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45화 (345/354)

345. 환상의 호흡

“분위기 좋아요!”

“남편 잘 둔 덕인 거 알지?”

“치! 생색은! 이번 대회 끝나면 달라질 걸요?”

“어떻게?”

“두고 봐요!”

실제 모모코를 보기 위해 온 팬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낸 사람은 역시 필상이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하며 급기야 한 해에 메이저 대회를 모두 휩쓴 전무한 기록을 세운 영웅이기 때문이다.

은퇴한 것도 아니고 아직 뛸 날이 창창한 현역 투어 프로인데, 좀처럼 필드에서 보기 어려운 선수라는 점도 작용한 듯.

-참 아름답네요. 그러고 보면 일본 여자 선수들이 예쁘죠?

-일본 국적은 맞지만 전 그녀가 한국을 더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죠.

-아! 그러고 보면 한국과 일본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흡사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약간의 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한국 여자 골프는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하죠. 특히나 미스터 퍼펙트의 등장과 함께 남자 골프까지 최정상에 올랐으니 그 작은 나라의 저력은 정말 대단하죠!

-한국 여자 선수들이 실력도 있고 패셔너블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게 보면 미야 모모코도 체형이나 성격은 한국 스타일에 더 가까운 것 같네요. 하하하.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말들이지만 모모코를 응원하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분하고 억울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일본 골프의 여신이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국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실제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다.

모모코 스스로 한국이 좋다고 수차례 밝혔기 때문이다.

아시아 투어에 대해 잘 모르는 미국 팬들은 그저 실력이 좀 있는 선수로만 여겼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에다가 남편이 필상이기 때문에 큰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모코는 그걸 용납할 의사가 없었다.

어차피 필상이 본업을 뒤로하고 자신을 케어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카앙!

모모코의 첫 티샷은 힘차고 아름다웠다.

그녀가 즐겨 입는 핫팬츠는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패션이 아니다. 하얀 티셔츠에 하얀 모자, 그리고 체크무늬 핫팬츠 아래에는 같은 계열의 진청색 롱 스타킹을 입었다.

유부녀가 되었지만 귀여움이 발산하는 앙증맞은 외모와 컬러풀한 패션은 최근에 오히려 한층 더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그런 귀여운 여자 선수가 스탠스를 넓게 벌린 ‘쩍벌’ 어드레스를 취한 자세부터 통상적인 이미지의 파괴가 시작된다.

-와우! 듣던 것보다 훨씬 힘이 좋군요!

-스윙만 본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장타자, 박성현 프로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신체조건은 오히려 더 좋지 않나요?

-키는 비슷하지만 호리호리한 박 프로에 비해 모모코의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은 여자 선수니까요.

-아! 그렇군요.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도 미국 중계진은 틀린 정보를 읊어 댔다. 물론 여자 프로의 경우는 체중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경기력과는 그다지 연관관계가 없기 때문인데, 여자의 몸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다. 모모코가 엉덩이 부분은 큰 편이지만 그건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큰 것일 뿐, 실제 모모코는 결혼 전의 체중을 이미 회복했다.

그런데 유부녀라는 인식이 당사자가 들으면 서운할 편견을 스스럼없이 풀어내게 만든 것이다.

“얼마나 나갔어요?”

“285야드.”

“그래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절대 짧은 비거리가 아니다.

LPGA 선수들의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는 259야드이고 최고 장타를 기록한 선수의 평균도 286야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1번 홀은 맞바람까지 불고 있으며 페어웨이 좌측을 따라 호수가 쭉 붙어 있는 위험한 홀이다. 그런 상황에서 장타를 때린 것부터 남다른 자신감이 아닐 수 없었다.

모모코도 동반자들이 자신보다 30야드 이상 적게 날린 걸 보고 나서야 입가에 고소한 미소가 피었다

“그렇게 웃지 마.”

“왜요?”

“너무 귀엽잖아!”

“흐흐흐…….”

필상의 입에서 그런 칭찬이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구박하지 않으면 다행인데, 오늘은 최대한 분위기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는 셈이었다.

87야드 남은 세컨샷을 핀에 바짝 붙여 버디로 연결하자 와락 안아 주는 서비스도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모모코가 당황했다.

“오빠!”

“왜?”

“버디 할 때마다 이렇게 안아 줄 건가요?

“응. 싫어?”

“아뇨. 너무 행복해요.”

어떤 감정이든 너무 깊으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대개는 맞는 말이지만 모모코는 해당되지 않는다.

한번 기세가 오르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신들린 샷을 보여 주는데, 첫 라운드가 딱 그랬다.

첫 홀에서 버디를 잡더니 버디만 6개, 이글도 1개 작성하면서 보기는 단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

-8언더라면 단독 선두로 올라서지 않을까요?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재작년에 허미정 프로가 첫 날 9언더를 친 적도 있었지만 코스 자체가 다르니까요.

-저는 오늘 모모코의 경기를 보며 정말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장타에 정확성까지, 남편을 빼다 박은 것 같은 착각이 일더군요.

-시즌이 거의 끝날 시기에 느닷없이 미국으로 건너온 이유가 있었던 거죠. 출산한 지 오래 되지 않아 최대한 출전을 자제한 것 같은데, 그래도 KPLGA가 어떤 투어입니까?

-아! 저도 그 데이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승 2번에 톱 10에 5번이나 들었는데, 그게 고작 8개 대회에서 거둔 성적이란 말이군요. 거의 매번 우승 후보라는 말 아닙니까?

-만약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그녀는 단숨에 LPGA 강자로 부상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경기력도 월등했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모모코가 게임을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미국 투어는 모든 프로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꿈꿔 온 최고의 무대다. 때문에 첫 출전부터 제 기량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모코는 훨훨 날았다.

곁에서 함께하며 모든 상황을 통제한 필상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두 부부는 매 순간 모든 컷이 화보에 나오는 사진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기사나 사진으로만 접하던 모모코의 실제 미모는 필상의 훤칠한 체격과 당당한 태도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광고 문의가 쇄도한대요!”

“광고?”

“대표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두 분이 함께 출현하는 광고를 찍고 싶다고요!”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래도 서로 경쟁한다나 봐요.”

필상은 이미 미국에서 적잖은 광고를 찍어 거금을 벌고 있다. 하지만 모모코의 미국 진출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결과가 있어야 광고도 따라붙기 마련인데,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성적과 상관없이 필상의 콜라보로 광고하면 그 효과가 배가 될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모모코도 그 얘기를 듣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필상은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큰돈으로 유혹해도 참으시라고 해.”

“흐흐흐……. 제 생각도 그래요.”

모모코도 동의한 이유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성적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거금을 제안한다면 우승을 거두고 연승까지 거두면 ‘부르는 게 값!’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안 그래도 필상의 광고 출연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런데 모모코까지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광고 하나에 상상도 하지 못할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다.

그야말로 광고 하나 찍으면 이곳 마이애미에 저택을 하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부부가 마주 보며 웃는 이유가 바로 그런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말 부자 되겠어요!”

“하하하. 이미 부자잖아. 돈은 어떻게 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해.”

“혹시 그 말은?”

“응. 우리 우승하면 상금 전액 다 기부하자.”

“치! 기부하는 건 좋은데, 그 대신 저 예쁜 집 사줘요.”

“집?”

“네. 며칠 전에 갔던 리조트처럼 클 필요는 없지만 우리만의 프라이빗 해변을 가진 아담하고 예쁜 집, 갖고 싶어요.”

“으음……. 좋아! 하지만 여기 말고 다른데도 되겠지?”

“으흐! 이미 봐 둔 데가 있는 거죠?”

사실이었다.

필상은 마이애미도 좋지만 한국에서 보다 가깝고 투어 대회가 많이 열리는 미국 서남부 도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샌디에이고나 멕시코 국경도시인 티후아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시사철 기후가 온화해 연습과 휴양을 겸할 수 있다.

어느새 사회적인 명성이 너무 높아져 함부로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가족들을 위한 은밀하고 완벽한 공간이 필요했다.

진즉부터 그런 생각을 가진 이유는 누가 뭐래도 골프의 본고장이 미국인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 그저 한 가족 오붓하게 살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샐러리맨이었어.”

“믿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들었어요. 오빠를 버리고 의사랑 결혼한 바보 같은 여자,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아요. 전 너무도 고맙지만.”

“하하하! 누나들이 그런 얘기도 한 거야?”

“네. 얼마 전에 이혼을 당해 여주 친정집에 와 있대요.”

“…….”

굉장한 소식이지만 곧바로 대답하기 곤란했다.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렸으나 한때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던 여자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지만 인생 역전을 이룬 뒤, 그녀에 대한 미움은 잊은 지 오래다.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나 모모코와 가족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여자, 결혼할 때 보란 듯이 마을 잔치까지 했다면서요!”

“지독히 가난하게 자라서…….”

“아무리 그래도 돈 때문에 사랑을 버린 건 용서할 수 없어요! 배신이잖아요! 헌신과 사랑에 대한 배신!”

“이미 마을 사람들의 인심까지 다 잃었어. 그냥 둬도 사는 게 쉽지 않을 거니까 당신은 굳이 신경 쓰지 마.”

“당연하죠. 하지만 오빠가 그 여자를 그렇게 두둔하는 것 같아서 괜히 심술이 나요.”

“하하하! 그러지 마. 미움은 본인에게 해로워. 즐겁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며 살기도 아까운 시간들이잖아.”

“음! 그럼 얼른 안아 줘요.”

보통 투어에 참가한 선수들은 금욕을 한다.

사랑의 행위가 체력을 소모하고 컨디션 조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상은 오판이라고 믿는다. 모모코와 자신이 특별한 관계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인간의 욕망을 인위적으로 억누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밤새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음양의 조화를 따르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본능에 충실하게 서로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행위는 모모코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 모모코를 위한 무대?]

[1R -8, 2R -9, 종합 -17의 모모코, 8타 차 단독 선두 질주!]

[거침없는 파워 스윙! 정교한 아이언 샷, 그림 같은 어프로치, 침착한 퍼팅!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비교 불가한 압도적인 실력!

단 이틀 만에 이런 엄청난 찬사가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월등한 기량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8타 차 우승은 도무지 흔들릴 것 같지 않았고 72홀 최저타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적인 예상까지 나왔다.

현재 LPGA 최저타 기록은 김세영 프로가 2018년에 작성한 31언더파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남은 이틀 동안 -14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들 했지만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말이나 꺼내지 말지!”

너무 일찍 신기록을 언급하는 바람에 초를 쳤다고 봤다.

그러나 당사자인 모모코는 그저 씩 웃을 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필상이 느끼기에 나름의 목표를 잡은 것 같았다.

이미 우승을 위한 든든한 기반을 마련한 상태라서 구태여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되지 않았다.

과도한 의욕은 되레 상처가 될 수 있어서 만류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끝내 그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필상도 그 목표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스 퍼팅!”

하루에 7타 이상을 줄이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버디를 꼭 하겠다는 부담은 부지불식간 힘이 들어가 몸을 경직시켰고 그 좋던 티샷과 아이언샷의 방향성이 흔들렸다.

하지만 모모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긴 샷이 말썽을 부렸으나 그린 근처에서의 짧은 샷은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핀에 쩍쩍 붙었고 칩 인 버디를 2개나 만들어 냈다.

팬들의 비명을 유도했음은 물론 스스로 파이팅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며 페이스를 점점 더 끌어올렸다.

그러더니 결국 14번 홀에서는 12야드의 난해한 롱퍼팅까지 구겨 넣었다. 샷 난조 속에서 -6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봤죠?”

“기가 막혔어. 어어!”

갑작스럽게 확 달려들어 안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껴안은 채로 그린 위에서 넘어질 뻔했다. 겨우 중심을 잡고 버티는 모습에 팬들의 박장대소가 터졌다.

-하하하! 이런, 이런! 좀 심하죠?

-아니요. 전 너무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절한 마음이 통한다는 게 증명된 순간이니까요!

-보통 남편이나 아내가 캐디를 하면 종종 싸운다고들 하던데, 둘의 사랑이 얼마나 진한지 그건 납득이 되네요.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외모와 실력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나저나 걱정이군요. 저런 모습을 자주 보면 남편이나 아내나 바라는 게 더 많아질 텐데…….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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