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41화 (341/354)

341. 황제 vs 절대자

“이 회사에 우리 TPK도 지분을 넣은 거 모르십니까?”

“알지. 하지만 아직 완성형은 아니잖아?”

“누가 그래요? 완성품이 아니라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면 모를 수도 있다. 간헐적인 소식만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무심함으로 인해 자신은 더욱 멋진 샷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기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면 직접 클럽을 소개하며 그를 이해시킬 필요도 생겼다.

여하튼 역전 찬스에서 다시 1타가 밀린 필상은 18번 홀에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571야드나 되네요.

-네. 절대 2온이 쉽지 않은 홀입니다. 하지만 자존심이 걸린 승부에서 밀리고 있는 공 프로라면 특유의 장타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좌측에 커다란 호수가 있고 그린도 좌우로 길기만 하고 앞뒤 폭은 매우 좁아 공을 세우기가 너무 어렵지 않나요?

-그 어려운 걸 해낼 수 있으니까 필드의 지배자라는 별칭을 얻은 겁니다. 전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세컨샷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티샷이요!

타이거는 안전하게 페어웨이를 공략했다.

그런데도 314야드를 찍은 걸 보면 몇 달간 경기에 나서지 않고 편안하게 연습한 것이 좋은 영향을 미친 듯 보였다.

그런데도 2온은 노릴 가능성은 낮다. 260야드를 공략하려면 적어도 3번 우드를 잡아야하는데 그의 공이 놓인 지점에서는 런으로 그린에 올릴 공간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상의 장타는 의식했는지 교차해서 티잉 그라운드로 올라가는 타이밍에 한마디 툭 던졌다.

“살살 좀 하자고!”

“진정한 장타가 뭔지 보여 드릴 겁니다.”

“그렇다면 몸에 힘 빼고!”

“흐흐흐…….”

어지간해서는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만큼 필상을 편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장타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한 사전 작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담한 대로 필상은 연습 스윙부터 남달랐다.

헤드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팬들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응원의 함성을 터트렸다.

“마스터 파이팅!”

“가자! 가자! 400야드!”

“그냥 확 넣어 버리세요!”

별의별 응원이 다 나왔지만 필상이 어드레스를 취하기 위해 이동하자 쥐죽은 듯 고요함이 찾아왔다.

일말의 방해도 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침묵은 오히려 선수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곳이 안방인 필상은 그런 것에 휘둘릴 짬밥이 아니지만.

쉬이이익!

얼마나 강한 스윙이 이뤄졌는지 공이 스윗스팟에 맞는 소리가 마치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의 장외 홈런 타구 같았다.

까아아앙!

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사가 비명으로 이어지는 동안, 타구는 하얀 구름을 뚫고 사라질 것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로 날았다.

-타구 스피드가 얼마나 될까요?

-헤드 스피드가 138마일이 찍혔으니 대략 207mph라는 건데, 그게 좀 애매하네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보통 드라이브의 경우, 초속을 재는 헤드 스피드에 1.5를 곱하면 타구의 스피드가 나온다.

물론 대부분의 프로들은 그 수치에 근접하지만 1.5보다 높은 기록을 가진 선수들도 가끔 있다. 필상도 그 범주에 들어가는 선수지만 207마일은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 속도였다.

로켓도 아니고.

공식 경기에서 기록된 볼 최고 속도는 204마일이다. 그러나 떨어질 줄 모르고 하늘로 계속 치솟는 타구의 궤적을 보면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타이거의 공을 지날 즈음부터 하강했기 때문이다.

“오줌 지리겠네!”

“대표님. 언어 좀 순화하시죠?”

“서 팀장, 넌 저런 무서운 타구를 보고도 감흥이 없냐?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왜 감흥이 없겠어요. 전 이미 온몸에 닭살이 돋았어요.”

“그래? 사람마다 절정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법이잖아. 여하튼 내가 볼 때 둘이 내기를 한 것 같아.”

“내기요?”

“그러니까 직원들을 다 불러 모으라고 한 거지.”

“직원들과 내기가 무슨 상관인데요?”

“지는 사람이 다 쏘기로 했을지도 모르지,”

“백 명도 넘을 텐데요?”

이 대표의 감은 역시 좋았다.

하지만 틀린 게 있다. 내기에서 지는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승자가 쏘기로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듯.

그런데도 두 남자는 기를 쓰고 이기려고 경쟁한다. 웬만큼 버는 선수라면 어림도 없는 포부이며 이 대회가 하루에 끝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공식 경기에서 볼스피드 200mph를 넘긴 선수는 아직 없다. 장타 대회에서나 가끔 보일 뿐, 정확성을 기해야 하는 투어 경기에서 나올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기록이 예상되는 시점을 간파한 중계책임 PD는 활용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LAUNCH ANG 12.5 deg.

SPIN RARE 2001 rpm

CLUB SPEED 138 mph

BALL SPEED 209 mph

CARRY ? yds

TOTAL ? yds

캐리와 비거리가 ?로 표시된 이유는 아직 공이 지면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밀 장비로 계측한 4개의 자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발사각은 PGA 평균 11.2보다 다소 높다.

하지만 포물선의 크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건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눈에 띤 것은 바로 스핀의 양이었다.

-스핀양이 2001밖에 되지 않네요?

-타구의 분당 회전수는 적으면 적을수록 비거리가 늘어납니다. PGA투어 평균이 2685이고 장타자 더스틴 존슨이 2200대가 나오는데, 그걸 가볍게 넘어서는 RPM이군요.

-아! 그렇군요! 무식이 죄는 아니죠. 하하하!

-물론입니다.

-그런데 볼 스피드가 200mph를 훌쩍 넘었습니다. 209?

-네. 일단 결과는 둘째 치고 장타 대회에서나 나올 법한 무시무시한 속도가 측정되었습니다.

-와우! 캐리가 나왔네요. 364야드. 이게 말이 되나요?

허 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구르고 있는 타구의 방향이 좌측 호수였기 때문이다. 더 구르기를 바라다가 해저드에 들어가면 말짱 도루묵이기에.

드라이브 티샷의 기록은 페어웨이에 안착한 경우에만 통계에 잡힌다. 아무리 길게 쳐도 러프나 해저드에 들어가면 그 가치가 전혀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봤다.

“우후! 아깝네!”

“하하하. 설마 저 공이 해저드에 들어가지 않아서 아깝다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페어웨이를 잘 지켰다면 거의 400야드에 육박했을 타구 같아서 그러지.”

다행히 타구는 러프에 멈췄다.

완벽한 방향이면 좋았겠으나 힘이 빠진 타구에 원지 않았던 드로우가 걸리면서 좌측으로 많이 휘었다.

조금 덜 휘었다면 호수의 경계선에 있는 비치 벙커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아 이 결과가 되레 행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팬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쉬워하면서도 열광한 이유는 이 티샷의 비거리가 391야드를 찍으면서 남은 거리는 176야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지 않고 세컨샷으로 핀을 바로 공략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스포츠 베팅업체들과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지?”

세컨샷을 위해 이동하던 차에 뜬금없는 타이거의 질문이 나왔다. 그는 상세한 경과를 알지 못한다.

언론에 알려진 수준 정도였기에 이미 자신과 관련된 부분은 말끔하게 정리한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이죠. 비록 저들이 제게 못된 짓을 했지만 저는 대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고소 안 하려고?”

“공인이잖습니까! 이미 저들의 비리가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단죄를 받는 입장인데, 굳이 저까지 끼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래도 좀 의외로군!”

타이거는 필상이 적극적인 대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가 아는 필상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데, 전혀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니 의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자신과 결부된 자들에게 철퇴를 내린 필상은 다른 방향에서 사안에 접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아직 행동하지는 않았으나 관련된 내용을 확인하고 후원을 시작했으며 PGA 시즌이 종료되면 그때 나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사안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타이거가 뜻밖의 의향을 드러냈다.

“난 참여하고 싶어.”

“어떤 방향을 고려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스포츠 베팅에 골프는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는 생각보다 강경했다.

아마도 그 역시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논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라서 나중으로 미뤘다.

그런데도 꼬리를 무는 의문은 그에게 발생했던 치명적인 스캔들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자신도 겪어 봤지만 유명인은 언론이 나서면 운신의 폭이 굉장히 좁다. 어찌 해 볼 틈도 없이 진실이 호도되기도 하고 그에 대한 항변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스캔들의 본질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한 연계성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세요?”

“응?”

“지금은 2온만 생각하셔야할 것 같아서요. 일단 이겨야 하잖아요.”

“하하하. 그렇지!”

미사키가 필상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타이거는 무리하지 않고 아이언으로 3온 하기 좋은 지점으로 공을 날렸다. 그린이 길게 보이는 방향을 확보한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이제 공은 네게 넘어갔으니 두고 보겠다는 눈빛을 보냈는데, 막상 공이 놓인 라이는 좋지 못했다.

“생각보다 깊이 잠겼어요.”

“제대로 찍어 쳐야지. 7번 아이언 줘.”

러프에서의 샷은 프로에게도 부담스럽다.

더욱이 그린까지 날아가는 궤적이 호수 위이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가중된다.

-풀에 깊이 잠겨 공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멋지게 쳐 낼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기량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살 떨리는 우승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교과서적인 러프 샷을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중요한 샷인 게, 귀환한 황제와 현재 지배자와의 일대일 대결이기 때문이죠. 전 반드시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임 캐스터의 그 말은 팬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한 것이다. 필상이 등장하기 전, 타이거 우즈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정말 대단했다.

초청하기 위해 거금을 제안해도 좀처럼 오지 않았다. 가끔 일본 투어에는 오면서 지척인 한국을 들리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그래도 아쉬운 것은 한국 골프팬들이었다.

그런 그가 따로 챙겨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왔다. 큰 정체기를 겪은 뒤, 황제의 귀환을 즐기던 그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 된 사람은 다름 아닌 필상이다.

그에게만 해당되지 않지만 필상의 눈부신 기록들이 그의 영원할 것 같던 존재감을 축소시켰고 일각에서는 은퇴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 것도 사실이다.

따악!

수많은 팬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타구가 멋들어지게 치솟았다. 하얀 공이 사라진 자리에는 낫에 잘린 듯 자잘한 잔디 파편이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굿 샷!”

“나이스 샷!”

“인 더 홀!”

“확 들어가 부러!”

다양한 응원 소리가 18번 홀을 흔들었다.

이날 경기를 보러 찾아온 팬들의 9할은 다 이곳에 모인 것 같았기 때문에 그들이 일시에 터트린 함성은 정말 땅이 울리는 것 같은 강렬한 효과를 냈다.

-짧은가요? 짧아요?

-길게 칠 수는 없습니다. 저런 러프에서의 미들아이언 샷은 런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린에 떨어지면 오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짧게 치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어, 얼마나 캐리가 나와야 하는 거죠?

-170야드가 가장 좋습니다. 7야드가 짧으면 벙커고 14야드가 짧으면 아예 호수에 빠집니다.

-탄도가 너무 높아 거리를 가늠하기가 너무 어렵군요!

-공 프로의 타구는 늘 생각보다 더 뻗어 나간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확한 해설이었다.

너무 높이 치솟아 도저히 그린 근처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으나 결국 호수는 무사히 넘었다. 하지만 그린에 떨어지기에는 부족할 것 같았다.

“고!”

필상도 몸까지 쓰면서 조금 더 날아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타구는 그린과 벙커 사이의 러프에 떨어졌다. 거기라면 충분히 좋은 결과다. 제대로 튀면 핀에 붙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의 공이 사라졌다.

-뭐죠? 박힌 건가요?

-네. 공이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다. 탄도가 높기는 했으나 그린 근처가 저렇게 물렁한 경우는 없는데, 아! 정말!

-박힌 공은 뺄 수 있지 않나요?

-일반 구역에서는 가능하죠. 하지만 드롭을 할 위치가 너무 안 좋은 게 문제입니다.

-아! 그렇군요.

바로 그거였다.

땅에 박힌 공은 빼고 칠 수 있다.

하지만 구제 구역이 너무 안 좋았다. 뒤로 물러나면 벙커라서 박힌 지점을 수리하고 거의 그 뒤에 놔야 할 것 같은데, 그럴 경우 스탠스가 아주 최악이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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