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니 애비는 지금 어딨냐? 애비 새끼는 어디가고 새파란 애새끼가 카운터에 앉아 있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종합 고물상.
폐기물 종합재활용 업체로 차원게이트가 열린 후로는 몬스터 부속물도 받고 있었다.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쓰레기 더미 위엔 수많은 고물과 고철들이 있었다.
가게 간판에 걸린 이름은 석민고물상.
평소에도 술만 달고 사는 가게 주인이 아들의 이름을 가져와 지었단다.
“술 마시러 가셨겠죠. 저도 잘 몰라요.”
카운터 옆 천장엔 때 묻은 달력과 낡은 선풍기가 걸려 있었다.
건달은 오만 잡동사니가 싸인 고물상 안을 둘러보며 다시 꼬마를 찾았다.
“그런데 어린놈의 새끼가 학교나 갈 것이지 여기서 뭐하는 짓이냐?”
석민은 일하러 간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찍 하교하여 가게의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건달은 제 옆에 있던 고장 난 선풍기를 힘껏 걷어찼다.
가게 주인이 떼먹은 돈이 생각난 모양이다.
꼬마는 건달의 위협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돌하기까지 했다.
“학교 끝났어요. 그리고 아빠 대신해서 제가 카운터를 보고 있어요.”
“아니 그러니까 애새끼가 왜 카운터를 보고 있냐고. 밖에 나가 애들하고 놀 것이지.”
“제 이름으로 된 가게니까요.”
건달의 입술 사이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 니 가게? 이거 당돌한 놈일세.”
한참을 실실 웃던 건달이 근처에 있던 빨간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석민이 건달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 가실 거예요?”
“그냥 가면 쓰나? 온 김에 니 애비 얼굴은 보고 가야지.”
“그러세요.”
석민은 그가 찾아오면서 잠시 꺼 두었던 비디오 게임기, 젝스박스를 다시 실행시켰다.
멈춰 있던 두 인영이 다시 거칠 게 격돌한다.
석민이 하고 있는 게임은 길거리 파이터란 게임으로, 일대일 대전격투게임이었다.
세 번의 KO.
이어 파죽지세로 치고나가는 석민의 아바타를 본 건달이 한 마디 했다.
“새끼, 잘 하네? 나도 이 게임 아는데 이거 존나 어렵잖아. 이거 막보스까지 깬 사람 아무도 없지 않냐?”
“전 깨봤어요. 아저씨도 한 번 해보실래요?”
“뭐? 막보스를 깼다고?”
“네. 생각보다 쉬워요. 공격 패턴이 26가지 정도 되는데, 그것만 유의하시면 돼요.”
“26가지? 그렇게 많았었냐?”
“그래서 다들 어렵다고 하나 봐요. 하지만 저한테는 다 보이던데요? 그보다 아저씨도 한 번 해보실래요?”
“됐어 새끼야.”
해보고 싶었다.
다만 자기가 감당 못할 레벨이라 물렸던 것.
아마 대신 패드를 잡았다면 3초도 못 돼서 KO 당했을 것이다.
물론 적이 아니라 자기가 조종하는 아바타 이야기다.
‘시발 애새끼한테 무시당하게 생겼네. 새끼, 게임은 존나게 잘해요. 하긴 이런 건 애들이 잘한다지. 나 같은 놈들은 머리가 굳어서 안 돼.’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건달이 급히 TV리모컨을 찾았다.
그가 게임기와 연결 된 외부입력을 끄고 다짜고짜 채널을 돌렸다.
중요한 순간에 게임이 꺼진 석민은 기분이 상했지만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건달이 찾은 채널에선 백만 관중의 함성과 함께 개조된 두 골렘이 거칠게 격돌하고 있었다.
때는 2030년.
차원 게이트가 열리고 새 시대가 열리자 인류는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냈다.
한계를 벗어난 무지막지한 골렘들의 결전!
골렘 파이트다.
“막시무스! 파죽지세의 막시무스가 전년도 챔피언인 로스탱을 꺾었습니다!”
와아아아!
함성이 요란한 초대형 실내경기장.
광채가 번뜩이는 대전골렘 막시무시가 피스톤 팔을 요란하게 움직여대며 우승을 자축하였다.
“이번년도 세계 챔피언은 불패의 저승사자, 막시무스입니다!”
막시무스! 막시무스!
경기장의 관중들은 광신도마냥 막시무스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었다.
고물 티비로 넘어오는 그 함성소리를 듣자마자 건달의 얼굴은 아주 적나라하게 일그러졌다.
‘시발 로스탱이 졌다고? 제철이가 로스탱이 무조건 이긴다고 했었는데.’
챔피언 로스탱이 이길 줄 알고 불법 사설 토토에서 로스탱에게 배팅한 건달은 속이 뒤집어졌다.
“시발... 내 돈....”
같이 경기를 지켜보던 석민이 눈을 반짝 빛냈다.
“지금 막시무스가 달고 나온 암가드, 저거 개량형 산탄 피스톨이네요. 저거 미군에서도 쓰는 최신 장비일 텐데. 쓰기에 따라선 순간 가속도 된다고 들었어요.”
석민이 아는 척 말을 꺼내자 건달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들었냐?”
“이번에 막시무스가 트리플 코어로 업그레이드 했다죠. 그거 돈 엄청 들어갔을 텐데...”
말함과 동시에 석민이 구석에 있던 잡지를 가리켜주었다.
낡은 물건만 잔뜩 쌓여있는 고물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최신 잡지였다.
표지엔 철갑을 덧씌운 골렘이 나와 있었고, ‘막시무스, 사냥에 나서다.’라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었다.
“아빠한테 용돈 받은 걸로 샀어요. 최신예 골렘 정보는 어지간하면 저기 뉴월드에 나와 있어요.”
뉴월드는 세계 85개국에서 발행되는 최강의 글로벌 골렘 매거진이다.
석민이 가리키는 곳엔 뉴월드 매거진이 하나도 아니고 주간 별로 쌓여 있었다.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너처럼 잡지 좀 볼 걸 그랬다. 로스탱이 저리 개쳐발릴 줄은...”
“아저씨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로스탱에 올인 하신 거예요?”
다 큰 어른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아이에게 한 소리 듣게 생겼다.
“인터넷만 찾아보셔도 로스탱이 불리하단 거 충분히 아셨을 텐데...”
“내가 제철이 이 새끼를 죽여 버려야지.”
“하지만 골렘 스펙이 전부가 아니긴 해요.”
“뭐?”
“골렘과 링크된 골렘 파이터의 자질도 중요하죠. 로스탱이 막시무스보다 스펙 상 많이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듀얼 코어에 출력은 넉넉하니 한 방은 있었을 거예요. 그 한 방을 못 먹여서 문제였지만.”
“시발놈이 존나 잘 아네. 애새끼가 그런 건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거냐?”
“전부 뉴월드에서 읽었어요. 저도 잘 몰라요. 저 같은 새파란 애가 뭘 알겠어요.”
건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두 시간은 죽치고 앉아 있으려고 했지만 벌써부터 술이 땡겼다.
가서 깡소주나 까야겠다.
“가시게요?”
건달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석민이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아버지에겐 이미 문자를 넣어 여기까지 찾아올 일은 없겠지만, 가게를 혼자 지키는 석민이에겐 입이 거친 건달조차 자신의 무료함을 달래줄 말동무였으니까.
“간다. 그리고 니 애비한테 꼭 전해라. 다음 주 금요일까지 빌린 돈 못 갚으면 살아서 숨 쉴 생각하지 말라고. 알아들었냐?”
“네, 꼭 전해드릴게요.”
“새끼, 귀엽네.”
석민이의 볼을 매만지던 건달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소 껄렁한 자세로 고물상을 벗어났다.
가게 밖까지 나가 떠나가는 건달을 확인한 석민은 곧바로 아빠한테 문자를 넣었다.
[아빠, 하정우 건달 아저씨 갔어요. 이제 오셔도 돼요.]
답장은 30분 정도 늦게 왔다.
[알아다]
아무래도 술을 드신 모양이다.
오타가 그 증거였다.
‘그런데 아빠가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건달 아저씨한테 맞으면 아플 텐데...’
석민은 문득 그런 걱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