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35화 (335/354)

335. 별의별 놈

“어허!”

안 프로도 장타를 날릴 수 있는 선수다.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가 250야드에 육박한다. 그건 곧 280야드 이상도 얼마든지 때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봄이 3번 우드로 꽤 먼 거리를 보내자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문제는 전략에 없던 갑작스러운 장타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거다.

나름 집중력을 쏟았지만 샷의 궤적은 우측으로 밀려 나지막한 동산으로 향했다. 나무에 걸리지는 않지만 꽤 길고 거친 헤비 러프에 떨어져 세컨샷에 영향을 미칠 듯 보였다.

-기회가 왔나요?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차피 이즈카도 2온을 노리기에는 어려운 거리거든요.

-250야드라면 가능하지 않나요?

-오르막이라서 좀 더 봐야 하죠. 게다가 그린 앞을 가드 벙커들이 막고 있어서 굴려서 올리기도 힘듭니다.

-그래도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잖습니까! 마침 핀이 우측에 꽂혀서 저 관문만 통과한다면 핀 근처로 보낼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도 더 바랄 게 없죠. 하하하!

신 프로도 아직 우승권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으나 무리하지 않고 260야드만 공략했다. 어차피 3번에 올릴 것 같으면 차라리 라이가 좋은 페어웨이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침착한 모습을 대한 봄은 약간 비꼬는 투로 말했다.

“부처님이 따로 없네요.”

“부처님처럼 많은 사람의 공경을 받고 싶으면 너도 저렇게 쳐야지.”

“전 사절할게요. 샷에 감동이 없잖아요. 감동이!”

“하하! 한순간을 살아도 불꽃같이?”

“그건 아니고 여하튼 필요할 때는 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필상도 동의한다.

어차피 우승이 아니면 순위는 크게 상관없다. 상금 액수에 연연할 수준은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도전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

그런 대화와는 상관없이 신 프로는 차분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거리를 남겼고 문제는 안 프로였다.

그녀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실제 봄이 2온을 노릴 가능성은 낮은데, 그럴 것이라는 전제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본인도 최대한 좋은 지점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유틸리티를 선택했다.

어차피 타법이 중요할 뿐, 롱 아이언이나 유틸리티나 쳐 내는 원리는 비슷하다. 다만 숏 아이언으로 보다 안전하게 가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어떨 거 같아?”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이 홀에서 다시 선두로 나설 것 같아요.”

“그 말은 좋은 샷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거지?”

차마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고개는 끄덕였다.

그러나 결과는 애매했다. 예상과 달리 깊은 러프에서도 안 프로의 샷은 완벽에 가까웠다. 제대로 찍힌 공이 러프라는 것도 무색하게 쭉쭉 뻗어 나갔다.

아쉬운 점은 오히려 거리가 너무 많이 나와 그린 전방 페어웨이 한가운데 조성한 벙커로 기어들어 갔다는 거였다.

“와아아아!”

결코 감탄사는 아니었다.

갤러리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일본 골프팬들은 봄의 절대적인 지지자들이다. 만약 경쟁과 무관한 선수의 샷이었다면 적어도 좋아하는 티는 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봄이 역전을 당한 상황이기에 적의 불행에도 동정 따위는 없었다. 그게 오히려 봄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안 프로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선수는 임팩트를 가하는 순간 안다.

얼마나 잘 맞았는지. 그런데 결과도 좋지 못했고 팬들의 얄미운 행동까지 눈에 보였으니 인상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아깝네요. 아까워! 샷은 정말 좋았는데…….

내용과 달리 좋아 죽는 캐스터의 표정을 본 야마다 해설은 첨언을 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이 난 유우키는 멈추지를 않았다.

-이러면 다시 재역전을 하는 건가요?

-이즈카가 2온에 성공한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잘라 가면 약간의 어드밴티지가 있을 뿐입니다.

-약간의 어드밴티지라고요?

-한국 선수들 중에도 지금 챔피언 조에 있는 두 프로가 누군지, 그동안 어떤 결과를 낸 선수인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 정도 거리에서도 버디를 잡을 가능성이 꽤나 높은 선수들이죠!

장단을 맞춰 주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경쟁자들을 칭찬하는 야마다 해설의 말이 길어지자 유우키는 인상까지 구겼다.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국 골프팬들은 중계권을 사들인 한국 골프 채널의 방송을 보고 있다는 거였다.

안 그래도 연이어 터진 한국의 일본 추월 기사가 뜰 때마다 고소해하는 한국인들의 반응 때문에 양국의 관계는 최악이다.

이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일본을 포용하자는 여론도 생겼지만 이런 편파 중계가 알려지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누가 뭐래도 안 프로와 신 프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어쩔까요?”

“묻긴 왜 물어. 이미 결정해 놓고.”

“흐흐으……. 5번 우드가 좋을지, 18도 유틸리티가 좋을지 그걸 묻는 거잖아요.”

“허! 자꾸 이러면 앞으로 네 백을 매는 일은 없을 텐데?”

“치사하게!”

“뒤끝이 어떤지 확실하게 보여 줘?”

“알았어요, 알았어. 18도 유틸 주세요.”

“그래. 거리도 중요하지만 온그린을 하려면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거 잊지 말고.”

“네. 오라버니.”

신인이라면 절대 이런 분위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작은 감정의 변화에도 스윙이 춤을 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봄과 필상은 여유가 넘치다 못해 화기애애했다.

어찌 보면 경기를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모습이 동반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제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도 봄은 필상의 샷을 판에 박은 듯 그대로 구현했다. 하기야 필상의 멋진 샷을 편집해 TPK 아카데미 교재로 사용하고 있으니 봄은 최상의 결과를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다양한 국가의 골프 코치와 유망주, 그리고 현역 선수들까지 그 영상을 구하려고 혈안이 된 상태라서 이 대표는 추후 상품화 과정을 구상 중이었다.

쉬이이익!

전투기가 이륙하는 것처럼 한 방에 떠오른 공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린을 향해 날았다.

구질은 스트레이트, 순식간에 도달할 것처럼 쏘아진 공을 바라보는 팬들 중에는 ‘인 더 홀!’을 외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목표는 온그린.

이 먼 거리에서 그린에 올리기만 해도 승부는 결정지어질 것 같았다. 필상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자신이 칠 때는 대부분 공중에 떠오른 타구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클럽 헤드에 맞은 공이 기형적인 비대칭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니 속이 후련했다.

-올라가나요?

-조금 짧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대체 왜 이러십니까? 지금 이 순간 자로 잰 듯한 공정성을 좋아할 시청자들이 어디 있다고요!

-전문가로서 사실에 입각한 해설을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짧은 게 낫습니다. 현재 타구가 머금은 힘이 워낙 좋아서 런이 평소보다 훨씬 많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죠?

-저 또한 이 멋진 샷이 그린에 올라 이글로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거죠.

-하하하! 제가 오버를 좀 많이 하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골프팬들이 한 마음으로 이즈카를 응원해야 할 때라서요.

아웅다웅 거리는 동안 급기야 타구가 지면에 떨어졌다.

방금 전에 안 프로가 빠뜨린 벙커를 훌쩍 넘는 순간, 다들 안도했다. 가장 불안한 지점을 넘었기 때문이다.

야마다의 해설은 정확했다.

페어웨이 우드가 아닌 18도 유틸리티를 사용해서인지 그린에서 35야드 떨어진 지점을 때렸다. 그런데 공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너무 빨라서 오히려 그린을 오버하는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잔디의 저항에 부딪친 타구가 아슬아슬하게 그린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경사를 타면서 우측의 깃대를 향해 또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붙었어.”

“정말이죠?”

“어허!”

“얼마나 붙을까요?”

“4야드.”

사실 그린이 언덕 위에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장담하듯이 거리를 말하는 필상을 보며 봄은 피식 웃었다. 자신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급기야 멈춘 공에 대한 분석이 나왔는데, 기가 막히게도 정말 4야드였다. 하지만 그린 주변의 팬들의 반응은 앨버트로스라도 나온 것처럼 뜨거웠다.

마침내 14번 홀에서 승기를 다시 잡은 것이다.

“빈틈이 없네요!”

신지애 프로의 세컨샷이 홀컵 1야드에 붙었다. 백스핀이 먹지 않았다면 들어갔을지도 모를 정교한 컨트롤 샷이었다.

“한국인 최초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선수야.”

“아! 그래요?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요? 완전 동안이잖아요.”

“그래도 나보다 한 살 어려. 2010년에 세계 정상에 올랐으니까 그때가 만 22살이었을 걸?”

“대단하네요. 좋아요. 제가 그 기록을 깰게요.”

“깨든 말든 상관없는데 일단 그린 라이나 잘 분석해.”

“으히!”

문제는 1타 차 단독 선두인 안 프로의 샷이다.

벙커에 놓인 공에서 핀까지 거리는 42야드, 아무리 날고 기는 안 프로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 식을 줄 모르는 샷 감을 보면 최소한 5야드 이내에는 붙일 것 같았다.

그런데 루틴을 밟고 샷 동작에 돌입했던 그녀가 테이크백을 하다 말고 자세를 풀었다. 갤러리들 중에 누군가 셔터를 눌렀기 때문이다.

일본 투어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라 누군가의 의도적인 방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 프로는 그 방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시 루틴을 이행했다.

찰칵! 찰칵!

다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고의성이 확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안 프로는 그대로 샷을 감행했다. 수없이 많은 투어를 뛴 그녀는 이미 축적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조금 깊게 들어갔는지 너무 짧아 그린에 올리지도 못했다.

긴 한숨을 내쉬면서도 방해가 있던 방향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외국 투어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지 이미 습관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별의별 놈이 다 있네!’

그 중요한 순간에 소리를 낸 놈은 얼른 인파속으로 숨었다. 하지만 필상은 놈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했고 움직임까지 추격했다.

그런데 추악한 짓을 하고도 놈은 도망치기는커녕 킬킬거리며 이동하는 팬들의 행렬에 슬쩍 합류했다.

“어디 가요?”

“볼일이 좀 있어서.”

“오라버니!”

봄도 감을 잡았다.

하지만 필상은 지금 선수의 캐디이고 놈은 선수 보호를 위해 쳐놓은 안전띠 밖에 있었다. 하지만 그냥 한 방 쥐어 팰 것 같아 봄도 필상을 따라갔다.

-아! 마스터가 왜 저러죠?

-누가 범인인지 아는 것 같습니다.

-범인이라니요?

안 프로가 어드레스를 풀고 재차 샷을 하는 장면을 다들 봤다. 굳이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방해가 있었음을 감지했는데, 유우키는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런 행동은 봄을 위해서나 JLPGA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눈 가리고 아웅’인지라 야마다 해설은 그냥 무시하고 할 말을 다 했다.

-선수의 플레이를 고의적으로 방해한 사람은 반드시 찾아내 이 필드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이건 정말 아니죠!

-선수라면 그 정도 대비는 해야 하지 않나요?

-그걸 왜 선수에게 책임을 씌웁니까! 아무리 최고의 선수라도 팽팽한 승부처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지요. 그걸 알면서도 사적인 욕심을 위해 추악한 짓을 한 자, 골프인의 한 사람으로서 필히 본보기를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카메라에 잡힌 필상의 행동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뭔가 사고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필상은 카메라를 가방에 숨긴 놈 근처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놈에게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다.

“저 말입니까?”

“그래, 이마가 훌러덩 까진 당신!”

그자의 생김새 특징은 너무도 확연했다.

그런 모발 상태라면 모자라도 써야 할 것 같은데, 자랑스럽게 로션까지 발라 반질반질했다. 그러나 성깔은 꽤 있는지,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자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이봐! 당신 지금 날 모욕한 거야?”

제법 호기롭게 다가왔으나 그자의 눈은 필상의 목젖 부근에 머물렀다. 작은 신장에 배까지 불룩 나온 놈이 대체 뭘 믿고 개기는 것인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가방 열어 봐!”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이야! 사람들이 인정 좀 해 주니까 다 당신 아래로 보여?”

“닥치고 가방이나 열라고!”

“내가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고 그냥 간다, 그냥 가!”

필상이 더 세게 나오자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놈은 도망갈 수 없었다. 어느새 필상이 카메라가 든 가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자 놈은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건이 커지면 네가 불리하지 않겠냐는 협박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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