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35화 (235/354)

235. 기회에 강한 그녀

이번 대회 중계는 NHK가 아닌 TBS TV 채널인 JNN 스포츠가 맡았다. 해설위원 다나카 겐지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프로 골퍼 출신이고 캐스터 와타나베도 영리하고 날카로운 스포츠 전문 앵커로 유명한 아나운서다.

굉장히 훌륭한 조합인데, 중계 초반부터 아옹다옹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다나카 해설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전문성을 앞세우지만 젊고 개방적인 와타나베는 시류를 아는 자였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필상의 능력과 보여 준 결과는 그 어떤 말로도 깎아내릴 수 없음을 그는 확고히 인정했다. 때문에 중립적이거나 필상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진정하고 다시 샷을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방향은 좋았지만 홀컵을 훌쩍 오버해 반대편 에이프런까지 굴러갔다. 첫 홀부터 보기도 아닌 더블 보기를 기록한다면 그녀를 보기 위해 찾아온 팬들의 실망은 물론 모모코도 의욕을 잃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본인이 답답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기를 바랄 뿐.

“웨지 바꿔줄까?”

“아뇨. 굴릴 게요.”

팅!

칩샷마저 의도대로 치지 못했다.

너무 강하게 맞아 다시 반대편에서 버거운 퍼팅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운이 좋게도 타구는 깃대를 직접 때려 버렸다.

지나쳐 3야드 이상 구를 공이 옆으로 튀어 1야드 거리에 멈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물론 그 퍼팅은 확실하게 집어넣었다.

“더블 보기를 다 하네요.”

“그러게.”

“하지만 트리플이 아닌 걸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일본 골프팬들에게 여신으로 칭송받는 모모코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크게 실망해 우수수 무너지면 어쩌나 싶었으나 깃대를 맞춘 것에 만족한 눈치였다.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첫 홀 더블 보기 이후 모모코의 샷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나마 더는 타수를 잃지 않고 진행하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다.

오랜만에 일본 투어에 나타난 여신의 위신이 크게 깎인 경기력에 팬들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하지만 7번 홀까지 파만 연속 6개를 잡은 모모코가 반전의 기회를 맞이한 홀은 파 3, 8번이다. 비교적 긴 185야드 세팅으로, 세로로 긴 그린 때문에 거리보다는 방향성이 중요했다.

“맞바람이 좀 있어.”

“4번 아이언 칠게요.”

“좋지.”

차마 짧을 것 같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모모코 특유의 밝은 미소가 사라진 지금은 조언보다는 따스한 응원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클럽을 건네며 격려했다.

본인도 중요한 고비라고 판단했는지 평소보다 연습 스윙을 더 많이 했고 신중한 가운데 경쾌한 타구음도 만들어 냈다.

-와우! 임팩트가 아주 상큼하네요.

-네. 구질도 아주 깨끗한 스트레이트성입니다.

그린의 좌우에 위치한 깊은 벙커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쭉쭉 뻗어 나간 타구는 절대 짧지 않았으며 그린 앞에 떨어진 공은 핀을 향해 굴렀다.

조금만 더 길었다면 홀인원도 기대할 만한 좋은 샷이었으나 결국 3야드 앞에 멈춰서고 말았다.

“굿 샷!”

“이제야 스윙이 좀 잡힌 것 같아요.”

“신경 바짝 써서 1타 줄여 보자.”

“물론이죠.”

마침내 모모코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아직 2오버인 상황인지라 대놓고 기뻐할 수는 없었지만 차분한 스트로크로 첫 버디를 완성한 모모코는 필상이 내민 하이파이브를 대신해 폭 안겼다.

“우우우우!”

아내가 남편에게 안기는 것이 무에 대수라고 팬들의 입에서는 아쉬운 탄성이 쏟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상의 품에서 한숨을 돌린 모모코, 그녀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첫 버디를 잡은 모모코의 샷은 드디어 진면목을 보이며 거대한 비상의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9번 홀. 490야드 파 5홀]

좌측으로 휘는 도그렉 홀이다.

보통 좋은 코스라 하면 오로지 그 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독립되어야 하고 다른 홀과는 연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미야자키 골프코스는 완벽했다. 다만 홀의 경계에 높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둘러져 있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들어가는 순간, 레이 업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으며 때때로 벌타 드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모모코는 용감하게도 좌측의 나무가 우거진 방향으로 스탠스를 취했다.

-지금 혹시 모모코가 저 나무들을 넘기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냥 통째로 넘기려는 것은 아니고 우측의 낮은 가지 방향으로 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좀 위험해 보입니다. 2온도 중요하지만 이제 겨우 버디를 잡아 샷 감각을 찾은 것 같은데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래도 전 응원하고 싶습니다. 두려워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도전, 그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그럼 한 번 지켜볼까요?

2온은 어렵지만 잘라 가면 충분히 버디를 취할 수 있는 홀이다. 때문에 3온으로 버디를 잡아 이븐파로 프런트나인을 마치는 것도 나름 좋은 공략이다.

하지만 모모코도 필상도 과감한 시도에 동의했다.

이미 연습라운드 때 2온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그 때마다 성공했던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까앙!

시원시원한 티샷이 폭발했다.

크고 늘씬한 몸매에서 만들어진 큰 스윙아크와 두려움이 없는 과감한 다운 블로우, 그리고 쭉 뻗은 피니시까지, 그런 파괴력 넘치는 스윙을 하는 선수는 모모코 외에 몇 없다.

그런데 타구는 의외로 나무가 우거진 방향을 향하지 않았다. 클럽페이스가 열려 맞았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강력한 드로우가 걸린 탓에 처음에는 생각보다 우측으로 출발했을 뿐, 이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좌측으로 휘기 시작했다.

남자 프로들에게서나 봄직한 파워 넘치는 드로우 샷에 팬들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드디어 모모코에게서 기대했던 폭발적인 샷이 터졌기 때문이다.

-하하하. 드로우 샷이었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정석대로 1시 방향으로 정확한 피니시가 이뤄졌고 그로 인해 처음에는 타구가 밀린 듯 보였지만 회전이 걸린 공은 절대로 그냥 날아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비거리가 역시 대단하죠?

-지금 막 떨어졌습니다. 캐리가 무려 265야드나 나왔습니다! 일본 여자 투어 평균보다 무려 25야드나 더 날아갔습니다. 비거리가 아니고 순수 캐리가 말입니다.

-지난주에 우승한 이즈카 하루의 장타 실력도 대단하던데, 이제 진정한 장타 여왕이 누군지 가려야 할 날이 곧 오겠군요.

-아! 그 비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거의 1년을 쉬었지만 모모코는 누가 뭐래도 현 일본 여자 골프를 대표하는 선수입니다. 아직 정식 데뷔도 하지 못한 선수와 비교하면 안 되죠.

-제가 조금 성급했네요. 전 두 선수가 나란히 미스터 퍼펙트의 코치를 받고 있어서 기량도 엇비슷할 거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 역전 드라마는 정말 대단하지 않았나요?

다나카 해설의 의견은 다소 의외였다.

누구보다 이즈카 하루를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봤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어느 조직이든 파벌이 있듯, 사토시 회장과 반대편에 선 불편한 관계로 추정되었다.

하기야 둘을 지금 시점에서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건 모모코가 이미 지나온 여정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세계 여자 골프계의 흐름이다. 이미 여자 프로들도 평균 비거리 300야드 시대에 접어들었다. LPGA의 평균이 253야드였고 박성현을 비롯한 선두권은 이미 300야드 이상을 펑펑 날리기도 한다.

“얼마나 날아갔죠?”

“런이 제법 많아서 290야드는 충분히 넘긴 것 같아.”

도그렉 홀이라 공의 위치가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감이 좋았고 드로우 구질의 특성을 감안해 추정했다. 그런데 막상 확인한 기록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301.8야드.

이 홀의 최장타 기록을 모모코가 갈아치운 것이다. 특별히 뒷바람이 불거나 페어웨이가 딱딱한 것도 아니건만, 확실한 장타자임을 유감없이 드러낸 결과였다.

모모코도 300야드를 넘겼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야 본궤도에 돌아왔다는 증거라고 여기는 듯.

“정확히 180야드 남았어.”

“뭐로 칠까요?”

“5번 아이언 어때? 이미 감이 잡혔으니까 80% 풀스윙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네. 오빠!”

“왜 그래? 징그럽게.”

“잉? 너무해요!”

갑자기 코맹맹이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유를 되찾았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의미였다.

남은 거리는 충분히 공략 가능한 거리지만 절대 쉽지는 않다. 일본 코스의 특징은 코스 중간의 페어웨이에 뜬금없는 나무가 툭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이 홀도 그린 앞에 100야드 인근 우측에 나무가 불쑥 돌출되어 있다. 지금 샷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시각적인, 심적인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오호! 2온, 충분히 가능하겠죠?

-물론입니다. 그린 앞의 벙커를 넘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걸 의식하면 오히려 샷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각보다 앞뒤 폭이 좁거든요.

-더욱이 그린의 모양이 전체적으로 스모 경기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포대 그린이라서 길면 굴러 내려가겠네요.

-네. 그걸 조절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화도 무색하게 모모코의 샷은 그린에 박힐 듯 강하게 꽂혀 크게 구르지도 않았다.

무려 5번 아이언이었음에도 스핀이 강하게 걸린 것이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앞으로 튀었다면 핀에 더 가까이 붙었을 텐데, 아쉬웠다.

“아! 너무 강하게 찍었나 봐요.”

“좋아! 정말 샷 감각이 최고조에 다다랐네, 뭘!”

“그렇죠. 흐흐흐.”

그린으로 향하는 모모코의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하지만 필상의 걸음은 무거웠다. 안 그래도 20kg이 넘는 골프백을 맺는데, 그녀가 팔짱을 끼고 기대 왔기 때문이다.

애틋한 연인이 산책을 나온 것도 아니건만 결혼 전보다 더 집착이 강해진 건 아닌지 염려스러운 대목이었다.

하지만 힘들다고 밀어낼 수도 없었다.

팬들의 따가운 시선도 부담스럽지만 거부하는 몸짓을 했다가는 이어질 보복이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측으로 반 컵만 봐도 될 것 같아.”

“일단 확인해 볼 게요.”

필상은 퍼터를 건네주기만 할 뿐, 아예 그린에는 발길도 들이지 않았다. 가끔 깃대를 잡고 있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면 그린 위에서의 플레이는 철저히 선수의 몫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는 듯.

그린을 크게 한 바퀴 돌며 라이를 살피는 모모코를 보고 있노라니, 괜히 미소가 그려졌다.

저렇게 예쁘고 깜찍한 여인이 자신의 아내라는 것이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1년이 넘으면 시들해질 만도 하건만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함께 부대끼는 시간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헛소리야!’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나 아직도 가슴이 설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모모코가 그만큼 아름답고 마음 씀씀이도 예쁘기 때문이었다.

친가 가족들과의 불화는커녕 오히려 필상보다 더 친하게 지낸다. 게다가 필상이 오로지 골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자신도 수많은 팬을 가진 프로인데도 불구하고 사랑의 증표인 아이를 낳기 위해 희생한 대목은 말이 필요 없다.

혹자는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젊은이들의 세태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신의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결혼은 물론 출산도 꺼리는 이들이 흔한 세상인 것이다.

“와아아! 인 더 홀!”

과감했다.

들어가지 않으면 버디가 어려울 것 같은 세기로 밀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어려웠지만 깃대를 맞고 바로 사라지는 공을 보며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괴성이 그린을 떨쳐 울렸다.

과감하고 불안했기에 더 강한 자극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글을 기록한 모모코는 단숨에 -1로 올라섰다. 물론 오늘 코스 세팅이 대체적으로 평이했던 까닭에 선두권은 이미 -6 부근에서 형성된 상황이었다.

-골프 여신, 기회에 강한 면모는 전혀 바뀌지가 않았네요.

-그렇습니다. 최근 젊은 선수들의 기세가 아주 드높은데, 그들의 단점은 역시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모모코는 다릅니다.

-아! 그녀도 역시 아직은 스물한 살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녀를 보면 젊은 선수들이 가지는 특징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시원시원한 장타에 과감한 코스 공략, 하지만 오늘 보여 줬다시피 첫 홀에서 더블을 기록하고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6개 홀 연속 파 세이브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그 점이 바로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부분입니다. 버티고 버티다 기회가 오면 다시 살아나 날아오르는 것이죠!

상당히 중요한 지적이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반면 그보다 더 빨리 식는다. 그러나 모모코는 21살에 불과한데도 절대 경험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수많은 우승을 직접 일구었으며 경쟁 중에는 더더욱 노련한 면모까지 보인다. 그것이 다른 선수와 구별되는 장점이라는 것을 언급하며 아직 -1에 불과한 그녀가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에 찬 언급을 더했다.

그런 호평이 틀리지 않았음을 백 나인에서 몸소 증명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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