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51화 (351/354)

351. 삶의 전부

페덱스 컵 포인트 1위로 10언더를 안고 대회에 나섰다.

그런데 사흘 동안 꾸준히 -8, -8, -9를 기록한 필상은 결국 -35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에 이르렀고 무려 14타 차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우승에 대한 의심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현격한 차이 때문에 대회 흥행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는 전문가들까지 나왔다.

하지만 기우였다.

마지막 날 이스트레이크 골프클럽은 역대 최대 갤러리 입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너무 많은 관중을 받아 코스의 손상이 우려되었지만 골프장 측은 그 피해를 감수하고 현장에서 만 명의 갤러리를 더 받았다.

-역대 프로 스포츠 관중 입장 최고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죠?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장인 바르셀로나의 ‘캄프누’는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골프코스가 아무리 넓어도 입장객이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하하하!

이날 무려 4만 5천 명이 입장했다.

그런데도 축구 경기장의 규모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물론 보다 계획적인 대비를 한다면 추후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명문 골프클럽의 규모는 감히 축구장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설자의 오류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장은 스페인이 아니라 평양에 건설된 능라도 경기장으로 무려 15만 명까지 입장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스터의 최종 성적이 어느 정도나 될까요?

-적어도 40언더는 넉넉할 것 같습니다. -10을 안고 갔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3라운드까지 무려 25언더를 기록했기 때문에 9타를 줄이면 자신이 기록한 33언더로 깰 수 있습니다.

-2위가 -21인데, 너무 차이가 나서 좀 싱거운 것 같아요.

-하하하! 우리가 전설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죠! 마스터의 다음 목표는 대체 뭘까요?

-최저 타수 기록들도 모두 휩쓸었고 장타 부문도 마찬가지고 남은 것이 있다면 자신이 세운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올 시즌 메이저 대회 4개를 포함해 9승을 거뒀는데, 그보다 더 많은 승수를 쌓는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당연하죠! 마스터는 올 시즌 개최된 대회의 4분의 1밖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대회 수가 많아질 경우, 그의 믿기 힘든 우승 확률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15승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타이거 우즈는 전성기였던 2000년 시즌 9승을 거뒀다.

하지만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필상은 가볍게 그 기록을 넘어선다. 때문에 시즌 최다승 기록은 이미 필상의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아쉽다면 이게 시즌 최종전이라는 것일 뿐.

장타에 정교함까지 갖췄기에 여러 통계에 필상의 이름이 올랐으나 그런 세세한 기록들은 큰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왜냐면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는 파격적이며 전설적인 기록을 이미 세웠기 때문이다.

그것과 비견될 만큼 굵직한 기록 중에 남은 것을 굳이 찾자면 바로 시즌 최다승 기록을 갱신하는 것뿐이었다.

도널드 해설은 그 기준을 시즌 15승으로 잡은 것이다. 필상의 생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까앙!

1번 홀 티샷은 분명히 잘 맞았다.

하지만 타구는 기이한 드로우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다행히 좌측 숲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제법 깊은 러프에 들어가고 말았다. 첫 티샷이기에 팬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누구든 몸이 풀리지 않으면 약간의 실수는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필상은 오전 내내 자신의 스윙을 꼼꼼하게 점검한 뒤였다. 전혀 의도치 않았던 구질이 나온 까닭은 드라이버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걸 티낼 수는 없었다.

지난주에 이벤트까지 열면서 퍼펙트 홍보에 성공했는데, 그걸 고스란히 까먹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죠?”

“하하하! 어쩌긴! 전략을 바꾸면 되지!”

2번 홀부터 필상은 유틸리티와 아이언으로 티샷을 했다. 드라이버에 문제가 생긴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장타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465야드 파 4홀인데, 왜 드라이버를 들지 않는 거죠?

-그러게 말입니다. 혹시 클럽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저도 마스터가 사용하는 퍼펙트 클럽을 휘둘러 봤는데, 아주 가볍고 좋던데요!

-가벼운 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무겁다고 좋은 것도 아니지만 연습은 하지 않고 클럽만 원망하는 아마추어들에게는 신선한 느낌이 있었나 보군요.

-허허! 그 말씀에 반박하기는 어렵지만 마스터와 그의 장인들이 제 스윙을 분석한 뒤에 내놓은 결과였습니다. 스윙을 바꿀 여유나 마음이 없다면 보다 편안하게 치면서 즐기라고 권하는데, 전 그게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추어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그거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는 좋은 스윙을 위해 부단히 정진해야 하지만 10년 이상 골프를 쳐 보기 플레이어 이상이 되었다면 스윙을 자꾸 바꾸기보다는 자신의 스윙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골프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

매일 연습하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도 오전과 저녁의 스윙이 달라지는데, 기껏해야 1주일에 1번도 치기 힘든 아마추어가 어떻게 스윙의 일관성을 가져갈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늘 최고의 샷만 고집하지 말고 최악의 샷이 나오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라운드는 악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와우! 지금 유틸리티로 친 거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

드라이버 클럽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왜냐면 19도 유틸리티로 311야드를 날렸기 때문이다.

힘껏 때려도 드라이버로 300야드를 보내지 못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파워가 좋은 선수들은 3번 우드로도 300야드를 가볍게 넘기곤 한다.

하지만 페어웨이 우드도 아닌 유틸리티로, 그것도 실전 경기에서 예상을 벗어난 장타력을 선보이자 반응은 각별했다.

이미 우승은 확정지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필상이 팬들을 위해 새로운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갤러리들 사이에 끼어 경기를 직관하고 있는 모모코와 이 대표는 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오빠는 앞으로 클럽 사용 횟수를 체크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게. 한 클럽을 1년 넘게 쓰는 프로들도 있는데 도저히 저 파워를 견딜 수가 없나 봐.”

“힘이 좋긴 하죠. 흐흐흐.”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모코의 눈가에 옅은 흥분이 스쳤다.

그걸 보고 있는 이 대표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155야드를 피칭으로 가볍게 핀에 붙인 필상은 드라이버 없이도 거뜬히 버디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남은 홀도 대부분 유틸리티나 롱 아이언으로 티샷을 하며 완벽한 페어웨이 적중률을 기록했다.

워낙 거리가 빵빵해 레귤러 온을 놓치는 경우가 없었다. 장타가 없어도 얼마든지 언더파를 작성할 수 있다는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1500만 달러! 역시 마스터의 품으로!]

[16타 차의 완벽한 우승! 캘린더 그랜드슬램에 이어 페덱스 컵까지! 이보다 완벽한 시즌이 또 있을까?]

[시즌 10승 달성! 현대 골프 최고의 개가!]

필상의 우승 기사는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언론을 탔다.

이미 우승은 확정적이었기에 마지막 숫자 하나만 남겼던 기사들까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PGA 최종전이 끝을 맺었다.

대회전에 파격적인 인터뷰로 골프계를 흔들어 놓더니 우승 인터뷰에서는 또 다른 기대와 희망을 남겼는데, 그 첫 마디부터 사람들을 전율케 했다.

“페덱스 우승 상금 전액을 선수노조 결성을 위한 기금으로 출연하겠습니다.”

-1500만 달러 전액을 말입니까?

“이게 다 열렬히 응원해 주시고 또 함께 어려운 길을 가는 동료들 덕분에 얻은 것이니 아까울 것도 없습니다. 부디 좋은 결실을 맺어 골프를 삶의 전부라고 여기는 동료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혹시 노조가 결성되면 선도적인 역할을 하실 생각입니까?

“그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워낙 벌인 일이 많아서 그러기는 힘들 것 같고 물심양면으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선을 분명히 그었다.

뜻을 같이할 수는 있지만 시간을 쪼갤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벌인 사업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시즌을 보내셨는데, 이후 마음에 두신 목표가 있으시다면 밝혀 주시겠습니까?

“PGA 15승. 그리고 코리안 투어 2승, 유러피언 투어와 JGTO에서 각기 1승 이상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대충 계산해 봐도 19승을 거두겠다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1년은 52주다.

매주 대회를 나갈 수는 없을 테고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면 대략 40개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2번에 1번꼴로 우승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필상의 우승 확률은 90%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화제로 또다시 골프계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 수없이 많은 격론이 오갈 것이다.

* * *

샌디에이고에 저택을 샀다.

상금과 스폰서 보너스, 그리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광고 모델료로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워낙 많았다. 하지만 가급적 미국에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에 아끼지 않았다.

투자 가치까지 고려했고 안정적인 자산 운용을 위해서도 좋다는 의견이 있어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구입하게 되었다.

대지가 넓어 저택 내에 골프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고 전용 해변까지 조성해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안락한 휴식처로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 좋은 집을 사고도 정신없이 바빴다.

오프시즌에 다음 시즌을 위한 확고한 대비를 해 둬야 투어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TPK 미국 진출을 본격화할 때가 된 것 같아.”

“이미 후보지는 확보된 거죠?”

“응. 뉴욕 인근 롱 아일랜드에 3개, 마이애미에 3개, 그리고 LA 인근에 3개를 염두에 두고 있어.”

“9개나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요?”

“그나마 줄이고 줄인 거야. 미국에서는 아시아와는 차별된 전략을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제가 일전에 말했던 고가 전략 말입니까?”

“응. 내가 조사한 바로도 미국은 골프 저변이 워낙 넓어 저가 정책으로는 승부가 날 수 없더라고!”

“그렇다면 아예 타이거에게 리노베이션을 맡겨 최고의 명문 코스로 만들죠!”

어차피 매수 대상 중에서 고르고 고른 좋은 코스들이다.

하지만 매각을 결정할 만한 문제가 있기에 인수를 받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대안 없이 재 오픈을 할 수는 없다.

타이거가 아직은 은퇴 의사가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이번 일을 맡게 되면 내년 시즌 복귀는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큰 책임을 맡기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일이고 필상이 있는 한, 화려한 복귀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필상은 아직 투어를 뛰어야만 할 입장이고 무엇을 하든 프로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미뤄 둘 수가 없다. 그로 인해 타이거에게는 더 부담스럽지만 그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퍼펙트도 동남아에 생산 시설을 짓는 거 어때?”

“그건 안 됩니다. 비용이 비싸도 국내 인력을 써 확실한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 낫습니다. 비용 절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품질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기 때문이죠.”

“그래. 조금 비싸더라도 그게 낫지.”

퍼펙트는 아직 제 궤도에 올랐다고 볼 수 없다.

일단 붐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안정적인 수요가 보장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사용자들이 만족해 재 구매를 결정할 정도의 사이클이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 * *

[아시안 챔피언십 우승!]

나이키가 주관한 아시안 컵 최종전이 TPK 서해안 CC에서 개최되었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출전한 필상은 첫날 다소 부진했지만 둘째 날부터 치고 올라가더니 3라운드에서는 급기야 단독 선두에 올랐고 결국 18언더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겨울을 앞두고 있기에 아시아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필상은 태국을 거쳐 샌디에이고로 돌아왔고 모모코, 봄과 함께 2주간의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이미 PGA 투어는 개막했지만 3주를 거른 필상은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조조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일본에 오셨는데,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내와 함께 처가도 방문하고 지인들도 만날 것이며 미켈슨이 성공리에 추진 중인 일본에 저희 TPK 사업도 두루 둘러볼 생각입니다.”

대회에 참가하는 각오를 부탁했는데, 필상의 대답은 동문서답이었다. 어차피 조조 챔피언십 우승은 어렵지 않다는 의미였는데, 몇몇 기자는 그걸 물고 늘어졌다.

-너무 교만한 것 아닌가요? 쟁쟁한 프로들 14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인데, 그러다 우승하지 못하면 어쩌죠?

“미켈슨이 운용하는 레슨 프로그램에 많은 프로들이 동참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라도 코칭은 필수이며 겸손한 자세로 배우는 모습이야말로 일본 골프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쟁쟁한 프로들’이라는 표현은 또 다시 씹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 아무리 잘나가도 PGA에만 오면 절절 매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에게는 덤빌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이 아시아에서는 최고라고 허풍을 떠는 모습이 더는 먹히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기도 했다.

그게 어디 골프뿐이던가!

필상을 평가절하하고 호도하다가 결국 KPGA만 크게 성장했고 투어의 흥행까지 말아먹어 놓고도 아직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그래도 확고한 필상의 위상을 건드리는 것은 조심스러웠는지 이전처럼 대놓고 소설을 쓰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잔인한 킬러! 미스터 퍼펙트. 저 홀로 -7!]

주최 측은 보란 듯이 일본을 대표하는 세 명의 선수와 필상을 1라운드에 매치시켰다. 그래도 세계 랭킹 100위 안에 드는 몇 안 되는 선수들이지만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3명 모두 오버파를 기록하며 예선 통과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무참히 깨졌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필상더러 잔인하다는 표현을 쓴 것부터가 일본다운 짓이 아닐 수 없었다.

둘째 날은 7시 두 번째 티오프로 배정하면서 매너가 나쁜 서구 출신 선수들을 매치시키면서 또 다시 흠집을 내려 했다.

그러나 딜런이 실격을 당한 이후, 필상에게 덤비는 멍청한 작자는 나오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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