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48화 (248/354)

248. 기술적인 완성도

“그립을 너무 꽉 쥐는군! 그게 오히려 헤드 스피드를 줄이는 결과를 낳지. 가볍게 잡고 다시 한 번 휘둘러 봐!”

“스탠스가 너무 넓어. 자네는 역도 선수가 아니잖아.”

“스윙 궤적을 좀 더 플랫하게. 슬라이스 구질은 절대 나오지 않을 거야.”

“피니시를 왜 하다가 말지. 끝까지 타깃 방향으로!”

“좀 더 과감하게 찍어 쳐야지. 결과에 대한 불안감일랑 싹 잊어버리고 꽉 쑤셔!”

“헤드 업! 공을 끝까지 봐야지.”

“왼팔이 구부러지잖아. 팔을 억지로 돌리지 말고 어깨 회전을 해야지. 어깨!”

“너무 코킹에 신경 쓰지 마. 자연스러워야 좋은 거야!”

필상이 드디어 전지훈련 연습장에 나타났다.

다들 반색하며 달려들었지만 필상의 반응은 단호했다.

연습 중에 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호통에 각자 타석으로 돌아갔고 필상은 한 사람 한 사람 원 포인트 레슨을 시작했다.

단지 스윙 몇 번을 지켜보고는 여지없이 각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뒤따르던 전담 코치들도 깜짝 놀랄 만큼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오랫동안 연습해 온 프로 지망생 스윙의 단점을 찾기는 어렵다. 나름 갈고닦아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스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상의 지적은 틀림이 없었다. 극히 미세하지만 코치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찾아내고 곧바로 샷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그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코치님들이 하실 일이 많으시겠어요. 제 예상보다 세미프로들의 기량이 많이 떨어지네요.”

“그래도 참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스윙 몇 번만 보고 문제점을 찾을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학습과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고 좋지 못한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게 명확히 보일 때까지 집중하시면 됩니다.”

“아. 네.”

첫 번째로 내년 시즌 투어시드 확보를 위해 도전하는 세미프로나 프로 지망생을 위한 원 포인트 레슨을 마쳤다. 그리고는 U-18, U-15, U-12 훈련장을 순서대로 찾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들기는커녕 점점 더 흥미진진했다. 자신은 걸어 보지 못한 길이었기에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나이 때에 따라 선수들의 스윙이 어떻게 성장, 변화하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성인에 가까울수록 스윙 교정이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다.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도 체득했다.

“정석. 오로지 그것이 답입니다. 당장 좋은 결과를 내려고 요령을 가르치면 안 됩니다.”

“신체 발육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스윙을 가르쳐야 합니다.”

얼핏 보면 스윙을 하는 기계처럼 보였다.

그만큼 교과서적인 스윙을 다들 익혔는데, 문제는 주니어 대회 입상을 위해 과도하게 어려운 기술을 가르치다 보니 기본이 무너지는 나쁜 습관들이 보였다.

같은 상황에서 띄워도 되고 굴려도 되고 적당히 띄워 굴리는 여러 가지 샷이 가능한데, 어린아이가 생각이 많아지면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많은 것을 다양하게 가르치기보다는 하나라도 확실히 익히면 그것으로부터 다양한 활용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설픈 여러 기술보다 확실한 하나의 무기가 더 절실한 것이 골프다.

“먹는 것은 문제가 없죠?”

“물론입니다. 집보다 훨씬 낫다고들 합니다. 규칙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기 때문에 식사량이 성인 못지않은데도 체중이 늘어난 아이는 없더군요. 아마도 훈련하는 양도 성인에 버금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른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적절한 자유 시간과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주는 게 어떨까요?”

다행히 요즘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재미있는 물놀이하며 노는 것이겠지만 수영도 사실은 굉장한 운동량이 요구되는 스포츠다.

고른 근육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 아주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이벤트를 열어 줄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럼 이제 슬슬 부담스러운 인물들을 만나러 가야 하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주 즐거웠다.

가급적 칭찬을 해 줬고 웬만해서는 단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게 당장은 단점처럼 보일지라도 나중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역 프로들을 만나는 것은 부담이 앞섰다.

그들은 필상의 각별한 코치를 바라지만 썩 내키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잖은 인연을 가진 프로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손 놓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타박을 받을 것 같았다.

“이게 누구야?”

“난 겨울잠이라도 자는 줄 알았는데, 이제 깨어난 건가?”

대부분 필상을 어려워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

필상이 나타나자마자 야유에 가까운 격한 반가움을 표현하는 두 여인, 안수현 프로와 전미정 프로였다.

그나마 전 프로는 장단을 맞춘 것에 불과했지만 안 프로는 서운한 감정을 원 없이 드러냈다. 전화는 물론 문자메시지도 본체만체 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기는 했다.

하기야 그녀는 필상에게 의미 있는 존재다. 프로로 데뷔하기 전, 캐디로 맺어진 인연은 지금의 필상이 있게 만든 사건과 닿아있기도 하다.

“오늘은 제가 코치로 여기 온 것 같은데, 제자들의 자세가 영 불량하네요.”

“어이구! 그러세요. 코치님.”

그녀는 나름 필상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필상도 싫은 기색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 누나처럼 느껴졌던 안 프로가 분위기를 잘 조성하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일거에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필상은 훈련에 참여한 프로들과 일일이 인사부터 나눴다. 비록 코치의 입장이지만 이 캠프에 초청된 선수들은 하나같이 녹록한 이가 없기 때문이다.

“저. 연습들 시작하십시오. 순서대로 봐 드리겠습니다.”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연습과 레슨을 시작하자 삽시간에 진지해졌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 흐트러진 스윙을 바로잡고 변화된 신체 조건에 맞는 최적의 폼을 찾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때문에 개인 코치를 동반한 프로도 있고 훈련 캠프 담당 코치를 지겨울 정도로 괴롭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필상이 원 포인트 레슨을 시작하자 연습을 하는 와중에도 곁눈질을 하며 그 내용을 지켜봤다.

필상은 많은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부분 그립과 스탠스에 대한 언급이었는데, 가장 기본이지만 좋은 샷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멀리서 듣던 프로들은 뭐 저런 걸 언급하나 싶었지만 막상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필상이 얘기했던 것을 꼼꼼하게 살폈다.

“기본에 충실하라! 이건가?”

“골프가 민감한 운동이잖아요. 스탠스가 제 스윙과 맞지 않으면 거리 조절에 실패할 것이고 그립이 불안하면 방향성이 흔들립니다. 거리와 방향성, 이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하기야 그렇지.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던 선수들은 아쉬웠을 것 같아.”

“앞으로는 자주 들릴 겁니다. 이제 한숨 돌렸거든요.”

“우후!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럼 연습하세요.”

“밥 한 번 먹어야지?”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안 프로는 5분가량 배정된 시간이 무척이나 아쉬운 것 같았다. 하지만 필상은 마지막 선수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필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끔 놀러 오지 왜 연락 한 번 없었어?”

다른 선수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안 프로를 비롯해 친분이 있는 몇몇 선수들은 어떻게든지 필상과 만나려는 노력을 했다. 다 허사가 되었지만 지금 필상은 그 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선수를 가르칠 때와는 달리 필상은 뒤에 놓인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상태였다. 필상의 말을 들은 여자 선수가 클럽을 놓더니 필상의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다른 여자 선수들과는 달리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싫지 않은지 그녀는 필상보다도 더 새까만 얼굴이었다.

“오빠가 다른 건 일절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연습만 하라고 했잖아요.”

“봄아. 그건 네가 다른 프로들 사이에 끼여 기가 죽을까 봐 말한 거지, 얼굴도 비추지 말라는 말은 아니잖아.”

“치! 연락 한 번 없어 놓고 핑계는!”

봄의 합류가 일주일가량 늦어진 이유는 일본에 들렸다 왔기 때문이다. 부친의 호출이 있었다는데, 태국에 도착한 날 필상과 통화를 했다.

그녀는 현역 프로들 전지훈련 캠프에 참가한 것이라서 카오야이 제3골프클럽에 배정을 받았다. 연습장도 숙소도.

하지만 필상이 아무리 훈련에 매진한다고 해도 봄이 연락했다면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눴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필상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별일은 없었지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녀 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숙소를 옮기는 것도 고려할 만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필상에게는 아무런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고 봄도 맹렬히 연습에 집중했다.

“음료수 뽑아 올까?”

“네. 저는 코코넛 마실래요.”

필상이 직접 매점에 가서 그녀가 원한 코코넛 2개를 사 들고 돌아와 함께 마셨다. 더위에 이만한 음료가 없었다.

다른 프로들도 봄이 필상과 각별한 관계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도 확연한 대우 차이에 눈빛이 곱지 않았다. 물론 봄은 그걸 즐기는 것처럼 여유 만만했다.

“스윙이 어떤지 좀 볼까?”

“안 그래도 봐주셨으면 싶었어요.”

기다렸다는 듯 아이언을 들고 타석에 들어선 봄.

자신을 향한 시선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전처럼 샷 루틴까지 밟은 봄은 확실히 달라졌다.

모모코나 에리카에 비하면 체구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그녀의 뚝심은 이미 확인된 바, 강한 샷을 할 때마다 몸의 움직임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필상의 앞에서 휘두르는 스윙은 굉장히 심플했다. 군더더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스윙인데도 쭉쭉 뻗어 나가는 공은 강하게 때릴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젠 제법 임팩트를 할 줄 아네?”

“으! 제법이요?”

“그래. 확실히 힘의 전달이 심플해졌어. 하지만 너무 판에 박힌 느낌이 드는 건 왜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단순한 스윙을 하면서도 공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묘책을 찾고 있거든요.”

“…….”

적절한 조언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스스로 깨닫고 익히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 과정을 보다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곁에 두고 확인하면 좋은데, 그게 쉽지 않아 보였다. 그녀만 유난히 아낀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권했다.

“봄. 내 연습장으로 와.”

“싫어요. 그냥 지금처럼 다른 프로들의 샷을 보면서 연습하는 게 저한테는 더 유용할 것 같아요.”

“언니들 눈치 때문은 아니고?”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다만 좋은 스윙을 자주 보니까 제가 어떻게 쳐야 하는지 감이 오더라고요.”

골프가 어려운 이유는 남들은 볼 수 있는 자신의 스윙을 정작 당사자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녹화를 해서 살펴보면 되지만 그건 사후 약방문에 불과하다.

샷을 할 때마다 아쉬운 부분을 즉각 교정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하지만 그게 되지 않는 상황이기에 봄은 다른 곳에서 답을 찾는 중이었다.

“좋은 샷을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

“오빠도 그렇게 배웠다면서요?”

“응. 캐디로 일했던 시간이 소중한 이유가 바로 다양한 스윙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저도 그렇게 해 보려고요.”

“좋아. 하지만 언제든 의문이 들거나 벽이 생기면 찾아와.”

“네. 그래도 오늘은 밥 사 주세요.”

“그러자고. 안 그래도 식사 때가 된 것 같은데?”

“전 외식하고 싶어요. 사 주실 거죠?”

“그래. 차 타고 나콘라차시마로 나가자.”

“태국 마사지도 받고 싶어요.”

“그것도 접수!”

필상은 흑돈, 봄과 함께 카오야이 인근의 중심 도시인 나콘라차시마로 향했다. 한식은 매일 먹기 때문에 깨끗하고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태국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필상도 처음이지만 봄은 검색을 통해 쉽게 찾아냈다. 이싼 음식 전문점이었는데 먹음직한 돼지, 닭요리를 실컷 주문했다.

그런데도 계산은 1,000밧이 나오지 않은 걸 보면 같은 돈도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해마다 태국을 찾는 한국 아마추어 골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듯, 그중에 상당수가 TPK 카오야이를 찾는 바람에 치앙마이가 한산해졌다는 말도 들렸다.

한 가지 문제점은 한국 골퍼들이 몰리면 여지없이 비용이 올라간다는 것인데, 그 중심에 TPK가 자리를 잡아서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 *

12월, 1월이 지나면서 필상은 목표의 9부 능선을 넘었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아직 서툴다고 생각한 공간을 꼭꼭 메우는 일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골프는 결국 원하는 곳에 공을 보내는 경기다.

여러 인위적인 난관을 통과하고 일관성을 훼방하는 여건들을 극복해 최대한 짧은 타수에 홀 아웃을 하면 되는 경기다.

타점이 눈에서 멀기 때문에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고 심리적인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 스포츠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복합적인 기술이 요구된다.

돌이켜 스스로 자평하건대 필상은 자신이 만든 눈부신 결과는 기술적인 완성도보다는 굳건한 심지와 탁월한 초감각, 그리고 행운이 어우러진 결정체였다고 판단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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