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53화 (353/354)

353. 아름다운 섬

-제주도. 정말 아름다운 섬이군요!

-아시아의 보석이라는 표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날씨 중에 가장 골프 치기 좋은 가을이라서 하늘도 높고 푸르며 공기도 아주 신선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도 이 좋은 곳에 와서 현장 중계를 하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 요즘 전 세계인들이 한 번은 꼭 오고 싶은 곳이 바로 코리아라고 하더군요!

-네. 전 겨우 며칠 돌아봤는데, 서울도 아닌 일개 섬에 놀라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폭스 스포츠 중계진이 실황 중계를 위해 제주도에 왔다.

제법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반도 남쪽의 작은 섬은 그들의 기대를 한참 넘어섰다.

훌륭한 풍광은 물론 자연친화적인 골프코스도 놀라웠고 자연과 어우러진 도시는 깨끗하고 초현대적이었으며 특히나 첨단 인터넷 환경은 서울도 아닌데 뉴욕보다 훨씬 좋았다.

5G가 한국처럼 빠르게 자리를 잡은 나라는 없다.

특히나 중계방송 환경까지 최고였고 음식을 먹으러 식당을 갈 때는 기대가 넘칠 만큼 행복했다.

-원하는 물건을 인터넷이나 웹으로 주문하면 섬인 제주도에도 다음 날이면 호텔까지 가져다준다는 게 말이 되나요?

-하하하! 서울은 그날 바로 가져다준답니다. 인터넷 설치는 2시간 만에 해 준다고도 하더군요. 보통 선진국들도 일주일은 걸리는데 하루만 늦어도 바로 성화를 부리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감당하는 기업 시스템, 한국의 높은 경쟁력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제 바빠서 늦게 피자를 먹으러 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인들의 열정은 정말 말이 필요 없더군요. 미국은 물론 이태리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토핑, 그건 제게 충격이자 환상이었어요!

미처 한국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무서운 속도로 세계의 중심에 확고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다.

묘하게도 일본의 몰락과 맞물리면서 더욱 부각된 면이 없지 않지만 한국의 높은 기술력과 현명하고 당당한 판단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인정받고 있으며 고도성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들의 표본이 되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경제위기는 근거가 없는 바 아니지만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권력자들의 발악에 불과한 것이다.

민족의 기운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시점에 제 발목을 잡고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퇴행적인 행보가 깨인 시민들에 의해 분쇄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다만 지나치게 대기업 위주로 부가 편중되고 있는 점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개선해야 할 사안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140명 중에 언더파는 단 세 명!]

[평균 타수 76.4. 보기와 다른 난코스.]

연습 라운드 때도 다들 어려움을 표했다.

하지만 좋은 잔디와 멋진 레이아웃에 적응하면 얼마든지 좋은 스코어가 나올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TPK 제주CC는 악명을 떨쳤다. 평지가 거의 없고 좁은 페어웨이는 한국형 코스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게다가 마운틴 브레이크의 착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재적소의 함정은 필상마저도 이븐파에 그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오늘 경기에 대해 자평을 좀 해 주시죠?

“공동 4위지만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은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11번 홀의 더블보기는 제 교만함에서 비롯된 사고였습니다.”

535야드 파 5홀은 필상에게 어렵지 않은 이글 온이 가능한 거리다. 하지만 티샷이 좌로 기운 페어웨이 탓에 러프로 기어들어 갔고 거기서 벼랑을 넘어가는 샷을 날렸는데 짧았다.

언덕에 맞고 해저드로 빠지고 말아 규정에 따라 드롭하고 때린 4번째 샷이 한국형 잔디의 질김을 이기지 못해 벙커에 들어간 것은 실수가 실수를 부른 참사였다.

양잔디는 찍어 치고 한국형 잔디는 부드럽게 밀어 치라고 하지만 질긴 러프의 억셈은 마치 뒤땅을 때린 것처럼 터무니없는 비거리를 내기도 한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 외에도 보기를 3개나 기록한 점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부분이었다. 스윙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문제로 산만한 경기 운영을 했던 점도 부인하기 어려웠다.

‘전 미국으로 먼저 건너갈게요.’

“괜찮겠어?”

‘그럼요, 어머님이랑 둘째 언니도 같이 갈 건데요, 뭘!’

필상이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모모코는 고향집으로 향했다. 수미랑 떨어져 지낸 시간이 제법 길어 필상의 곁을 지킬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과 의논해 같이 미국으로 건너간다는 말을 듣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둘째를 낳으라는 말은 쑥 들어갔고 모모코의 투어 성공을 위해 다들 협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저택을 마련해 뒀기 때문에 지내는 것이 훨씬 수월하겠지만 자신이 비운 자리를 메우기 위해 캐디 외에 수행할 인원을 충원해 달라고 이 대표에게 당부까지 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어허! 단독 선두께서 어찌 이 누추한 곳을 행차하셨나?”

“왜요? 긴장되십니까?”

“매를 부르네! 매를!”

“아이고! 밥이나 사 주세요.”

흑돈 성호가 1라운드 3언더를 치며 단독 선두로 나섰다. 그동안 코리안 투어 2승을 거두며 확실한 인지도까지 얻었기 때문에 필상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함께 연습하며 확인한 바로도 절대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도발에는 그저 주먹이 최고였다.

“필 형은 가까운 일본에 있으면서 왜 안 오신 거죠?”

“지은 죄를 갚느라!”

“죄를 짓다니요?”

필상을 위해 나섰다가 오버하는 바람에 된서리를 맞았다.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일본인의 국민성을 암살자, 닌자에 비교한 것은 과도했다. 일본에서 사업하는 그로서는 바로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지만 이반된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일본 남자 투어에 쫓아다니며 분위기 쇄신에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 김성호

-3 문경준, 이수민

-2 안병훈, 타이거 우즈

-1 공필상, 로리 맥길로이, 카메론 챔프, 헨릭 스텐손

예선 2라운드를 마친 결과 대이변이 나타났다.

한국에서 펼쳐진 대회라서 한국 선수들의 쿼터에 배려를 했다지만 그래도 140명 중에서 한국 선수는 26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언더파를 친 10명의 선수 중에 절반이 한국 선수였고 최상위권은 모두 한국 이름이 휩쓸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스의 유리함 때문이며 결선에 오르면 변동이 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필상의 생각은 달랐다.

“개장한 지 2달이 채 되지 않은 코스입니다. 리노베이션 이후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코스가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적인 취향에 맞는 코스인 까닭에 순위 변동은 거의 미미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72명이 출전한 본선은 아주 치열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은 허망하게 무너졌고 필상의 예언이 들어맞고 말았다. 물론 필상도 조금 더 치고 올라갔으나 함정우 프로가 이날 -7을 때리며 코스 레코드를 갱신했다.

-8 김성호

-4 문경준, 안병훈, 공필상

-3 이수민, 함정우, 타이거 우즈, 로리 맥길로이

-2 카메론 챔프, 제이슨 데이 외 2명

8위 안에 한국 선수가 무려 6명이나 포진되었고 4타 차 단독 선두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노리는 흑돈과 우승 경쟁을 할 선수는 한국 선수뿐이었다.

급기야 전문가들의 입에서 한국 남자 골프의 무서운 저력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필상이 PGA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고비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제자와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기분이 어떻습니까?

“제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김 프로는 저보다 훨씬 일찍 골프를 시작했고 그가 자신의 재능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권했을 뿐입니다.”

-여하튼 프로 투어를 포기했던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사실이지 않나요? 혹시 후회는 하지 않습니까?

“후회라니요! 저 또한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관계는 승부와 무관하게 이어질 겁니다. 물론 저도 최선을 다해 역전 우승을 노릴 겁니다.”

-챔피언 조에서 경기하지 못한 경우는 처음이신데, 내일 특별한 전략이 있다면 소개 좀 해 주시죠.

“특별한 전략이랄 건 없고 한 샷 한 샷 집중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토록 노력하겠습니다.”

특별한 전략이랄 게 있을 수 없다.

쓸데없는 도발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높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고도 우승하지 못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나마 아쉬운 것은 흑돈과 함께 경기를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에게 다행일 수 있으나 경기 외적인 부분으로 이기는 것 또한 기껍지는 않기 때문에 차라리 잘됐다.

20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이 걸린 WGC HSBC챔피언십 최종 라운드가 시작된 날, 제주도를 상징하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 것은 필상에게 불리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경기는 막상막하, 난전으로 이어졌다.

-와우! 저 바람을 그냥 뚫어 버리네요!

-한국 선수들만 살 판 난 것 같습니다. 경험이 많은 스텐손 같은 선수들도 우르르 무너지는데, 한국 선수들은 마치 바람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면 최경주 프로, 양용은 프로도 유난히 어려운 코스에서 강력했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그 위력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하네요.

이 대회는 PGA투어에서도 비중이 높아 전 세계 많은 골프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도 눈에 띄지만 더 주목을 받은 것은 필상의 우승을 저지할 실력을 갖춘 한국 선수들이 많다는 거였다.

특히나 바람이 거센 마지막 날, 과감한 스윙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그를 받쳐 주는 기량에 대해 전문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 남자 골프도 여자 골프처럼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것이라는 분석이 줄을 이었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좀 아쉽네.”

“그러게요. 그린이 너무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하하하! 나한테만 그랬던 것은 아니니까 할 말은 없지.”

필상은 이날 드라이브를 가급적 잡지 않고 정확한 샷을 구사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버디를 잡을 기회를 수없이 맞이했지만 퍼팅이 따라 주지 못했다.

안 그래도 빠른 그린 스피드에 바람까지 영향을 미치며 아깝게 놓친 퍼팅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5언더를 기록하며 -9로 단독 2위로 경기를 마쳤다.

그러나 문제는 단독 선두인 흑돈이 침착하게 타수를 잃지 않는 가운데 3타를 줄여 -11까지 만들고 18번 홀에 들어섰다는 점이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연속해서 -3, -3, -2를 기록하더니 날씨가 심상치 않은 오늘도 3타나 줄였습니다.

-기량이 튼실하고 배포 또한 대단한 선수라는 거죠. 쉬운 홀은 아니지만 18번 홀에서 파를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미스터 퍼펙트의 우승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고국에 돌아와서 연승 기록을 놓치다니! 참 골프 흥미로운 스포츠입니다. 하하하!

최근 필상은 패배를 몰랐다.

오로지 한 명만 영예를 안는 종목이기 때문에 주인공보다 기억되지 못하는 선수들이 훨씬 많은 스포츠가 골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상은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거머쥐면서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왜 현존하는 최고의 선수이자 전설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 한국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연승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어?”

필상은 18번 홀 그린 근처에 대기했다.

플레이오프를 기대하며 연습하기에는 흑돈과의 타수 차가 컸고 녀석의 기세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승을 축하하려고 서 있었는데, 티샷 미스가 나오고 말았다.

나름 안전하게 공략하려고 5번 우드를 잡은 것까지는 나무랄 게 없었다. 하지만 방향성만 신경 쓴 우드 샷이 확 감기며 러프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함께 서 있던 미사키가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지만 그게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았다.

흑돈은 세컨샷도 안전하게 공략했다.

러프에서 무리하게 온 그린을 노릴 이유가 없었던 흑돈은 남은 거리 187야드를 7번 아이언으로 그린 앞까지 보냈다.

“저 인간, 너무 약았어요!”

“하하하! 당연하지. 3온 2퍼팅만 해도 되는데, 뭐 하러 무리를 하겠어. 우승하면 올 겨울에 결혼식 올려야지?”

“그건 그렇지만…….”

미사키와 흑돈은 이미 약혼했다.

이번 겨울에 결혼하기로 작정했지만 아직 날은 잡지 않았는데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미 굵직한 스폰서, 퍼펙트와 후원 계약을 맺어 살림집까지 구해 놨기 때문에 아주 좋은 결혼 선물까지 받는 셈이었다.

흑돈의 성격상 결혼하면 훨씬 안정적인 투어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정말 축하해 줄 일이었다. 하지만 미사키는 자신의 역할과 연인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연인을 응원하는 거야!”

“그래도…….”

“그게 날 위해서도 바람직해. 성호는 내 동생이잖아.”

“고마워요. 프로님.”

그렇게 교통정리까지 해 줬건만 25야드 칩샷이 말썽을 부렸다. 그 중요한 순간에 뒤땅을 때려 겨우 에이프런에 보내고 말았다.

“걱정 말고 웃어 줘.”

“저 인간이 미쳤나 봐요! 저런 실수를!”

“하하하! 그래. 독한 모습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린에 올라서던 흑돈의 시선이 필상과 미사키에게로 향했다. 이미 자신의 어이없는 실수 때문에 얼굴이 벌겠다.

미사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손까지 치켜드는 모습을 보고서야 목을 움찔했지만 필상은 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2퍼팅만 하면 되는데 제가 왜 이렇게 불안하죠?

-그에게는 정말 많은 것이 걸린 우승이기 때문일 겁니다. PGA 투어가 한국에서 열려 단번에 시드까지 얻을 수 있는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거든요. 떨릴 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71개 홀을 지나며 그렇게 당당하던 선수인데, 그러고 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응원까지 하는 미스터 퍼펙트는 정말 대단한 선수가 분명하네요.

겉모습만으로도 흐뭇했지만 알고 보면 더 큰 선물을 보냈다. 필상은 꽤 떨어진 곳에 서 있었지만 흑돈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정순한 기운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 결과 빠른 스피드를 지닌 11야드 퍼팅을 구겨 넣고야 말았다. 파를 기록하며 WGC 챔피언십을 거머쥔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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