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46화 (346/354)

346. 여신(女神)

한 번 흔들린 롱 샷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모모코는 무빙 데이에 -7을 기록했다.

마지막 4개 홀에서 2타만 더 줄이면 좋았겠으나 아무리 숏 게임이 정교하고 퍼팅이 날카로워도 좌우로 빗나간 샷으로 버디를 잡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마지막 홀에서 감을 잡은 듯, 147야드를 8번 아이언으로 컨트롤해 버디까지 연결한 것은 고무적이었다.

웬만큼 골프를 아는 팬이라면 이날 모모코가 얼마나 힘겨운 라운드를 했는지 이해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7타를 줄인 것은 실력보다 집념의 산물이라 할 만 했다.

[54홀 -21. 노보기 플레이.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 278야드]

셋째 날 아이언이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다른 수치는 급격히 떨어졌다. 하지만 장타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것과 공동 2위와의 격차를 10타로 벌린 것은 찬사를 받을 만했다.

주말을 맞아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빅 매치가 열렸고 같은 기간 PGA 대회도 열리고 있었지만 스포츠 지면의 헤드라인은 대부분 모모코의 멋들어진 스윙이 차지했다.

이제 곧 일본과 한국 골프의 여신을 넘어서 전 세계 여자 골프의 여신으로 추앙받을 것 같은 파격적인 추세였다.

“왜 그래?”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모모코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그녀가 샤워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수미랑 통화했어요.”

“한국은 지금 아침 8시잖아?”

“밤새 엄마 보고 싶다고 칭얼댔대요.”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어린애가 보채도 지금 모모코의 상황은 굉장히 중요하다. 물론 아이보다 우선인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엄마나 누나들이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모모코와 통화를 시켜 얼을 빼놓은 것이다. 당장이라도 전화해 한바탕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사람은 모모코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연습은 접고 그녀와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잘 달래 일단 샤워부터 하게 만든 필상은 그녀가 없는 틈을 타 이 대표와 통화를 했다.

“정말 그래도 돼?”

“힘드시겠지만 부탁 좀 드릴게요.”

“알았어. 바로 조치할 게.”

그리고 큰누나에게는 문자를 한 통 남겼다.

이후 전화기가 불이 났지만 필상은 아예 전원을 꺼 버렸다.

엄마도 누나들도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헌신한 사실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모모코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은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대표더러 수미를 데리고 미국으로 오라고 부탁했다.

전문적이고 사람 좋은 보모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나 이렇게 된 마당에 아이와 장기간 떨어져 지내는 것도 해결해야만 할 과제였다.

“제 핸드폰 못 봤어요?”

“못 봤는데.”

못 보기는!

필상이 전원을 끄고 감췄다. 자신과 통화가 되지 않으면 분명 모모코를 닦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샤워하고 한결 편안해진 모모코를 데리고 필상은 외식을 했다. 연습도 중요하지만 지금 더 시급한 것이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적당한 때를 맞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여보.”

“여보? 징그럽게 왜 그래요?”

“우리 샌디에이고 근처에 집 살 거잖아.”

“샌디에이고요?”

“응. 그러면 아무래도 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텐데, 그러면 수미도 데려오자.”

“어머니랑 언니들을 다 보냈잖아요. 오빠가!”

“엄마는 이제 편하게 노후를 보내시게 권하고 누나들도 각자 자기 일을 해야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양보했으니까 이제 누나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그 대목에 이르자 모모코가 눈치를 챘다.

이미 필상이 모종의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필상의 예상을 많이 벗어났다.

“오빠 생각이 과연 모두를 위해 최선일까요?”

“최선?”

“네. 그렇게 되면 전처럼 화목하게 모여 사는 것은 어려워질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겠지. 뭐든 쉬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난 오빠가 좀 더 양보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괜찮아요. 앞으로 오빠 걱정 끼치지 않을 게요.”

“모모코…….”

그녀의 성품이 선하고 착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못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여자가 시댁 식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겠는가!

아무리 친정과 데면데면해도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은 한 번 돌아서면 금방 남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모모코는 필상보다 더 가족들을 생각했다.

각자 터전을 마련하게 해 주는 것이 아까운 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각자도생을 위해 얼굴을 마주할 날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을 우려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서로 멀어질 것이고 이전처럼 오손도손 지내는 것은 요원해진다. 가족의 화목함, 그 가치가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다는 것을 지금 모모코가 간곡히 어필한 것이다.

“저도 수미가 곁에 있으면 좋아요. 하지만 수미를 미국에 보내고 어머니가 어떻게 편히 쉬시겠어요. 그게 가능할까요?”

“으음……. 하지만 이대로 놔 둘 수는 없어.”

“그럼 당분간만 그렇게 해요. 어머니가 조금만 양보해 주시면 그때는 오빠도 저도 무조건 따르기로 해요.”

“지금 이 대표가 수미를 데리고 공항으로 향했을 거야.”

“공항이요? 설마?”

“응. 데려오라고 그랬어.”

“오빠!”

지금까지 모모코가 필상에게 낸 소리 중에 가장 컸다.

한 번도 이렇게 정색하고 대든 적은 없는데, 정말 견딜 수 없었는지 매서운 눈초리로 추궁하듯 쳐다봤다.

“얼른 제 전화기 줘요.”

“소파 아래에 놔뒀어.”

“그럼 어서 가요! 아니, 빨리 전화해요. 이 대표님한테!”

“뭐라고?”

“그냥 데려오지 마시라고요. 빨리요.”

“지금쯤 이미 집에서 떠났을 텐데?”

“전화기나 빨리 줘 봐요.”

모모코의 거침없는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낸 적도 없고 뭔가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도록 행동했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건네자 전원을 켠 모모코는 바로 2번 버튼을 꾹 눌렀다. 바로 엄마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버튼이었다.

그리고는 필상에게는 식사비를 계산하고 나오라더니 먼저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통화 내용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 서둘러 나오자 자동차 조수석에 오른 그녀가 아직도 엄마랑 긴 통화를 끝내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마워요. 어머니. 정말 고마워요.”

모모가의 뺨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간혹 흘러나오는 엄마의 음성도 촉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는데,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숙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국제전화 요금 많이 나올 텐데…….”

“카톡 전화거든요!”

“아, 알았어.”

숙소에 도착할 무렵에야 통화가 끝났는데, 대충 오간 대화 내용은 파악했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반복했기 때문에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도 않았다.

이 대표가 필상의 부탁이라고 말했음에도 수미를 집에서 데려 나오지도 못했다. 엄마가 안 된다고 똑 부러지게 거절하면 그녀로서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강압적인 힘으로도 절대 엄마를 이길 수는 없으며 아무리 필상이 당부를 했어도 그분은 필상을 낳은 분이시다.

필상이 크게 착각한 것이다.

마침 모모코가 전화를 해 계속 죄송하다고 울먹이니 엄마도 결국 함께 우셨던 것 같다.

“엄마가 수미를 데리고 오신대요.”

“지금?”

“아니요. 천천히 준비가 되면요.”

“자꾸 보챈다면서. 수미가.”

“잘 달래시겠대요. 제 말은 안 들어도 어머니 말은 잘 듣잖아요. 어머니는 원지 않으시면 돌아가신다지만 전 절대 오빠 뜻에 따를 수 없어요. 누가 그분처럼 수미를 봐준다고!”

“휴우! 알았어.”

“그럼 얼른 전화해서 잘못했다고 비세요.”

“나중에 할게. 나중에.”

“안 돼요. 얼른 해요.”

필상은 도망 나왔다.

전화를 걸기 껄끄럽기도 했지만 모모코 보기 부끄러워서였다. 그 대신 일본에 계신 장인과 한참 통화를 했다.

요즘 뭐 필요한 거 없으시냐고 여쭸더니, 이것저것 말씀하시는데 다 들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무엇으로도 모모코를 보내 주신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필상은 다시 한 번 모모코에게 혼이 났다.

대체 뭘 믿고 그런 거금을 보내 줬냐고 난리였다. 시어머니한테 하는 정성의 절반만 쏟아도 장인이 훨씬 좋아지실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도 꺼내지 못했다.

* * *

“오늘은 장타 대신 정교한 샷으로 승부하자!”

“정교한 샷이요?”

“응. 모든 샷을 다 컨트롤하는 거야. 힘 빼고.”

“어제처럼 이리저리 날릴까 봐 걱정되는 거죠?”

“아니라면 거짓말이고. 어차피 장타를 때려 웨지를 잡으나 정확하게 페어웨이를 공략해 짧은 아이언을 잡으나 결과는 거의 마찬가지잖아.”

“좋아요!”

장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할까 염려했는데, 모모코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말하길, 둘도 없는 좋은 캐디라서 조언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첨언하며 깔깔 웃었다.

“왜 내 기분이 별로지?”

“왜요? 현역 최고의 골퍼라고 인정해 주는 건데, 싫어요?”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작정한 거지?”

“당연하죠! 저도 꽤 잘나가는 프로 골퍼거든요! 언제 치고 나갈지, 언제 자제해야 하는지 정도는 안다고요.”

“좋아! 일단 결과로 말하자고.”

“치! 지금 10타 차거든요. 우승은 신경 쓸 필요 없고 전 오늘 8언더를 꼭 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정교한 샷을 기본으로, 장타가 필요할 때는 망설이지 말고 얘기해 줘요. 그럴 거죠?”

“알았어!”

환상의 호흡!

그보다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었다.

드라이브 티샷 비거리는 250야드를 겨우 넘을 정도만 가볍게 때렸다. 하지만 정확히 페어웨이를 공략했기 때문에 아이언 샷의 그린 적중률이 눈에 띠게 올라갔다.

그런데도 전반 홀이 끝날 때까지 2타밖에 줄이지 못했다. 컨트롤 샷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어제 묘기처럼 펄펄 날던 퍼팅이 오늘은 떨어지지 않고 홀컵을 외면했다.

급기야 9번 홀에서는 3야드 평범한 버디 퍼팅도 놓쳤다. 그냥 쭉 밀기만 해도 되는데, 안 되는 날인지 홀컵 가장자리를 빙그르르 돈 공이 다시 튀어나왔다.

-이거 어째 좀 불안한데요?

-하하하! 9타 차인데 뭐가 불안하다는 겁니까?

-지금 26언더잖아요. 남은 9개 홀에서 5타를 줄이려면 거의 퐁당퐁당 버디로 가야 하는데 그놈의 퍼팅이 잘 안 돼서.

-아! 72홀 최저타 기록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미 이 대회 최저타 기록은 갱신했고 우승에 대한 압박감도 없다면 남은 홀에서 모두 버디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9개 홀 연속 버디요?

-이글이 끼어도 되죠. 장타가 필요하지만.

-크하하하!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약 -32를 기록하면 제가 중계 팀 모두에게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

브라운은 모모코가 한 홀 한 홀 지나갈 때마다 차츰 심한 갈증을 느꼈다. 정말 도널드의 말처럼 연속 버디를 낚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십여 명에게 한턱 쏠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이번 중계 내내 모모코에 대해 혹평했던 도널드 해설자의 마지막 예측이 맞아떨어지면 자신의 우호적이었던 모든 말들이 묻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모모코의 열성 팬이 되겠노라 밝히기까지 했다. 편파적인 중계라는 비난까지 들었지만 오히려 응원하는 팬들이 더 많았다.

누구라도 모모코의 경기를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다고들 격려했다. 그런데 유종의 미는 엄한 사람이 챙길 것 같았다.

“아! 저놈의 바람!”

10번 홀에서부터 13번 홀까지 무려 네 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그중에는 핸디캡 1번인 421야드 파 4홀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비교적 쉬운 167야드 파3 홀에서 티샷이 우측으로 밀려 깊은 벙커에 빠지고 만 것이다. 바람 때문에.

이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그녀의 소중한 신기록 작성에 그런 부정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라도 하면 좋았을 텐데 잘 때린 벙커샷이 턱 끝에 맞고 다시 떨어질 때는 현기증마저 일었다.

너무도 분해서.

-으아! 저게, 저게 다시 떨어지네요!

-하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지 않습니까!

-브라운. 세상에 저렇게 예쁜 원숭이가 어디 있나요! 비교할 걸 해야죠!

-아!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시청자 여러분은 다 아실 겁니다.

과연 그럴까?

3일 동안 모모코의 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캐스터 브라운은 그 한 방으로 비난의 과녁이 되고 말았다.

원숭이라는 표현보다는 그 말 앞에 붙었던 웃음소리가 더 큰 지적을 받았다. 어떻게 그 아까운 샷을 보며 웃을 수 있느냐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그가 염려하던 것은 그것과는 다른 내용이건만 그걸 해명할 수도 없기에 졸지에 천하에 다시없을 잡놈이 되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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