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파이트-7화 (7/173)

#07 헌터 각성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차태식은 담배가 땡겼다.

‘아오 미치겠네.’

술과 담배 없이는 살지 못하는 인생.

술은 끊었다지만 아직 그에겐 담배가 남아 있었다.

‘요놈이 올 때가 됐는데 말이야. 온다고 해놓고 왜 이렇게 안 오냐.’

차태식은 제 친구가 문병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보통이라면 병원 내에 있는 매점을 찾아가 담배를 사겠지만, 지금 주머니 사정이 형편없었다.

아들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아들도 없으니 믿을 건 곧 문병 온다는 친구밖엔 없는 것이다.

담배가 땡기기 시작하니 메스꺼움과 어지럼증, 손떨림 등이 느껴졌다.

며칠 사이 그거 하나 안 피웠다고 금단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아오 힘들다.’

그러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기왕지사 이리 됐으니 내친 김에 금연이라도 해볼까?

‘됐어. 무슨 금연이냐. 그냥 왕창 피다가 죽어야지.’

폐암이 걸릴 때가 되면 아들은 다 컸을 테니 아들 걱정 때문에 담배를 끊는다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담배는 안 끊기로 했다.

지금은 반강제적으로 끊고 있는 상태였지만.

기다리다 지친 차태식은 병실에 있던 TV로 시선을 옮겼다.

“예, 하성아 리포터. 고대 유적지에서 또 고대 골렘이 발견됐다고요?”

차태식이 있는 8인 병실 안은 한 대의 TV가 있었는데, TV에선 뉴스 특보로 게이트 너머에서 발견 된 고대 골렘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네, 국내 정상급 헌터로 알려진 김정민 헌터가 게이트 안을 탐사하던 중 최근에 발견된 고대 유적지와 유사한 곳에서 고대 골렘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형태가 온전하다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발굴 당시 고대 골렘의 상태는 아주 양호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것으로 보이는데, 파손된 부분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전에 미국계 헌터들이 베가라는 고대 골렘을 거의 원형으로 건져내지 않았습니까?”

“네, 그 사건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골렘이 당시 유럽 신생팀에서 천만 달러나 주고 사가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번에 발견 된 골렘도 그 베가만큼이나 값어치가 있는 겁니까?”

“현재 급히 파견된 전문 조사단에선 이번 발견 된 골렘도 베가와 비슷한 종류의 고대 골렘으로 추정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못해도 베가만큼은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소견입니다.”

“혹시 그 골렘도 베가 같은 이름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스피카라고 합니다. 아티팩트인 거대한 창과 함께 발견됐는데요. 골렘이 쓰던 무기로 보이며 현재 조사단에선 아다만틴으로 주조 된 마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거 굉장한데요? 아다만틴으로 주조 된 창이라니요.”

차태식은 별 관심 없이 TV 속보를 지켜보았다.

게이트 너머에서 무언가가 또 발견된 모양이다.

어차피 저와는 관계없는 어느 별나라 이야기.

‘나도 헌터가 돼서 저런 골렘 하나 발견하고 싶다. 천만 달러면 거의 백억 아냐? 시발 부럽다 부러워.’

차태식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차태식은 억지로라도 TV 속보를 계속 이어봤다.

“김정민 헌터에게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낸 것은 한국 국방부였습니다. 현재 대전 골렘은 차세대 전략 병기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미국방부처럼 한국군도 대전 골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가격은 제시했나요?”

“아직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가격 문제로 협상이 결렬 될 경우 베가처럼 다른 나라에 팔려갈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미국과 중국에선 베가와 같은 희귀 골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고유 능력에 대한 여러 가능성 때문이죠.”

“그렇군요. 저희 헌터가 발견한 골렘을 외국에서 가져가면 안 될 텐데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 바람입니다. 하지만 선택은 김정민 헌터의 몫인지라 그 누구도 일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김정민 헌터가 가진 애국심을 한 번 기대해 봐도 되는 대목입니까?”

“그거야 김정민 헌터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로 보입니다. 적어도 가격 문제로 외국 정부나 외국 기업에 팔게 되면 국내에서 이는 비난 여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애국심?

차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김정민이라도 무조건 거액을 제시하는데다가 팔아버릴 거다.’

외국에서 제시한 금액과 한국 정부나 국내 기업에서 제시한 금액이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면 일개 헌터에게 애국심을 바랄 순 있었다.

하지만 차태식이 알고 있는 한국 정부는 생각보다 양아치였다.

예상을 해보자면 외국에서 제시한 가격에 못 미치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협상을 시도할 게 뻔했다.

그러면서 학술적 가치, 법과 애국심을 논하겠지.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관심 끄자. 알아서 하시겠지.’

TV에선 한참 동안 고대 골렘에 대한 속보를 이어가다 다른 소식을 전해왔다.

“최연소 골렘 파이터로 알려진 페트리시아 슈나이더가 오늘 낮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모친이자 한국 톱아이돌였던 이진아씨와 같이 입국했는데요, 우선 영상을 보시죠.”

차태식은 낯익은 이름에 TV속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이진아.

자기가 키워냈던 아이돌 그룹, 온니유에서 보컬을 맡았던 아는 동생이었다.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지만, 그 당시 이진아의 인기는 국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남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었다.

‘쟤가 저렇게 변했네. 외국에 시집간 건 알았는데...’

아는 동생이 잘된 일이야 좋은 일이겠지만, 형편없는 자기 꼴을 보니 그저 씁쓸하기만 했다.

‘나는 뭐냐. 나도 계집이었으면 저리 됐으려나?’

아쉬움을 쉬이 떨쳐버릴 수 없었다.

“후...”

때마침 병실 문이 열리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대낮부터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가죽 재킷의 남성.

차태식의 친구이자 헌터 강형태였다.

“야, 꼴이 말이 아니다?”

“왔냐?”

“언놈한테 쳐맞았냐. 병신 같은 놈아.”

“시끄럽고 담배는 있냐?”

강형태 성격이 본래부터 시원시원한 건 있었지만, 헌터가 된 뒤로는 그 점이 더 심해졌다.

“담배? 야 미친놈아, 헌터들은 담배 못 펴.”

“뭐? 왜?”

차태식은 처음 듣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헌터들은 다 금연했냐? 무슨 개소리야?”

“너 아무 것도 모르냐? 마나 생성에 니코틴이 진짜 쥐약이거든. 절대 피면 안 돼.”

“니가 담배를 안 폈다고?”

그러고 보니 강형태가 헌터로 각성된 뒤부터 담배 피는 모습을 못 보긴 했었다.

“예전에 너 담배 폈었잖아?”

“어 폈었지. 지금은 끊었고.”

“하, 그럼 시발 담배 없는 거냐?”

“없어 새끼야.”

“야, 담배 좀 사주라.”

그 말에 씩 웃는 강형태가 차태식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이거 보이지? 이참에 금연해라 새끼야.”

차태식은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잠시 후 그의 옆자리로 다가온 강형태가 자초지종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야, 그런데 무슨 일인데? 누구한테 맞았냐?”

“내가 사채빚이 있잖아. 개 같은 건달새끼한테 존나 맞았다.”

“병신 같은 놈. 그러니까 사채는 왜 끌어다 써가지고.”

“니 새끼가 돈 안 빌려준다며.”

“아 그땐 내가 사정이 안 됐다니까. 됐으면 빌려줬지. 오백이 나한테 그리 큰돈도 아닌데.”

“시끄럽고, 아무튼 그 새끼한테 장기까지 떼이려다가 아들놈이 만든 골렘 때문에 가까스로 살아났다. 에휴 시발.”

“뭐, 골렘?”

강형태는 차태식으로부터 그간 일을 전해 듣게 됐다.

“하, 그런 일이 있었냐? 그나저나 니 아들 참 영재다. 아버지란 새끼는 이리도 한심한데 아들놈은 또 잘났어요.”

“닥쳐 새끼야. 누군 이 지랄이 되고 싶어서 된 줄 아냐. 다 그년 때문이지.”

“또 그년 얘기냐. 이제 그만 잊어라. 어차피 다 지난 일 아니냐?”

“내가 그년만 아니었어도...”

“그래서 사채 빚은 얼마 정돈데?”

“왜? 말하면 니가 갚아주려고?”

“미쳤냐. 그냥 물어본 거다.”

“한 이삼천은 될 거다. 빌린 건 오백인데, 니도 알잖아. 사채빚이 순식간에 불어나는 거.”

“니 새끼 참 지랄 났다. 그러니 사채 빚은 왜 땡겨 써가지고.”

“시발 모르겠다. 그 돈 어떻게 갚아야할지.”

차태식은 앞날이 그저 막막했다.

당장 고물상을 굴리는 것만으로는 큰돈이 안 벌렸으니까.

“야, 니도 헌터 자질 검사나 받아봐라. 혹시 아냐? 나처럼 헌터가 될지.”

“그건 뭔 개소리냐?”

“헌터 자질만 있으면 나라에서 지원금 형식으로 돈을 빌려줘요. 그걸로 사채빚부터 막아봐. 한 5천 정도는 나라에서 그냥 빌려주니까.”

“뭐 5천? 그렇게나 많이 빌려 주냐?”

“어, 대신 헌터 자질이 있어야 돼. 나처럼 D급만 돼도 5천은 그냥 땡겨 주지.”

“됐어. 내가 무슨 헌터도 아니고.”

“야,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너 헌터협회에 가서 검사는 받아봤냐?”

“헌터 자질 검사?”

“어.”

“아니 미쳤냐. 그걸 왜 받아. 내가 헌터도 아닌데.”

“이 빙신 같은 새끼를 보소. 누가 헌터가 될지는 진짜 아무도 모르는 거다. 나 봐라. 넌 내가 헌터가 될 줄 알았냐? 나도 아무 것도 모르고 검사 받다가 헌터가 된 사람이야.”

“그거야 니 새끼 이야기고. 나는 아니에요. 우리 집안에 누구 헌터 됐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내 아들도 헌터 자질 검사는 빵점이었고. 그런데 아비인 내가 헌터라고? 지나가는 개새끼가 웃겠다.”

“그거 진짜 아무도 모르는 거라니까. 니 그리고 계속 담배 폈다며. 그거 은근히 크다?”

“무슨 담배를 폈다고 헌터 자질이 안 나타나. 그럼 담배 피는 새끼들은 다 예비 헌터냐?”

“그건 아니지만 혹시 모른다는 거지.”

“아서라 됐다. 개소리는 그쯤하고 가서 형 담배나 사와라.”

“좆까 병신새끼야. 그리고 이참에 담배나 끊고 자질 검사나 한 번 받아봐라. 형이 너한테 진지하게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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