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44화 (344/354)

344. 모모코를 위하여!

“미국 언론도 당신의 LPGA 투어 진출을 꽤 비중 있게 다루면서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야.”

모모코의 미국행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골프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원래 상품성이 높은 캐릭터인 데다가 미스터 퍼펙트의 아내라는 사실, 그리고 필상이 직접 그녀를 케어하며 캐디로 출전한다는 소식은 때아닌 이번 대회의 대박 흥행을 예고했다.

때문에 그런 소식을 전한 필상은 그녀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좋아하고 즐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반응은 기대와 한참 차이가 났다.

“너무 그러는 거……. 부담스러워요!”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착실하게 진행 중이다.

파워풀한 스윙을 되찾았고 샷의 일관성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자신감을 회복한 그녀가 팬이나 언론의 주목을 즐길 것이라고 생각한 필상은 그 대답에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이 돕지만 육아의 스트레스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일까? 아무리 한국이 좋고 자신이 원했던 생활이라도 이국에서의 삶이 어찌 편하기만 하겠는가!

게다가 투어를 병행하며 발생하는 극심한 압박감은 그녀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녀만의 독특한 장점마저 희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연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보. 오늘 우리 외식할까?”

“외식이요? 여기 클럽하우스 음식도 좋던데요?”

“우리 둘만!”

“둘만? 흐흐흐……. 좋아요!”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드라이빙 라운지가 닫힐 때까지 늘 연습에 매진하던 필상이 뜻밖의 제안을 꺼내자 모모코의 얼굴에 모처럼 환한 미소가 피었다.

눈이 부셔 마주 보면 아직도 가슴 떨린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미모는 아이를 낳은 뒤 더 활짝 만개했다는 것이 필상의 생각이다.

농염함까지 갖췄다고 해야 할까?

가끔 주체하기 힘든 욕망을 자극하는데 지금도 그러했다.

“미사키. 부탁할 게 좀 있어.”

모모코가 샤워하러 들어가자 필상은 바삐 뭔가를 준비했다.

그러고는 얼른 씻고 나와 모모코를 차에 태우고 직접 차를 몰아 잭슨빌 비치에 위치한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 멋진 곳은 어떻게 알았어요?”

“전에 이 근처 TPC 사우글라스에서 시합한 적이 있거든.”

“아!”

“오늘밤은 숙소로 돌아가지 말고 둘이 신나게 놀자!”

“그래도 되요?”

“그럼! 얘기 다 해 놨으니까 걱정 마!”

딸아이 때문인지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그녀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모정(母情), 그녀가 가진 근본적인 부담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지혜가 필요했다.

“우리 맛있는 거 먹고 같이 수영하자.”

“수영이요?”

“응. 수영복 다 준비해 왔어.”

“우와! 좋아요!”

맛깔스러운 음식보다 더 좋은 것은 분위기였다.

붉게 타오르던 태양이 긴 노을을 드리운 해변에 마주 앉아 먹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끈끈한 사랑이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나온 모모코의 몸매는 여신이 따로 없었다. 이럴 때는 체면이고 뭐고 적나라한 표현이 가장 좋다.

“이야! 이 아가씨 몸매 끝내주네!”

“헉! 오빠 정말 치한 같아요!”

“치한? 당신 같은 미녀와 밤새 즐길 수 있다면 기꺼이 치한이 될 수도 있지! 아가씨, 혹시 나 마음에 드나?”

“으음……. 쪼금!”

“밤에는 더 끝내주는데! 하하하!”

마치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처음 대시하는 것처럼 필상은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쳤다. 늘 자신에게는 과분한 여인이지만 그래도 부부로 만나는 건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서로를 허락하고 함께하는 것이 신선한 느낌을 반감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연애하는 것처럼 애틋한 스킨십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뜨거운 밤으로 이어졌다.

“오빠. 그만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싫어. 난 당신 품에 더 머물고 싶어”

뜨거운 밤을 격렬하게 보냈지만 어김없이 새벽 5시만 되면 눈이 떠졌다. 둘 다 오랜 습관은 이유 여하를 따지지 않는 듯.

모모코는 얼른 일어나 움직이자고 했지만 필상은 그녀의 품을 더 파고들었다. 마치 엄마 품을 찾는 아이처럼.

그게 싫지 않은 모모코도 필상의 머리를 꼭 안아 줬다. 하지만 이런저런 걱정이 다시 그녀를 휘어잡은 것 같았다.

“수미는 어머니가 알아서 챙겨 주시겠지만 운동은 해야죠.”

“안 해도 돼. 당신은 이미 더 이상 좋을 수 없거든.”

“치! 저 이해했어요. 오빠가 제게 뭘 말하고 싶은지.”

“으응? 뭔 소리야?”

“옛날처럼 고고한 자세를 찾으라는 거잖아요.”

그런 말은 털끝만큼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모코는 필상이 원하는 것들을 알아들었다. 대부분의 팬들은 그녀의 미모에 눈이 가려 그녀의 현명함을 모른다.

하지만 모모코는 필상이 갑자기 특별한 밤을 구상한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스스로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다.

사랑스러워 더욱 깊이 그녀의 품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모모코. 당신은 나의 영원한 여신이야.”

“흐흐흐……. 그거 둘째 낳자는 말은 아니죠?”

“으응?”

“오빠. 저도 아들 낳고 싶어요. 그런데 조금만 기다려 줘요.”

정신이 퍼뜩 든 필상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내에게서 감지된 안타까운 그 느낌은 굉장한 충격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도 잘해 주는 가족들이 필상도, 모모코도 아직 논의해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부담을 줬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와 누나들이 아들 얘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큰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결국 손자를 가지고 싶다는 말은 출산에 대한 강요나 다름이 없었다.

여태까지 그것도 모르고 남편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일어난 필상은 숙소로 돌아오려고 차에 올랐다.

“오빠! 오해하지 말아요. 어머니나 언니들은 제게 부담 준 적이 없어요. 제가 그렇게 느꼈던 것뿐이죠.”

“아니야. 그건 절대 그럴 수 없는 거야. 오늘 내가 확실하게 못을 박을게.”

“어떻게요?”

“그냥 날 믿고 지켜봐.”

집에 돌아오자 다들 반겼다.

아침 일찍 돌아온 것이 엄마의 된장찌개가 불렀기 때문이라고 좋아했지만, 잠시 후 식탁에는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모두 둘러앉자 필상이 똑똑히 선언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내가 둘째를 낳는다면 그 애는 제가 만사를 제치고 직접 키울 겁니다.”

“필상아.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네가 왜 아이를 키워! 집사람도 있고 나도, 네 누나들도 있는데.”

“도와주면 고맙지만 수미를 키우느라 자신의 꿈을 미룬 아내와 제가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요.”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런 억지를 부릴 거면 난 그만 집으로 돌아갈란다.”

엄마가 의외로 강하게 나섰다.

이는 곧 손자를 바란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다.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참으로 애매한 처지에 놓였지만 여기서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서 팀장. 어머니랑 누나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 예약해. 최대한 빠른 거로.”

“…….”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지시를 내린 필상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모모코의 손을 잡고 밖으로 휑하니 나와 버렸다.

이렇게까지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갑작스러웠는지 오히려 필상을 타박했다.

“오빠. 대체 왜 그래요! 어머니 화 나셨잖아요.”

“알아. 하지만 아들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시는 저런 모습은 두고두고 당신을 힘들게 할 거야. 그건 나한테도, 엄마한테도 절대 좋지 않아.”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해요.”

“심해? 그렇지 않아. 자신의 만족을 위해 며느리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이기적인 거야. 당신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 줄 잊으신 거지.”

지금은 필상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둘이 결혼할 당시만 해도 둘의 입장은 달랐다.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받았지만 필상이 모모코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다.

위상도 그러했거니와 12살이나 어린 모모코를 아내로 맞이하는 필상을 도둑놈이라고 비난했던 이들도 많다.

하지만 모모코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아이를 낳은 것이다.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의 출산이 그녀에게 미친 영향은 감히 말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그걸 식구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익숙해지자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오빠! 어쩌려고 그러세요?”

“잘됐어. 수미도 데리고 가신다잖아.”

“전 어떡하라고요?”

“걱정 마. 당신 없다고 수미를 구박하실 분들은 아니니까.”

“그야 그렇지만…….”

결국 엄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공항으로 태워 드린 내내 차 안의 무거운 침묵이 모두의 가슴을 짓눌렀지만 필상은 조심해서 들어가시라는 인사만 했을 뿐, 죄송하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에게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밝혔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생기면 책임져야 하지만 출산은 철저하게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당신은 분명한 목표를 세워.”

“정말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지. 당신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내가 모든 걸 다해 도울 거야. 난 이미 내 꿈을 이뤘잖아.”

이번 일을 겪으며 필상은 둘의 사이를 다시금 돌아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였다.

자신도 이기적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모모코의 몫이라고 치부하고 가족들이 도우면 된다고만 여기며 자신의 꿈을 최고의 가치로 올려놨었다.

모모코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이 희생할 생각은 추호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올 시즌은 곧 끝나잖아요.”

“당신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자!”

“그랜드슬램이요?”

“내가 했는데 당신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잖아.”

“전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세울게요. 시즌 6승!”

어찌 보면 PGA보다 LPGA가 더욱 경쟁하기 힘들다.

강자가 분명하고 매년 무서운 신예들이 등장하는 투어이기 때문이다. 그랜드슬램은 물론 시즌 3승을 달성하는 선수도 극히 드물다.

골프 여제로 불린 애니카 소렌스탐이 2001년 6승을 달성한 이후 20년 동안 그 기록을 깬 선수가 없다는 게 목표의 기준이 된 셈이다.

“안 돼! 타이기록은.”

“그럼 7승. 됐나요?”

“좋아!”

말이 쉽지 쟁쟁한 선수들도 매년 우승을 1번이라도 하는 것이 어려운 투어가 LPGA다. 한국의 강자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7승이라는 숫자는 오르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필상과 모모코는 다들 엄두도 내지 않는 그 목표를 기자들 앞에서 입에 담았다.

이번 대회부터 내년 이 대회전까지 1년 동안 7승을 목표로 잡았다는 말에 언론들은 난리가 났다. 이행 가능성을 따지기도 전에 큰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이번 대회는 일본 선수 한 명 때문에 말이 많더군요!

-하하하! 그럴 만한 좋은 선수인 것은 분명합니다. 재작년 JLPGA 다승 기록을 갱신한 모모코, 그녀를 모르는 골프 팬들은 없을 테니까요!

-미스터 퍼펙트의 어린 아내로 알려졌기 때문인가요?

-그런 말씀은 자제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그녀는 출산 다음해인 올 시즌도 그 어렵다는 KLPGA에서 3승을 거둔 실력파거든요.

-아! 그런가요?

LPGA 투어는 무려 4개의 거대 방송사가 중계를 진행한다.

돌아가면서 진행하는데, 이번 대회는 폭스스포츠에서 맡았다. 그런데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한 캐스터와는 달리 해설위원인 도널드는 시작부터 뜬금포를 터트리며 시청자들의 인상을 구기게 만들었다.

미야 모모코는 그런 평가를 받을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미국 투어는 처음이지만 이미 재작년 일본에서 치러진 LPGA를 우승하며 당당한 회원 자격을 갖췄다.

게다가 뛰어난 외모로 인해 그녀가 미국에 진출하기만을 기다린 사무국도 열렬히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경기 중계를 담당할 해설자가 편견에 사로잡힌 입장을 가지고 나왔으니, 어찌 분개하지 않겠는가!

-폭스! 당장 해설자 교체해!

-저런 무식한 자가 전문가라니! 폭스스포츠는 즉각 사과하고 해설자를 바꿔라!

-도널드란 이름을 가진 자는 다 저렇게 무례한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제발 부끄러운 줄 알아라!

-도널드 밀러. 그의 통산 기록 공개! 웃지 마시길……. ㅋㅋ

사과를 요구하는 댓글 밑에 도널드라는 자의 이력이 낱낱이 밝혀졌다. 아이디를 보건데 한국 팬일 가능성이 높은 한 팬은 그가 통산 2승밖에 없는 입 골프를 대가임을 지적했다.

실력도 없는 자가 남을 험담하기만 좋아한다는 다른 전문가의 비판 기사도 링크했으며 오래 전 현역 때의 흑역사를 적나라한 게재한 기사들까지 찾아내 갖다 붙였다.

“가요!”

“벌써?”

“네. 팬들과 만나고 싶어요.”

“음……. 그것도 좋지.”

아직 티오프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았는데, 모모코는 1번 홀로 가자고 보챘다. 그 이유가 반가워 필상도 따라나섰다.

모모코는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사인도 해 주는 정성을 보였다. 보통 경기 전에는 최대한 모든 행동을 자제하는데 그녀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기자들이 보이자 필상의 팔짱까지 끼면서 예쁜 포즈를 취해 줬다. 실시간으로 올라온 그 사진 기사는 금방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다음 편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