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68화 (268/354)

268. THE ABSOLUTE

[미스터 퍼펙트 3연승! WGC 델 매치플레이마저 거머쥐다!]

[강한 정신력, 압도적인 기량, 정중하고 깨끗한 매너까지 갖춘 필드의 절대자. 오스틴은 그에게 매료되었다!]

[마스터즈를 위한 준비는 완벽하다. 커리어그랜드슬램을 향한 그의 진군을 막을 자는 과연 있을까?]

[새로 쓰고 있는 골프 역사! 전무후무한 THE ABSOLUTE!]

[아무리 배당이 낮아도 그에게 베팅하는 것이 진리!]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필상의 우승 소식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WGC 매치플레이가 주목받는 A급 대회인 것은 맞지만 필상의 3연승과 더불어 그 가치가 한층 높아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슬며시 등장해 자주 거론되는 표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절대자(絶對者, the Absolute)였다.

-오늘 우리 공 프로의 우승 비결을 뭐라고 보십니까?

-저는 공필상 프로의 강인한 정신력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 준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강한 집념을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보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감히 따라오기 힘든 월등한 기량을 지닌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높다고 늘 우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매치플레이는 기량 외적인 면이 작용하기 때문에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눈부신 성적을 거둔 선수들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아! 그게 그렇더군요. 아무래도 대다수의 대회가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치러져서 그것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이겠죠?

-네. 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도무지 근접할 수 없는 공 프로의 완벽한 플레이에 다들 질렸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예선은 물론 결승에서도 필상에게 질린 상대가 스스로 자멸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했다. 한두 번 거센 반항을 했으나 결국 승부의 여신은 필상의 손을 들어 줬다.

최강자를 상대한다는 인식을 가진 대다수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필상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충격이 워낙 커서 추후 그들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하기야 필상은 본래 일대일 매치에 자신이 있었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자신감의 근간은 철저한 준비에 기인한다. 스스로 만족할 스윙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 조건이고 상대 선수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렇게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채워 가면 안 그래도 월등한 기량이 꽃을 피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전무후무한 THE ABSOLUTE라네요?”

“기분 좋은 표현이지만 그런 칭찬에 우쭐할 수는 없지.”

“우쭐하면 어때요! 프로님은 그만한 자격이 있잖아요.”

“자격? 그건 지금 내가 우승을 했기 때문일 뿐이야. 만약 우승하지 못했다면 어떤 기사들이 나왔을까?”

“우승하지 못했어도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

필상은 이방인이다.

그래서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일찍이 일본에서 겪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팬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행동거지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 돌아간다고요?”

“응. 어차피 미국에 있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 일본에 좋은 병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집에 들려 가족들과 시간을 좀 보내고 가세요. 부상 때문에 다들 걱정할 것 같은데.”

“음……. 그래야지. 그보다 자네에게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부탁이요? 말씀해 보세요.”

자존심이 강한 미켈슨은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다. 돈이면 돈, 명예라면 명예,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부탁을 한다고 하자, 필상은 살짝 긴장했다. 뭐라든지 꼭 지켜 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나와 타이거가 다 빠지잖아.”

“더 마스터즈요?”

“응. 그러니까 반드시 우승하라고.”

“하하하. 난 또 뭐라고요. 너무도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건 오거스타 내셔널 GC를 몰라서 하는 말이야. 지금까지 첫 출전에 우승한 선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가능한 빨리 오거스타로 가서 코스에 적응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신이 참가하지 못하는 대회이기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필상의 우승을 기원했다. 당연히 진심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필상은 감사를 표했다.

“자. 이거!”

“이게 뭡니까?”

그는 작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무심코 받아 든 필상은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건 바로 오거스타 내셔널 코스의 야디지 북이었다.

누렇게 바랜 표지를 보니 하루 이틀 가지고 있던 게 아니다. 2004년 첫 우승 이전부터 대회에 출전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20년은 족히 된 유물인 것이다.

그런데 진한 감동에 말을 잊은 필상의 귀에 엉뚱한 소리가 들렸다.

“타이거가 전해 주래.”

“이게 타이거의 야디지 북입니까?”

“응. 5번이나 우승한 선수의 보물이니까 잘 쓰고 돌려줘.”

“아. 네.”

타이거는 그 어렵다는 더 마스터즈 그린재킷을 5번이나 입었다. 물론 최다 우승자는 6번 우승한 잭 니클라우스다.

하지만 현존하는 선수가 2019년에 우승했던 생생한 기록까지 담긴 책자이기에 그 가치는 따지기 힘들 정도다.

또한 아무리 친해도 야디지 북을 전해 주는 경우는 없다. 다만 3번 우승한 미켈슨이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이거의 것만 전해 주는 이 상황은 좀 어색했다.

그런 생각은 미켈슨이 더 했는지 픽 웃은 그가 말했다.

“혹시 내 것도 필요하다면 줄 수 있어.”

“정말입니까?”

“응. 좀 쑥스럽지만.”

“에이. 됐습니다. 이거면 충분할 것 같아요.”

농담이다.

왜 소중하지 않겠는가!

사람마다 기록하는 방식이 다르고 각기 다른 스타일에 따른 공략 방식도 상이하기 때문에 두 전설적인 선수의 기록을 비교하면서 분석하면 정말 대단한 공략집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워낙 민감한 부분이었는지,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 못한 미켈슨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불타올랐다.

“필. 농담입니다. 농담! 주시면 정말 감사히 활용하겠습니다.”

“됐어!”

그는 휠체어를 직접 홱 돌려 부지런히 멀어져 갔다.

그냥 장난을 친 것뿐인데, 그게 역린을 건드린 사태로 발전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당황스러웠으나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판단에 얼른 뒤쫓아 갔다.

상황을 눈치챈 서 팀장이 휠체어 손잡이를 양보했다. 하지만 휠체어를 밀고 가는 필상도, 전방만 주시하는 미켈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색함이란!

“됐어. 혼자서도 탈 수 있다고.”

“서 팀장. 도와 드려.”

필상은 미켈슨의 승차를 서 팀장에게 미루고 얼른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미켈슨이 타자 곧바로 출발했다.

서 팀장이나 미사키가 타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냥 출발했는데도 미켈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향한 곳은 병원이 아닌 코스 옆에 있는 숙소였다. 그냥 한 바퀴 드라이브를 한 셈이다.

뭐라고 한 마디 할 만도 하건만 미켈슨은 조용했다. 그제야 뒷문을 연 필상은 휠체어를 대신해 그를 부축하고 내렸다.

“뭐 하자는 거지?”

“야디지 북을 받으려면 저도 뭔가 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뭘 해 줄 건데?”

“그냥 따라오세요. 두고 보면 알 테니까.”

필상은 그와 함께 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소파를 넓게 펴 그에게 누우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을 짓던 미켈슨은 이내 마음대로 해 보라는 식으로 벌렁 누웠다.

자신의 갈비뼈가 온전치 않다는 것을 깜빡 잊은 그가 터지는 비명을 겨우 참는 모습에 필상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제가 마사지를 좀 해 드리려고요.”

“마사지?”

“어제 잠 제대로 못 주무셨지요?”

미켈슨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필상은 그의 다리부터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건 야디지 북을 얻고자 하는 얄팍한 행위가 아니다.

그가 자신과의 대결에서 다쳐 쉬어야 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필상은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부상은 그저 늑골을 다친 것만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했고 자신이 도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걸 확인할 겸 그가 떠나기 전에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졸릴 겁니다.”

“제법 솜씨가 있는데?”

“당연하죠. 한숨 자고 나면 훨씬 개운할 겁니다.”

픽 웃은 미켈슨은 1분도 지나지 않아 코를 골았다.

대회 출전으로 지쳤고 부상 때문에 심적인 부담도 컸을 그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필상의 순수한 기운이 그의 몸에 스며드는 순간, 편안한 느낌을 받은 그가 그대로 곯아떨어진 것이다.

필상은 정성을 다해 그의 몸을 마사지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의 몸이 형상화된 이미지로 떠올랐다.

‘이게 대체?’

진한 의문이 들었지만 정신을 집중하자 그의 전신에 골고루 퍼져 있는 여러 색채가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옅은 푸른색을 띠었는데, 유난히 빨간 부위가 있었다. 바로 그가 부상을 당한 늑골 부근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골프 선수라면 대부분 좋지 않은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이 붉은 색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색채는 그리 짙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허리?’

허리에서 척추로 이어지는 몸의 중추가 오히려 팔꿈치나 손목보다 더 심각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밸런스가 깨진 건가?’

초인적인 능력을 얻고 부작용을 겪으면서 나름 의학 지식을 쌓았지만 환자의 상태까지 진단할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그의 여러 부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허리의 상태가 정말 좋지 않다면 늑골 부상이 쾌유가 되도 투어프로로 활약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잠이 든 그의 몸을 조심스럽게 뒤집은 필상은 그의 허리와 척추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좀처럼 붉은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 * *

“그만 일어나세요!”

“으음……. 서 팀장?”

“네. 날이 훤히 밝았다고요.”

“날이 밝아?”

“네. 아무리 아파도 사람이 어떻게 한 번 깨지도 않고 10시간을 잘 수 있죠?”

미켈슨은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창밖이 환한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던 그는 갑자기 자신의 옆구리를 만졌다. 갈비뼈에 금이 가 제 힘으로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꿈인가?”

“꿈이 맞나 봐요.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 거 보니까.”

“서 팀장. 공 프로는 지금 어디에 있지?”

“러닝을 한다고 밖에 나갔어요.”

“그럼 내가 정말 밤새도록 여기서 잤다는 거야?”

“네. 여기 계시다는 공 프로님의 전화를 받고 왔을 때는 너무 깊이 잠들어 계셔서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나마 담요를 덮어 드린 것 말고는.”

“병원에 연락은 했어?”

“네. 무슨 환자가 외박을 하냐며 얼른 병원으로 돌아오라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끊었죠. 공 프로님이 아픈 사람이 이렇게 곤히 자고 있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고 하시던데요?”

“이 인간이!”

그 말을 하며 미켈슨은 벌떡 일어났다.

환자인 자신을 병원이 아닌 숙소에서 그냥 재우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라고 그렇게 한가하게 일처리를 하느냐고 당장이라도 필상을 쫓아가 따질 분위기였다.

하지만 서 팀장의 동그래진 눈동자를 보고는 깨달았다.

분명 어제는 혼자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거의 통증을 느끼지 않고 제 발로 일어섰기 때문이다.

어안이 벙벙해 잠시 생각을 고르던 차에 문이 열렸고 땀에 흠뻑 젖은 필상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환자가 왜 서 있어요?”

“그러게!”

“안 아파요? 옆구리?”

“응. 아니야. 아파. 쿡쿡 쑤셔서 서 있기가 너무 힘드네.”

“서 팀장. 얼른 휠체어 가져와요. 병원에 가서 다시 정밀 진단을 받아 봐야 할 것 같으니까.”

“네.”

그사이 미켈슨은 스스로 소파에 앉았다.

필상이 얼른 펴진 소파를 접어 그가 등을 대고 편히 앉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데 얼굴이 따끔거렸다.

미켈슨이 뚫어져라 쳐다봤기 때문이다.

“왜요?”

“대체 지난밤에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참나! 기껏 마사지를 해 주려고 했는데, 코고는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그냥 나도 잠을 잤거든요. 뭐가 잘못 됐나요?”

“아니야. 일단 배고픈데 먹을 거 좀 없어?”

“병원비에 식사도 포함되어 있는데 왜 여기 와서 밥 타령이죠?”

“밥 타령?”

“네. 여기는 주문하면 나오는 식당이 아니라고요. 하지만 저도 마침 출출하니 그냥 나가서 먹죠. 클럽하우스에 환자들 먹기 좋은 버섯 스프가 있던데 괜찮죠?”

“난 스테이크 먹을 거야.”

휠체어에 몸을 실었지만 그는 병원으로 가지 않고 필상 일행과 함께 클럽하우스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스테이크 주문이 될 리 없었으나 그의 강력한 요구에 주방장이 직접 나와 미켈슨과 필상의 사인을 받고는 기꺼이 해 주겠다는 생색을 내고 들어갔다.

덕분에 필상도 푸짐한 아침을 들었다.

한국인은 밥 힘이 중요한데 매일 아침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먹었던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든든하게 먹었다.

어차피 이 경비는 주최 측에서 부담하기로 했기 때문에 과할 정도로 많은 양의 주문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걸 다 먹을 무렵, 필상은 미켈슨에게서 작은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받았다.

내용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의 야디지 북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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