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13화 (13/173)

#09 브로큰 블레이드

#09 브로큰 블레이드

차태식은 전날 늦게 귀가했다.

바로 씻고 누운 걸 보니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피곤했던 모양.

석민은 아빠가 들어온 걸 확인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석민은 눈 뜨자마자 곧바로 핸드폰부터 찾았다.

어제 올린 오크 심장의 현재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블랙핸드 오크 부족장 심장]

등급 : DDD

효율 : 92%

상태 : 싱글 코어 재료. 상태 양호.

등록가 : KRW 2,000,000

현재가 : KRW 2,200,000

-방금 막 등록된 상품!

‘역시 인기가 없네.’

등록가 200만원에서 고작 20만원 밖에 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다.

석민도 알고 있었다.

오크 부족장이라 할지라도 오크라는 게 그리 대단한 몬스터가 아니기에 높은 가격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을.

‘등급 높은 오우거 심장이었으면 아마 달랐을 텐데.’

전에 봤던 트윈 오우거 심장의 경우 등록가 8천에서 2억 4천까지 뛰는 걸 본적이 있었다.

2억 4천만 원...

아쉬움을 뒤로하고 석민은 상품에 달려 있던 댓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전체 댓글 4]

123a****

오크 심장치고 이 정도면 최상품. 하지만 관심 없음.

abc****

좀 애매한 상품이네요. 오크 심장치곤 최상품인데, 골렘 코어로 쓰기에도 좀 그렇고. 그냥 애매함.

ddss****

6년째무사고안전놀이터 가입시 꽁머니 바로 지급! 골렘파이트 축구 경마 GSH666 COM 추천코드 KFC ㅋ톡 TOTOKA

krej****

이거 중고품이네요. 그리고 위 댓글 신고합니다.

필요 없어진 오크 심장을 팔아 220만원을 거저 얻는 것이니 석민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220만원이라도 어디야. 애당초 선물로 받은 건데.’

지난 주 불법 경기장에서 받은 상금 천만 원.

그리고 오크 심장을 처분하여 얻게 될 이백 얼마를 합치면 도합 천이백만 원이 현재 석민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돈도 악튜러스의 전체 장비를 구입하기엔 한없이 모자랐다.

‘턱없이 부족해. DDD등급을 맞추려면 돈이 더 필요할 거야.’

어제 있었던 레이드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CC등급의 코어를 얻었으니까. 일반적인 코도 비스트 심장이 DDD등급 근처인 걸 감안하면 굉장한 거야. 돈으로 환산하면 600만원에서 800만원 사이는 될 걸? 그리고 공짜로 얻은 뼈랑 힘줄도 다 돈이야.’

역시나 돈을 벌려면 레이드 또는 그것 밖에는 없었다.

‘불법 경기장에 또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지난주에 우승하고 천만 원을 상금으로 탔다.

이번 주에도 찾아가 우승한다면 김두철이 약속한 2천만 원을 줄지도 모를 일.

석민은 그 2천만 원이 탐났다.

‘어쩔 수 없잖아. 멀쩡한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대신 이번엔 혼자서는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슬슬 예선전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어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는 생각보다 명확했으니까.

‘슬슬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해지고 있어. 나 혼자서는 한계가 있으니까.’

적어도 정식 경기에 나가려면 자신을 도와줄 어른이 필요했다.

아이 혼자서 정식 경기에 출전해도 될 만큼 국내 경기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여기서 차태식은 크게 도움이 되질 못했다.

‘아빠한테 손 벌리면 안 돼. 아빠는 헌터 일로 바쁠 테니까.’

그럼 누구한테 손을 벌리느냐?

석민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바로 골렘 매니지먼트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무하고 손을 잡을 수는 없는 일.

‘화장 진한 아줌마는 안 돼. 목적 자체가 악튜러스가 가진 상체 장갑이니까.’

골렘 매니지먼트 중 KRG라 하면 업계 최고였지만, 그 대표가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기에 석민은 KRG 소속은 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구슬려놔야 돼. 나와 연이 끊겼다고 생각하면 바로 나쁜 생각을 할 테니까.’

그리하여 KRG는 일단 제외.

그런데 KRG 소속사 말고는 딱히 메리트 있는 곳이 없었다.

전부 다 고만고만했다.

그러다 석민은 유독 자신에게 집착했던 후덕한 인상의 아저씨가 떠올랐다.

바로 G 매니지먼트의 강준이다.

‘아 맞다. 그 뚱뚱한 아저씨도 있었지? 그런데 G 매니지먼트면 내가 못 들어본 곳일 텐데.’

석민은 핸드폰으로 G 매니지먼트에 대해 검색해봤다.

역시나.

조그마한 블로그 같은 곳에 업체 소개 글이 있긴 했지만, 생각했던 대로 영세 매니지먼트였다.

‘역시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었어. 여긴 너무 작아.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는 힘들겠지.’

누군가는 유명한 곳과 계약하는 게 좋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석민의 생각은 달랐다.

‘잘 나가는 매니지먼트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야. 나한테 맞는 곳을 찾아야 돼.’

잘 나가는 매니지먼트의 경우 우선 지원이 빵빵했다.

그게 장점이었지만 단점이 있다면 받은 게 많은 만큼 그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계약 관계에 있어서 매니지먼트의 비율을 많이 높여준다거나 아니면 장기로 전속계약을 해줘야했다.

하지만 그런 건 석민이 싫어하는 계약이었다.

‘그런 건 노예 계약이니까. 특히나 KRG는 업계에서 악명이 자자하지.’

KRG의 경우 안 좋은 이야기가 많았다.

업체에서 비율을 너무 높게 가져간다든가 아니면 7년 장기로 노예 계약을 강요한다든가.

‘아무튼 KRG는 안 돼.’

그렇다고 너무 영세 매니지먼트와 계약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영세한 곳이니까.

‘하지만 내가 유리한 계약할 수 있어. 비율도 높일 수 있고.’

어느 것이든 다 장단점이 있었다.

석민은 KRG에서 G 매니지먼트까지의 선택지 중에서 자신이 요구하는 조건에 가장 부합할 수 있는 G 매니지먼트에 연락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곳과 계약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혹시 모르니까 만나서 얘기는 해봐야할 거 같아. 영세 업체라고 해서 막연히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생각을 마쳤을 때, 부수수한 몰골로 상체를 일으킨 차태식이 제 옆에 있던 아들을 봤다.

“아이고 우리 아들.”

장난기가 동한 차태식이 석민을 두 다리로 끌어안고 레슬링을 하기 시작했다.

간혹 있는 일이기에 석민은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들의 비명소리로 기분 좋게 일어난 차태식은 하품을 하며 석민에게 어제 일을 물어보았다.

“아들, 어제 전화가 안 되던데 무슨 일 있었어?”

“그때 게임하고 있었어. 나중에 문자했잖아.”

“평소답지 않아서 그랬지.”

“그런데 아빠.”

“응?”

“나 있잖아. 골렘 파이터 같은 거 해도 돼?”

“골렘 파이터?”

차태식도 어렸을 땐 부모한테 큰 구속을 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커왔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다른 부모처럼 아이에게 학교 공부만 강요하지 않기로 이전부터 생각해오고 있었다.

“아빠는 상관없어. 석민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알았어. 그럼 아빠가 허락한 거다?”

“석민아.”

“응?”

“세상 사는데 공부가 다가 아니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지 해. 이제 이 아빠가 엄청 잘 나갈 테니까, 네가 원하면 골렘 장비도 다 구해다 줄게.”

정말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

하지만 석민에겐 엄지가 치켜 올라가는 말이었다.

“아빠 최고.”

“하하하, 아빠는 항상 최고지.”

그렇게 기상한 두 부자는 곧바로 외출준비를 했다.

차태식은 외출하기 직전 석민에게 말했다.

“아들, 아빠 다음 주부터 헌터기초교육을 받기로 했거든? 미리 알고 있어라.”

역시나 석민이 미리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그럼 아빠도 매일 같이 헌터협회에 찾아가는 거야?”

“응 그렇지. 그게 전문직업학교랑 비슷한 건데, 과정 자체가 좀 짧긴 하더라. 원래 헌터라는 게 실습이 가장 중요한 거거든. 간단한 이론만 배우고 곧장 게이트로 실습을 나간다고 하더라고.”

“그럼 아빠도 두 달 뒤에는 헌터가 되는 거네?”

“일단 실습 좀 해보고 대충 감 잡았다 싶으면 바로 레이드를 뛸 생각이거든.”

“그래도 교육은 다 받고 가. 필요하니까 정부에서 두 달이나 가르치는 거 아니야.”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아빠 친구 알지? 걔도 2주 정도 듣고 때려 쳤다고 하더라고. 별로 들을 게 없대.”

“난 그런 거 싫은데.”

“아들, 아직도 아빠 몰라? 아빠는 스트롱 맨이야, 스트롱. 좀만 있어봐라. 건물도 때려 부수는 괴물이 될 테니까.”

농담처럼 보여도 B급 헌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석민은 차태식과 함께 밖으로 나온 뒤 곧장 등교했다.

등교한 석민은 시끄러운 아이들과 다르게 핸드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석민의 머릿속엔 온통 악튜러스 밖에 없었다.

‘녹슨 대검으론 한계가 있어. 더 좋은 무기로 바꿔줘야 돼.’

소드 임펄스 타입인 악튜러스에겐 대검이 곧 생명이었다.

대검만 좋다면야 코어가 나빠도 적을 일격에 쓰러트릴 수 있었다.

‘코어를 맞춰놨으니까 이젠 적당한 대검이 있는지 찾아보자. 좋은 대검만 있으면 어제 봤던 대형 트롤도 상대할 수 있어.’

골렘닷컴에 항상 좋은 매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급매로 나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도 있었고, 좋은 매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본래 시세보다 한참이나 떨어진 가격에 거래되는 물건들도 많았다.

이렇다보니 석민은 좋은 매물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골렘닷컴에 자주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석민은 주로 급매로 나온 물건들만 살펴봤다.

정상적인 경매에선 판매자의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항상 정상가보다 높게 가격이 책정됐다.

하지만 급매로 나올 경우 시간이 촉박하기에 정상적인 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살 가능성이 높았다.

석민은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 내 사정으론 급매로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걸 사야 돼.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야.’

여기서 석민은 아티팩트 같은 좋은 무기는 바라지도 않았다.

아티팩트 형식의 골렘 장비는 정말 구하기 힘들었으니까.

가장 싼 게 천만 원에서 비싼 건 억 단위를 가볍게 넘어갔다.

‘드워프 장인이 만든 거나 엘프들이 만든 특대검이 좋을 텐데... 아티팩트는 바라지도 않아.’

첫 수업을 위해 교실에 들어온 홍담비는 가장 먼저 결석한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 뒤 곧장 정유이와 차석민을 번갈아 쳐다봤다.

홍담비는 어제 일이 기억났다.

정유이 아버지인 정태훈이 학교까지 찾아와 자신한테 면담을 신청했다.

큰일은 아니었고, 다만 웃긴 부탁이 있었다.

“선생님, 염치없지만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사실 제 부탁은 아니고 유이 부탁이라서요.”

“그게 뭔데요?”

“그게 유이가 누구랑 같이 앉고 싶어 해서요. 선생님이 힘 좀 써주셨으면 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예?”

“그게 어찌나 저를 얼마나 들들 볶던지.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홍담비는 그 어이 없는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으니까.

“오늘 앉는 자리 좀 바꿀 게요.”

“싫어요!”

“저 여기 앉을 거예요!”

“나 안 옮길 거야!”

여기저기서 불만 많은 아이들이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홍담비의 힘은 막강했다.

“자, 바꿀게요. 영식이는 저쪽에 가서 앉고, 하영이는 이쪽으로. 그리고 유이는 석민이 옆으로 옮기렴.”

이때 유이는 싱글벙글이었고, 석민은 자리 이동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홍담비의 재량으로 석민의 옆에 앉게 된 정유이가 핸드폰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석민에게 말을 붙였다.

“석민아 안녕?”

“응 안녕.”

“지금 뭐해?”

“아니야. 아무 것도.”

유이는 석민이 무얼 하는 지 힐끗 쳐다봤다.

‘골렘닷컴?’

유이는 석민이 무얼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냥 그 옆자리에 앉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수업이 시작되고, 칠판에 무언가를 적던 홍담비는 우연히 딴 짓을 하고 있는 석민을 보게 됐다.

하지만 그때 그 사건 이후론 석민에게 찾아가 제재하진 않았다.

‘아직도 사채 빚 때문에 걱정하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때 석민은 홍담비의 예상과 다르게 눈을 반짝 빛내고 있었다.

다소 흥미로운 급매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건 뭘까?’

[HIT][급매]

[미확인 된 부러진 특대검]

등급 : ?

효율 : 37%

상태 : 매우 나쁨. 고대 골렘용 아티팩트.

등록가 : KRW 5,000,000

현재가 : KRW 5,000,000

-‘악튜러스’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 된 미확인 된 아티팩트.

-마나에 반응하며 골렘용 아티팩트로 추정 중.

-일반 감정서로는 감정 불가. A급 이상 감정서 필요.

-파손 상태가 매우 심각. 구매자 유의 바람.

어떤 식으로든 흥미로운 물건이었기에 해당 매물에 대한 댓글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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