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50화 (250/354)

250. 최대 타수 차 우승

“코스가 아주 훌륭하다고들 합니다. 그런데도 합리적인 가격이니 어찌 가지 않겠습니까?”

-자화자찬이시군요. 현지 골프팬들의 반응이 뜨겁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비싼 것 아닌가요?

“미국은 골프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천국이지만 아시아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골프는 고급 스포츠 혹은 사치스러운 운동이라는 인식이 아직 강하지요. 그렇다보니 골프장을 운영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과거형으로 말한 이유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건가요?

“아니, 그런 양상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골프인구에 비해 과열된 시장이 형성되었고 경쟁적인 영업을 하다 보니 파산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공하고 있는 비결을 말씀해 주실 차례군요.

“경영의 합리화를 꾀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분할 만큼 뜨거운 팬들의 사랑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저희가 성공한 이면에는 도산하는 골프장이 우수수 생겨날 겁니다.”

굳이 그런 말까지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자본주의 시장은 경쟁에서 밀리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 잘나가고 있는 마당에 굳이 어두운 그림자를 언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다음 말을 들어보면 왜 그런 밑밥을 뿌렸는지 이해가 됐다.

“저는 적정한 선에서 시장이 균형을 맞추리라 예상합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골프관련 사업들이 고르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파이를 키워야한다는 겁니다.”

-최근 아시아 시장의 골프 열기가 뜨겁다고 하던데요?

“바로 그겁니다. 17,000여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코스가 있지만 미국 골프클럽들이 번영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건 골프 인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계적인 명문 코스는 굉장히 비싸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스는 퍼블릭으로 운영되고 아시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

필상도 그 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애초에 골프가 생활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돈 많은 기업만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의 지원 아래 건전한 생활 스포츠로 자리매김을 했던 것이다.

프로 투어가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저변이 되는 아마추어 육성에 공을 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가장 앞선 일본이 그나마 골프 저변이 넓고 한국도 이제는 골프 인구가 많아지고 있지만 그 외의 나라들은 자국 투어를 운영하기에도 벅차다.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있지만 박찬호 선수로 인해 메이저리그 팬들이 많아졌지요. 또한 박지성 선수 때문에 EPL 팬이 많아진 것처럼 슈퍼스타의 탄생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골 프저변이 넓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본인 칭찬을 너무 대놓고 하는 것 아닌가요?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사는 아시아에서 골프의 저변이 넓어진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하하. PGA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질문을 주고받던 기자는 농담처럼 맞받아쳤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G2, G3가 아시아 국가지만 미국이 흔들면 여지없이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것을 자랑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시장이라는 것은 결국 고객의 수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KPGA나 JGTO가 PGA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확장 가능성은 훨씬 높은 게 사실입니다.”

경제력은 물론 세계를 좌우하는 패권도 사실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오랜 강대국들이 휘어잡고 있다.

실제 세계적인 프로스포츠의 터전도 그곳에 있다. 감히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의 차이가 큰데,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그 주도권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축구든, 야구든, 농구든 인기 종목의 주된 무대는 여전히 세계의 패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필상은 주장하길, 골프는 타 종목과 다르다는 것이다.

“아시아가 골프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절한 비용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는 넉넉한 골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듣고 보니 아이러니하네요. 성공은 미국에서 거두는데, 그 결실은 아시아 국가나 투어들이 보는 셈이군요.

“인정합니다. 저의 성공을 보며 많은 이들이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나 젊은 골퍼들이 몰려들면서 시장은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졌습니다”

그럴싸했다.

어느 종목이든 프로 리그가 활성화되려면 팬들의 수가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저변이 넓어지고 대륙을 차지한 엄청난 인구의 중국마저 골프에 눈을 뜬다면 아시아 시장이 미국보다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TPK는 자연스럽게 더 클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겠지요. 하지만 시장을 키우고 선도하는 것이 바로 저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그 흐름은 분명할 겁니다.”

마치 TPK를 광고하기 위해 준비한 사람처럼 열을 올리는 필상을 보며 이 자리는 결국 그것을 알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다행이라면 기자들이 필상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점이다. TPK에 관한 기사를 작성할 때, 아시아에 적을 둔 투어들의 가능성도 함께 언급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후 TPK의 미국 진출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필상은 아직 전혀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당장은 3개국에 오픈한 코스들부터 안정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너무 노골적이었나요?”

인터뷰가 끝났지만 내내 심각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이 대표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지함은 우려가 아니라 깊은 사색이었던 듯.

“아니. 미국 기자들도 이번 계기로 한국과 일본 투어를 다시 보게 될 것 같아.”

“아직은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요. 중국이나 일본 정도는 늘 휘어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저러나 그 얘기를 너무 길게 하느라고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네요.”

“뭐가 더 있었나?”

“훈련 프로그램의 성과를 언급하려고 했었거든요.”

“아! 하지만 그건 결과가 나와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닙니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선수들이 투어에 복귀하면 센세이션을 일으킬 겁니다.”

“본인도 무관하지 않을 텐데?”

“하하하!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 의심하는가?”

144명 중에 74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컷 탈락 스코어는 2언더였다. 필상과 달리 많은 선수들이 코스 공략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3라운드에 접어든 필상은 지난 이틀보다도 한 발 더 나간 -9를 찍었다. 실제 버디 이상은 6개 홀에 불과했지만 무빙데이를 맞아 스코어들이 춤을 추는 와중에 이글을 2개나 잡아내며 -25, 독야청청이었다.

[13타차 단독 선두! 퍼펙트라는 닉네임, 유감없이 증명!]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장담한 미스터 퍼펙트의 목표는 이뤄질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은 전설. 그가 걷는 여정은 모두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우리의 소중한 자산!]

[2위와 역대 최다 타수 차 우승 기대.]

TPK 컴퍼니 때문에 사업가라는 이미지가 잠시 필상의 전설을 가렸지만 시즌 첫 출전한 대회, 제5의 메이저라는 더 플레이어스에서 또다시 자신의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물론 전 세계 골프팬들을 열광시킨 압도적인 기량은 다른 선수들은 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보태 사람들은 신기록에 열광한다.

필상이 현재 도전 중인 기록은 두 가지다. 자신이 기록했던 -33을 깰 수 있느냐는 것은 별반 반응이 없었다. 어차피 본인이 세운 기록이며 또 -9를 치기에는 코스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2위와의 최다 타수 차 우승에는 사람들이 이목이 집중되었다. 자신의 노력과 더불어 경쟁자들이 협조해야만 하는 기록이고 기록 보유자가 하필 타이거 우즈였기 때문이다.

“미사키. 그 기록 찾아봤어?”

“네. 타이거가 2000년도 US오픈에서 15타 차의 우승을 기록한 적이 있더라고요.”

“15타 차?”

“미쳤죠? 그 당시 타이거는 인간계의 존재가 아니기는 했어요. 나가는 족족 우승했으니까요. 그런데 본인이 잘 쳤다기보다는 경쟁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 같았어요.”

미사키가 내민 관련 내용을 살펴본 필상도 공감이 갔다.

2000년 US 오픈은 페블비치 링크스 코스에서 열렸는데, 공동 2위였던 어니 엘스와 히메네스의 기록은 +3이었다.

물론 타이거를 도와줬을 리는 만무하지만 지독한 바람이 플레이를 방해하는 가운데, 홀로 -12를 때린 그는 그렇게 골프 황제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3타만 더 벌리면 되네?”

“산술적으로는 충분해요.”

“좋아. 날씨는 어때?”

“바람은 없지만 비가 좀 내린다고 해요. 35%.”

“흩뿌리는 정도겠네.”

날씨가 궂을수록 유리하다.

경쟁자들보다 샷의 일관성에 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았음에도 스코어를 줄이지 못한 경쟁자들의 샷 컨디션을 감안하면 신기록 작성은 가능할 것 같았다.

용무가 있어 오늘 PGA 사무국을 방문했던 이 대표가 저녁 식사를 시작할 시점에 돌아왔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는 모습만 봐도 소기의 성과를 얻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이 잘됐나 보군요.”

“응. 아주, 아주 잘됐지.”

“자축 파티라도 해야겠네요. 하하하.”

“정식 발표가 나면 우리나라가 들썩일 것 같아.”

“뭐 그 정도까지…….”

“최초잖아. PGA 정규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이.”

이 대표는 PGA사무국과 단판을 지었다.

시드를 가진 선수의 PGA대회 출전은 당연하며 여건만 허락된다면 누구든 많은 대회에 참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필상은 그런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 올 시즌부터는 PGA에 전념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상 미국에 도착한 것은 3월 셋째 주가 되어서였다.

시즌이 개막되었지만 무려 4달 동안 22개의 대회를 걸렀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더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몇 개나 출전해야 한답니까?”

“적어도 15개.”

“15개면 서너 대회 중에 하나는 참가해야 하는 거군요.”

“좀 무리일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대회 스폰서들이 아주 난리를 치나 봐. 어떻게든 사무국이 나서서 공 프로의 출전을 보장하라고.”

필상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대회에 타이거와 미켈슨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니 흥행에 실패한 스폰서들은 PGA사무국에 항의했다. 엉뚱하게도.

사무국으로서도 선수의 출전을 강요할 수 없음을 모르지 않지만 당사자들에게 어필을 했다가 이후에도 같은 일을 겪을까 염려한 것이다.

그 사정을 훤히 꿰뚫은 이 대표가 제안한 것이 바로 출전 횟수를 보장하는 것과 TPK가 주최하는 아시안 챔피언십을 PGA가 공동 주관하는 것을 맞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15개면 사실 남은 대회를 충족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무국이 최선을 다했음을 강변할 조건은 되는 셈이었다.

“JGTO는 여전히 배제해야겠지?”

“당연하죠. 아직도 거짓 뉴스만 터트려 이상하게 몰고 가는 놈들까지 봐줄 이유가 없잖아요.”

“정신이 번쩍 들겠네.”

“배가 아파 쓰러지겠죠. 하하하.”

TPK가 주최하고 KPGA, 아시안 투어, 유리피언 투어가 공동으로 주관한 아시안 챔피언십에 이제 PGA까지 합류하면서 4개 투어가 공동주관하는 최초의 대회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 가끔 1회성 대회가 열리기는 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경기가 PGA 정규 대회로 인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봄비치고는 제법 많이 내리네요?

-플로리다는 언제나 따뜻하니까 딱히 봄이랄 것도 없죠. 또한 예상보다 많이 내린다 한들 이 정도 비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워낙 익숙하기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한두 해 골프를 친 게 아니니까요.

-비가 오는데도 관전을 포기한 갤러리들이 없다는 걸 보면 역시 미스터 퍼펙트의 시장성은 알아줘야겠죠?

-진기록 갱신을 보러 온 팬들이 많은 겁니다. 저희도 그것에 포커스를 맞춰 중계를 하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우승 경쟁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어 갤러리들의 대부분은 1번 홀을 둘러싼 채 꼼짝하지 않았다.

보통 티샷을 마친 선수들이 이동하면 한 떼의 무리가 우르르 몰려 나가는데, 오늘은 그 수가 눈에 띄게 적었다.

나름 지명도가 있는 선수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지만 팬들을 원망할 수도 없다. 자신이 필상처럼 최고의 자리에 있다면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필상이 동반자인 웹 심슨과 함께 1번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골프장이 흔들릴 정도로 뜨거운 환호성이 터졌다.

까앙!

이번 대회 들어 가장 강력한 티샷을 때렸다.

420야드의 파 4홀인데 적어도 260야드는 캐리로 넘어야 우측의 워터해저드와 벙커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샷을 마친 필상은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타구가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갈랐기에 미사키는 왜 그러나 싶었다.

“클럽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 내 예상보다 12야드 정도 더 날아갔거든.”

“12야드는 별 의미가 없지 않나요? 어차피 2온이 되는데.”

“…….”

필상은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한 것은 정확한 방향과 힘 조절이다. 그걸 위해 겨울 내내 수고했는데, 필요할 때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컨샷 지점에 도착한 필상은 잡념을 털어 버리고 다시 집중해 기가 막힌 아이언 샷 감각을 선보였다.

“와우! 나이스 샷!”

“이글. 이글!”

온 그린에 성공했지만 이글과는 한참 떨어진 6야드 퍼팅이 남았다. 그러나 더블 브레이크를 정확히 읽은 필상은 과감하게 밀어줬다.

슬라이스 라이를 타고 흐른 공이 홀컵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순간, 우승은 물론 최다 타수 차도 품에 안기는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