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95화 (295/354)

295. 데일리베스트

-3온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죠?

-미스터 퍼펙트의 샷에 특별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평상시 연습을 개을리하는 선수도 아니며 러프에서의 샷을 못하는 선수도 아니니까요.

-그럼 순전히 정상적이지 않은 러프 때문이라는 말씀인데, 어떤 경우에는 잘 빠져나오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공을 찾지 못해 로스트볼 처리를 하는 이런 현상, 선수들 입장에서는 아주 갑갑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실제 많은 투어프로들이 그 문제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고는 합니다. 러프에 공을 보낸 선수에게 페널티가 주어지는 것은 이해되지만 전장이 길어지고 있는 현실과 너무 상충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US오픈의 러프는 악명이 높다.

하지만 다른 대회들도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그 경향을 따라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샷을 하기 전에 공이 놓인 잔디의 상태를 면밀히 살필 의무는 선수에게 있지만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에 따른 결과가 천차만별이라면 그건 너무 심각한 문제다.

노력이나 실력이 아닌 운에 좌우되는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필상의 공이 놓였던 위치는 헤비 러프도 아닌 퍼스트 컷이었다.

어떤 코스에서는 15~20mm를 유지하기도 한다.

페어웨이 잔디의 길이가 11mm 안팎을 유지하는 것에 비하면 그것도 충분한 페널티가 된다. 하지만 발목이 잠길 정도의 잔디가 바로 페어웨이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지나쳤다.

게다가 이놈의 풀들이 서로 엉키는 품종이라는 것이다.

“그냥 쉽게 우승하는 경우는 없네!”

“그래도 매번 우승하잖아요. 참 대단하죠?”

“그러니까 필드의 절대자라는 칭송을 듣는 거겠지!”

이 대표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사람은 미켈슨이었다. 온다던 연락도 없이 느닷없이 나타났는데,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임시 귀국한 것이란다.

그의 말처럼 필상은 출전하는 대회마다 거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높은 확률이기 때문에 이번 대회도 무난히 우승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실제 경기는 그런 예상을 비웃듯 매우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었다. 러프에서 러프로 간 공이 이번에는 가드 벙커에 빠졌던 것이다.

“나이스!”

실망할 만도 하건만 입술을 지그시 깨문 필상은 벙커에서 완벽에 가까운 샷을 구사했다. 그래도 4온이라 1퍼팅으로 막아도 보기인데, 스핀을 먹은 것 같던 공이 비실비실 굴러가더니 경사를 타고 5야드 지점까지 멀어졌다.

멋진 벙커샷에 박수를 보내던 팬들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롱퍼팅을 잘하는 필상이기에 믿고 바라봤지만 공은 홀컵 가장자리를 휙 돌더니 빨아들이지 않고 뱉어냈다.

더블 보기.

대체 뭘 얼마나 잘못 쳤기에 2타나 잃어버렸는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장면이었다.

“낙심하지는 않을까?”

“어림도 없죠!”

“하하하. 공 프로에게만 너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거 아냐?”

“결과가 말해 주니까요.”

이보영은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실제 이븐파로 내려선 필상은 끄떡도 하지 않고 차분하게 다시 타수를 줄여 나갔다. 한 번 러프에서 된통 당한 뒤에는 샷의 정확도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15번 홀에서 또다시 아쉬운 샷이 터지고 말았다.

467야드 파 4홀이라서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고 좌측으로 휘어진 도그렉 홀이라 드로우를 걸었는데, 이놈의 공이 지나치게 많이 휘어 다시 러프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런!”

“땅에 박힌 것 같아요.”

동체 시력이 남다른 필상인데, 들어간 지점을 분명히 확인했는데도 공이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차피 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은 3분으로 정해져 있어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았는지 미사키는 얼굴이 붉어졌다.

포기할 찰나, 필상은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허리까지 잠기는 갈대숲에서 샷을 해야 했다. 공의 라이를 살피려면 풀을 건드려야 하는데, 그러면 공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고 더 깊이 잠기기 때문에 주의를 요했다.

“언플레이어블!”

“네?”

“그게 맞아. 불확실한 상황에서 샷을 할 수는 없어.”

미사키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드롭할 수 있는 지점에서는 그린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3온도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언플레이어블을 선택한 것이 마치 자신의 실수인 양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샷을 했다. 그린이 보이지 않지만 드로우가 제대로 걸리면 온그린을 못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게 오만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드롭한 지점 역시 볼이 풀에 가린 지점이었는데, 공을 조금만 더 우측에 놓고 찍어 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임팩트가 이뤄지지 않은 공은 살짝 당겨지며 나뭇가지에 맞고 말았다.

-어허! 저게 3번째 샷이었는데!

-그나마 숲속으로 튀지 않아 다행입니다. 라이는 역시 좋지 못하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온그린을 하면 됩니다.

-아! 그게 쉬울까요?

이미 러프에서 여러 차례 원하는 샷을 만들지 못했기에 챔블리의 표정은 어두웠다. 4번째 샷으로도 그린에 올리지 못하면 최소한 더블보기를 기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좀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는 필상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걸 보면 본인도 이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샷 루틴이 평소보다 길었다.

에임을 하면서도 연습 스윙을 반복한 필상은 최대한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이번에는 러프에서 제대로 된 임팩트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그렇게 정확히 맞추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저항을 고려해 주어진 거리보다 길게 쳤던 것이다.

“어허! 그래도 에이프런에 섰어.”

“참! 이거 해도 정말 너무하네요.”

“그렇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선수들이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거야. 러프에서의 샷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사전 대비가 부족했다는 거지.”

얄밉지만 미켈슨의 지적은 정확했다.

연습 라운드를 돌 때도 러프에서 몇 번 골탕을 먹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간과한 필상은 그에 대한 연습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코스에서 비슷한 잔디를 식재하지만 그래도 코스마다의 특성이 다르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각기 기후와 관리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메이저 대회가 열리는 이 코스의 특징을 보다 세심하게 살폈어야 한다.

그러나 컨디션 조절과 스윙 교정에 신경을 쓰느라 그런 조언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간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1언더면 좀 아쉽죠?

-어렵게 잡은 버디 4개를 홀딱 까먹은 더블 보기 2개가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정확한 샷의 대명사인 ‘필드의 절대자’의 면모라고는 볼 수 없는 1라운드였습니다.

-그래도 벙커 밭인 18번 홀에서 버디로 마무리를 한 것은 다행이라고 봐야겠죠?

-그렇습니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굽히지 않는 집념을 지닌 선수이기 때문에 차츰 좋은 경기력이 나오리라 예상합니다.

필상의 실력에 대한 의심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굳건한 신뢰가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라운드가 끝난 뒤, 모든 선수의 스코어를 분석한 결과, 아주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대체적으로 성적이 좋은 선수들이 두 부류네요.”

“내가 한 부류는 알지.”

미켈슨은 분석에 참여하지 않았다.

필상과 미사키, 그리고 이 대표가 열심히 분석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TV를 보며 군것질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필상의 첫 마디가 나오자 바로 끼어들었다. 아주 얄미운 행태로 비쳤기에 이 대표는 한 마디 쏘아붙이려 했다.

하지만 필상의 말이 먼저 튀어 나왔다. 이보영의 분위기는 익히 파악했지만 지금은 그의 노련한 시야와 판단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썰 좀 풀어 보세요.”

필상이 자리를 깔자 그제야 TV를 끈 그가 회의 중인 테이블로 다가왔다. 거들먹거리는 느낌이 확연한 발걸음에 이 대표가 발끈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그의 말이 먼저였다.

“노장(老將). 나처럼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은 쉽게 타수를 잃지 않거든!”

“맞습니다.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 26명 중에 20대는 단 3명이고 30대 초반도 5명뿐입니다.”

“그래? 역시 노장은 죽지 않았군!”

“30대 중후반도 꽤 많지만 가장 많은 그룹은 40대로 12, 무려 절반을 넘습니다.”

“그럼 다른 부류도 대충 짐작이 되는군.”

“네. 아이언 샷에 강점을 지닌 선수들이었습니다. 2온을 노리지 않고 3온 1퍼팅이 유난히 많더군요.”

비거리가 평균 이하인 선수들은 2온을 노리지 않았다.

힘이 들어가면 방향성이 깨져 러프나 벙커에 들어가 트러블 샷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철저히 잘라 갔다.

자신 있는 거리의 범위 안에서 안전한 공략을 했고 설사 러프에 빠져도 그린에 바로 올릴 생각보다는 그린 앞에 떨어뜨린다는 각오로 무리한 샷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린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린 앞에 떨어뜨려 칩샷에 집중한 결과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비교적 느린 그린 스피드에 기인한 것 같았다.

분석에 참가하지 않고도 개략적인 근황을 짐작한 미켈슨의 노회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답은 나왔네.”

“동의하지만 그런 공략이 우승을 위한 정답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맞아. 나흘간 정확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지. 게다가 노장은 쉬이 지치거든!”

“결국 러프 샷에 대한 적응을 해야겠군요.”

“그건 당연하고 하나 더 팁을 주자면……. 컬컬한데 와인 갖다 놓은 거 없나?”

“하하하. 마음에 드는 거 한 병 시키시죠.”

“들었지? 라일리?”

물론 장난인 것은 안다.

좋은 와인이라고 해 봐야 우승을 위한 팁이라면 아까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 대표는 마치 자신의 주머니가 털리는 듯 약이 오른 표정이었다.

그러나 필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마지못해 룸서비스로 전화를 넣었다. 그래야 얼른 미켈슨이 입을 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험이 일천한 필상은 이 지역에서 대회를 치러 보지 못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도 다 챙기지 못했기에 그의 조언에 목이 말랐다.

“바람! 오늘은 잔잔했지만 언제 돌풍이 불지 몰라.”

“아! 북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걸림돌이군요.”

“응. 오거스타처럼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야. 개략적으로 오전 오후로 나눠 늘 일정한 바람이 불지. 풍량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방향은 정리된 자료가 있어.”

“그런 게 있습니까?”

“이게 도움이 될까 모르겠네.”

그 말과 함께 미켈슨은 작은 책자를 하나 내놨다.

더 마스터즈 때도 자신의 보물과 같은 야디지 북을 건네줬던 그가 이번에도 선심을 썼다. 어쩌면 그걸 전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 *

-어제는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었죠? 그런데 컨디션 회복이 그에게는 하루면 충분했나 봅니다. 오늘은 절대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군요.

-네. 코스 세팅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전체 선수들의 스코어가 어제보다 더 나쁘게 나오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강해진 바람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조건을 고려한 자신만의 공략 방법을 찾은 걸 보면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는 선수입니다.

-캐디 일을 하면서 골프를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경기 분석 능력이나 전략 수립에 아주 능숙한 것 같아요.

-타고난 재주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겁니다. 캐디를 한 것이 도움은 되겠으나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거든요.

-아! 물론 그렇겠지요.

필상은 가급적 화려한 플레이를 자제하고 착실하게 한 홀 한 홀 정성을 쏟았다. 정교한 샷을 해도 다른 선수들보다 더 멀리 보낼 수 있기 때문에 타수를 줄여 나갈 수 있었다.

반면 예선 통과 근처에 있는 선수들은 피가 마르는 하루가 되고 있었다. 벼르고 벼르던 대회인데, 주말에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집에 가는 신세, 그거 정말 서글픈 일인 것이다.

호기롭게 타수를 줄이려던 선수는 여지없이 밀려났고 오히려 타수를 지키기만 해도 순위는 눈에 띄게 올라갔다.

결국 결선 진출 컷이 5오버로 결정되면서 아쉬움을 토로한 선수들이 상당수 나왔다. 버틴 선수들은 대부분 남은 경기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데일리베스트가 되었어요.”

“3언더가 최고 성적이라고?”

“네. 언더파가 딱 10명 나왔거든요.”

“10명?”

사실인 것을 알면서도 반문한 이유는 쉽게 믿기 힘든 성적이기 때문이었다. 내로라하는 선수들만 출전한 메이저 대회다.

그런데도 82타를 친 선수가 나온 걸 보면 코스의 난이도가 어떤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4 공필상, 조던 스피스

-3 토니 피나우, 저스틴 로즈, 패트릭 캔틀레이

-2 임성재, 저스틴 토마스 외 3명

“다시 스피스랑 한 조가 되었어요.”

“다른 한 명은 누구지?”

“패트릭 캔틀레이요.”

“아! 그 인상 좋은 젊은 친구?”

“92년생이니까 그렇게 젊은 것도 아니죠.”

“아! 그런가?”

관심 가는 선수지만 동반자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상대 선수가 자신을 두려워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번에 가깝게 지낸 임 프로가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는 마음이 뿌듯했다. 딱히 가르쳐 준 것은 없지만 메이저 대회에서 괄목할 성적을 거두는 것은 중요하다.

유난히 우승과 인연이 멀었던 그가 추후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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