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28화 (228/354)

228. 칭찬 일색

‘이 녀석!’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표현에 적잖이 놀랐다.

아무리 이성으로 보지 않아도 그렇지, 남자애 부르듯 하면 싫어할 것 같아 그 말은 꾹 삼켰다.

필상이 놀란 것은 완벽한 스윙만이 아니다. 까마득히 치솟은 타구가 평소보다 30야드 이상 더 멀리 떨어졌다는 점이다.

-와우! 대체 얼마나 날아간 거죠?

-281야드입니다. 웬만한 남자 선수 거리입니다. 하하하!

-이러면 모모코와 장타 경쟁 구도 아닌가요? 아! 물론 투어 시드를 확보했을 때 가능한 얘기긴 하군요.

봄은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중계진도 그 사실을 깜빡 잊을 만큼 봄은 큰 주목을 받았다.

처음에는 필상이 캐디로 나선 것 때문이었으나 어제 후반부터 남다른 샷을 보여 주면서 기량도 인정받기 시작한 듯.

“좋았죠?”

“그래. 그렇게 치라고 수없이 가르칠 때는 안 되더니!”

“그러니까요. 꼭 잘 쳐야겠다는 각오를 다져서 그런 것 같아요.”

“날 닮아 실전형인가?”

“치! 오빠랑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거든요.”

“더도 말고 그 감각을 잘 유지하도록 노력해 봐!”

대답은 않고 씩 웃어 보이는데, 개구쟁이 같았다.

하도 귀여워 머리를 툭툭 쳐 줬는데, 싫어하기는커녕 묘한 미소를 보이며 바짝 다가와 걸었다.

오누이. 더도 말고 딱 그런 느낌이었다.

타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이 허물없이 친숙함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 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필상도 기분이 좋았다.

“어이 씨. 제법인데요?”

미나미가 124야드 세컨샷을 무난하게 그린에 올렸다. 아주 애매한 3야드 안팎이지만 버디 기회인 것은 분명했다.

“당연하지. 현재 JLPGA 투어에서 가장 샷 감이 좋은 선수 중에 한 명이니까.”

“그 정도였어요?”

봄은 미나미가 유명한 프로라는 것만 알았지, 실제 어느 정도 지명도를 지녔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앞으로는 골프에 관련된 공부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나미가 상금 랭킹 2위인 것도 모르지?”

“2위면 대체 얼마나 번건데요?”

“2천만 엔 정도.”

“우와! 프로 골퍼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요?”

“너 내가 올해 얼마나 벌었는지 모르지?”

“오빠는 세계 1위잖아요. 그럼 1억 엔도 넘게 벌었겠네요.”

“하하하! 나중에 검색해 봐.”

“치! 많이 벌기는 했나 보네요. 그렇게 뻐기는 걸 보니.”

돈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부족함을 모르고 큰 것인지는 몰라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 보였다.

일본 재계를 움직이는 지하경제 대부인 부친을 뒀으니 돈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이후 봄은 부쩍 관심을 드러냈다.

“전 우승해도 상금 못 받는다면서요?”

“아마추어니까!”

“에이! 치사해서 얼른 시드를 받든지 해야지.”

“그건 그렇고 일단 샷에 집중해.”

“네. 79야드 맞죠?”

“거리감 좋네. 경사가 좌측으로 흐르니까 굳이 핀을 바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럼 좌측 벙커의 오른쪽 끝 볼게요.”

일단 샷 루틴에 들어서자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어제 컨트롤 샷에 대한 효용성을 깊이 절감한 탓인지 샌드웨지를 잡고 부드러운 스윙을 가했다.

“굿 샷!”

임팩트가 이뤄지는 순간, 제대로 걸렸다는 느낌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타구는 정확한 방향으로 날아가 핀을 향해 곧장 튀었다. 아쉽게 홀컵을 살짝 지나친 타구가 스핀이 걸려 우뚝 멈추는 광경에 갤러리들의 격렬한 함성이 터졌다.

거의 탭인 버디 거리였기 때문이다.

-정말 정확한 에이밍과 거리감이네요.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단련을 했을 테지만 첫 프로 대회에 출전한 아마추어 선수가 제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 주기란 절대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모모코처럼 이즈카 하루도 승부사 기질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미스터 퍼펙트의 훈련 방식이 그만큼 대단한 걸까요?

-그보다는 타고난 재능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저런 폭발적인 스윙은 가르친다고 되는 건 아니거든요. 하하하.

애써 필상의 출중함을 가리려 했으나 대다수 골프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본인 스스로가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손을 대는 선수마다 우승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겨울 시즌에 TPK가 운영하는 전지훈련에 참가하는 선수가 이미 다 찼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필상과 타이거 우즈가 직접 지도하고 함께 훈련하며 연습 라운드도 같이 한다는데 어찌 가고 싶지 않겠는가!

봄은 마크도 하지 않고 바로 탭인 처리해 먼저 홀 아웃을 했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낮지만 그 모습에 필상은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봄. 이럴 때는 그냥 마크하고 동반자가 친 다음에 처리를 하는 게 나아.”

“아닐 걸요?”

“좋아.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치자. 하지만 마크를 하고 공을 닦은 뒤에 퍼팅을 해야지. 안 보이는 부분에 공의 하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

“알았어요.”

필상은 더 이상 다그칠 수 없었다.

미나미가 버디 퍼팅 루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어드레스를 보건데 라이는 정확했다. 하지만 미는 순간, 퍼터 페이스가 아주 미세하게 닫혔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지만 공은 홀컵 왼쪽 끝을 스치며 그냥 지나쳤다.

“봐요!”

“그래 너 잘났다!”

“치! 칭찬이 뭐 그래요!”

애매한 거리는 분명했지만 퍼팅 스트로크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심적인 동요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건 바로 봄의 연속된 굿 샷에 이어 가벼워 보일 정도로 얼른 해 버린 탭인 버디와 무관치 않았다.

미나미가 보기에 봄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드는 하룻강아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도 상금왕을 노리는 선수답게 기회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버디로 응수하여 주거니 받거니 팽팽한 승부를 이어 갔다.

-두 선수 모두 전반에만 4타씩 줄였습니다. 게다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선두인 쑤카판도 2타를 줄였습니다만 어느새 3타로 후끈 추격했습니다. 이런 기세를 이어 간다면 선두권 선수들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지요.

-미나미야 알아주는 선수이니 그렇다 쳐도 이즈카 하루는 보면 볼수록 대단하네요. 가끔 터무니없는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당장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인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미스터 퍼펙트가 괜히 무명 선수의 캐디백을 맨 게 아니라는 거죠. 하하하!

-이번에 시드를 받지 못하더라도 QT(퀄리파잉 토너먼트)에 참가하면 내년에는 그녀가 투어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난하리라 봅니다. 어차피 모모코도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투어에 나선다고 하니 둘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가파르게 선두를 압박하는데도 여전히 우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에도 봄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진가가 발휘된 홀은 502야드 파5, 11번 홀이었다.

10번 홀에서 버디 퍼팅이 홀컵을 돌아 나온 아쉬움을 털려는지 1번 홀의 장타 이후 안전한 티샷 공략을 하던 봄이 다시 강력한 드라이브 티샷을 터트렸던 것이다.

좌측 벼랑은 OB지역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우측 법면의 경사를 이용한 공략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러프로 인해 비거리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 와중에 봄은 정면 승부를 선택했고 타구는 페어웨이 정중앙, 284야드를 기록하며 대회 최장타 기록을 다시 갱신했다.

“하루! 하루! 하루!”

약자라서 응원했던 팬들이 어느새 그녀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골프의 꽃은 시원한 장타이기 때문이다.

골격이 크거나 장신이 아닌데도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티샷은 팬들로 하여금 속이 후련한 감동을 선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저 좋은 샷에서 그치지 않았다.

나름 비거리에 자신이 있던 미나미가 그동안 참고 참았던 장타를 날렸는데, 타구는 강한 드로우가 걸리면서 좌측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힘이 들어가면 대부분 페이스가 열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강하게 당긴 것이 엉뚱하게도 드로우 샷이 되어 버린 것이다.

“흐흐흐……. 질기게 쫓아오더니 드디어 보냈네요.”

“이빨 보이지 마. 카메라가 몇 개인데.”

“뭐 어때요. 내 기분까지 남들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야 평범한 선수인 경우고. 네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고 싶다면 적어도 안티 팬을 만들지는 말아야지.”

“오빠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뭐?”

“그렇잖아요. 일본의 보수적인 팬들을 모두 한 방에 적으로 돌리고도 이렇게 한가하게 일본에 온 걸 보면 참 낯짝이 두껍기는 해요. 흐흐흐.”

“낯짝?”

자신도 심하다 싶었는지 얼른 앞장서서 걸었다.

하기야 봄의 경우는 자신과 다르다.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났지만 그녀의 국적은 엄연한 일본이다. 때문에 혐한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녀를 시기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사토시의 철퇴가 가만히 구경만 하지도 않을 테고.

미나미는 드롭한 뒤 3번째 샷을 날렸지만 그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거리도 거리지만 러프에서의 장타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219야드야. 뭘 줄까?”

“5번 우드 주세요.”

“유틸리티가 아니고?”

“네. 올리려면 방향성이 중요하잖아요.”

“그렇다면 오케이.”

풀스윙만 고집하던 봄의 생각이 드디어 바뀌었다.

왜냐면 컨트롤 샷을 하면 실수가 급격히 준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봄은 차분하게 탄도가 낮은 샷을 구사했다.

짧아 보였지만 공이 머금은 힘은 생각보다 강해 하염없이 구르더니 급기야 그린을 타고 올랐다.

-와우! 2온입니다. 2온!

-다시 봐도 이즈카 하루는 정말 좋은 스윙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네요. 끝까지 밀어주면서 공에 힘을 어떻게 싣는지 잘 보여 줍니다.

-아! 그래서 저렇게 긴 런이 발생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제법 긴 이글 퍼팅이 남았지만 퍼팅도 워낙 좋아서 이글을 한 번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 들어 온 그린 시 퍼팅 수가 가장 낮더군요. 집중력도 아주 좋다는 건데, 그 점은 스승을 닮은 것 같습니다.

-장타도, 퍼팅도 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선수라고 할 수 있지요. 하하하!

오늘은 유독 지나치게 칭찬 일색이었다.

만약 일본 국적이 아니었다면 양상은 달랐을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여자 프로들의 기세에 눌려 있던 JLPGA가 모모코의 등장으로 전성기를 맞을 뻔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한 시즌을 쉬는 동안, 일본 여자 투어는 또 다시 확실한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되었다.

올 시즌 이미 결과가 나온 37개의 대회 중에 여전히 한국 선수들이 11승을 합작했고 최다승은 엉뚱하게도 태국 출신의 눅 쑤카판이 차지한 상태다.

이번 대회도 단독 선두이기 때문에 우승하면 5승으로 최종전의 결과와 상관없이 최다승은 그녀의 몫이 된다.

때문에 3승을 거둔 가츠 미나미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장한 아마추어에게 밀리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나마 봄이 일본 국적인 것이 다행이려나.

“으흐! 맛이 갔네요.”

미나미의 4번째 샷이 그린을 훌쩍 오버해 버리는 순간,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한국어였지만 잘 들으면 어감만으로도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필상은 주의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봄. 한국어 쓰지 마. 그리고 가급적 동반자의 플레이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마.”

“감정을 드러내는 건 자제할게요. 하지만 한국어 쓰는 것까지 말리지는 마세요. 안 그래도 국적 바꾸고 싶은데.”

“어허! 무슨 소리야.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일단 오늘은 내 말 들어.”

“네.”

국적을 바꾸고 싶다는 말은 한국으로 귀화하겠다는 의미다. 부모님이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신 어머님은 어쩔 수 없더라도 부친이 엄연히 살아 계시고 일본에서 탄탄하게 기반을 잡았는데, 굳이 국적까지 바꿀 필요가 있나 싶었다.

비록 주관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사토시의 그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하다. 부녀간의 엇갈린 애증이 있음도 진즉에 알고 있지만 국적을 바꾸는 것은 적어도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녀의 진의를 가감 없이 파악하는 것도 필요했다.

“오른쪽으로 두 컵 반?”

“라이는 네가 직접 봐. 그게 규정이고.”

물론 그린에 올라가기 전에 경사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다. 캐디가 그린까지 함께 올라와 라이를 보게 되면 지연 플레이가 불가피하기에 수정된 규정이다.

더군다나 필상은 자신이 계속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조언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잔소리를 해댄 뒤라서 그런지 봄은 찬 서리가 풀풀 날리는 분위기를 풍기며 그린으로 향했다. 캐디가 선수의 기분을 건드리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또한 그녀가 본 라이가 크게 틀리지 않았던 터라 부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의견은 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뭐야? 저 녀석!’

봄은 꼼꼼하게 라이를 다시 확인하더니 두 컵 반이 아닌 3컵을 봤다. 직접 가까이 가서 확인하지 못했기에 그녀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조언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봤다고 생각했던 공이 홀컵 앞에서 급격하게 휘면서 홀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 대회 통틀어 11번 홀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이글이 첫인사를 한 것이다. 졸지에 2타를 줄인 봄의 성적은 어느새 -12, 선두와 1타 차까지 바짝 접근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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