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5화 (15/173)

#09 브로큰 블레이드

*  * *

하교를 하게 된 석민은 곧장 악튜러스를 찾아갔다.

학교에서 봐놨던 매물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다.

스카우터를 쓴 석민은 악튜러스에게 물었다.

“악튜러스, 이거 알아? 부러지긴 했는데, A급 감정서가 필요하대.”

뒷마당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던 악튜러스는 아이가 가리킨 특대검을 보고선 눈가를 좁혔다.

석민은 알 수 있었다.

‘알고 있구나.’

갑작스레 석민이 보는 시야가 변했다.

악튜러스의 기억.

게이트 너머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초원이 펼쳐졌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바위산.

그 바위산 위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이 하늘 높게 솟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궁전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거대한 조각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바위산 아래.

악튜러스는 저와 비슷한 크기의 골렘과 마주보고 있었다.

‘악튜러스.’

골렘끼리 가능한 정신감응을 통해 상대 골렘이 말을 걸어왔다.

악튜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등허리에 메고 있던 황금빛 대검을 뽑아들었다.

황금빛 찬란한 대검.

악튜러스와 마주한 상대는 검이 쏘아내는 살기에 주눅 들지 않았다.

대신 담담한 어조로 다음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왔구나.’

악튜러스와 시야를 공유하는 석민은 상대 골렘을 보았다.

얼핏 보면 크리스탈 골렘처럼 보였다.

하지만 석민은 다르게 생각했다.

‘마정석이야.’

마나가 깃든 신비로운 결정체.

마정석으로 이뤄진 골렘은 룬문자로 가득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석민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적이었지만, 탐이 났다.

‘장비한 게 전부 아티팩트야.’

석민의 시선은 마정석 골렘이 차고 있던 또 다른 아티팩트로 향했다.

‘그거잖아?’

바로 석민이 물어보았던 부러진 특대검이었다.

룬각인이 새겨진 갑옷을 걸치고, 부러진 대검을 가진 고대 골렘.

리겔.

리겔은 결투에 앞서 자신의 두 주먹을 세차게 부딪쳤다.

두 주먹에서 뻗어나가는 파공음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갑옷에 새겨진 룬문자를 푸르게 빛냈다.

‘놀라워.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아티팩트구나.’

리겔이 깨워낸 힘은 실로 놀라웠다.

마치 배틀 메이지처럼 주변을 요동치게 만든 것이다.

‘언뜻 보면 배틀 메이지 같아. 마법을 주로 쓰는 골렘인가?’

끓어오르는 마나.

산들바람만 불어오던 초원이 요동치고, 하늘에선 갑작스레 먹구름이 모여들었다.

심상치 않은 하늘 아래 소용돌이가 생겨나고, 그 소용돌이는 리겔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것은 리겔의 힘이었다.

소용돌이 안에서 두 안광이 번뜩였다.

폭풍의 갑옷을 불러낸 리겔이 악튜러스에게 말했다.

‘이곳이 곧 네 무덤이 될 것이다.’

리겔은 부러진 특대검을 뽑아들었다.

특대검은 부러진 상태였지만, 리겔의 마나를 머금고 푸른 칼날을 만들어냈다.

석민은 리겔이 쥔 특대검에 집중했다.

‘부러진 게 아니었어. 본체의 마나를 이용하면 칼날을 만들 수 있구나.’

리겔의 위용에 악튜러스를 따라 이곳까지 찾아온 수많은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악튜러스가 고개를 돌리자, 석민의 시야엔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군세가 보였다.

악튜러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저와 제 군세를 위협하던 리겔을 올려다봤다.

위협적으로 그 힘을 과시하는 리겔이 씩 웃었다.

마정석으로 이뤄진 골렘의 인상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끝을 보자, 악튜러스.’

군세가 흔들린다.

악튜러스는 책임감을 느끼고 적을 향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어리석구나, 왕의 계보를 이은자여.’

리겔은 순식간에 그 거리를 좁혔다.

악튜러스는 뽑아든 황금색 대검으로 자신을 노리던 그의 룬소드를 쳐냈다.

둘은 빠르게 칼을 주고받았다.

리겔 역시 악튜러스만큼이나 칼을 잘 다뤘다.

잠시 후 리겔이 두 눈을 부릅뜨자 주변에서 휘몰아치던 바람이 폭풍이 되어 악튜러스를 뒤로 세차게 밀어냈다.

세찬 돌풍에 휩쓸린 악튜러스가 대지에 대검을 꽂고 버텨내자, 그 틈을 이용해 리겔이 제 주변에 일곱 개의 검의 형상을 띄워냈다.

세븐 소드.

악튜러스는 그게 무엇인지 아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악튜러스는 땅에 꽂은 대검을 꽉 잡고 남은 왼손을 옆쪽으로 뻗었다.

그리곤 무언가를 움켜쥐려고 하자, 악튜러스의 전신에서 마나가 용솟음치며 조용하던 대지가 크게 뒤틀렸다.

뒤틀린 대지에서 흙먼지가 치솟고, 치솟은 흙은 곧 용의 형상이 되어 폭풍의 눈이 된 리겔을 집어삼켰다.

어스 드래곤.

‘와, 악튜러스도 꽤 한다.’

석민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악튜러스의 힘을 보고 놀라워했다.

대체 저런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분명 코어가 있겠지?’

원시 골렘 자체는 큰 마나를 가지지 못한다.

코어가 없다면 지금 악튜러스가 보이는 힘은 석민이 가진 지식으론 설명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추측을 해보자면, 예전에 보았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악튜러스에게 코어로 쓸 몬스터 심장을 주었을 것이다.

‘최소한 드래곤 하트는 가지고 있겠지?’

잠시 후 석민이 보던 장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숨 막히는 전장은 오간데 없고, 조용한 왕궁 안이다.

석민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디지? 아, 예전에 악튜러스가 있었던 그 왕궁 안인가?’

주변 장식이나 느낌 등이 예전에 악튜러스와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왕궁과 비슷했다.

악튜러스는 수많은 금은보화와 아티팩트가 쌓여 있는 창고 같은 곳에 찾아왔다.

악튜러스는 부러진 특대검을 놔두고 조용히 떠나갔다.

황금빛 망토를 펄럭이며 떠나가는 악튜러스의 뒤로 육중한 크기의 창고 문이 서서히 닫혔다.

악튜러스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럼 네가 다룰 수 있겠어?”

석민의 물음에 악튜러스는 미간을 좁히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기서 악튜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석민은 제 뺨을 긁적였다.

악튜러스와 대치하던 골렘이 보인 힘.

절대 작지 않았다.

‘보니까 마나 소모가 엄청 심한 거 같던데. 진짜 다룰 수 있는 건가?’

그런 걱정이 앞섰지만, 어찌됐건 해당 매물이 엄청난 아티팩트라는 것은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일단 사두는 게 좋겠다. 무조건.’

석민은 곧장 핸드폰을 열고 해당 매물을 살펴봤다.

등록가 200만원에서 시작한 해당 특대검은 270만원까지 그 가격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가격 상승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해당 매물의 경매가 마감될 쯤, 석민은 가격을 좀 더 올려 300만원에 사들일 수 있었다.

경매가 끝나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판매자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올린 특대검을 사신다는 분 맞으시죠?”

“네, 안녕하세요.”

앳된 목소리가 다소 이상했지만, 판매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거기 위치가 어디세요? 직거래인 거 아시죠?”

“제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그리하여 석민고물상까지 찾아오게 된 판매자는 가게 뒷마당에서 어린 아이와 마주하게 됐다.

“너야? 산다는 사람이?”

“네, 저예요.”

“허... 내 참 어이가 없네. 너 돈은 있니?”

“있죠.”

판매자, 아니 헌터 김상우는 가게 뒷마당에 있던 골렘을 보았다.

녹슨 골렘.

그 골렘이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경계하는 모양.

“골렘도 있네. 하긴 골렘이 있으니까 사는 거겠지. 그나저나 많이 녹슬었다. 저거 움직이긴 하냐?”

다소 공격적인 어조.

석민은 개의치 않아했다.

“네, 잘 움직여요. 그보다 물건은요?”

“차 뒤쪽에 실어왔어. 잠깐만 기다려봐라. 아저씨가 내려줄 테니까.”

김상우는 짐칸에서 부러진 특대검을 번쩍 들어 올린 뒤 근처 바닥에 내려놓았다.

몸에 흐르는 마나로 전신을 강화시킨 뒤 골렘용 아티팩트를 손쉽게 옮긴 것이다.

헌터의 힘.

“아저씨 힘 쎄다.”

김상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려주었다.

“헌터가 이 정도야 기본이지. 좆밥 찌끄러기 새끼들은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나는 아니에요. 나는 대한민국 헌터 상위 5%거든.”

그렇게 대금을 치른 석민은 부러진 특대검을 사들이게 됐다.

김상우는 떠나기 전 석민에게 으름장을 내놓았다.

“야 꼬맹아,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다? 꽝 나와도 이 아저씬 찾지 마라. 나도 그런 거 다 감안하고 최소 1000만 원짜리를 300만원에 팔고 있는 거니까.”

김상우는 끝까지 생색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파는 게 쓰레기라는 거.

“네, 알고 있어요.”

김상우에겐 자기가 파는 부러진 특대검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500만원을 호가하는 A급 감정서까지 필요한 아티팩트.

긁어서 꽝이 나오거나 저주에 걸린 아티팩트라면 구매자는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반대로 대박이 나온다면 그야 말로 수천만 원, 아니면 그 이상의 돈을 날로 먹는 것.

하지만 김상우는 대박이 나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허탕을 쳤기 때문이다.

‘하여간 헌터 아닌 놈들은 게이트 너머에서 뭐 좀 주워왔다고 하면 아주 사족을 못 써요. 똥인지 된장인지 척 보면 아는 것을.’

석민은 김상우가 좋은 의도로 싼 가격에 내놓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의도 자체는 불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고대 골렘의 전용 아티팩트였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가보로 모셔놓던가 아니면 외국 딜러들과 맞상대하며 한껏 거드름을 피웠겠지.

김상우가 떠나가자 석민은 스카우터를 통해 부러진 특대검을 살펴봤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해당 물체를 스캔하는 중입니다.

[미확인 된 부러진 특대검]

등급 : ?

효율 : 37%

상태 : 매우 나쁨. 고대 골렘용 아티팩트.

-‘악튜러스’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 된 미확인 된 아티팩트.

-골렘용 아티팩트로.

-A급 이상 감정서 필요.

‘효율 자체는 아티팩트의 내구도라 보면 돼. 확실히 부러진 특대검이라 그런지 효율이 많이 낮네.’

석민은 악튜러스를 찾았다.

“어때? 아직도 쓸 수 있겠어?”

한 때 적이라 불렸던 자의 무기였다.

악튜러스는 말없이 지켜보다 아이의 요구를 차마 뿌리칠 수 없어 리겔의 룬소드를 들어올렸다.

이 룬소드를 봉인시켰던 당사자가 바로 악튜러스.

그래서 A급 감정서 따윈 필요 없었다.

악튜러스가 부러진 특대검으로 마나를 흘려 넣자,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태가 나면서 특대검의 형상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와, 진짜 아티팩트네. 처음 본다.”

잠시간 초롱초롱 빛나던 아이의 눈빛은 순식간에 바뀌며 악튜러스에게 다른 걸 주문했다.

“제대로 해봐.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는지 보게.”

악튜러스가 새로 얻게 된 코어를 한계치까지 올리며 부러진 검에 마나를 가득 흘려보냈다.

완벽한 형상이 갖춰졌지만 이는 오래지 않아 꺼졌다.

-코어가 한계 상태입니다.

-출력이 저하됩니다.

최대출력에서 가장 많은 마나가 생성된다.

그 마나로도 부러진 특대검의 형상을 온전히 취하는 시간은 고작 5초 남짓.

‘5초 밖에 안 되는 구나. 그 이상 유지하려면 마나가 더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하트다운 되겠지. 지금으로선 최대 5초가 한계야.’

CC등급 코어의 한계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석민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5초라도 어디야. 5초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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