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43화 (243/354)

243. 리틀 모모코

-너무 벅찬 일정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틀 내에 최대한 많은 팬들에게 좋은 플레이를 보여 드리고자 하는 저희의 바람을 선수들이 기꺼이 동의해 주셔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상당한 금액을 투자하셨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나요?

“좋은 일에 쓰고자 했기에 다양한 기업에서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러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실은 나이키를 비롯한 다양한 기업들이 대회가 펼쳐지는 TPK 도쿄1 골프클럽에 광고와 판매를 위한 부스를 설치한다.

통상적인 정규 대회가 아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미 기록적인 입장권 판매가 이뤄졌고 일본 외에도 골프를 즐기는 주요 나라에서 중계권을 구입한 대회였기에 참가한 기업들도 기대가 컸다.

-조 편성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요?

“아시다시피 부부인 미스터 퍼펙트와 모모코는 한 조가 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선수들은 추첨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어느 팀의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시죠?

“그건 저희가 알 수 없을뿐더러 판단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발표가 되었으니 여러 전문가들, 그리고 스포츠 베팅업체에서 어떻게 예상을 할지 저도 궁금하군요.”

-일본에서 개최되는 대회인데, 굳이 한국 선수를 4명이나 출전시킨 이유는 뭔가요?

“아! 그건 지명도와 그간의 성적을 고려했고 또한 균형을 맞추려는 의지도 반영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경태 프로는 포함될 수 없지 않나요?

한 기자가 김경태를 물고 늘어졌다.

2007년 K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통산 20승을 기록한 말이 필요치 않은 강자다. 특히나 JGTO에서 거둔 14승은 일본 투어 현역 선수 중에 비교할 대상을 찾기 어렵다.

2010년에 상금왕, 2015년에는 대상과 상금왕을 동시에 석권한 적도 있다. 그걸 모를 리 없는데, 왜 물고 늘어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최근 골프 투어까지 침투한 혐한의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극악한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이러니 모모코가 그런 폭탄선언을 한 것인데, 아직 바뀌지 않은 듯.

이보영 대표는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럼 김 프로보다 나은 성적을 낸 선수가 또 있나요?”

-물론입니다. 지금이라도 바꿀 의향이 있으신가요?

“어떤 노장 선수를 말씀하기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김 프로의 성적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이마히라 슈고도 교체를 해야겠군요!”

신바람을 내던 기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괜한 것을 건드려 본전도 찾지 못한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 다른 선수들의 면모를 보면 슈고는 감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타이거나 미켈슨, 그리고 필상의 기록도 일본을 대표하는 마쓰야마 히데키보다 훨씬 앞선다.

만약 자격을 논할 것 같으면 두 명 모두 부적격인 것이다.

“다른 질문이 없으시면 이만 기자회견을 마치고 준비된 만찬을 즐기며 대회의 성공을 빌어 주시길 바랍니다.”

끝이 좋지는 않았으나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뭐가 그리도 다급했는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갑자기 터졌다.

-대표님이 이끄는 J&L 소속 선수들의 일본 투어 보이콧에 대한 입장을 밝혀 주시죠!

보이콧. 입에 담지 않는 것이 나았을 주제다.

질문한 기자를 제외한 다른 기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봐야 문제는 필상과 모모코다.

하지만 필상은 이번 방문을 통해 일본 투어를 배제할 의사가 없음을 이미 밝혔다. 어차피 내년에는 PGA에 전념할 계획이고 한국이나 일본은 한두 번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모모코가 출전을 거부했지만 그 사안은 다들 쉬쉬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보이콧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며 사태를 악화시킬 방향으로 흘러 버린 것이다.

“보이콧이라니요? 어느 신문사의 누구시죠?”

이 대표의 싸늘한 표정부터 의미심장했다.

신분을 밝히라는 말은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였고 표적이 되는 순간, 그가 부딪칠 적은 TPK만이 아니다.

그 사안을 덮고자 하는 사토시 회장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의외로 심각한 결과를 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달았는지 그는 대답을 주저했다.

“기자는 확실치 않은 것을 입에 담지 않아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디 그 말을 명심하시길 바라요.”

그렇게 좀 찜찜하게 기자회견이 끝났다. 그러나 실은 엉뚱한 곳에서 그와 같은 내용이 불씨로 번지는 상황이었다.

그날 모모코의 인터뷰를 보러 왔던 일부 팬들의 SNS가 화근이 되었고 좋지 않은 소문은 생각보다 빨리 번지는 법, 그 반응은 크게 엇갈려 시끄러웠다.

“공 프로. 이를 어쩌죠?”

“뭘 어쩝니까! 굳이 설파할 이유는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있는 그대로 말을 해야지요.”

“우리 대회에 악영향을 미칠 텐데요?”

“그 또한 어쩔 수 없지만 적절한 명분을 준비하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육아, 그건 비난의 대상이 아니잖습니까!”

“틀린 말도 아니고 정공법인 셈이네요.”

“제가 모모코에게 도발적인 언사는 최대한 삼가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일단 대응 방안을 만들었으나 두고 볼 문제였다.

아무리 다짐을 받아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모코의 성격상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 * *

“반갑습니다. 히데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초청에 응해 주셔서 제가 오히려 고맙죠.”

대회를 이틀 앞둔 목요일 아침, 출전할 선수들이 속속 TPK 도쿄 1 골프클럽에 도착했다.

이번 대회 중계를 맡은 NHK 스포츠채널이 그 모습을 모조리 카메라에 담았다. 철저히 상업적인 운영이었으나 수익금을 모두 기부하는 조건이기에 자원봉사를 나온 이들도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타이거의 도착이었다.

시간 맞춰 공항에 마중을 나간 필상은 현역 세계 랭킹 1위에게는 싸늘한 일본 골프팬들이 타이거에게는 열광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친미의 극치를 보여 주는군요.”

“호호호. 그렇게 해석하는 건 너무 과해요. 시간이 흘러 공 프로가 원하는 신화를 쓰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거창한 대우를 받게 될 거니까요.”

“약자에게는 한없이 도도한 자들이 강자에게는 배알도 없이 바짝 엎드리는 모습, 가증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만하고 나가 보세요.”

이제 막 출국장에 타이거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눈이 부실 만큼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피켓까지 들고 온 팬들의 비명 소리가 공항을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타이거.”

“요즘 한창 바쁜데 왜 이런 요란한 대회를 만든 거지?”

“하하하! 형이 보고 싶어서요.”

다짜고짜 그런 말부터 꺼낸 타이거는 태국에서 요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일이라는 것은 본시 알면 알수록 더 상세하게 보이고 적극적일수록 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는 법이다. 그걸 기꺼이 감수하는 그의 태도가 필상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일찌감치 태국에 건너가 자신이 맡은 일들을 처리하던 타이거는 일주일가량 일본에서 대회를 치르는 것이 탐탁치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답은 미켈슨의 입에서 나왔다.

“타이거. 늦게 출발한 일본의 사업을 돕는 건 동업자로서 너무도 당연한 거야. 엄살 부리지 말고 얼른 인터뷰나 간단히 끝내고 나오라고. 기다리느라 출출하단 말이야.”

“으흐! 알았다고요.”

남의 눈에는 다투는 것처럼 보일 만큼 퉁명스러운 대화였지만 사실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반가움을 표시하는 흔한 행동들이었다.

그날 정오가 되자 급기야 대회에 출전할 12명의 선수가 모두 집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

시커먼 남자들만 겨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 남자 선수들의 드러내지 않는 환한 속내는 물론 여자 선수들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호감을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했다.

“음양의 조화라는 것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어.”

“뭐라고요? 음양의 조화가 왜 나와요?”

“하하하. 왜 우리 마나님께서 이렇게 퉁퉁 부었을까?”

“왜 그렇게 잘해 주느냐고요! 뭐가 예쁘다고.”

서로 어색함을 덜기 위해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자 선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자는 단연 필상이었다. 실질적인 호스트라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여하튼 필상으로서는 시종일관 웃으면서 잘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입장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미팅이 끝나자 모모코는 보기 드물게 사나운 태도로 필상을 몰아붙였다.

‘누구한테 꽂힌 거지?’

아무리 봐도 그 대상은 또래일 것이고 필상을 만나기 전까지 경쟁에서 앞섰던 하라 에리카나 하타오카 나사 같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속내는 짐작 가는 바가 없지 않다.

“하라나 하타오카는 우리 태국 전지훈련 캠프에 참가하고 싶은 것 같아.”

“그러니까요. 전 결사반대에요.”

“하하하. 그 정도 인지도를 가진 선수라면 우리 사업에는 적잖은 도움이 될 거야. 괜히 필요 이상의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어.”

사적인 감정과 일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JLPGA를 짊어질 그녀들이 TPK와 인연을 맺어 내년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추후 선수 훈련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될 게 뻔하다.

그런데 모모코의 생각은 좀 달랐다.

“걔들은 저나 봄의 경쟁자란 말이에요. 오빠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아닐 거 아니에요!”

“하하하. 그거였어?”

“웃지 말아요. 전 심각하니까!”

뾰로통한 표정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는 이들이 많은 로비를 걷고 있었지만 필상은 모모코를 번쩍 안아 들었다.

“오빠! 사람들이 보잖아요.”

“하하. 싫지는 않은 얼굴인데?”

“당연하죠. 그럼 연습장까지 절 업어 줘요.”

“오케이!”

안았던 그녀를 등에 덥석 업은 필상은 그녀가 걱정하는 것들을 말끔하게 씻어 줬다.

그녀들의 재능도 뛰어나지만 모모코나 봄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결국 당사자들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또한 자신은 이번 겨울 전지훈련에서 한국 선수들만 지도할 계획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밝혔다.

일본은 애초에 미켈슨 담당이기에 전문 코치들을 제외하면 필상이 직접 가르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도 밝혔다.

“KLPGA 선수들도 안 돼요.”

“하하하. 알았어. 알았다고.”

결국 필상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남들이 들으면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실제 내년부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필상에게도 이번 겨울은 중요하다.

피나는 훈련에 매진할 것이며 또한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퍼즐, 정기적으로 음기를 취하지 않아도 경기를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몸을 단련시킬 필요도 있다.

그래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은 흉내만 내기로 결심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 * *

-이런 분위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마치 축제 같죠?

-네. 혹자는 무슨 프로 대회가 이렇게 시끄럽고 산만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대회는 처음부터 팬들을 위한 이벤트라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골프 관련 유명 메이커들이 모두 출동한 것 같더군요.

-그렇습니다. 경쟁적인 할인도 하고 현장에서 직접 고객들을 위한 클럽 피팅까지 해 주기 때문에 새 클럽을 구매하는 이들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날로 발전하고 성능이 개선되는 장비를 직접 시타도 해 보고 현장에서 레슨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골프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유혹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하더군요. 하하하.

첫날 무려 12,000명의 갤러리들이 입장했다.

티켓이 보통 투어 대회보다 비쌌지만 다들 만족했다. 주최 측에서 후원사를 꼬드겨 푸짐한 선물을 증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구부터 줄지어 자리를 잡은 골프용품 회사들의 임시 부스는 웬만한 대형 골프 전문점을 한데 모아 놓은 형태라서 골프광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엄청난 현장 매출이 예상되었고 이런 환경을 즐기는 팬들의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여 필상도 만족스러웠다.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과 짝을 이뤄 오전에 진행된 프로암도 굉장한 관심 속에서 재미있게 치러졌다.

“도로시. 연습 스윙 안 해?”

“아! 맞다!”

필상과 한 조를 이룬 여자애는 9살이다.

올해 전국 주니어 골프 대회 초등학교 저학년부에서 우승한 유망주인데, 그 아이는 자신의 우상이 모모코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애가 입은 복장 때문이다. 평소 모모코가 가장 즐겨 입는 패션을 그대로 줄여 놓은 깜찍한 모습이 너무 앙증맞았다.

리틀 모모코. 자신이 지었는지, 팬들이 붙여 줬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인사할 때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도로시. 파이팅!”

“네. 미스터 퍼펙트.”

‘아이고!’

그렇게 맹랑한 호칭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도 말릴 수가 없었다. 보통 어린 유망주들은 깍듯하게 프로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하는데, 녀석은 그런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함께 두세 홀을 돌아본 결과, 쉽게 찾을 수 있는 큰 단점이 하나 보였다. 엄청 덤벙거리고 경기 템포가 정신없이 빠른데, 그러고도 또래들과 겨뤄 우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기야 연습 스윙도 깜빡 잊고 어드레스를 취하는데도 꽤나 좋은 샷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에 임한 선수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함부로 레슨을 할 수도 없었다.

성격에 따라 샷에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4번 홀을 마친 도로시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주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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