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59화 (259/354)

259. 충분한 힘을 갖출 때까지!

가장 황당한 사람은 그 돈의 원 주인인 미켈슨이었다.

전후 상황은 고사하고 자신이 300달러를 잃었다는 것이 기사로 등장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도 모르는 마당에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 자살골이 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기를 하셨군요?”

“그렇습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당연하죠. 세 분이 대결을 펼쳤다면 골프팬들은 그 내용이 궁금해 미쳐 버릴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대체 필상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타이거마저도 침을 꼴깍 삼켰다. 어차피 셋은 한 배를 탄 입장이다.

설마 필상이 TPK의 얼굴에 먹칠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민감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분의 대결을 기사로 쓸 수만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하하하. 마이클의 뭔가를 바라는 건 아니고 이 흥미로운 대결을 스카이스포츠가 단독으로 취재한다면 얼마나 배팅이 가능한지 알아보세요.”

“회사에 말입니까?”

“시간이 많지 않아요.”

“네.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마이클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떴다.

급히 카메라가 동원되기는 힘들겠지만 경기 내용을 설명할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스카이스포츠는 대박이 날 것이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궁금증을 풀기 위한 타이거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질책에 가까웠지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일석삼조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석은 우리 경기를 오픈하는 것일 테고 세 가지 이득이라는 것은 뭔데?”

“첫째, 한나절 경기를 오픈하고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겁니다. 둘째, 저희 TPK 홍보를 할 수 있지요. 셋째, 추후 비슷한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미켈슨은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

“거금, 홍보는 그렇다 치고 비슷한 제안이라니?”

“우리는 수많은 골프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원하는 시기와 장소, 경기 방식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야 투어 대회를 유치하고 조정하는 사무국의 역할이 필요한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과연 그럴까요? 지난해 일본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이벤트 대회를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올 겁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수익성 높은 대회 모델을 개발하고 개최할 수 있습니다. 왜 투어 사무국의 간섭을 받아야 합니까?”

너무 파격적인 발언이었는지 미켈슨은 어리둥절할 표정이었다. 하지만 타이거는 그 문제의 정곡을 파고들었다.

“우리의 힘이 적지 않다고 해도 아직은 PGA의 조직적인 힘을 감당할 수는 없어. 그들과 대적한다면 결국 우리가 먼저 쓰러질 거야.”

“맞습니다. 저 또한 공감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준비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그리고 위험한 일이지.”

“처음부터 발톱을 드러내면 안 되겠지요. 하지만 타협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지금 PGA 선수들이 가진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떠올랐다. 일주일 단위로 치러지는 대회 형식은 선수들의 피를 말리기 때문에 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 치르는 것부터 지양할 수 있다.

18홀, 36홀의 짧은 대회도 구상할 수 있고 경기 방식도, 남녀의 구분도 없는 흥미진진한 대회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타이거는 희망적인 생각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 같았다.

“아무리 흥행이 될 여건을 갖춰도 결국은 우리는 기업체잖아. 사적인 주최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공공의 성격을 띤 기존 투어에는 미치지 못할 거야.”

“그렇기 때문에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GA를 부정하거나 그들과 맞서는 구도는 원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정받고 후원하는 형식을 갖춰야 합니다.”

‘충분한 힘을 갖출 때까지’라는 말은 삼켰다.

지금으로서는 부담감만 줄 것 같았기에.

하지만 성공적인 예는 이미 일본에서 치러 봤고 오늘 또다시 새로운 시험에 들어갈 요량이었다.

어차피 투어프로들은 모든 대회에 참가할 수는 없다. 철인이 아닌 이상 적절한 일정을 소화하며 컨디션을 조절한다.

주 단위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에 걸친 이벤트성 대회를 만든다면 의외로 멋진 대결을 성사시킬 수 있다.

그 비근한 예를 들었다.

“어게인 더 플레이어스!”

“무슨 말이야?”

“지난번 더 플레이어스에 참가해 우승 경쟁을 하던 선수들은 대부분 한두 주를 쉬었죠. 만약 그사이에 36홀 이벤트 대회를 열었다면 어땠을까요?”

“인원을 얼마나 잡느냐에 달렸겠지.”

“10명?”

“그 정도 규모로 수익성을 맞출 수 있을까?”

“누가 참가하느냐에 달렸고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가 중요하겠죠. 상품 홍보를 원하는 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또한 관중 입장 수입도 있을 테니까요.”

반드시 거대한 규모일 필요가 없다면 기존 대회들과는 차별화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수익 사업 모델로 만들 수 있다.

반드시 프로만 참가할 이유도 없다.

골프를 좋아하는 연예인을 부르거나 타 종목 스포츠 스타들을 초청해 보다 팬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면 의외로 알찬 기획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나누는 사이, 급기야 마이클이 돌아왔다. 그리고 파격적인 금액을 내놨다.

“10만 달러?”

“단독 촬영과 인터뷰가 보장된다면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다들 놀랐다.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기야 특종을 위해 그보다 훨씬 거액도 내놓은 게 방송이다.

세 선수의 9홀 경기를 정식으로 중계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독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이 터트릴 특종의 주인공이 타이거와 미켈슨, 그리고 필상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차피 준비할 시간도 여의치 않아 마이클과 그의 동료 둘이 취재용 카메라를 이용해 영상과 사진을 찍기로 했다.

촬영에 대한 부담은 없는 선수들이라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것이 껄끄러웠으나 10만 달러가 그런 수고를 가능케 했다.

방송 테마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TPK의 내기골프’를 공개하기로 했고 내기의 대상이 100달러가 아닌 스카이스포츠가 협찬하기로 한 10만 달러로 바뀌었다.

“갑자기 판돈이 팍 올라갔는데?”

“이건 돌려 드릴까요?”

“장난해?”

전반 홀에 딴 300달러를 내밀자 한사코 거부했다.

애초 약속한 상황과 달라졌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10만 달러에 대한 기대가 그 가치를 떨어뜨린 것 같았다.

또한 전반 말미에 필상이 주춤했기 때문인지 미켈슨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기야 그거 빼면 상대적인 장점을 찾기 어려운 인물이기는 하다.

그늘 집에서 30여 분을 지체하는 바람에 뒤따르던 세 팀을 패스한 TPK 동업자들이 드디어 10번 홀에 들어섰다.

기자 2명이 따라붙은 것을 확인한 앞뒤 조 선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그들로서는 기괴한 짓을 벌인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394야드에요.”

“4번 아이언.”

멈칫할 만한 특이한 선택이건만 미사키는 군소리 없이 필상이 원하는 클럽을 건넸다. 그도 그럴 것이 1온을 할 것도 아닌데, 앞선 타이거와 미켈슨이 300야드 이상을 노리다가 모두 러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소 같으면 드라이브를 잡았을 텐데, 필상은 오늘 매치플레이의 특성을 완벽하게 배우는 중이었다.

어차피 홀마다 승부가 끝나는 매치플레이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높다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바람직하고 상대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아이언. 4번 아이언을 잡았습니다.

-페어웨이를 지키기 위한 선택 같은데, 대체 얼마나 보내려는 걸까요?

동료는 카메라를 비추는 것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마이클 혼자서 찍고 있는 영상의 해설을 동시 녹음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독백이나 다름이 없는 그의 질문 대상은 나중에 이 영상을 보게 될 팬이었다. 그런데도 정말 열심히 떠들었다.

거금을 들인 이 특종을 자신이 잡은 것에 뿌듯한 만족을 느끼고 있던 터라 한 마디 한 마디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했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분명 강력한 임팩트가 이뤄졌으나 얼마나 잘 맞았는지 공을 때린 소리가 일절 들리지도 않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는 타구의 방향은 페어웨이 우측 끝이었다.

그린에서 가장 먼 방향이라서 샷은 좋았어도 에임은 좋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앞선 선수들의 타구가 감긴 듯이 말려 러프에 들어간 이유가 드로우 바람이 강하게 불기 때문인 것을 정확히 인지한 샷이었던 것이다.

필상의 샷은 페어웨이 우측이 아닌 좌측 끝에 떨어졌다. 그린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지점에 떨어뜨린 필상은 152야드 세컨샷을 남겼다.

“아이언으로 지금 250야드를 보낸 거야?”

“가능하죠. 공 프로라면.”

“나중에 치는 덕을 아주 톡톡히 보는구먼.”

“뭐든 빨리 배우는 친구니까요.”

“결국 10만 달러는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래 주신다면 고맙죠. 하하하.”

자신감이 넘치는 대신 포기도 빠른 미켈슨은 필상의 정확한 샷에 의욕이 한 풀 꺾였다. 하지만 믿는 바가 있는 것 같은 타이거의 태도를 접하자 이를 악물었다.

필상에게는 한 수 접을 수 있을지 몰라도 타이거가 할 수 있다면 자신도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욕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컨샷을 먼저 한 필상이 9번 아이언으로 홀컵에 쩍 붙여 버렸기 때문이다.

“굿 샷!”

“이쯤 되면 저 둘은 2등 싸움을 해야 할 텐데?”

“지금은 먼저 샷을 하는 사람이 손해일 것 같아요.”

“그렇겠지. 거리도 방향도 알려 주는 셈이니까.”

묘하게도 둘이 남긴 거리는 비슷했다.

똑같은 러프였고 그 방향에는 가드 벙커가 가로 막은 상태라서 먼저 샷을 하는 사람이 무조건 불리하다.

하지만 양보한 타이거가 먼저 샷을 했고 겨우 그린에 올렸는데도 미켈슨은 그보다 더 짧아 벙커에 들어가고 말았다.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에 몰리자 미켈슨은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다운힐 라이에 공이 모래에 절반가량 잠겼음에도 파를 잡을 거리에 붙여 버린 것이다.

“하하하. 이렇게 또 도와주나요?”

“그러게요.”

가장 잘 친 선수는 2점, 2등은 1점, 꼴찌는 득점이 없고 동타가 나올 경우에는 절반씩 나눠 갖기로 규칙을 정했다.

때문에 둘 다 파를 기록하면서 0.5점씩 나눠 가졌고 2점을 확보한 필상과의 격차가 1.5점이 나게 된 것이다. 한결 편해진 필상은 11번 홀에서 쐐기를 박았다.

189야드 파 3홀이었는데, 10번 홀과는 방향이 반대였다. 하지만 그린 앞에 호수가 맞닿아 결코 쉬운 홀은 아니었으나 슬라이스 바람을 정확히 읽은 필상은 절묘한 드로우 샷을 터트리며 또다시 2야드 버디 기회를 잡았다.

-첫 홀을 이기고도 봐줄 의향은 없어 보입니다. 승부 앞에 동업자든, 친분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죠. 하하하.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특히나 매치플레이는 작은 방심 하나가 승부를 뒤집기 때문에 마음을 놓는 순간, 패한다.

그걸 잘 알면서도 묘한 해설을 보탠 이유는 이 세 명의 독특한 관계를 승부에 결부시키면 팬들이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거와 미켈슨은 필상의 기세를 누르지 못했다. 바람을 감안해야 할 홀인데, 거리 맞추기에 급급한 샷으로는 필상을 견제하기 어려웠다.

-이러면 승부가 너무 싱겁게 끝날 것 같은데요?

또다시 버디, 파, 파로 승점 차가 3점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 추세가 이어지면 제 몫이 줄어든다고 생각한 마이클은 은근히 타이거와 미켈슨을 응원했지만 승부는 16번 홀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두 홀을 남기고 필상과 2위인 타이거의 승점 차가 5.5점으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설사 필상이 2번 모두 꼴찌를 하고 타이거가 2점씩을 획득해도 승자는 변하지 않아 의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18번 홀까지 플레이는 이어 갔다. 왜냐면 이 경기는 WGC 매치플레이 연습 라운드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저녁을 먹으면서 하시죠.”

“저도 끼워 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샤워하시고 저희 숙소로 오십시오.”

아무리 승부가 팽팽했어도 경기가 끝나면 보통 웃는 낯으로 서로 인사한다. 하지만 필상을 제외한 두 사람의 표정은 누가 봐도 어두웠다.

너무 커다란 벽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저녁 만찬 때 이어진 인터뷰는 사실 특별할 게 없었다. 오랜만에 투어에 복귀한 타이거와 미켈슨의 인사와 각오가 언급되었지만 마이클은 거기에 초점을 맞출 의사가 없었다.

2연승을 거두고 3연승에 도전하는 필상이 주인공이었다.

-오늘 특별 라운드에서 보여 준 기량이라면 3연승은 어려워 보이지 않던데, 본인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전지훈련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요즘 샷 감이 아주 좋습니다. 이게 다 양보해 주신 두 형님 덕분이죠. 하하하.”

-제가 볼 때는 양보한 것 같지는 않던데,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구박을 받으실까 봐 그러시는 거죠?

“아닙니다. 프로의 세계에 양보란 있을 수 없죠. 하지만 두 분 중에 누가 우승했어도 상금은 가져가지 않았을 겁니다.”

-상금을 가져가지 않겠다니요? 무려 10만 불인데요?

“애초에 예정에 없던 보너스이기 때문에 이번에 태풍 피해를 보고 낙심에 빠진 분들을 위해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액을 모두 기부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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