었다.
그 명함을 본 강준이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KRG면 업계 최고였다.
아는 형과 단 둘이 운영하는 G 매니지먼트와는 하늘과 땅 차이.
강준은 방금 아이의 말을 듣고선 정상적인 계약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KRG보다 더 좋은 조건을 걸어야 아이가 자신들과 계약할 테니까.
“아 그랬었구나.”
“KRG 말고도 여러 매니지먼트에서 제게 계약하자고 말하고 갔어요. 그 명함들도 보여드릴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저는 아저씨 인상이 좋아서 아저씨 회사랑 하려고요.”
“그래? 그럼 우리야 좋긴 한데... 그런데 네가 바라는 조건이 뭐니?”
“업계 표준이 3대 7 계약이죠? 데뷔 전까지 매니지먼트에서 전부 지원해주다가 데뷔 후 업체가 7, 골렘 파이터가 3으로 나눠 갖는 조건이요.”
“어, 표준 계약이 대개 그렇지.”
이 아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강준은 다음 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듣게 되니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하지만 저는 그런 계약은 안 하려고요.”
“그럼?”
“제가 원하는 조건은 9대 1 조건이에요.”
“9대 1?”
“네, 거기서 제가 9에요. 대신 장비 지원은 일절 안 받을 거예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 생각이거든요.”
“꼬마야, 이 바닥에 9대 1 계약은 없어.”
강준은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은 나머지 아이가 사정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있어요. 홍진영이라고 레드 데빌 파이터가 KRG랑 9대 1계약을 하고 있거든요.”
“홍진영?”
강준도 업계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홍진영이란 레드 데빌 파이터가 높은 비율로 KRG와 계약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었다.
그게 9대 1 계약이었다는 것은 방금 전 알게 되었지만.
“하지만 홍진영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그리고 돈을 잘 벌기도 하고.”
“제 요점은 9대 1계약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아예 없는 얘기가 아니란 소리죠.”
“그래도 신입을 상대로 9대 1로 계약하는 매니지먼트는 아무데도 없어.”
“아니죠. 제가 장비 지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면 9대 1 계약이 가능하죠. 매니지먼트에서 저한테 크게 해주는 게 없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매니지먼트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을 거라면 굳이 매니지먼트가 필요 없지 않은가?
골렘 파이터 혼자 다 하면 됐으니까.
“그럼 매니지먼트가 굳이 필요 없잖니?”
“아니요. 제가 많이 어려서 매니지먼트의 도움이 꼭 필요하거든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아빠는 헌터 일로 바쁘시고요. 저는 매니지먼트로부터 최소한의 도움만 받고 대신 제 수익의 1할만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저는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하하...”
아이가 보통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시한 조건이 너무 말이 안 됐다.
석민도 약간 무리수라는 걸 알았기에 크게 무리하진 않기로 했다.
계약이야 서로 안 맞으면 그만이니까.
“이게 제가 제시하는 조건이에요. 만약 맞춰주신다면 G 매니지먼트랑 계약할 생각이 있어요. 아니면 지금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할게요. 저야 아쉬운 게 없으니까요.”
만약 강준이 속한 데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매니지먼트였다면 강준은 이 자리서 손을 내저으며 떠났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업계 생태계를 망칠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간판스타가 꼭 필요했고,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영세 업체다 보니 뭐라도 건져야만 하는 강준에겐 아이의 제안은 계륵 같았다.
덥석 물기엔 그렇고, 그렇다고 남 주기도 싫은 그런 것.
강준은 곤란함을 어필하며 잠깐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건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서. 잠깐 통화 좀 하고 와도 되겠니?”
“네 그러세요, 저야 시간은 많으니까요.”
강준은 가게 밖으로 나가 한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
“그래, 계약은 잘 됐냐? 꼬마가 엄청난 물건이라면서.”
한성철은 G 매니지먼트의 대표이자 강준과는 형 동생 하는 사이였다.
“그게 있잖아 좀 곤란하게 됐거든.”
잠시 후 사정 이야기를 듣게 된 한성철이 목소리를 높였다.
“뭐? 9대 1?”
“어, 그렇게 말하더라.”
“아니 무슨 9대 1이야. 세상에 9대 1 조건이 어딨다고. 그것도 새파란 신입이. 보통 3대 7 아냐?”
“나도 아는데, 그건 우리가 전부 지원해줬을 때 일이고 얘는 지원을 아예 안 받겠대.”
“정말로 지원을 아예 안 받겠대?”
“어.”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어. 그럼 우리가 필요 없는 거잖아? 그럴 거면 혼자 뛰지 굳이 우릴 끼려는 이유가 뭐야?”
“어른 도움이 필요한가봐. 아빠가 바빠서 자길 못 도와주니까 옆에서 도와줄 어른이 필요한 거겠지.”
“안 돼. 난 반대야. 준아, 그렇게 하면 안 돼.”
“아니 형, 그렇게 칼 같이 자르지 말고.”
“야, 너는 9대 1 계약이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우리가 무슨 호구도 아니고.”
“말이 안 되지. 근데 그거야 우리가 잘 나갔을 때 이야기고, 지금 뭐도 없잖아. 형, 우리가 물불 가릴 처지였어? 이거라도 잡아야지.”
사실 말도 안 되는 조건에 강준이 집착하는 것은 용인 벙커에서 보았던 꼬마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상종도 안 했을 것이다.
“하아...”
“형, 어차피 장비 지원이 없는 거면 우리도 크게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 그냥 밑져야 본전 식으로 한 번 해볼까? 솔직히 나는 어떤 식으로든 계약을 진행하고 싶거든.”
“야, 그래도 7대 3은 받아야지. 우린 뭐 땅 파서 장사 하냐?”
“나도 7대 3로 하고 싶긴 한데, 막말로 우리가 해준 게 없잖아? 내가 볼 땐 이 아이는 우리가 크게 필요한 게 아니야. 그냥 형식적인 도움만 바랄 뿐이지.”
“그런데 왜 지원이 필요 없다는 건데? 집이 부자야?”
“자기 아빠가 헌터라고 했거든.”
“헌터? 아이 아빠가 헌터였어?”
“어, 그래서 완전 내 생각인데. 매니지먼트 지원이 딱히 필요가 없나봐. 골렘 장비야 헌터인 아빠가 다 마련해줄 테니까.”
일리가 없진 않았다.
“쩝. 그렇긴 하네. 헌터면 돈 잘 벌 테니까.”
“어떻게 할래?”
“난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럼 진행한다?”
“할 거면 해. 대신 난 신경 안 쓴다. 네가 따낸 계약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통화를 마친 강준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석민을 찾았다.
“지금 이야기가 다 됐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요?”
석민은 관심 없는 척 물었다.
“네 말대로 우리가 골렘 장비를 전혀 지원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크게 상관없을 거 같아. 대신 8대 2로는 안 되겠니? 9대 1은 좀...”
“9대 1 조건이 아니면 계약을 안 하려고요. 매니지먼트야 주변에 많잖아요.”
“아니다 그냥 9대 1로 하자.”
석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준은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하나만 물어봐도 되니?”
“네 물어보세요.”
“9대 1, 그거 누구 생각이니? 네 생각은 아니지?”
강준은 석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거요?”
“응.”
“아빠 생각이요. 아빠가 예전에 아이돌 매니저 하셨거든요. 그래서 매니지먼트 일이라면 잘 알고 계세요.”
“아... 그런 거였니?”
“혹시 저녁에 시간 되세요? 아빠가 저녁 시간에 돌아오시거든요. 계약 자체는 아빠의 허락 아래서 하고 싶어요.”
“아 그럼 내가 저녁 시간에 다시 올게.”
“그리고 있잖아요.”
“응?”
“제가 하는 일은 전부 아빠한테 비밀이에요. 이건 꼭 지켜주세요. 아니면 계약 안 할 거예요.”
“비밀? 굳이 비밀로 할 필요가 있니?”
“네, 불법 경기장 일도 있고, 가끔씩 레이드도 뛸 생각이라 걱정하실까봐 그래요.”
“뭐 레이드?”
그날 저녁.
차태식은 아들이 소개시켜준 G 매니지먼트의 강준이라는 사람과 대면하게 됐다.
“골렘 매니지먼트라...”
일단 계약서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대신 아들이 9대 1 계약을 만든 건 정말 신기하게 생각했다.
‘뭘 어떻게 했기에 9대 1계약이 가능한 거야? 이거 쟤들이 호구 아냐?’
예전에 차태식이 몸담고 있던 곳도 9대 1계약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배우나 가수, 아이돌이 완전 갑의 위치에 있을 때만 해당 소속사와 9대 1 계약이 가능했다.
그것도 전속 기간이 다 끝나고 재계약을 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9대 1이라니.
너무 수상한 나머지 계약서를 세 차례나 더 살펴봤지만 이렇다할 문제점을 찾아내질 못했다.
‘진짜 신기하네. 이건 완전 퍼주는 계약인데.’
그런 차태식을 두고 쩔쩔매는 강준이 은근슬쩍 운을 뗐다.
“아버님, 다 살펴보셨죠? 그럼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거기 큰데는 아니죠?”
“네? 아... 아직 업계에선 작은 업체긴 합니다. 계속 성장 중이죠.”
“계약서 자체는 문제가 없긴 하네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 석민이 좀 잘 부탁드립니다.”
계약을 마친 강준이 떠나기 전, 가게 앞까지 걸어 나온 석민이 강준을 찾았다.
“아저씨,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비워두세요. 저랑 갈 곳이 있거든요.”
“토요일? 아 용인 벙커에 가려는 거니?”
“네, 가서 돈 벌어야죠. 그리고 이건 아빠한테는 비밀이에요. 저랑 했던 약속 아시죠?”
“알지. 일단 알았다.”
계약 조건에서 최소한의 지원은 약속했기에 강준은 석민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야 했다.
물론 그게 강준에겐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지만, 크게 할 일이 없는 지라 거의 최우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강준이 떠나가자 밖에 서 있던 아들에게 다가간 차태식이 입을 열었다.
“아들, 9대 1 계약은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보통 3대 7 아냐? 저쪽이 7이고.”
“장비 지원을 안 받잖아. 계약금도 없고. 그리고 저 아저씨 회사가 엄청 작거든. 그래서 찔러봤지. 사실 8대 2도 괜찮았는데, 많이 궁했나봐. 아니면 내가 엄청 마음에 들었거나.”
“아, 그런 거였어? 어쩐지. 그런데 그런 계약으로 쟤들한테 남는 게 있으려나 모르겠네.”
뒤돌아 선 석민이 차태식과 마주보며 환히 웃었다.
“당연히 있지. 아들이 엄청 잘 나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