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98화 (298/354)

298. 폭군(暴君)

“거리 교정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 영상을 찍고 클럽별로 거리도 정확히 기록해.”

“네.”

거리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스윙의 일관성인데, 카메라의 발전이 가져온 과학적 분석 방법을 동원하면 교정은 용이하다.

까마득한 과거에는 스윙을 분석하는 방법이 모호했다. 그냥 좋은 결과를 내는 스윙이 최고로 인정받았고 그걸 분석할 방법이 없어서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이 최선이던 시절도 있다.

각자의 체격과 근육, 신체적 조건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지금은 스윙 하나를 원하는 만큼 잘라서 확인할 수 있는 영상 기술의 발달로 무엇이 부족한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금방 확인이 가능하다.

“힘을 실으려는 의도가 너무 강했군!”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갑자기 거리가 들쑥날쑥했던 이유는 줄어든 체중을 의식한 자신이 강한 임팩트를 만들려고 다운 블로우를 할 때 강하게 채려는 동작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장타를 자랑하던 자신이 한 클럽을 올려 잡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으나 받아들여야만 했다. 체중이 불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를 의도적으로 메우려던 생각이 문제였던 것이다.

최적의 스윙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체격이나 근육의 상태가 다른데, 같은 스윙을 고집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드라이브는 점검 안 하세요?”

“해야지.”

성격상 아이언에 문제점을 발견한 필상은 우드로 넘어갈 수 없었다. 이미 토요일이었고 화요일에는 프로암 출전이 예정되어 있어서 마음은 급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잘못된 습관을 알고도 그냥 지나치면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 필상은 아이언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늦은 밤까지 아이언 샷 교정에 매달렸다.

3주간 필상 때문에 애가 말랐던 미사키와 서 팀장도 자리를 뜨지 않고 필상의 연습을 지켜봤다. 뭐라도 도움이 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꾸벅꾸벅 조는 것까지는 용납되지 않았다.

“둘 다 그만 들어가 쉬어.”

“네. 저는 그럼 이만 들어갈게요.”

“저는 커피 한 잔 뽑아 올게요. 프로님.”

미사키는 곧바로 들어갔지만 서 팀장은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없다며 뽑아 온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곁을 지켰다.

그녀는 이 대표에게 단단히 지시를 받은 것 같았다. 지난 대회 최종 라운드부터 낯선 느낌이 시작되었고 이어 갑작스러운 산행과 연락 두절은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가장 큰 고객이기 때문은 아니다.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지만 사람이 변하는 것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 투어프로는 언제든 잘 치는 줄만 알았어요.”

“평균적으로 잘 치기는 하지. 하지만 그냥 잘 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자신의 샷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게 현실이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야말로 가장 위험해. 샷 하나에 무너질 수도 있거든.”

“아무리 그래도 전 프로님을 믿어요!”

“고맙네. 하하하!”

모모코도, 서 팀장도 한결같은 신뢰를 보냈다. 그건 이제까지 필상이 이뤄 왔던 것에 대한 존중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자신에게는 이제 만약을 위한 비장의 카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온전히 자신의 힘과 의지로 이뤄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까지 이뤄 왔던 것들이 오히려 큰 부담으로 작용했으며 다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거대해 클럽을 다시 잡는 것이 떨렸었다.

따악!

시원하게 맞아 나가는 타구를 보며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 샷을 할 때마다 짜릿한 감동을 느꼈다.

그동안 갈고닦은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초감각이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하지 않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뚜렷한 감각은 새로운 느낌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갔다.

비범한 능력을 스스로 거부하기로 작정한 것은 큰 모험이었다. 과연 그 능력 없이 자신이 쌓은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렸고 그동안 쌓은 정순한 기운을 비울 때만 해도 필상은 이 세상 아쉬울 것이 없었다.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뻤어!’

초월적인 능력의 발현으로 발생했던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부작용을 동시에 없앤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막상 US오픈을 앞두고 클럽을 다시 잡자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기대와 응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부피가 좀 컸어야지, 자그마치 절대자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연습을 시작하자 불안감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최대한 이능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이 주효했다.

자연스럽게 발현된 능력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늘 정정당당하게 임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지금은 자신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만약 이능에 기대 편하게 골프를 즐겼다면 기회가 왔을 때,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올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늘 경계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한 것이 꼭 필요한 순간,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용기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힘겨운 상황에 몰리면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불안에 떨며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느니, 마음 편하게 낮은 자리를 자처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늘 떳떳하고 싶었지만 남들이 가지지 못한 초월적인 능력이 순간순간 발현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게 자신의 집념이 만든 결실이라고 자부하고 싶지만 그건 앞으로 드러날 것이다. 팬들 앞에서 생생하게.

* * *

-올 시즌 들어 PGA 투어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는 평가가 틀리지 않은 거 같습니다.

-아! 확실히 저도 그런 느낌이 듭니다. 아직 대회마다 편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갤러리들의 입장 수가 최근 몇 년과 비교해 거의 2배로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생방송 시청률도 MLB나 NBA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골프 중계는 현장감이나 생동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거든요.

-중계 기술의 발전도 한몫을 하지만 실제 투어 경기의 박진감이 훨씬 높아진 것도 사실 아닌가요?

-그것보다는 슈퍼스타의 등장! 미스터 퍼펙트라는 걸출한 절대자가 불러온 파급효과라는 평가가 더 지배적입니다.

-아! 그건 부정할 수 없지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넘어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귀족적인 운동으로 인식되던 골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타이거 우즈다.

프로 스포츠로서 공고하게 자리 잡도록 공헌한 타이거의 기여도는 업계에 속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스타 마케팅의 표본이라 일컬어진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의 추락과 더불어 이미 거대해진 골프 시장은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고 정체기를 맞이했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그동안 반짝이는 스타들이 명멸했으며 골프 저변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좀처럼 눈에 띄는 성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돈이 되는 곳에 경쟁이 존재하기에 투자 대비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강해 되레 역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골프 인구가 많아지고 골프장도 늘어났으며 대회도 많아진 것은 분명한데, 폭발적인 성장은 이뤄지지 않았던 골프계에 드디어 변화의 조짐이 포착되었다.

[미스터 퍼펙트]

[필드의 절대자]

[폭군(暴君)]

그렇게 불린 필상의 등장이 화산 폭발의 시발점이 되었다.

세계 인구의 분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답이 있다. 서양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스포츠는 시장의 한계가 확연했다.

축구가 그러했고 야구도 그러했다. 동양의 유력한 선수들이 상위 리그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얻게 됨으로써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 선두에 늘 일본 선수들이 있었으나 타 종목에 비해 활약이 두드러지지 못했던 스포츠가 바로 골프였다.

그나마 한국 여자 선수들이 세계 골프계를 지배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필상이 등장하면서 골프 시장은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급기야 이번 시즌 들어 전무후무할 기록을 양산하면서 활화산이 폭발하듯이 불을 뿜기 시작한 것이다.

“날씨가 아주 좋아요.”

“봄이니까!”

“오늘 라운드도 봄날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게. 하하하!”

착실하게 준비했다.

이틀에 걸쳐 아이언 샷을 완벽하게 잡았고 우드를 비롯한 드라이브 스윙도 새롭게 세팅을 마쳤다.

그 와중에 프로암에 불참하게 된 것은 여러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상에 어울리는 기량을 보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PGA 챔피언십 우승 뒤에 돌연 체중이 쭉 빠진 상태로 나타난 필상의 모습에 다들 경악했던 것도 사실이다. 운동선수에게 체중의 변화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비쳤기 때문이다.

-드디어 폭군이 1번 홀에 나타났습니다.

-하하하! 챔블리, 폭군(暴君)이라는 닉네임을 아무렇지 않게 쓰시는데, 당사자는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요?

-저라면 아주 기분 좋을 것 같은데요? 폭군이라는 의미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인데, 그보다 더 기분이 좋은 호칭이 또 있나요?

-그렇기는 하지만 역사가 기록하듯, 폭군의 말로는 늘 좋지 않았잖습니까!

-아! 그건 좀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공 프로가 원지 않는다면 쓰지 않을 용의는 있습니다.

호칭 하나 때문에 설왕설래 할 정도로 필상의 위상은 높았다. 보통 중계진은 선수들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의 해설 한 마디에 선수들에 대한 평가는 물론 주가도 오락가락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라도 중계진이 띄워 주려고 작정하면 금방 팬들의 귀에 박히고 그건 스폰서의 선택을 받을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필상에 대한 해설은 조심스러웠다.

팬들의 반박을 받을 수도 있지만 더 큰 것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모처럼 불타오른 흥행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장의 확대에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이들은 용품업계를 비롯한 골프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지만 골프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손익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해설진도 골프 투어가 활성화되어야 입지가 넓어지고 수입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즉, 필상의 성적은 이제 단지 개인의 영달이 아닌 관련 산업의 부흥과도 연관된 것이다.

-무려 5개 메이저 대회를 연속해서 우승했습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위대한 기록 아닌가요?

-네. 인정합니다. 이미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되었고 더 이상의 우승이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는 용어는 한 해에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렇게 다들 흥분하며 지켜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비 존스가 근접한 기록을 달성했다지만 당시와 지금은 너무도 골프 환경이 다릅니다. 위대한 그를 폄하할 의사는 없지만 만약 폭군이 남은 2개의 대회를 모두 우승한다면 그를 명예의 전당에 올리는 게 아니라 그의 이름을 건 새로운 상을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와우! 그거 참 신선한 제안이로군요.

얼핏 들으면 과도한 말처럼 들린다. 어찌 되었든 필상은 이제 겨우 골프계에 발을 디딘지 3년 차에 불과한 신인 선수로 분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력이 아니다. 참가하는 대회마다 연전연승을 거두어 어느새 통산 승수가 30승을 넘은지 오래다.

현역 선수 중에 필상보다 좋은 기록을 가진 선수는 몇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것도 굵직굵직한 대회만 선별해서 출전했음에도 상상하기 힘든 결과를 냈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골프를 모르는 이들도 관심을 가지게 만든 위대한 기록, 캘린더 그랜드슬램에 도전 중이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딛고 지나갔기 때문에 기록에 대한 관심과 성원은 더 뜨거웠다.

“오늘은 452야드로 세팅되었어요.”

“드라이브.”

필상은 동반자들과 반갑게 인사는 나눴으나 일체 신경을 껐다. 자신의 경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라운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드라이브를 미리 들고 기다리자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이어졌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찬사로 가득 찬 소개말,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밀려들었으나 손을 들어 팬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절대자의 면모였다.

‘악명 높은 US 오픈이 시작되는구나!’

USGA(미국골프협회)가 주관하는 US오픈은 골프 게임의 까다로운 요소만 가져다 놓기로 유명하다 못해 악명이 높다.

마스터스의 오거스타내셔널이 유리알 그린이라지만 US오픈 코스의 그린 빠르기도 그에 못지않으며 더 빠를 때도 있다.

오거스타가 그린 스피드를 공개하지 않아 비교는 불가하지만 필상이 경험한 바, 윙드 풋 골프코스의 그린은 절대 더 느리다고 판단되지 않았다.

스트로크가 이뤄졌을 때부터 볼이 멈출 때까지 시간이 20초가 넘을 때가 있다. 그린이 너무나 빠르고 단단해 볼이 그린에 안착하고도 평평한 위치를 찾을 때까지 계속 구르기 때문이다.

최악의 라이에 깃대를 세웠을 때, 1야드 퍼트를 잘못해서 놓치면 다음 퍼트는 8야드가 넘을 때도 있다. 스트로크 시에 퍼터 헤드가 조금만 뒤틀려도 스타 선수의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큰 충격을 선사하기도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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