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13화 (213/354)

213. 사무라이 골프

[미스터 퍼펙트. 페덱스 컵 우승 확률 39%.]

두 번에 걸쳐 우승한 포인트가 재조정되었으나 도박사들의 선택은 거의 모두 필상을 가리켰다.

끝까지 경쟁을 뚫고 올라온 30명의 객관적인 우승 확률은 3.33%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27위인 히데키의 경우, 누적 포인트는 142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1, 2차전을 우승한 필상은 2,000포인트가 누적되어 설사 꼴찌를 해도 무조건 톱 5안에 들어가게 된다.

누가 주인공이 되려면 누가 몇 위를 해야 한다는 둥, 많은 언론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필상의 기세가 너무 드높았기 때문이다.

“39%라는 게 말이 되냐고!”

“너무 낮은가요?”

“에이!”

미켈슨은 필상의 우승 확률에 대해 불만이 많아 보였다.

2위 디샘보는 1,800, 3위 더스틴 존슨은 1,520, 4위 미켈슨이 1,350, 5위 타이거도 1,280포인트라서 그중에 누군가 우승을 한다면 1500만 달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필상의 성적이 엉망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벌어졌다.

플레이오프 첫 3개 대회 중에 2개를 우승하고도 페덱스 컵 쟁취에 실패한 2012년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 2015년 호주의 제이슨 데이의 전례가 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그런데도 투어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이 열리는 애틀랜타 이스트레이크 GC는 온통 필상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기자회견을 왜 해?”

“그냥 제가 좀 아쉬운 게 있어서요.”

“아쉬운 거?”

“같이 가시죠. 타이거 형님도.”

굳이 대회가 열리기 전에 인터뷰를 자청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필상이 TPK 사단이 함께 가자는 말에 왜 그러는지 감은 잡았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이런 시기야말로 광고를 위해 최적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켈슨도 타이거도 기꺼이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하지만 서두는 역시 1500만 달러 주인공에 대한 것이었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대략 40% 이상의 우승 확률을 점치는 베팅업체도 있던데, 개인적인 소감부터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미 밝혔듯이 저는 이번 대회도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많은 팬들의 우려와 응원이 상존하는 것을 알기에 보다 완벽한 경기를 펼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뭔가 대답의 톤이 바뀌었다.

이전 인터뷰보다는 살짝 겸손한 어투였으나 결국 우승에 대한 야망은 감추지 않았다. 다만 뒤에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전략적인 접근을 하고 있을 뿐.

-이번 코스는 장타가 그다지 빛을 볼 수 없다고들 하던데, 그렇다면 불리한 것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제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장타보다는 정교한 샷을 더 선호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스트레이크GC야말로 저의 진가를 증명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는 결과로 말을 해야 한다.

때문에 사전 인터뷰에서 너무 과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기대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워낙 단정적으로 말을 하다 보니 화제는 자연스럽게 사적인 영역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처음에 동반하지 않았던 아내, 모모코가 합류하면서 컨디션이 좋아진 것부터 시작해 아이를 출산한 것에 대한 축하도 이어졌다.

그런데 의도와는 달리 코리안 투어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올 시즌 코리안 투어에서도 대활약을 하고 있는데, 캘린더 그랜드슬램이 가능할까요?

“하하하. 이미 무산되었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고도 이기지 못한 선수가 등장했었지요.”

그 기자가 알고 질문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의도와는 달리 필상의 대답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페덱스 컵 시리즈를 치르면서 필상은 그 어떤 선수도 비할 수 없는 극강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한국의 프로가 필상을 눌렀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그 발언으로 인해 코리안 투어에 대한 미국 골프팬들의 생각이 달라졌음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 말미에 필상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 푹 들어왔다.

-JGTO는 개막전 우승 이후 전혀 출전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요? 만약 사실이라면 팬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워낙 뜬금없는 질문인지라 필상은 해당 기자의 얼굴을 잠시 주목했다. 당당히 질문했던 그가 결국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확인한 필상은 누군가의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사적인 감정이 있다면 어찌 일본인 아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기회를 주고 많은 성원을 보내 주신 일본 투어를 존중하며 다시 그 아름답고 멋진 코스에 서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초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보다 솔직한 대답을 요구합니다. 당신을 좋아하고 응원했던 일본 팬들을 위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로 진실을 밝히라는 것인지, 아니면 필상의 출전을 바라는 팬들을 위해 핑계라도 대라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러나 곤란한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오로지 진실한 대응이라고 판단한 필상은 결국 말문을 열었다.

“PGA와 코리안 투어에 전념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신 팬들을 위해 몇 번의 대회는 출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건이라니요?

“이 문제는 저희 TPK 컴퍼니 일본 진출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공정하지 않은 담합과 폐쇄적인 시장이 주요인입니다.”

표현이 심상치 않았다.

때문에 혹을 떼려다 붙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필상은 예정에 없던 보다 상세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한국 TPK는 오픈해서 성황을 이루고 있고 이제 겨울 시즌이 다가오면 태국 TPK도 전면적인 오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사업은 잠정적인 중단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누군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코스를 인수할 수 없는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게다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지나쳐 가짜 뉴스가 버젓이 방송을 탈뿐더러 사랑하는 아내까지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에서 굳이 일본 투어를 뛸 이유를 찾을 수 없었음을 강변했다.

-제가 아는 바와는 좀 다른데, 그 말씀이 옳다면 투어 출전이 어려웠을 것이라는데 공감은 됩니다. 하지만 일본 투어에 소홀한 반면 한국 투어에 적극 출전하면서 큰 흥행을 거둬 아시아 최고의 투어로 발돋움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에 대한 책임은 느끼지 않습니까?

“하하하. 저는 한국인입니다. 가장 편하고 제가 좋아하는 코스에서 펼쳐지는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뭐가 문제죠?”

질문했던 기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앙숙인 것도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혼동하는 것이 있었다. 필상이 한국이나 일본을 같은 무게로 잴 필요는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더욱이 호의적이지 않은 무대에 서기를 강요하는 것은 억지다. 만약 필상의 출전을 바란다면 진심으로 호소해야지, 자신을 통해 이렇게 압박을 가하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대변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타이거. 다가올 겨울 시즌에 오픈할 태국 TPK 코스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소개 좀 해 주시죠?”

“아! 그걸까요.”

타이거는 먼저 자신이 태국 TPK 사업을 주도한다는 사실부터 알렸다. 또한 겨울 내내 자신이 전지훈련을 태국에서 시행할 예정이며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했다.

비행기 티켓과 머물 콘도와 좋은 식사, 그리고 아름답고 훌륭한 코스에서 펼쳐질 몇 가지 골프 여행 패키지를 언급하는 그의 모습은 여행사 직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기자나 팬들의 시선에는 굉장히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또한 자신이 설계한 코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다들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영락없이 회사 광고를 찍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왼쪽 어깨가 너무 일찍 열려. 그래서 헤드업이 되는 거고.”

“흐흐흐……. 알았어요.”

“모모코! 지적을 받고도 지금 웃음이 나와?”

“그럼 어떡해요. 오빠랑 이렇게 연습하는 게 너무 좋아 죽겠는데.”

“으이그!”

대회가 코앞이지만 연습장의 풍경은 색달랐다.

필상은 가볍게 몸을 풀고는 내내 모모코의 샷을 점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꽤나 엄하게 지도하고 있지만 모모코의 애교에 정색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색적인 광경이 하나 더 있었다.

미켈슨과 타이거까지 덩달아 뒤에 앉아 필상의 지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눈으로 확인이 쉽지 않은 스윙을 보면서 어떻게 매번 정확한 코치를 하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배울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아닙니다. 어깨가 일찍 열리기 때문에 정확한 임팩트가 이뤄지지 않고 자꾸 열려 맞는 겁니다. 충분히 클럽 헤드를 끌고 내려온 뒤에 회전을 해야지요.”

“그런가?”

아무리 봐도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미켈슨이나 타이거의 눈에는 모모코의 스윙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수차례 지적 받고 수정하자 샷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다.

일단 가끔 보이던 페이드 구질이 사라졌고 타구의 궤적이 일관성을 유지했으며 비거리도 20야드나 늘었다.

정확한 임팩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한 두 선수는 즉시 제 타석으로 돌아가 직접 본 것을 확인했다.

-코스 내에 나무와 호수가 너무 많아 마치 일본의 명문 코스를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네. 그렇기 때문에 장타보다는 정확한 샷이 필요한 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 프로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번 대회는 그의 정교한 샷을 마음껏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 프로의 상황에 다른 클럽 선택이나 공략 방법을 잘 보고 배워야겠군요.

-공 프로뿐만 아니라 이 대회에 출전한 서른 명의 모든 선수는 다 정상급 기량을 지녔기 때문에 주의 깊게 시청하시면 기량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곧 우리 공 프로의 티오프 시간이죠?

-네. 하필이면 첫날 일본을 대표하는 마쓰야마 히데키와 한 조가 되어 보는 맛이 한결 더할 것 같습니다.

내륙인 애틀랜타에 위치한 이 코스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강한 바람과 같은 악조건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 대신 코스의 굴곡이 심하고 적재적소에 심어진 나무와 깊은 벙커로 인해 매홀 전략적인 공략이 요구된다.

재작년 이 코스에서 화려한 부활을 알리며 우승한 타이거의 스코어가 -11이었다는 것, 그가 유일한 두 자릿수 성적이었다는 것을 고려한 필상은 하루에 -4를 목표로 첫 홀을 향해 이동했다.

“반갑습니다. 마쓰야마.”

“아, 네. 처음 뵙습니다.”

실은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낯설기 때문인지 그렇게 인사한 마쓰야마는 이후 필상과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자격지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현재 PGA에서 활동하는 일본 출신 역대 최강의 기량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선수로 PGA 통산 5승, JGTO 8승을 거둔 탄탄한 실력의 보유자다.

그런데 오늘 마주하고 보니 확연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있었다. 그가 존경하는 일본 골프의 두 전설, 점보 오자키와 아오키 이사오처럼 그도 사무라이와 같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골프 경기에 임한다는 것이다.

“치! 인사도 안 하네.”

“하하하. 그에게 골프 대회는 모두 전쟁이거든.”

“이제 그런 시대는 갔는데, 너무 고지식한 것 같아요. 저런 줄도 모르고 제가 얼마나 응원했었는데요!”

“그의 팬이었나 보네?”

“네. 아주 옛날에!”

옛날이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미사키는 동포와 함께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 반가웠던 것 같다.

비록 경쟁자이고 한때 열렬히 응원한 선수지만 필상과의 포인트 차도 컸고 견줄 기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반자 캐디와 인사하는 것은 통상적인 예의에 해당하건만 그마저 무시하는 냉대에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다소 과민한 그 반응은 아직도 남은 감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필상은 그냥 웃어넘겼다.

‘체격도 좋고 견고한 스윙에 비거리도 짧지 않은데…….’

기대만큼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2017년 3승을 수확하며 한때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 일본 골프팬들을 열광시켰지만 그 해 PGA 챔피언십에서 선두로 나섰다가 역전을 허용하며 쓴잔을 마셨다.

아직 일본 선수의 PGA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한 번도 없다.

한국은 일찍이 양용은 프로가 그 관문을 넘었고 필상이 연거푸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면서 최고의 왕좌에 오를 태세였기에 이 대결을 지켜보는 일본 팬들의 바람은 간절할 것이다.

우승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이기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필상은 승부에 앞서 그의 골프를 관조하고 있었으니 다른 차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배짱도 두둑하다던데?”

“네. 일본 전문가들은 준비된 챔피언이라고 해요. 준비를 너무 오래 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크크.”

그는 늘 전의에 차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팬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게 승부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배웠고 그걸 잘 지키기 때문에 성공이 멀지 않았다고들 평가했다.

하지만 공자가 이르길,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겨 하는 사람만 못하다)라 하지 않았던가!

그는 천재이며 노력하는 선수지만 스스로 세운 ‘사무라이 정신’의 엄혹한 굴레에서 속박되는 날, 새로운 골프를 만나게 될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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