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27화 (327/354)

327. 데뷔 3년차

“드롭을 하네요. 뼈가 시리겠어요.”

“하하하! 샌드나 줘.”

맥길로이는 필상의 관심 밖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반드시 이번 샷을 핀에 바짝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샌드웨지를 건네받은 필상은 깃대를 바라보며 이미지 메이킹에 들어갔다.

바람이 살짝 왼쪽으로 불고 있어 오조준이 필요했다. 그런데 타구의 궤적이 선명하지 않았다. 이는 곧 바람의 양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안 되겠다. 피칭.”

“설마 펀치 샷을 하려고요?”

“응. 탄도를 띄우면 바람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

“아!”

그사이 맥길로이가 서드 샷을 했고 안타깝게도 그린 좌측으로 당겨지고 말았다. 바람의 영향을 받았음이 확인되었지만 셰인은 과감하게 샌드웨지를 잡았다.

이윽고 시원하게 띄웠는데, 만약 이 공이 원하는 궤적을 그리지 않는다면 심적 타격이 상당할 것이다. 안 그래도 필상이 유틸리티로 거리 쇼를 보여 준 터라 은근히 짜증났을 터이니.

하지만 셰인은 운도 좋았다.

“바람을 거의 보지 않은 것 같은데…….”

“라이가 쉽지는 않을 거야.”

고놈의 타구가 바람을 거의 타지 않고 깃대 주변에 깜찍하게 떨어졌다. 3야드 거리면 운이 좋은 결과였으나 당사자는 만족스럽지 않은지 연신 투덜거렸다.

그러자 흑돈은 아주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필상도 클럽을 다시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미다. 하지만 필상은 꿋꿋하게 피칭을 잡고 85야드를 펀치 샷으로 처리했다.

맞는 순간, 강한 임팩트를 넣은 이유는 그린에 올라간 공에 스핀을 먹여 런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인 더 홀!”

방향, 거리 나무랄 게 없었다.

타격감이 아주 좋아 필상도 공이 떠난 자리를 오랫동안 쳐다보며 만족한 미소를 보였다. 보지 않아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피니시 자세를 풀며 공을 쳐다볼 때는 이미 팬들의 함성이 하늘에 닿을 듯 드높았다. 그린 앞 러프를 강타한 타구가 그린에 오른 뒤에 정확히 홀컵을 향해 굴렀기 때문이다.

필상이 보기에 방향은 정확했으나 의도한 것보다는 조금 길지 않나 싶었는데, 팬들의 바람이 작용한 것일까?

터엉!

탕! 탕! 탕! 탕…….

깃대를 맞춘 공이 그냥 홀컵 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샷 이글.

필상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인 더 홀’을 외쳤던 팬들의 반응은 어떠했겠는가!

귀가 멍멍할 정도로 강한 비명이 지축을 울렸다.

역전을 당한 뒤에 실망할 만도 하건만 다시 기적적인 샷을 만들어 내면서 단숨에 선두를 압박한 것이다.

-와아아! 터졌습니다! 이글이 터졌어요!

-정말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금 길다 싶었는데, 저게 어떻게 들어간 겁니까?

-저건 행운이 아니죠! 지금 저 샷 이글이야말로 필드의 지배자이자 모든 승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폭군의 진정한 위엄인 겁니다.

-아! 네. 원한다고 다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만큼 기적적인 샷이었다는 겁니다. 하하하!

-이러니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나요! 정말 중요한 순간에 빛나는 선수가 바로 진정한 강자인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공필상 프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좀처럼 갤러리들의 함성이 가라앉지 않았으나 필상은 담담한 얼굴로 그린을 향해 잰걸음을 재촉했다. 모자라도 벗고 팬들의 환호에 호응하는 것이 맞지만 그러면 이내 조용해질 것 같아 그 분위기를 더욱 길게 끌고 가고자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린에 올라 홀컵 안에 들어 있던 공을 꺼내 그린 밖으로 물러날 때까지도 환호성은 그치지 않았다.

리더 보드의 최상단에 다시 필상의 이름이 올라갔다.

-16 공필상

-15 셰인 로리

-13 로리 맥길로이, 브룩스 코엡카

맥길로이는 타수를 잃은 상황에 처해 있고 코엡카가 앞 조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이미 우승 경쟁에서는 멀어졌다.

문제는 셰인이 과연 3야드 버디를 성공하며 공동 선두라도 지킬 수 있느냐는 점이었는데, 기다리던 그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맥길로이가 17야드 어프로치를 뒤땅을 때리며 겨우 그린에 올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좋은 칩샷을 했다면 퍼팅이 남은 셰인에게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조차 도와주질 않았다.

하지만 이를 악문 셰인은 결국 차분하게 버디를 집어넣으며 재역전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대단하네!”

“네. 신이 내린 것 같습니다. 물론 헛수고겠지만요.”

“그건 두고 봐야지.”

가장 어려운 17번 홀은 필상도 안전하게 공략했다.

무리하지 않고 드라이브를 잡아 332야드를 보냈고 그린 중앙을 보고 올린 뒤 차분하게 파를 세이브했다.

문제는 셰인이 티샷이 러프에 빠지면 2온에 실패했지만 칩샷을 깃대에 바짝 붙이며 3온 1퍼팅으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거였다.

“질기네요.”

“그러게. 이쯤 되면 다들 알아서 나가떨어지던데. 하하.”

확실히 셰인은 우승 경쟁을 할 만큼 좋은 샷을 터트렸다.

적어도 지난 두 홀은 필상으로서도 더는 좋을 수 없을 만큼 완벽했는데, 그 또한 지지 않고 맞선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홀을 앞두고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자 지켜보는 팬들도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일찍 승부가 갈리는 것이 아쉬웠던 팬들도 긴장하며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에 아주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이거 정말 명승부네요.

-연장전까지 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8번 홀은 웬만해서는 버디를 잡는 홀이니까요.

-그렇다면 아예 1온을 노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어차피 잘라 가도 버디를 잡을 수 있다면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괜히 엄한 샷이 나오면 그동안 쌓은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승기가 올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아! 그 말씀도 옳기는 한데, 359야드는 공 프로가 얼마든지 한 칼에 보낼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죠.

임 캐스터의 그 바람에 동조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아예 터무니없는 거리라면 모를까, 필상은 이미 다른 대회에서 이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도 1온에 성공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잉 그라운드로 올라서는 필상의 손에는 드라이브가 잡혀 있지 않았다. 전매특허인 초장타가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쉬움을 토로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안전하게 공략해 버디라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듯, 1온을 외치는 팬들도 있었다.

“1온은 너무 위험해!”

“위험할 것까지는 없죠.”

“여유라도 있다면 모르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않잖아.”

“그럴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죠.”

“3번 우드로 설마?”

그 질문에는 봄도 대꾸하지 않았다.

연습 스윙을 하는 필상의 헤드 스피드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들도 부풀었던 기대감이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실제 어드레스를 취하기 전, 필상이 그린을 다시 한 번 노려보는 광경을 놓치지 않은 봄이 크게 외쳐 댔다.

“1온! 1온!”

그러자 기대를 놓았던 팬들도 덩달아 같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드레스를 취하던 필상은 잠시 멈췄다.

보통은 이 시점에서는 소리를 자제하기 때문에 샷을 선수에게 방해가 되었나 싶었던 팬들은 우뚝 외침을 멈췄다.

자신들이 과도한 바람을 강요했나 싶어 당황한 그들 앞에서 필상은 두고두고 회자될 행동을 취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휭하니 둘러보더니 돌연 3번 우드를 높이 치켜든 뒤에 그린을 향해 내리 꽂는 액션을 취한 것이다.

-어? 저건 뭐죠? 혹시 1온 예고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행동은 나올 수 없습니다.

-하하하! 지금 들고 있는 클럽이 3번 우드라는 걸 착각한 것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이미 드라이브로 400야드도 날린 적이 있으니까 풀스윙을 하면 당연히 오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359야드인데요?

-제 생각에 런을 이용해 굴려서 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린 앞에 커다란 글라스 벙커가 있는데, 그걸 치고 올라간다고요?

더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마침내 필상이 어드레스를 취했기 때문이다.

정적(靜寂)!

방금 전까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던 수천의 갤러리들이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는 것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본인들도 놀랄 정도로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아주 느린 테이크 백이 시작되었다. 마치 거북이가 기어가듯 느릿느릿 출발한 백스윙이 완벽하게 돌아가 탑을 찍었고 그 지루함을 일시에 털어 버리는 다운스윙이 뒤를 이었다.

따앙!

어떻게 임팩트가 이뤄졌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워낙 헤드 스피드가 빨랐고 총알처럼 튀어 나간 공은 허공에 높이 떠오른 뒤에야 사람들의 시야에 잡혔기 때문이다.

다만 아주 강렬한 타격 소리만 정적을 깨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거대한 함성의 파도가 18번 홀을 완벽하게 메웠다.

“인 더 홀!”

1온도 감지덕지인 상황인데, 가장 크게 들린 소리는 단 번에 들어가라는 외침이었다.

-파 4홀에서 바로 홀인이 되면 앨버트로스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PGA에서 한 번, LPGA에서도 한 번 나온 적이 있습니다. 2016년 장하나 선수가 바하마 클래식에서 기록한 적이 있죠. 참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방향은 일단 좋은데 그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에 대한 답은 허 위원도 내지 못했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그런 것까지 외우고 다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려진 통계치는 무려 585만 분의 1이다.

325,000번의 18홀 라운드를 돌아야 한 번 나온다는 말이고 매일 라운드를 돌아도 약 890년이 걸린다. 그러니까 그런 일은 실전에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는 것이 팬의 심리,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 더 홀이라는 외침은 끊이질 않았다.

“와우! 캐리가 311야드 나왔어요.”

“정말이야?”

“네. 약간 우측이기는 한데 글라스 벙커 턱이 딱 그 모양이에요.”

“에이. 그래도 설마…….”

그렇게 말은 했지만 이 대표도 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타구는 그린 앞에 있는 글라스 벙커 앞에 떨어진 뒤에 일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벙커가 제법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벙커 턱을 넘으면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정말로 그린에 올라탄 것이다.

“형님!”

“왜?”

“올라갔어요.”

“당연하지. 올리려고 친 건데!”

“에이 진짜!”

“어쭈! 나야 나. 공필상이라고.”

“붙을까요?”

“조금 짧을 것 같아.”

“짧다고요? 왜요?”

“뒷핀이잖아. 기껏 예고까지 하고 넘어가면 망신이잖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자신도 모르게 반말을 하다가 옆구리에 한 대 맞았다.

하지만 배를 부여잡고도 흑돈의 시선은 그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티 박스 근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집중하는 이유는 그린 근처에 있는 팬들의 반응을 보면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늠할 수 없었다.

다들 벌떡 일어나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린에 올린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흥분을 자제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필상의 예고는 정확했다.

타구는 그대로 굴렀다면 홀컵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5야드를 남긴 지점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하아! 아깝네요.

-아까운 게 아니고 너무 기뻐 춤을 춰야 할 상황인 겁니다.

-아! 그렇기는 하죠. 이 퍼팅을 넣으면 위대한 기록이 완성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왜 저는 아쉬운 걸까요?

-화룡점정의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내일부터 무슨 낙으로 사나 걱정이 되거든요. 하하하!

-혹시 은퇴하는 거 아니겠죠?

-데뷔 3년차입니다. 3년차! 그럴 일은 없을 거고 이젠 하루하루가 모두 역사인 겁니다. 대체 우리 공 프로는 메이저 대회를 몇 번이나 연승할 수 있을까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아직 셰인 로리가 샷을 하지도 않았다.

물론 1온을 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도 버디를 낚을 수 있고 하늘이 돕는다면 샷 이글이 나올 수도 있다.

때문에 우승 이후까지 예측하는 것은 오버였다.

하지만 그걸 탓하는 시청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이후에 어떤 목표를 잡아야 하는지 자신들의 바람을 경쟁적으로 채팅 창에 적어 올리며 신바람을 내기 바빴다.

그사이 셰인의 티샷이 이뤄졌고 그 와중에도 그는 301야드를 페어웨이에 보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경쟁에서 멀어진 맥길로이는 드라이브가 아닌 3번 우드를 잡고 필상이 했던 샷을 재현하려고 나섰다.

“얼마나 갈까요?”

“글라스 벙커.”

“정말이요?”

“315야드만 보내면 돼. 그 정도 실력은 충분한 선수지.”

“마음을 비웠다면 가능하기도 하겠네요.”

“비웠어. 허탈한 표정이 사라졌잖아.”

필상의 예측이 맞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 치려고 드로우를 걸었기 때문인지 타구는 글라스 벙커 좌측 경사에 애매하게 멈췄다.

방향이 좋았다면 그린에 걸쳤을지도 모른 좋은 샷이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훨씬 멋진 샷을 봤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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