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78화 (278/354)

278. 아멘

“우이 씨! 이거 어떡해요!”

“어떡하긴. 안전하게 3온 1퍼팅하면 되지.”

“…….”

너무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미사키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를 해도 다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런 상황을 너무도 편하게 받아들이는 필상이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많은 선수들이 버디를 기대하는 홀이기 때문에 더 안달이 났지만 필상의 생각은 달랐다.

비록 버디는 어려워도 오늘 이 홀의 드라이브 티샷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내일이나 모레 또다시 1온을 노릴 상황이 허락될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처럼 치면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안타깝네요. 도전적인 스윙이 저런 결과로 이어지면 선수 입장에서는 자꾸 위축이 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 프로의 담담한 표정을 보니 딱히 크게 실망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다행이라고요? 공 프로의 얼굴이야 워낙 포커페이스라서 티가 나지 않는 것뿐이겠죠! 왜 속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칩샷을 준비하는 필상의 스탠스가 좀 묘했다.

나무를 피해 그린 에지로 보내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보다 훨씬 좌측을 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픈 스탠스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몸이 좌측을 봤다. 그러다 문득 허 해설은 다른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 저건 아무래도 원 쿠션 같은데요?

-네? 원 쿠션이라니요?

임 캐스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골프에 원 쿠션이라는 표현이 없다는 생각에 허 해설의 얼굴까지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언급한 허 해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도 그 단어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어 부연 설명을 할 필요를 느꼈다.

-당구에서 직접 공을 때릴 수 없을 경우 쿠션을 이용하지 않습니까? 원 쿠션, 투 쿠션, 쓰리 쿠션 같은…….

-네? 그럼 지금 우리 공 프로가 나무를 맞춰서 온 그린을 노린다는 말씀인가요?

너무도 황당한 말이었다.

당구는 규격이 정해진 테이블과 탄성을 지닌 쿠션 테두리가 존재한다. 애초에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조금만 당구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쿠션을 이용해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골프는 그렇지가 않다.

일단 타구가 나아가는 공간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무리 정확한 샷을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당구처럼 정밀할 수 없으며 나무에 맞은 공이 원하는 만큼 튀어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클럽을 받고 연습 스윙을 하던 필상이 그 방향에 서 있는 나무를 유심히 살핀 것도 연관이 있다.

‘어?’

미사키도 필상의 샷 루틴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다.

하지만 이미 안전한 공략을 하겠다고 밝혔기에 일단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했다.

스탠스의 에임이 그린 에지가 아닌 엉뚱한 페어웨이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루틴에 들어갔기에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필상의 샷이 감행되었다. 평소보다 훨씬 강한 스윙의 끝에 요란한 소리가 작렬하고 말았다.

따악!

놀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신기한 샷은 기대했어도 이렇게 나무를 때리는 엄청난 미스 샷을 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워낙 나무에 맞는 소리가 컸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은 목을 움츠리고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그 행동의 뒤에 따라온 것은 펄쩍펄쩍 뛰며 마구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와아아아! 굳 샷!”

“나이스 샷! 판타스틱!”

-와아! 미치겠네요. 정말 나무를 맞춰 그린에 올린 건가요?

-네. 잘 붙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냥 레이 업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일단 버디를 노려볼 수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나무한테는 미안하지만 35야드를 튕겨 내려면 저렇게 강하게 쳐야 하는 거군요. 나무에 맞지 않았다면 족히 100야드는 뒤로 날아갔을 텐데요.

-사실 좀 위험한 샷이었습니다. 만약 정확히 맞지 않고 나무 뒤로 튀었다면 주변에 있던 팬들이 다쳤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것도 그러네요. 그런데 공 프로가 딱히 진행요원들에게 말하지 않은 걸 보면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거겠죠.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샷은 두고두고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의 선택을 믿지 못하면 대체 누굴 믿습니까! 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PGA 프로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이 경기의 메인 방송사 중에 하나인 ESPN 해설진도 이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달랐다.

필상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그들은 위험에 대한 부담보다는 창조적인 이번 샷 메이킹을 골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라고 추켜세웠다.

일률적으로 느껴질 만큼 안전한 공략만을 고집하는 투어프로들에게 영감을 줄 파격적인 스윙이었다는 말도 던졌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필상은 5.5야드 내리막이며 옆 라이인 난해한 퍼팅을 정확하게 성공하고야 말았다.

본인도 얼마나 만족했는지 좀처럼 액션이 없는 필상도 주먹을 불끈 쥐며 어퍼컷 세리모니를 터트렸다.

“정말 멋지세요.”

“아까는 울 것 같던 표정이더니!”

“제가 언제요?”

“기회만 되면 말릴 것 같던데?”

“그야 제게 일언반구도 없이 위험한 시도를 하셨으니까 그렇죠. 아무리 제가 부실해도 프로님 캐디인데, 그건 좀 서운했어요.”

“알았어. 미안해. 너무 걱정할 것 같아서 그랬어.”

“하아! 여하튼 너무 멋있었어요.”

미사키는 이미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좋아했다.

그런 기세는 전반 내내 이어졌다. 비록 파 3홀에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필상의 티샷이 당겨지며 보기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버디 6개에 보기 하나로 전반에만 5타를 줄이며 -8, 공동 3위까지 올라섰다.

“3위에요!”

“3위? 선두는 누구지?”

필상도 리더 보드를 봐서 알고 있다. 하지만 전의를 불태우는 측면에서 다시금 그 이름을 확인하고 싶었다.

-10으로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수 중에 한 명은 어제 함께 플레이를 했던 마이크 위어였다. 그는 오늘도 무난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노장의 투혼이라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필상도 그와 다시 한 번 동반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지우고 말았다. 그런 생각조차 상대를 의식하는 불안감의 표출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한 명은 존슨이에요.”

“더스틴 존슨?”

“네. 오늘 7타를 줄였다나 봐요.”

“음……. 강력한 경쟁자가 나섰군.”

본인이 장타자라서가 아니라 현대 골프의 추세는 장타자에게 보다 유리하다. 오거스타는 그런 통속적인 경향과 무관할 것 같지만 필상은 장타자인 그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 이번 주에 정확도까지 추가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정확성에 장타력까지 갖췄다면 필상으로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에 확실하게 눌러놓은 적이 있지만 매킬로이와는 달리 그는 침체기를 겪지 않았다.

멘탈이 강하다는 의미다.

-드디어 우리 공 프로가 아멘 코스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앞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의 기록을 보면 13번 홀은 쉬운데, 11번과 12번 홀은 성적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파 4인 11번 홀은 4.33타, 파 3인 12번 홀은 3.26타가 나왔군요.

-어제 오늘 바람이 불지 않아 특유의 변별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래서 주최 측이 오늘은 핀 위치를 어려운 지점에 꽂은 것 같습니다.

-핀 위치에 따라 이렇게 타수의 변화가 클 수도 있군요. 퍼팅이 아주 어려운 라이에 홀컵을 뚫었나 봅니다.

-핀 위치는 단지 퍼팅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컨샷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티샷을 할 때부터 보다 좋은 방향으로 보내려고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전체 난이도가 올라가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오거스타의 각 홀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11번 홀에 ‘White Dogwood(미국 산딸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빽빽한 녹색 나무들 사이에 예쁘게 꽃을 피운 산딸나무가 군데군데 하얀 빛깔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선수들은 그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특히나 아멘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죽음의 골짜기를 앞두고 있기에 그 하얀 빛깔이 두려운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아픈 기억 때문에.

“오늘은 506야드에요.”

“드라이브.”

파4 홀치고는 전장이 길다.

하지만 250야드를 넘기면 내리막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거리에 대한 부담감은 없다. 그런데도 일단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면 답답하다.

화이트 티 양 옆에 나무들이 열병을 기다리는 군병들처럼 줄 맞춰 서 있고 왜 그 자리에 서 있나 싶은 나무들도 툭툭 튀어나와 시각적으로 굉장한 부담을 준다.

물론 정확한 티샷만 구사한다면 그런 것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티샷 실수가 잦은 이유는 이 홀의 악명이 선사하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페이드 샷을 구사하면 가장 좋겠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좌측에 불쑥 튀어나온 저 나무 때문에 너무 왼쪽으로 출발하면 위험합니다. 그래서 정면을 보고 페이드를 걸어야 하는데, 페이드를 가장한 슬라이스 구질이 나올 경우에는 아주 곤란합니다.

-홀의 페어웨이 모양이 우측으로 점점 넓어지지 않나요? 적당히 밀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뭐가 문제죠?

더 마스터즈 중계를 맡은 캐스터가 그 정도 사전 학습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홀의 모양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홀이기에 그들을 대신해 질문을 던졌다.

-바람입니다. 평지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마의 터널과 같은 아멘 코스에는 두 가지 바람이 혼재합니다. 때로는 슬라이스 바람이고 어떨 때는 맞바람이 강력하게 붑니다.

-그렇다면 그냥 스트레이트 구질로 치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한 선수들에게 닥치는 위험은 그린 공략입니다. 너무 좌측에 서면 뒤에는 개울이 흐르고 좌측에는 그린을 일부 가리는 연못이 협박을 하죠. 게다가 공은 다운 힐 라이에 서 있습니다.

-와아! 최악이군요!

-그래서 그린 공략하기에 좋은 우측을 선호하는 겁니다. 모범 답안은 스트레이트 구질로 쭉쭉 뻗어 나가다가 적당히 페이드를 먹어 그린이 정면으로 보이는 페어웨이에 세워야 한다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멘이 필요할 뿐입니다.

설명을 듣고도 시청자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트레이트 구질은 러프로 기어들어 가거나 세컨샷을 때리기에 적절치 않다. 그래서 우측으로 휘는 페이드 샷을 구사하는데, 문제는 바람 때문에 밀릴 경우 숲으로 들어간다는 거다.

그렇다면 스트레이트 구질도 바람을 타면 되지 않겠나?

문제는 홀의 모양이 워낙 독특해 정면으로 치는 방향은 슬라이스 바람이 아닌 맞바람이 작용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경계선이 어딘지 불확실하다는 것도 난제였다.

이 코스에서 5승이나 거둔 타이거는 그래도 페이드 샷을 권했다. 그런데 미켈슨은 그와 의견이 달랐다.

우측을 오조준하고 스트레이트 구질로 치라는 것인데, 둘 다 필상에게는 정답이 아니었다.

실제 타이거는 페이드를 구사하다가 숲에 빠져 보기를 기록한 적이 여러 번이고 미켈슨은 우측을 오조준 하다가 티 박스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맞아 바로 코앞의 숲에 떨어진 적이 있다.

“프로님. 어떻게 공략하실 거죠?”

“낮게.”

“네?”

“탄도 낮은 페이드 샷!”

“아. 네.”

드라이브를 잡는 이유는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드라이브 샷이 가지는 단점은 퍼 올리는 스윙이기 때문에 탄도는 뜰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래서 보통 탄도를 낮추고 싶을 때는 3번 우드나 5번 우드를 잡으면 된다.

더욱이 장타력이 있는 필상이라면 굳이 드라이브를 잡을 이유가 없는데, 왜 굳이 드라이브를 잡고 낮은 탄도의 샷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알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필상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당장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필요한 결과를 얻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에이밍은 정면이군요.

-스탠스는 오른발이 살짝 앞으로 나온 걸 보면 페이드를 구사하려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오늘은 바람이 거의 없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선수들이 이 홀을 철저히 대비하기 때문에 공 프로와 비슷한 공략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는 걸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우리 공 프로도 불안한 겁니까?

-아마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겁니다. 이미 밝혔듯 친구들의 경험이 담긴 귀중한 야디지 북을 2권이나 가지고 있고 이미 연습 라운드와 어제 경기에서도 겪어 봤으니 오늘쯤은 멋진 샷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3번 우드를 잡았다.

탄도가 낮은 샷을 구사해 내리막을 잘 태웠지만 도전적인 세컨샷을 감행하기에는 너무 긴 거리가 남아 안전하게 공략하다가 2온에 실패했다.

그래도 무난하게 칩샷을 잘 붙여 3온 1퍼팅으로 위기를 잘 넘겼는데, 오늘은 드라이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보다 핀이 더 뒤쪽에 꽂혀 200야드 이상을 남길 경우에는 그린을 공략하기 더 어렵다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현재 필드에는 15여 개 조가 경기 중이다. 그런데 유독 필상의 이번 티샷을 오랫동안 계속 화면에 띄운 이유도 뭔가 특별한 샷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와 맞닿아 있었다.

마침내 아멘 코스의 첫 홀에서 필상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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