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47화 (247/354)

247. 경영자의 마인드

-지금도 인계 의사를 밝히는 문의가 오고 있나요?

“다 수용할 수가 없어서 그저 죄송할 따름이죠. 협의한 결과 추후 위탁 경영 시스템을 고려해 볼 용의가 있습니다.”

이 대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되는 집만 더 잘되게 마련, 유명한 맛집 근처에 비슷한 가게를 차린다고 다 성업을 이루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도 꼭 그 집에서 먹기를 원하는 고객의 심리는 누가 말린다고 들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대표의 이번 발언에 배가 아플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들도 결국 TPK와 손을 잡기를 원할 가능성이 높다.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업은 흐름을 타는 것이 중요하기에 함께 가고 싶기 때문이다.

-미스터 퍼펙트는 내년에 PGA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투어는 전혀 출전하지 않을 계획입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게는 소중한 가족이 있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곁에 앉은 모모코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봤다. 누가 봐도 시샘이 날 행동이었지만 방금 전 모모코의 발언을 고려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귀화를 말렸다고 했음에도 엄한 질문이 연이어 쏟아졌다는 부분이다.

-일본 여자 골프의 여신을 꼬드겨 데려간 것도 부족해 이제 일본 투어와는 담을 쌓으려는 것 같은데, 기회를 준 일본에 너무 야박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사실 관계를 좀 더 명확히 해 보죠. 일본 언론이 제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줬나요? 편견에 가득 찬 비난도 관심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까?”

누굴 바보로 아는 것인지, 잠자코 있었더니 제 잘난 줄만 알고 이렇게 기어오른다. 일제 수탈의 시대를 일러 은혜를 베풀었다는 개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족속들이니 오죽하랴!

그동안 가급적이면 직설적인 표현은 삼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인내하며 자정 작용을 기대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으니 무얼 기대하겠나.

게다가 이미 모모코가 핵탄두를 던진 마당에 필상이 구태여 속내를 감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일본 투어는 각성해야 합니다. 일본인들만의 동네잔치를 하고 싶은 거라면 아예 외국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마십시오. 기껏 초청해 놓고 대체 무슨 짓입니까?”

워낙 이전과는 다른 파격적인 언사에 다들 깜짝 놀랐다.

하지만 세계 랭킹 1위인 필상의 위상을 일본처럼 가볍게 여긴 곳도 없다. 마치 큰 은혜를 베푼 지주가 소작인을 부리듯 거만한 태도를 일관해 온 일본 언론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 번 말문을 튼 필상은 제어할 의사가 없었다.

“지금처럼 배타적이고 옹졸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제가 일본에서 클럽을 다시 쥘 일은 없을 겁니다. 저를 응원해 주시는 팬들에게는 송구하지만 프로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곳에서 뛰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말씀은 결국 일본 투어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제게 주어진 투어시드를 반납해 차라리 젊고 유망한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모모코에 이어 필상마저 투어를 보이콧하겠다는 선언을 하자 기자회견장은 심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장은 화를 참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그들에게는 그 결정을 반박할 그 어떤 권리도 없다.

따지고 보면 필상과 모모코는 일본 투어에 가장 필요한 선수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흥행이 보장되고 일본 투어를 한 걸음 성장시킬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모모코는 몰라도 필상에 대한 처사는 자신들이 돌아봐도 께름칙했다.

세계 골프계를 진동시킬 거두로 성장했건만 오로지 일본 투어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도하고 평가절하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만 일어서겠습니다.”

그 말을 던진 필상은 얼른 모모코에게 눈짓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봄의 손을 잡아끌고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싶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저어한 것이다.

필상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챈 모모코와 이 대표가 마이크를 잡아채려던 봄을 얼른 좌우에서 호위하듯이 데리고 나섰고 필상도 곧바로 뒤따랐다.

모양새가 좀 이상했지만 까닭을 헤아리는 기자는 없었다. 어차피 봄은 필상의 제자였고 J&K 소속 선수였기 때문이다.

“언니. 나도 할 말이 있다고요.”

“알아. 하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자.”

“저 인간들의 오만한 태도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세요?”

“너 오빠랑 약속했다면서?”

“그렇기는 하지만…….”

필상이 언급되자 겨우 수그러들었다.

슬쩍 뒤따라오는 필상의 눈치를 살핀 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이 화룡점정을 찍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결과를 생각해 보니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일행이 모두 비행기에 오른 뒤에는 사실 오늘 벌어진 엄청난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것 같았으나 다들 조용했다.

필상이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기보다 빠른 것이 인터넷 세상인 듯, 필상 일행의 귀국에 맞춰 대기하던 한국 기자들도 일본 언론의 속보를 접한 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른다고 생각했다.

일본에는 악재지만 한국으로서는 너무도 반가운 소식들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필상은 이미 그것을 예견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은 저만 나서겠습니다.”

“팬들이 우승하고 돌아온 모모코와 봄을 무척 만나고 싶어 할 텐데요?”

“지금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일본 투어, 아니 일본 전체를 적으로 돌린 것은 결코 득이 될 행동은 아니잖습니까!”

“그래요. 그럼.”

이 대표가 동의하자 할 말 많은 표정을 짓던 모모코와 봄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먼저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언제나 든든한 아우, 이제 KPGA 정회원이 된 흑돈이 앞장서서 나섰기에 필상도 기자회견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자회견은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필상이 기자들의 질문에 정확한 사실 확인 외에는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이 아쉬웠지만 분명한 입장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 * *

“결국 더는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도로시는 넣어 주셔야 합니다. 제가 약속을 했고 부모님들도 흔쾌히 동의하셨거든요.”

“아! 그 꼬맹이. 리틀 모모코라고 했던.”

“네. U-12 팀의 가장 막내가 되겠네요. 하하하.”

이제 이번 시즌의 모든 공식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고 한국에서 광고 촬영을 마치는 대로 태국으로 출국하는 일정이다.

그 전에 올 겨울을 뜨겁게 달굴 전지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이 대표의 최종 보고를 받았다.

일단 주니어 팀은 U-12, U-15, U-18로 나눠 각기 서른 명을 뽑았다. 뽑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이 워낙 희망자가 많았기 때문인데, 국적을 따지지 않았음에도 한국 출신이 가장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프로 지망생을 너무 많이 받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건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현역은 이미 손을 잡고 있는 파트너십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게 되나요?”

세미프로나 젊고 유망한 프로 지망생을 선별해 100명을 전지훈련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실제 이들을 가르칠 선임 코치는 타이거지만 필상도 가장 관심이 가는 대상이다.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TPK의 훈련 프로그램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현역 선수는 친분 위주로 초청했다.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타이거, 미켈슨, 그리고 필상이 각기 원하는 만큼 초청하기로 했는데, 미켈슨은 일본에 머물며 할 일이 많아 아예 초청하지 못했다.

또한 타이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맡은 일도 벅찬데 누굴 신경 쓸 겨를이 없다나?

“태국으로 다 같이 가지 뭐.”

“됐다. 누군 죽어라 고생하는데 우리만 놀고먹을 수는 없지. 모모코, 네 생각은 어떠냐?”

출국을 앞둔 필상은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워 다 함께 태국으로 가자고 권했다.

어차피 추운 한국보다는 나을 것 같았고 세계적인 관광지인 태국을 두루 돌아보는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형편이라는 것이 이렇게 유용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칼에 거부했다.

아들은 겨울 내내 칼을 갈 것인데, 가족들이 어떻게 한가롭게 놀고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모모코의 의견은 확인하셨다.

“전 수미 돌보고 틈틈이 체력 훈련을 할 계획이라서 굳이 태국까지 갈 필요는 없어요. 어머니.”

“그래도 훈련하려면 따뜻한 나라가 더 좋지 않아?”

“집 근처에 좋은 코스가 있어서 괜찮아요. 어차피 시즌 개막은 4월이니까 3월에 한 달 정도만 태국에 가면 어떨까요?”

“그럼 그때 다 같이 가면 되겠네. 됐냐?”

모모코의 대답을 필상에게 그대로 옮긴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식사 준비를 하신다며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이 집의 가장은 이제 어엿한 아들, 필상이지만 실질적인 모든 결정은 엄마가 하시도록 배려했고 그 결정을 좌우하는 기준은 늘 모모코였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타국인 한국에 와 구김 없이 친가 식구들과 지내는 모모코의 행동은 동방예의지국을 자랑으로 여기는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었으니, 그 모든 것을 받쳐 주는 주춧돌이었다.

* * *

오랜만에 찾은 태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카오야이에서 겨울을 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그 좋았던 치앙마이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

지대가 높아 늘 서늘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아침저녁으로는 한국의 가을 날씨를 연상케 했다.

그러니 이보다 좋은 훈련지는 없을 것 같았다.

필상보다 먼저 전지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한 선수들도 대만족이라는 말을 전해 들어 그들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필상은 대부분의 시간을 전지훈련지로 정한 TPK 카오야이 제3골프클럽이 아닌 제2클럽에서 보냈다.

거리는 차를 타면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자주 들여다보기로 마음먹었지만 개인 훈련에 푹 빠져 돌볼 겨를이 없었다.

“형님. 저기 좀 보세요.”

필상과 함께 훈련하고 있는 이는 흑돈이다.

성호도 이제 어엿한 투어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서 개인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콧김을 풀풀 날리며 달려오는 타이거 우즈의 모습이 보였다. 만나기도 전에 그가 왜 씩씩대는지 짐작이 됐다.

모든 일을 그에게 떠넘긴 필상이 훈련 프로그램에는 전혀 도움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뒤에는 잰걸음을 재촉하는 여자아이가 한 명 보였다.

“도로시네?”

“이봐 공 프로. 이러기 있어?”

“잠깐만요.”

따지는 타이거는 본체만체 지나친 필상이 도로시를 마중 나가더니 번쩍 안아 들었다.

“이 녀석! 키가 더 큰 것 같은데?”

“어지러워요. 선생님. 전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하하하. 요즘 연습은 열심히 하고 있나?”

도로시를 의자에 앉힌 필상은 무미건조한 생활에서 모처럼 벗어나고 싶었는지 도로시에게 큰 관심을 드러냈다.

녀석도 그게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당연하죠. 그런데 타이거 선생님의 말씀처럼 정말 너무하시는 것 같아요.”

“뭐가?”

“다들 선생님이 레슨해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같이 가 볼까?”

“아뇨. 싫어요.”

갑자기 태도를 바꾼 도로시의 의도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녀석이 필상의 클럽을 만지작거리며 관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녀석은 좋은 기회가 왔으니 한 수 배우고 싶은 것 같았다.

“네 클럽은 안 가져 왔어?”

“음……. 차에 있는데.”

“그럼 얼른 가져와.”

“네!”

녀석이 조르르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필상은 그때부터 타이거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왜 미안한 마음이 없겠는가.

타이거도 아직 은퇴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개장한 카오야이 골프코스 3곳에 엄청나게 몰려드는 외국 골퍼들이 반갑지만 골프장 운영 전반에 대한 신경도 써야 하는데, 전지훈련 팀까지 그의 몫이니 연습할 겨를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훈련은 담당 코치들에게 맡기세요. 그리고 이젠 제가 가끔 들여다볼게요.”

“그럴 시간은 있고?”

“네. 지난 2주 동안 전체적인 스윙을 모두 점검했고 이제 가다듬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그건 차츰 해도 되거든요.”

“좋겠다. 누군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 연습은커녕 라운드도 한 번 나가지 못했는데.”

“모든 것을 직접 챙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형이 할 일은 그걸 감독하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한 번은 제대로 살펴봐야 하거든.”

“그러니까요. 이젠 한 번 쭉 훑어봤으면 보다 종합적인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직접 챙길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그게 정답이겠네. 그런데 자넨 그걸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리도 잘 알지?”

“철두철미한 이 대표가 일을 잘 처리하기 때문에 저는 보고만 받으면 됩니다. 형도 이제는 사람을 관리하세요. 결국 최종 책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람을 다루는 겁니다.”

평생 운동만 했어도 타이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늘 미래를 생각하며 공부를 해 왔다.

하지만 배워서 아는 것과 실전은 크게 다르다. 남의 밑에서 고달프게 배운 필상은 비록 일의 성격은 다르지만 사업적인 마인드는 이미 잡혀 있었다.

게다가 이 대표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있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타이거는 물론 미켈슨도 이 부분을 체득할 필요가 있다. 하루 이틀에 이뤄지지는 않겠으나 필상의 처신을 보면 곧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장 몸으로 뛰어 본 타이거는 필상의 말 몇 마디에 크게 각성했다. 최종 경영자의 마인드와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 확연하게 깨달은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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