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29화 (329/354)

329. 거미줄에 걸린 파리

“이자가 핵심 인물로 추정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자 금융과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 에든버러의 한 특급 호텔 프라이빗 룸에는 지금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슈트가 무척이나 어울리는 훤칠한 남자가 입은 옷이 하도 후줄근해 호텔 입구에서 제지당했던 중년의 백인 남자에게 뭔가 설명하는 중이었다.

“시몬. 추정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워낙 민감하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확증도 없이 닦달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닦달이라니요?”

표현이 거칠다고 생각했는지 시몬의 표정은 심각했다.

하지만 중년 남자로 분한 필상은 아직도 시몬이 사태의 심각성을 체득하지 못한 것 같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명확히 설명했다.

“전 스포츠 도박에 관련된 자들이 결코 떳떳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틀림이 없을 겁니다. 검은 커넥션이 없다면 이렇게 버젓이 사업을 벌이고 날로 번창할 수는 없죠.”

“그래서 놈들의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그것을 단기간에 해내기 위해 다소 무리한 수도 감행할 겁니다. 물론 당신이 이에 동의해야겠지만.”

그 말을 던지는 필상의 표정은 차갑다 못해 살벌했다.

골프 경기 중에도 본 적이 없는 색다른 모습에 시몬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대략 무슨 의미인지 감이 왔지만 구체적인 확인이 필요했다.

명분 없이 행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무리한 수라는 것은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겁니까?”

“더도 말고 딱 아비게일처럼 만들 겁니다.”

“죽이지는 않지만 더는 그 더러운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겁니까?”

“네. 그렇기 때문에 필히 확증이 필요합니다.”

필상과 봄의 신비한 능력을 본 적은 없지만 개략적이나마 시몬도 추정은 한다. 평범한 인간은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이능을 사용하는 비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필상의 마지막 라운드를 훼방 놓다가 정신이상자가 된 노인이 유럽에서 아주 유명한 심령술사라는 것도 확인했다.

평범한 사람은 존재조차 모르지만 그 노인의 비범한 능력을 찾는 이들은 많았다. 주로 거금을 운용하는 부자들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초능력을 가진 이들과 부화뇌동한다.

그런데도 제 본업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노인은 다수의 스포츠 베팅업체의 고문으로 활약하며 천금의 손에 쥐었다.

“중요한 것은 증거입니다. 누구를 어떻게 하든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 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증거는 필히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니 더 깊이 조사를 해 주십시오. 일단 이자는 제가 조용히 찾아가 보겠습니다.”

“찾아간다고요?”

“네. 아무도 몰래 방문해 그자가 보유한 정보를 취득하고 경중에 따라 처리할 겁니다. 물론 유익한 자료는 당신에게 넘겨 줄 겁니다.”

아비게일은 돌격대장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평생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는 자였는데, 겜블의 늪에 빠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거대 자본의 지시를 받는 처지가 되었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선악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대형 사고를 쳤다.

응징은 확실하게 이뤄졌지만 이제부터 필상이 할 일은 그를 사주한 자들을 밑에서부터 하나씩 족치며 대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이었다.

그 더러운 연결고리를 찾아내 필상에게 넘기고 취합한 자료를 통해 놈들의 불법성을 증명하는 일이 시몬의 몫이다.

이미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며 여러 사람이 제거된 과정을 확인한 시몬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본격적인 작전은 지금부터이기 때문이다.

“일은 잘할 것 같아요.”

시몬이 떠난 뒤, 봄이 꺼낸 첫마디다.

“왜? 신뢰가 가지 않아?”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만약 우리 일이 어그러지면 배신할 수도 있는 사람 같았어요.”

“본시 합리적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대체적인 성향이 그래. 하지만 이 대표가 소개했으니 일단은 믿어야지. 기대를 저버리면 본인도 심령술사 짝이 날 거라는 것도 알 거야.”

“빈틈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지. 나갈 준비해.”

“지금이요?”

“응. 잠시 후 자정에 출발하자.”

“네!”

시몬이 제 몫을 해 줄지는 두고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미 발을 깊이 들였고 용의선상에 놓인 자를 차례로 솎아 내는 과정을 본다면 불안감은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일단 놈들의 검은 커넥션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극히 위험한 일인데, 봄은 마치 필상과 소풍이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다짐을 받았다. 모든 사안은 필상과 함께 상의하고 특히 행동을 취할 때는 필상의 허락 없이 움직이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이 시작되자 봄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자의 방으로 통하는 경로에 놓인 CCTV는 모두 꺼 놨어요.”

“확실한 거지?”

“네. 그다지 어렵지도 않더라고요.”

그자가 머물고 있는 호텔은 일반 손님은 받지 않는 초특급 프라이빗 호텔로 포스 강이 바다와 만나는 퀸스페리 브리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보안과 통제가 철통같았지만 젊은 흑인 미녀를 옆구리에 끼고 300만 달러나 나가는 부가티 시론을 타고 온 중년인을 막아설 무모한 직원은 없었다.

익숙한 듯 곧장 와인 바로 향한 두 남녀는 웬만한 직장인 월 급여보다 비싼 와인을 주문해 그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거의 남자에게 안기다시피 기댄 채 시간을 보내던 흑인 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 나눈 대화가 그러했다.

“그럼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네. 하니(HONEY)!”

“연기에 너무 몰입하는 거 아냐?”

“흐흐흐. 이 제안은 당신이 먼저 했잖아요. 엉큼하게.”

“당신? 엉큼?”

실로 어이가 없었으나 반항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상황은 전개되는 중이었고 농익은 봄의 연기에 곳곳에 위치한 직원들은 눈길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보안도 중요하지만 손님의 사적인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금기시되는 아주 중요한 근무 수칙이기 때문이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놈이 머물고 있는 6층 버튼을 눌렀다. 한 층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럭셔리 스위트룸이 2개밖에 없어서 그런지 카드키가 필요했지만 봄이 손을 대자 엘리베이터는 스무드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여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남녀가 우측으로 향하자 소파에 대기하던 건장한 남자 둘이 일시에 일어나 앞을 막아섰다.

더글라스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자가 우측 스위트룸을 사용하고 있으며 호텔 보안도 믿지 못한 그자가 개인 가드를 세워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귀찮다는 표정을 짓던 중년인은 흑인 미녀와 얼굴을 마주 보며 피식 웃더니 손을 들어 올리며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냥 자!”

그러자 믿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었다.

험악한 인상을 지닌 두 가드의 눈동자가 스르르 풀리더니 그 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호흡이 가지런한 걸 보면 필상이 주문한 대로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본인의 임무를 망각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숙면에 빠진 두 남자를 넘어 스위트룸 앞에 다가간 남녀는 아무 어려움도 없이 문을 열었다.

이미 밤 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인지라 방은 조용했다. 잠이 든 방주인을 지키는 것은 은은한 수면 조명뿐이었다.

자신을 찾아온 저승사자가 목전에 이른 것도 모른 채 코를 고는 소리가 입구까지 들렸고 그 소리를 따라 간 필상과 봄은 잠든 놈의 앞에 쉽게 도달했다.

“한 가지 수고를 덜어 주는군!”

“제가 취조할까요?”

“취조? 아니야. 일단 앉아서 쉬어.”

“네. 하니!”

“으흐!”

봄이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자 필상은 침대로 다가갔다.

놈은 자신의 침실에 두 남녀가 들어와 대화를 나누는데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피곤했는지, 자신의 수하들을 믿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맨 정신으로 얼굴을 마주할 필요를 덜어 줘 고마웠다.

필상은 놈의 얼굴 위에 손을 올리고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넌 이제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침입자가 있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든 자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고 여겼지만 돌연 몸을 부르르 떤 더글라스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일단 일어나 앉아.”

“네.”

봄은 필상이 어떻게 놈을 처리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너무도 수월하게 상대의 정신을 지배하는 광경에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운 미소를 지어 보냈다.

아무리 정신이 없던 자라도 한 인간을 온전히 압도해 종처럼 부리는 이능은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게 아쉬웠다.

“네 이름과 소속을 밝혀라.”

“제 이름은…….”

놀라운 고백이 이어졌다.

그자는 매우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본가는 북아일랜드였고 처가는 스페인이었다.

양가 모두 해당 지역의 유력한 정치인을 배출한 명문가였으며 더글라스도 한때는 정치에 뜻을 둔 이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부패 사건에 연류가 되어 그 꿈을 일찌감치 접었고 이후 양지에서 활동할 수 없었던 그는 돈에 환장해 엄청난 부를 끌어 모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스포츠 베팅업체와 당신의 관계는 어떻지?”

“3개 회사에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수의 베팅 기업체 3곳에 투자를 했을 뿐만 아니라 경영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스페인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에 기반을 둔 회사들인데, 그 3개 회사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베팅 금액의 30%를 감당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세계도 경쟁이 치열해 서로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으며 마피아들처럼 영역 전쟁과 피의 보복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한데 뭉친 이변이 생겼는데, 그들을 연합하게 만든 당사자가 바로 필상이라는 말에 신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도한 세력, 그리고 동조한 세력을 쭉 읊어 봐.”

“이번 일을 주도한 회사는 CST입니다.”

“CST?”

관련 분야에 대한 공부를 적잖게 했던 필상도 알지 못하는 회사가 놈의 입에서 언급되었다. 그런데 그놈의 정체를 알게 되자 분노가 치밀었다.

CST(CHINESE SPORTS TOTO)는 중국 자본이었다. 러시아의 작은 베팅 회사를 사들여 일거에 선두 주자로 나서려고 했으나 견제를 당해 어려움을 겪었다.

서구에 기반을 두고 시장을 선점한 회사들은 아시아 자본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본이 탄탄해도 기존 업체들의 연합한 힘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미스터 퍼펙트를 제거하는 작업을 자신들이 해결함으로써 버거운 텃세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겁니다.”

“모든 비용과 위험부담을 스스로 졌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다만 직접 움직일 능력이 없어 제게 도움을 요청했고 저는 그 대가로…….”

정신을 지배당한 상황에서도 잠시 머뭇거리는 걸 보면 본인도 추악한 짓임을 모르지 않는 것 같았다.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거액을 받기로 약속 받은 더글라스는 스코틀랜드 현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 아비게일에게 현장을 맡겼던 것이다.

“오라버니. 그림이 대충 나왔네요?”

“의외로 쉽게 풀렸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나 말은 말일뿐,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필상은 놈에게 관련 증거를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극한 위기감이 작동했는지 놈은 몸을 심하게 떨면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자칫 이지를 잃어버릴 게 염려되어 얼른 놈의 몸을 보호함과 동시에 더 강한 의념을 불어넣었다.

“정신을 놓지 마! 넌 나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돼!”

“으으윽!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살려 줄 것이다. 더러운 욕망과 부정하게 축재한 재물을 버리고 내 뜻을 따르면 네게 남은 삶은 평온할 것이다.”

“아아아…….”

놈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지금까지 쌓아 온 자신의 부귀영화를 모두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억울하고 분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필상의 눈빛을 마주한 놈은 맥이 탁 풀렸는지 풀썩 쓰러졌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원래 네 것이 아니잖아. 내가 취할 것도 아니며 스스로 네가 이룬 부를 사회에 환원해 명예로운 이름을 남겨라. 네 자식들과 가족이 자랑스럽게 여길지는 모르겠다만.”

이지를 제압당한 상황임에도 그에 대한 더글라스의 반응은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나왔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지금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는 것이 중요할 뿐!”

독한 놈이기 때문인지 시간이 경과되자 스스로 사고하며 필상의 지배에서 풀려나려는 기미가 보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처지를 확인시켜 줘야만 했다.

그런데도 재물에 대한 욕망은 쉽게 놓기 어려운 듯 발악하는 만용을 보였다.

“살아도 남은 것이 원지 않았던 명예뿐이라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날 죽이시오!”

실로 예상치 못한 어이없는 대답이 나왔다.

스스로 죄를 자복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면 용서할 의사도 없지 않았다.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울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너무 안이했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감히 배 째라고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필상은 손을 들었다.

화들짝 놀란 놈이 뒤로 빠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필상이 흘려 낸 기운에 얽매인 놈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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